Chapter 1: i.
Chapter Text
드레이코는 열차에서 포터를 봤다. 딱 한 번이었고, 금세 사라져 버렸지만. 드레이코는 어깨에 닿은 팬지의 부드러운 손길이 그를 다시 객실 안으로 데려올 때까지 문간을 오래 서성였다. 그렉이 창문에 이마를 대고 앉아 있었다. 블레이즈는 무릎에 펴 놓은 두꺼운 책에 파묻혀 있었고, 노트는 그렉의 맞은편에 웅크리고 앉아 온갖 맛이 나는 젤리빈 상자를 뒤적거리고 있었다. 그들도 빈센트의 빈 자리를 느끼고 있는지 드레이코는 알 수 없었다; 객실 안의 분위기는 따분했지만, 이번 여름은 그들 중 누구에게도 쉽지 않았다. 드레이코의 아버지는 아직 재판 중이었다. 어머니는 무죄를 선고받았다. 현재는 두 분 다 가택 연금 중에 있었고, 그는 8학년을 위해 호그와트로 돌아가게 되어 다행이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요즈음 저택은 참을 수 없을 만큼 고요했다. 어머니는 대부분의 시간을 침실에서 홀로 지냈다. 밤이면 그녀는 저택 안팎을 배회하곤 했다. 여러 날 밤 드레이코는 그녀가 침실 문을 조용히 여는 소리 뒤 잠깐의 정적, 그리고 복도를 걷는 느릿한 발소리를 들었다. 둘은 거의 대화하지 않았다. 사유지의 상당 부분이 전쟁 중 파괴되었지만, 어머니는 서둘러 복구 작업을 시작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한편 아버지는 여름내 그에게 거의 한 마디도 하지 않았고, 서재에서 홀로 술만 마시곤 했다.
드레이코는 덤블도어의 죽음과 전쟁에 대한 혐의로부터 모두 풀려났다. 당연히 많은 부분이 해리 포터의 덕분이었다―망할 포터, 라고 그는 생각했지만 실은 더 이상 그에게 분해 할 기력도 없었다. 사실 그는 자신이 아즈카반에서 평생을 보내지 않을 수 있도록 포터가 도와준 일로 그렇게까지 짜증이 나지도 않았다. 그 모든 걸 보고 또 점점 많은 걸 알게 되고 나니, 그들의 경쟁 심리는 고작 학창 시절의 멍청한 짓거리 정도로 느껴졌다. 솔직히 기숙사 우승컵이니, 퀴디치 우승컵이니, 기숙사 간 경쟁이니 하는 것들은 이제 다 사소해 보였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가 다시 수업을 듣고 호그와트의 오랜 전통에 참여하는 미래는 상상하기가 힘들었다. 마치 그의 세계가 통째로 거꾸로 뒤집혔는데, 그 역시도 함께 뒤집힌 것 같았다.
기차는 시골길을 달리고 그는 팬지 옆자리에 앉았다. 주된 대화 주제는 그들이 올해 어떤 수업을 듣게 될지에 관한 것이었다. 호그와트 8학년에는 전례가 없었다.
"우린 N.E.W.T 준비가 하나도 안 돼 있잖아, 안 그래?" 팬지가 말했다. 여름내 기른 머리가 그녀의 등에서 부드럽게 굽이쳤다. 그녀는 벌써 망토를 입고 있었다. "진도를 따라잡아야 하니까 7학년 수업을 듣게 할 거야."
"7학년이랑 같이는 아니겠지, 설마," 드레이코가 불평했다.
"안 그럼 어떡하는데? 8학년 반을 따로 만들어? 관리는 또 어떻게 하고? 교실도 부족한 데다가 선생들 할 일만 늘어나겠지..."
블레이즈가 책에서 고개를 들었다. "엄마가 그러는데 우리가 올해 수업만 듣지는 않을 거래."
"정확히 무슨 뜻인데?" 노트가 물었다.
자비니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는 여름내 키가 더 크고, 살이 빠진 것 같았다. "나야 모르지."
"따라잡아야 할 게 많잖아? 다른 걸 할 시간이 있겠어?" 팬지는 마치 그가 답을 알고 있다는 것처럼 드레이코를 보았다.
드레이코는 한숨을 쉬고 손으로 얼굴을 쓸었다. "넌 N.E.W.T도 잘 할 거야." 그는 피곤했다. 호그와트로 돌아가겠다는 그의 결심에 의문이 든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그는 그들 모두가 그랬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의 시선이 창가에 앉아 바깥을 응시하는 그렉을 향했다. 거대한 체구가 오늘따라 유난히 작게 느껴졌다. 그는 그들이 함께 있다는 것조차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듯했다. 그의 아버지가 전쟁에서 죽었고, 그의 어머니는 발칸 반도 어딘가에서 숨어 지내고 있었다. 게다가, 그는 빈센트마저 잃었다. 드레이코가 여름내 그렉을 봤던 건 각자의 재판에 참석하느라 마법부에 있었을 때 잠깐 스쳐 지나갔던 게 전부였다.
팬지가 그의 시선을 따라 그렉을 보고는 망설이다 불편하게 자세를 고쳤다. 그들 모두가 살아남기 위해, 전쟁을 견뎌내고자 절박하게 서로를 필요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그들 사이에 크나큰 거리감이 생겼다는 건 이상한 일이었다. 그에게는 그들이 유일한 친구들이었지만, 한편으로 그들은 전혀 친구가 아니기도 했다. 그걸 깨닫는 건 그의 뱃속에 슬픔과 공허의 탄 자욱을 남겼고, 처음은 아니었지만 그는 스스로가 안타까웠다. 부모 세대의 연대와 기숙사 제도 아래 많은 일들을 함께 거쳐 왔지만, 그들이 애써 쌓아올리고자 노력했던 우정이란 이렇게나 연약할 뿐이었다. 그는 팬지가 좋은 친구라고 생각했지만, 그 호감마저 옅어질까 궁금했다. 어른이 된다는 게 이런 건지, 이전에는 그렇게나 중요했던 것들이 실은 단지 우스꽝스러운 헛짓거리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고통스럽게 깨닫게 되는 건지 그는 여러번 자문했다. 혹은 그들이 이미 서로에게 각자의 가장 어둡고, 겁에 질리고, 이기적인 내면을 너무 많이 보여줬기 때문에 더는 지켜야 할 게 남지 않은 건지도 몰랐다.
오래 지나지 않아 어둠이 내리고, 그들은 소지품을 챙기느라 분주해졌다. 호그와트 급행열차가 서서히 운행을 멈추자, 복도는 신이 나서 재잘대는 학생들로 가득 찼다. 드레이코는 마치 거품 속에 갇힌 듯한 기분이었다―그는 학생들 사이에 감도는 긴장과 흥분을 감지할 수 있었지만, 그에 대해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들은 거의 미동 없이 앉아 창밖으로 우르르 기차를 빠져나가는 학생들을 지켜보았다. 복도가 텅 비자, 팬지가 자리에서 일어나 스트레칭을 하고는 말했다, "우리도 가자." 그들은 그녀를 따라 기차에서 내렸다. 쌀쌀한 저녁 공기를 들이마시자 드레이코는 머리가 조금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호그와트가 머리 위에서 언제나처럼 웅장하게 빛나고 있었다. 전쟁으로 인한 피해는 벌써 복구된 듯한 모습이 놀라웠다. 그는 성을 올려다보며 학생들을 따라 마차로 향했다. 그러다 팬지와 부딪치고 나서야 그는 성에서 눈을 떼고 앞을 똑바로 봤다.
팬지가 우아하게 마차에 올라탔다. 따라 타려던 그는 마차에 매인 세스트랄의 모습에 시선을 빼앗겼다. 그것의 검고 팽팽한 가죽이 달빛에 옅게 빛났고, 커다란 날개가 양 옆에 딱 붙어 있었다. 물론 드레이코가 세스트랄을 볼 수 있게 된지는 꽤 되었지만, 해골 같은 짐승의 모습에 그는 얼어붙었다. 발이 꼬여 넘어질 때처럼 뱃속이 철렁하고 울렁거렸다. 혈류가 귓가를 질주하는 것이 느껴졌다. 마차에 반쯤 올라탄 채, 그는 머뭇거렸다. 움직일 수가 없었다.
"드레이코?" 팬지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드레이코, 왜 그래?"
그는 대답할 수도, 그녀에게로 고개를 돌릴 수도 없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도 모른 채 입을 열었지만, 그 순간 그는 갑작스럽게 몰려든 학생들의 무리에 강하게 떠밀려졌다. 상념으로부터 깨어나, 드레이코는 거칠게 주위를 둘러보다 그 많은 사람들 중 하필이면 포터가 그를 지켜보고 있던 걸 보았다. 그는 어쩐지 망연자실해지고 달리 어디를 봐야 할 지 알 수가 없어 마주 응시했다. 포터는 오른쪽에는 그레인저를, 왼쪽에는 위즐리를 낀 채 그리핀도르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표정이 심각해 보였다. 포터가 그를 보며 지나쳐 갈 때 둘의 시선이 만났다. 그리고 드레이코는 팬지의 손이 팔뚝을 잡아당기는 걸 느꼈다.
"드레이코, 빨리 와."
그는 혼란으로 굼뜨게 마차 안으로 기어올라, 팬지의 옆자리에 앉았다. 뒤따른 블레이즈와 테오는 의문스러워 보였지만, 그에게 질문하고 싶지는 않은 듯했다. 반면 팬지는 그렇게 친절하지 않았다.
"왜 그랬어? 무슨 일인데?" 그녀가 따지고 들었다.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몰라. 잘못 봤나 봐."
"드레이코, 제발. 너 유령처럼 창백해. 폼프리한테 가 봐야 될 것 같아?"
마차가 앞쪽으로 덜컹하자 드레이코는 눈을 굴리고 그녀의 시선을 피해 창밖을 내다봤다. "괜찮아. 너 우리 어머니처럼 군다."
"진지하다고. 너 그러는 거 마지막으로 봤던 게 그―그―" 드레이코는 말이 이어지기를 기다렸지만 그녀는 얼버무렸고, 그들 넷은 성으로 올라갈 때까지 불편한 침묵 속에 앉아 있었다. 드레이코는 창밖으로 마차 안에서 재잘대는 다른 학생들을 구경했다. 그 또한 한때 저랬던 적이 있었다고, 친구들과 그 해의 우승컵을 누가 따게 될지나 어떤 수업이 가장 끔찍할지, 아니면 여름 동안 사귀기 시작한 커플이 누구일지에 대해 토론하곤 했었다고는 생각되지가 않았다. 그 때는 모든 게 너무 쉽고 간단하게만 느껴졌었다. 그 시절 그는 단 한 번도 지금처럼 세스트랄을 보고 질식할 것 같은 공포감에 짓눌려 공황에 빠지지 않았다. 그는 여름내 이 같은 발작을―그렇게 부르는 게 맞다면―몇 번 겪었다. 한 번 겪고 나면 이후 몇 시간을 그는 불편하고 불안한 감각에 시달리곤 했다.
그들이 탄 마차가 활짝 열린 성문 앞에 다다랐다. 따뜻한 환영의 불빛이 그들에게로 쏟아졌다. 드레이코는 마차에서 내려가 팬지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녀는 망설였지만, 작게 미소지으며 그 손을 잡았다. 그녀가 내리는 것을 도와주며, 그는 세스트랄을 곁눈질했다. 그것은 그들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거죽 밑으로 갈비뼈가 튀어나온 옆구리가 부드럽게 오르락내리락하고 있는 걸 제외하면 그건 아무런 미동이 없었다. 그들은 사람들을 따라 성 안으로 들어갔다. 세스트랄 옆을 지나쳐 갈 때, 드레이코는 문득 손을 뻗어 그것을 쓰다듬고 싶은 이해할 수 없는 충동이 들었다. 그는 잠시 망설였지만, 곧 팬지가 그를 앞으로 밀어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그들이 학생들을 뚫고 슬리데린 테이블로 향하는 동안, 드레이코는 8학년을 위해 돌아온 슬리데린이 얼마 없다는 사실을 금새 알게 되었다. 기차에서 그와 같은 칸에 탄 이들 말고도 드레이코는 테이블 끝에 붙어 앉은 밀리센트와 다프네를 보았다. 슬리데린 쪽으로 쏟아지는 시선과 속삭임이 분명히 느껴지자 드레이코는 유약하고 노출된 기분이 들었다.
"괜찮아, 드레이코?" 그들이 자리에 앉을 때 노트가 물었다.
그는 가까스로 웃어 보이고 테이블 아래로 손을 모았다. 학생들의 시선이 교수석을 향하느라 대연회장을 가득 채운 대화 소리가 잦아들어 그는 억지로 대답하지 않을 수 있었다. 회색의 긴 망토 차림의 맥고나걸이 그들 앞에 서 있었다. 그녀는 엄격한 얼굴이었지만, 드레이코는 그 표정이 학생들을 둘러볼 때 약간 풀어졌다고 생각했다. 대연회장이 조용해지자 그녀는 잠깐 기다렸다가 입을 열었다. "좋은 저녁입니다. 돌아온 학생 여러분―다시 돌아온 걸 환영합니다. 그리고 돌아온 우리 8학년 학생들은..." 잠깐의 침묵 후, 말이 이어졌다. "이렇게 여러분을 많이 보게 되어 우리 모두 매우 기쁩니다. 작년은 힘든 한 해였죠. 그런데도 이렇게 많은 학생들이 학업을 이어갈 준비가 되어 있는 걸 보니..." 그녀가 목을 가다듬었다. 잠시 동안 드레이코는 그녀가 울지도 모른단 생각에 겁에 질렸지만, 대신 그녀는 활기차게 이어갔다. "빨리 연회를 즐길 수 있도록 기숙사 배정식을 시작해 봅시다."
그 소리에 대연회장의 거대한 문이 열리고, 해그리드가 이끄는 1학년 학생들이 들어왔다. 그들은 맥고나걸 옆의 의자에 놓인 주름이 쪼글쪼글한 배정 모자 앞에 멈춰 섰다.
"다들 겁먹은 것 같아," 팬지가 속삭였다. "우리도 저렇게 작았을까?"
드레이코는 애매하게 '음' 소리를 냈다. 팬지가 맞았다―몇몇 학생들이 긴장한 눈으로 대연회장을 채우는 상급생들을 둘러보는 동안 다른 몇몇이 마법이 걸린 천장을 올려다 보고 있기는 했지만, 대부분은 기대 반 두려움 반으로 기숙사 배정 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모자가 노래를 시작하자 드레이코는 그가 슬리데린에 배정되던 저녁을 떠올렸다. 물론 놀랍지 않았다; 조상 대대로 그의 가족은 자랑스러운 슬리데린이었으니깐. 하지만 그는 만약 래번클로나 후플푸프, 아니면―정말 두렵게도―그리핀도르에 배정된다면 부모님이 뭐라고 하실지 두려워하며 호그와트에 도착하기까지 뜬 눈으로 지새웠던 날들 또한 기억했다. 호그와트에서의 첫 아침에, 그는 가장 먼저 부엉이장으로 달려가 부모님께 그 역시도 이제 슬리데린이 되었단 사실을 알리는 편지를 썼다. 한 명씩 호명되는 학생들을 보며, 그는 저들 중 누구라도 그가 느꼈던 것과 같은 압박을 느끼고 있을지 궁금했다. 그러나 곧, 최근의 사건들로 인한 문제가 떠올랐다: 그 어느 때보다도, 슬리데린은 오명을 쓰고 있었다. 그는 누군가 남몰래 슬리데린에 배정되지 않기를, 그게 수치를 벗어던질 방법이라면 차라리 그리핀도르에 배정되기를 소망하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마지막 신입생이 후플푸프로 배정되자 학생들이 요란하게 박수를 쳤다. "올해는 신입생들 물이 좋네," 더 잘 보기 위해 목을 늘이며 노트가 말했다.
"좋습니다," 맥고나걸이 평소와 같은 딱딱한 어조로 말했다. 박수 소리가 잦아들자, 그녀는 말을 이었다, "연회를 시작하기에 앞서 몇 가지 공지 사항이 있습니다. 금지된 숲은, 언제나처럼 학생들에게 출입이 금지돼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관리인 필치 씨께서 성에서 금지된 모든 물품들의 목록을 사무실에서 확인할 수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에게 상기해 줄 것을 요청하셨습니다. 또한 올해 교직원에 몇몇 새로운 얼굴들이 있는 걸 벌써 눈치챘을 수도 있겠군요." 그녀가 교수석 쪽을 돌아보며 말했다, "신임 어둠의 마법 방어술 교수, 윌리엄 프라우드풋입니다." 큰 키에 피부가 검은 남자가 테이블에서 일어나 박수에 정중히 화답했다. 드레이코가 아는 이름이었다―그는 마법부의 오러였다; 아버지가 그의 얘기를 하는 걸 한두 번 들은 적 있었다. 그는 검은 곱슬머리에 굵은 테 안경을 쓰고 있었다. 그가 짧게 웃으며 학생들을 향해 손을 들어 보이고 다시 자리에 앉자 맥고나걸이 소개를 이어갔다. "그리고 신임 변환 마법 교수, 플뢰르 델라쿠르입니다."
드레이코는 화들짝 놀라 움찔했다. 그는 자신이 교수석 끄트머리에 플리트윅과 스프라우트 사이에 앉아 있던 금발 여성을 알아보지 못했단 사실에 놀랐다. 델라쿠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팬지가 팔꿈치로 드레이코를 찔렀다. "플뢰르 델라쿠르! 보바통 챔피언이었잖아, 기억나?"
델라쿠르는 박수 치는 학생들―재밌게도, 많은 남학생들이 꽤나 열정적이었다―을 향해 깔끔하게 무릎을 굽혀 인사했다.
"어쩌다 고용했을까?" 밀리센트가 말했다. "저 여자 수업에 집중할 수 있는 남자애들은 한 명도 없을 텐데."
"꽤 젊지 않아?" 블레이즈가 말했다. 그는 테이블 건너편에 앉은 드레이코를 보며 짓궂게 씩 웃었다. 드레이코는 눈썹을 들어올리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결혼했어," 팬지가 끼어들었다. "그것도 위즐리들 중 하나랑, 상상이 돼?"
드레이코는 공지를 이어가고 있는 맥고나걸에게로 주의를 돌렸다. "마지막으로, 올해 우리가 맞이한 보편적이지 않은 상황에 대해 언급해야겠군요. 작년에 불미스럽게 중단된 학업을 완수하기 위해 돌아온 8학년 학생들이 있습니다. 분명히 하건대, 여러분이 성년이고 몇몇 제한들은 완화될 것임에 불구하고, 여러분은 아직 이 학교의 학생임을 기억하고 그에 걸맞는 행실을 보여주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N.E.W.T를 위해 공부하고 진로를 계획하기 위해 이곳에 왔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여러분이 독특한 위치에 놓였음을 알고 있습니다. 나이뿐 아니라, 여러분 다수가 호그와트 전투에서 상당한 용기와 기술을 발전시켰죠." 그녀 뒤의 교수들이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기에, 마법부와 우리 교수진은 논의 끝에 올해 여러분이 N.E.W.T 공부만 하는 게 아니라 인턴십도 완료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 말에 네 개의 테이블 모두의 8학년들로부터 낮게 웅성거리는 소리가 퍼져나갔다. "여러분은," 맥고나걸이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내일 각 기숙사 사감과 면담해 호그와트 졸업 이후 진로 계획에 대해 논의하게 될 것이며, 가능한 한 정규 교육과정 외에도 여러분이 기본적인 직무 교육을 이수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고자 합니다."
곁눈으로 드레이코는 그리핀도르 테이블에서 번쩍 올라가는 손을 보았다―당연하게도, 그레인저의 것이었다. 그녀 주위에 앉은 몇몇 그리핀도르들이 깔깔 웃었다. 맥고나걸이 말했다, "여러분은 내일 각 기숙사 사감 편으로 더 많은 정보를 전달받을 것입니다. 지금은, 연회를 즐기도록 하지요." 맥고나걸이 교수석 중앙에 앉자, 통째로 구운 닭이며 큰 스테이크 조각, 요크셔 푸딩과 으깬 감자, 제철 채소로 가득한 접시, 두툼하고 신선한 빵, 그리고 병에 담긴 호박 주스를 비롯한 온갖 진수성찬이 눈앞에 나타났다. 별로 배가 고프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드레이코는 다른 이들과 같이 접시를 채웠다. 곧바로 맥고나걸의 직전 발언에 대한 대화가 이어졌다.
"인턴십이라고? 그게 뭔 소리야?" 다프네가 물었다.
"조교처럼 교수 밑에서 일하게 하려나?" 팬지가 의견을 제시했다.
"교수가 그럴 시간은 있고?" 밀리센트가 말했다.
"우리가 그럴 시간은 있고?" 노트가 말했다. "우리 N.E.W.T 공부하러 온 거 아녔어? 그러면서 성에 무상 노동을 제공할 시간도 내란 말이야?"
자비니가 코웃음쳤다. "웃기셔, 언제부터 그렇게 공부를 열심히 했다고."
노트가 반박하기 위해 입을 열었지만, 그 전에 그렉이 조용히 말했다. "난 좋은데. 뭔가 할 일을 주겠단 거잖아. 우리가 영원히 호그와트에 있지는 않을 테니까."
드레이코는 그 말을 곱씹으며 시선을 들었다. 그렉의 접시엔 얇은 로스트 비프 한 조각만 있을 뿐 거의 비어 있었다. 팬지 역시 눈치챘는지 그의 팔에 손을 얹고는 말했다, "어서 담아 그렉, 간에 기별도 안 가겠다."
그는 팔을 흔들어 그녀를 떼어내고는 그의 앞 테이블의 한 점만 멍하니 응시했다. 잠시 불편한 침묵이 지나고, 다프네가 억지로 쾌활한 척 끼어들었다. "그렉 말이 맞아. 다들 호그와트 졸업하고 뭐 할 건데?"
"다같이 오러 되기로 한 거 아니었어?" 자비니가 건조하게 말하자 모두 한바탕 웃었다.
"마법 강제 집행부에서 일할 수도 있잖아, 아냐?" 다프네가 말했다. "수사국이나… 마법 오남용 관리과… 위즌가모트 하급 위원직에 도전해 볼 수도 있고."
"미스터리 부서에서 일하면 얼마나 멋질까?" 노트가 말을 꺼냈다. "시간이니 죽음이니 하는 것들을 죄다 거기서 연구한다던데."
"우리 같은 애들을 받아주기나 하겠어?" 자비니가 물었다.
"왜 안 되는데?" 노트가 날 세워 받아쳤다.
"드레이코, 너는?" 팬지가 물었다.
"그래, 드레이코, 오늘따라 조용하네," 블레이즈가 말했다.
그들이 그를 돌아봤다. 그가 물 한 모금을 마시고 잔을 내려놓으며 대답하려고 입을 열었을 때, 밀리센트가 말했다, "아버지 평판 때문에 좋은 전망을 갖긴 글렀지, 안 그래?"
"밀리센트!" 다프네가 소리쳤다. "왜 그런 말을 해?"
"하지만 사실이잖아," 그녀가 반박했다. "우리 다 마찬가지일지도 모르지만, 드레이코는 특히 더 그렇지. 너희 가족은 이제 끈 다 떨어졌잖아."
"잘 봤네," 드레이코가 쓰게 답했다.
어색한 침묵 후 노트가 미스터리 부서에서 일하고자 하는 그의 포부에 대해 떠들기 시작했다. 팬지는 드레이코를 향해 동정 어린 표정을 지어 보여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8학년들이 호그와트 이후 계획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가는 동안 그는 몸을 뒤로 젖히고 대연회장을 훑어보았다. 어쩔 계획이었더라? 그건 여름내 그를 쫓아다닌 수많은 질문 가운데 하나였다. 대부분의 호그와트 학생들이 마법부에서 일하게 되겠지만, 말포이 이름이 거기서―근래엔 대개 어디서든―별로 환영받지 못할 것이란 밀리센트의 지적은 틀리지 않았다. 과거엔 모든 게 그저 간단했었다. 그는 언제나 모범적인 학생이었고, 호그와트를 졸업한 뒤에는 마법부 요직을 꿰차게 될 것이라 부모님과 자신 모두 확신했었다. 어둠의 마왕이 돌아오기 전까지, 그들은 모든 연줄을 즐기고 있었다. 저택은 항상 친구들, 가족들, 그리고 그의 부모님을 방문한 중요한 손님들로 북적였다. 그들은 종종 호화로운 식당에서 파티를 열었고, 명절이면 부모님의 국제적인 인맥들로부터 세계 각국에 초대 받았었다. 하지만 상황은 바뀌었다. 어둠의 마왕의 패배 이후, 저택엔 방문자가 없었다. 식당은 어둡고 텅 비어 있었다. 타국으로부터의 초대장은 오지 않았다. 그의 부모님은 이게 그의 직업 전망에 끼칠 영향에 대해 얘기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어쩌면 더는 신경조차 쓰지 않는 것일지도 몰랐다.
마법으로 테이블에 남은 저녁 식사가 치워지고 푸딩, 타르트, 파이, 그리고 케이크가 그 자리를 대체할 무렵, 드레이코의 시선은 포터와 그의 친구들 무리로 향했다. 그들은 아주 쌩쌩해 보였다. 그레인저가 자신의 접시에서 디저트를 왕창 훔쳐간 위즐리를 향해 깔깔대며 웃고 있고, 포터는 맞은편에 앉은 롱바텀과 이야기하고 있었다. 다프네가 그에게 뭔가를 물어 와 고개를 돌리려는 순간, 갑작스럽게 포터가 드레이코의 쪽을 봤다. 그들은 일이 초 정도 눈이 마주쳤다. 포터의 표정은 서늘하고, 무심하며, 거의 냉담했는데, 그러다 롱바텀이 한 무슨 말엔가 낄낄 웃으며 홱 시선을 돌려 버렸다.
"드레이코? 너 숫자점 들어?" 다프네가 그에게 물었다.
"아―어. 들어."
"나도야, 근데 좀 긴장돼. 한 번도 열심히 해 본 적이 없어서."
그들은 테이블에서 디저트가 치워질 때까지 수업에 대해 얘기했다. 맥고나걸이 취침 인사를 했고, 학생들은 대연회장을 빠져나와 각각 기숙사로 향했다. 슬리데린 휴게실이 그들이 떠났을 때와 똑같은 상태로 보여 드레이코는 안심이 되었다. 크고 웅장한 휴게실은 가죽 소파와 오래된 테이블, 그리고 벽을 둘러싼 태피스트리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지하 감옥에 위치했음에도 불구하고 벽난로에서 타닥거리는 불꽃으로 온기가 감돌았다. 8학년 남학생들은 구불구불한 계단을 따라 얇은 녹색 커튼이 둘러쳐진 사주식 침대가 있는 공용 침실로 올라갔다. 드레이코의 짐은 창문과 가장 가까운 쪽 침대 위에 놓여 있었고, 그건 마음에 들었다. 과거에 그는 종종 남들이 코 골며 자는 동안 창가에 앉아 부드럽게 굽이치는 물결을 바라보며 밤 시간을 보내곤 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잠옷으로 갈아입었고 말은 별로 하지 않았다. 바로 옆 침대는 그렉이었는데, 그는 잘 자란 인사도 없이 침대로 기어들어가 커튼을 둘러쳐 버렸다. 다시금 빈센트의 부재가 느껴졌고, 드레이코는 빈센트 없이 다른 이들과 한 방을 쓰는 게 어딘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별로 감상적인 편은 아니었지만, 그들은 호그와트에서의 첫 날부터 같은 방을 썼었다. 하지만 이제 그 중 하나는 없다. 그 생각에 불안정해져, 드레이코는 침대 안으로 미끄러지듯 들어갔다. 커튼을 단단히 치고, 가슴까지 이불을 덮은 채, 깊지 못한 불편한 잠에 빠져들었다.
Chapter 2: ii.
Chapter Text
긴 여름날이 고통스러우리만치 느리게 흘러간 것에 비해, 호그와트에서의 첫 날 아침 드레이코는 정신 없이 바빴다. 그는 늦잠을 잤고, 마지막 남은 토스트 한 조각을 입에 넣기 위해 허둥지둥 옷을 입고 가방을 챙겨야 했다. 벌써 그를 제외한 거의 모두가 시간표를 받았다. 그가 차를 마시고 있을 때, 슬러그혼이 대연회장을 가로질러 그에게 다가왔다.
"아슬아슬했군 그래, 말포이 군?" 그가 드레이코에게 시간표를 건넸다.
"교수님," 그가 짧게 말했다. 빈약한 아침 식사를 마치고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오늘의 첫 수업이 뭔지 보기 위해 시간표를 확인했다.
"오후 두 시에 면담이 있네," 슬러그혼이 말했다. "수업은 공결 처리될 게야. 올해 나는 스네이프 교수의 옛 연구실을 쓰고 있다네."
그 이름을 듣자 심장이 고통스럽게 철렁했으나, 그는 차오르는 공황을 내리눌렀다. "면담이라니요, 교수님?" 드레이코가 얼굴을 찌푸렸다.
"어제 교장 선생님 말씀 못 들었나? 8학년들은 호그와트 이후의 진로에 대해 기숙사 사감과 면담하기로 되어 있잖나."
"맞네요." 솔직히, 그는 잊고 있었다―아니면 머리에서 치워 버렸거나.
"그 때 보지." 슬러그혼이 뒤돌아 걸어가다가, 다시 그를 되돌아봤다. 대체로 상냥한 그의 얼굴이 왠지 조금 파리해 보였다, "별 일 없지, 말포이 군?"
"네, 교수님. 첫 수업에 지각하고 싶지 않아서요." 그는 시간표를 들어올리며 미소 지었다. 부디 자연스러워 보이길 바라며.
슬러그혼이 그의 팔을 세게 쳐 드레이코는 움찔했으나, 그는 눈치 채지 못한 듯했다. "착하기도 하지. 자, 그럼 가 보게나. 이따 면담에도 늦지 말자고."
마침내 슬러그혼이 떠나고, 드레이코는 손에 쥔 양피지를 펼쳐 첫 수업이 래번클로와 같이 듣는 변환 마법 수업임을 확인했다. 서쪽 탑까지 가야 했다.
"젠장," 그는 욕설을 뇌까리고, 시간표를 주머니에 쑤셔넣으며 서둘러 수업에 갔다. 복도는 거의 비어 있었고, 그는 델라쿠르가 도착하기 바로 직전에야 교실에 도착할 수 있었다. 교실은 밝고 통풍이 잘 되었으며, 천장이 높았다. 기다랗고 좁은 창문 틈으로는 아침 햇살이 비쳐 들어왔다. 소나무로 된 책상들이 앞에 걸린 칠판을 바라보며 줄지어 놓여 있었다. 드레이코는 뒷줄에 있는 빈 자리에 가 앉았다. 테오의 옆자리였는데, 그는 다프네와 작은 소리로 수다를 떠느라 옆에 누가 온 줄도 모르는 것 같았다. 드레이코가 바르게 앉아 깃펜과 잉크병을 꺼내놓았을 때, 델라쿠르가 교실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들어왔다. 교탁으로 향하는 그녀에게서 연한 은빛의 망토가 펄럭였다. 금발 머리는 낮게 올려 묶은 채였다. 들어오자마자 그녀는 교실의 주도권을 잡은 듯했다. 자리에 못박힌 듯 그녀를 바라보는 학생들 사이에서 기대감에 찬 침묵이 번졌다. 그녀는 들고 온 두꺼운 책 몇 권을 교탁 위에 부드럽게 내려 놓았다.
"좋은 아침입니다." 그녀가 쾌활히 말했다. "내 이름은 플뢰르 델라쿠르예요―트라이위저드 경기에서 나를 봤던 걸 기억할지도 모르겠네요.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흘렀죠… 전쟁 이후에 호그와트가 어떤 모습이 됐을지 짐작조차 안 됐어요." 그녀는 말을 멈추고 잠시 창밖을 응시하다가, 말을 이었다, "와서 무엇을 보게 될지 두려웠죠. 성은 전쟁 때 굉장한 타격을 입었어요. 그런데 지금 이곳은 경기 때 봤던 성과 똑같아 보이는군요. 여러분의 교수님들이 여름 동안 보수하느라 애를 쓰신 모양입니다. 감사하게 생각하세요."
그녀는 잠시 멈추어 그들을 살펴보는 듯했고, 드레이코는 그녀의 억양이 기억하는 것만큼 강하지 않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위즐리네 손위 형제와 결혼한 영향인지도 몰랐다. "자," 그녀가 이어 말했다, "할 일이 많아요. 여러분이 7학년을 마칠 수 없었단 소식을 들었어요. 그럴 만했죠." 그녀가 분필을 집어 들고 칠판에 몇몇 주문을 적어내려가기 시작했다. "하나씩 살펴보고 여러분이 어디까지 아는 지 확인해 보도록 하죠. 만약 하나도 모르겠더라도, 부끄러워하지 말고 내게 알려 줘요. 처음부터 해야 한다면, 처음부터 하면 되니까요."
래번클로조차도 7학년 교육과정엔 상당히 뒤처져 있는 듯했다. 델라쿠르는 N.E.W.T에서는 소환술이 특히 중요할 것이라 말했지만, 교실의 학생들 중 그녀가 언급한 고급 소환술에 자신을 보이는 이들은 별로 없었다.
"배우면 돼요," 델라쿠르가 걱정스러워하는 학생들에게 상큼하게 말했다. "그러려고 돌아온 거잖아요, 아닌가요?" 동의의 웅얼거림이 낮게 일었다.
남은 수업은 고급 변환 마법의 이론적 기초로 흘러갔다. 드레이코는 수업을 따라가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귀 기울여 듣고 있었는데 한 순간 머리가 새하얘진 것 같았다. 그는 다른 이들도 같은 문제를 겪고 있을지 궁금해하며 슬리데린 학생들을 둘러봤지만, 그들은 정신 없이 필기하는 중이었다. 깃펜에 잉크를 묻혀 원소 변환 마법의 규칙에 대해 적어 나가던 드레이코는 다시 한 번 머릿속에서 글자들이 빠져나가는 걸 느꼈다. 그는 자리에 앉아, 멍청하게 창밖을 바라보며, 가슴에서 일어나는 공황을 가라앉히려 애썼다.
별안간 주위 모두가 의자를 뒤로 빼는 소리에 그는 화들짝 놀랐다. 눈치 채지 못한 사이 수업이 끝난 게 분명했다. 상기되어 떠드는 학생들은 벌써 가방을 싸서 문 밖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드레이코는 자신의 노트를 보았다. 절반만 필기돼 있었고, 대부분 읽을 수 없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아차리기도 전에, 팬지가 시간표를 비교해 보려고 옆에 와 있었다.
나머지 하루는 쏜살같이 지나갔다. 변환 마법에 이어 일반 마법 수업을 들었고, 점심을 먹고, 약초학 연강이 있었다. 슬리데린 동기들과 온실로 들어가다, 드레이코는 멈춰 서 스프라우트에게 말을 걸었다.
"스프라우트 교수님," 그가 말했다. 그녀는 거대한 난초 같은 것을 돌보느라 그에게 등을 돌리고 있었다.
"그래요, 그래, 잠깐만 기다려요," 그녀가 식물의 늘어진 덩굴로부터 팔을 빼내려 애쓰며 말을 잘랐다. 그녀는 짜증스러운 눈빛을 보였으나, 그의 얼굴을 보곤 표정이 굳었다. "아―말포이 군. 좋아요. 뭐가 필요한가요?"
드레이코는 그녀의 반응에 놀라지 않았다. 플리트윅은 그가 자기 수업을 듣는다는 데 놀란 듯 보였고, 그들이 확성 마법을 연습하는 내내 그를 무시했다. 무표정을 유지하려 애쓰며 그가 말했다, "두 시에 사감님과 면담이 있어요."
"알겠어요, 시간이 되면 조용히 나가도록 해요."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다시 식물로 몸을 돌렸다. 짜증이 난 채, 드레이코는 테오와 팬지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스프라우트는 수업의 대부분을 보름초와 큰톱풀을 비롯한 식물들을 돌보는 것과 같은 복습에 할애했다. 드레이코는 계속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그는 3번 온실에서 벗어나는 데 혈안이 돼 있었다. 덥고 습한 내부 공기는 그 어느 때보다 답답했고, 들어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눈썹에서 땀이 줄줄 흐르는 게 느껴졌다. 그가 짐을 챙기자 팬지가 의아한 눈빛을 했다.
"슬러그혼," 그가 입모양으로 말했다. 이해했는지 그녀는 다시 스프라우트에게 집중했고, 드레이코는 서늘한 오후의 공기 속으로 빠져나왔다. 즉시 더 나은 기분이 되었다. 그는 가방을 올려 메고, 손이 시렵지 않게 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 성으로 향했다. 아침부터 꼿꼿하게 서 있던 머리는 바람을 맞아 기울어 있었다. 슬러그혼이 진로 계획에 대해 물으면 뭐라고 말해야 할까? 온종일 떠오르는 이 질문이 그를 괴롭게 했다. 망한 가문의 평판 탓에 선택지가 좁아졌다는 것만이 문제는 아니었다. 그 자신의 흥미가 뭔지조차 모르겠다는 것부터 문제였다. 한동안 그는 마법 협력부에서 일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했었다. 그 자리에 있으면 전 세계의 위대한 마법사와 마녀들과 인맥을 구축할 수 있을 것이고, 그렉과 빈센트가 언제나 "끔찍하게 지루한" 일이라 일축한 그의 흥미를 두고 혀를 내둘렀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언제나 협상과 교섭에 재주가 있었다. 그건 아버지에게서 배운 기술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영국 마법부가 전 죽음을 먹는 자를 받아 주기나 할 지도 의심스러웠다. 그 생각에 코웃음치며 지하 감옥으로 들어가는 문을 열려는데, 누군가 그를 불렀다, "말포이."
드레이코는 어깨 너머로 포터가 계단을 내려오고 있는 걸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포터는 넥타이를 느슨하게 매고 있었고, 망토는 입고 있지 않았다. 머리는 언제나처럼 지저분했다. 어쩌면 성 포터께서는 다른 사람들보다 위대하셔서 교복 따위에 연연할 필요가 없는 모양이지. 드레이코가 그를 무시하고 지하 감옥으로 내려가려 했더니, 포터가 말을 걸었다, "말포이, 어디 가?"
"알 바야?" 그가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그는 몇 발짝 떨어져 서 있는 포터를 향해 돌아섰다.
포터가 눈을 깜박였다. "왜 수업 안 갔어?"
"아, 이제 그런 거야? 교수라도 되셨어, 포터? 행실 점검 하려고 성을 수색하는 중이세요? 아니면 필치의 조교로 들어간 건가?" 포터의 얼굴이 붉어지는 걸 보고 드레이코가 히죽 웃었다. 포터가 무언가 말하기 위해 입을 열었지만, 드레이코가 먼저 내뱉었다, "궁금해 죽을까 봐 알려 주는데, 슬러그혼이랑 면담하러 가야 해." 그러고는 포터가 저주라도 던지게 도발하며 뒤돌아 곧장 지하 감옥으로 내려가 버렸다. 그는 갑자기 너무 화가 나고 분개하여 지팡이가 있든 없든 포터와 싸울 이유만 생긴다면 기쁘게 받아들일 것 같았다. 하지만 슬러그혼의 연구실로 향하는 동안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기분이 나빠져 문을 쾅 열고 싶었지만, 그는 멈춰서서 심호흡을 하고 애써 예의 바르게 문을 두드렸다.
"들어오시게," 슬러그혼이 안에서 답했다. 드레이코는 한때 세베루스의 연구실이었던 곳으로 발을 내딛었다. 이제 그곳은 호화롭게 금 도금된 소파와 중앙에 놓인 화려한 러그, 그리고 거대한 오크재 책상으로 재배치돼 있었다. 팔걸이 의자들 옆으로 사이드 테이블이 쑤셔 박혀 있고 벽에는 온갖 태피스트리와 초상화 액자가 걸린 그 방에 있다간 꼭 밀실 공포증이 도질 것만 같았다. 슬러그혼이 책상 앞에 앉아 종이 몇 장을 휙휙 넘겼다.
"어서, 여기 앉게나," 그가 맞은편 의자를 가리키며 손짓했다. 그는 드레이코가 방을 둘러보고 있는 걸 눈치채고 얼굴을 찡그렸다. "보다시피, 내 새 연구실일세. 교장 선생이 이제 사감도 됐으니 내가 꼭 슬리데린 학생들처럼 지하 감옥에서 지내야 한다고 하더군. 그런데 스네이프 교수의 취향이 솔직히 내 스타일은 아니라서 말이지…" 그가 맥없이 손을 내저었다. "보다시피 끔찍하게 비좁아. 게다가 교장 선생은 내 말은 들어 주려고 하지도 않고… 뭐 어쨌든 말이다…" 그가 종이를 다 골라냈는지 말을 흐리며 의자에 몸을 기댔다. 둘 중 누구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라 어색한 침묵이 이어졌다.
"그래!" 슬러그혼이 갑자기 그렇게 말해서 드레이코는 화들짝 놀랐다. "자, 말포이 군. 이제 자네의… 진로에 대해 얘기해 봐야겠지. 자네의 호그와트 이후 계획 말이야. 난 언제나 자네가 야망 있는 학생이라고 생각했어. 물론 지금은…"
"지금은요, 교수님?" 드레이코가 예의 바르게 보이려 애쓰며 물었다.
슬러그혼이 유감스럽단 듯 미소 지어 보였다. "지금은 상황이 변했지. 그러니까…" 슬러그혼이 그에게로 몸을 가까이 했다. "이보게, 말포이 군. 현실적일 필요가 있어. 자네 성적은 훌륭하지, 늘 훌륭했어. 마법약과 변환 마법에 특히나 재능이 있었지. 하지만 말했듯이, 자네 상황이 달라졌네. 최선의 선택은, 내 견해로는, 뭔가 실용적인 걸 해보자는 거야."
실용적인. 그 단어가 이를 곤두서게 했다. "어떤 것 말씀이실까요, 교수님?" 그가 짓씹듯 내뱉었다.
"아, 보자고…" 슬러그혼이 책상에 어지럽게 흩어진 팜플렛 몇 개를 주워모았다. "그러니까 음… 계보학 관련 직종에 대해 고려해본 적 있나?" 그가 따분해 보이는 마녀가 두꺼운 책 앞에 앉아 있는 팜플렛을 들어보였다. "아주 중요한 일이지, 자네도 알다시피… 가계도랑 마법적 능력을 추적하고…" 드레이코가 그를 가만히 응시했다. "아니면… 부엉이 조련사는 어떤가? 요새 수요가 높아… 더는 마법사 가족끼리 부엉이 한 마리를 공유하려고 안 하니 말일세."
드레이코의 냉담한 침묵에 슬러그혼은 말했다, "좋아요, 좋아, 말포이 군, 그럼 정확히 자네가 관심 있는 게 뭔가? 특별히 생각해 둔 직종이라도?"
"없습니다," 그가 거짓말했다. "딱히 없어요, 교수님."
"흠. 생각해 보도록 하게나."
"그게 상관이나 있나요?" 돌연 드레이코가 따지고 들었다. 참을 수가 없었다. "말씀하셨다시피, 제 상황은 달라졌어요. 실용적일 필요가 있다면서요."
슬러그혼이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자네에게 현실적일 필요가 있다고 한 걸세, 학생! 자네가 루시우스 말포이 손에서 자라면서 나름대로 기대가 컸으리란 걸 알지만―"
드레이코가 의자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는 슬러그혼이 두려움에 움찔하여 뒤로 물러나는 모습을 봤다고 맹세할 수도 있었는데, 그 사실은 오직 화를 더 돋우었을 뿐이다. "저도 알아요, 교수님."
"자, 보자고." 슬러그혼은 분명 괴로워하고 있었다. 그가 힘겹게 일어서는 걸 보고 드레이코는 일순간 죄송한 감정이 들었다. "다 자네가 잘 되라고 이러는 걸세, 진심이야. 자네는 젊어. 지금 당장 결정하라고 하는 게 아니라네. 더욱이 작년에 그런 일이 있었는데 쉽지가 않지. 단지 생각이라도 해 보라는 걸세. 뭐라도 계획은 있어야 하지 않겠나?" 그는 고민하다가 조용히 덧붙였다, "자네는, 특히 더더욱, 계획을 세워야지. 쉽지 않으리란 걸 안다네."
드레이코는 딱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전부인가요?"
슬러그혼은 한숨을 쉬고는 다시 의자에 파묻혔다. "그래요―그래, 그게 전부라네. 원한다면 팜플렛을 몇 개 가져가도 좋네." 그가 앞에 놓인 광택 나는 소책자들을 향해 손짓했지만, 드레이코는 이미 반쯤 문밖을 나서고 있었다.
Chapter 3: iii.
Chapter Text
짓은 허용 않는 선생으로 판명 났다. 순식간에 학생들은 둘씩 짝지어 방어 마법을 연습하게 되었다. 그는 학생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잘못된 부분을 고쳐 주고, 올바른 방법을 알려 주고, 조언을 건넸다. 드레이코는 팬지와 짝이었는데, 그녀에게 무언으로 방어 마법을 어떻게 하는지 설명해 주는 데 수업 시간 대부분을 할애해야 했다. 그는 다른 모든 선생들처럼 프라우드풋 역시 그를 못 본 체할 것이라 예상했지만, 그는 그들 쪽으로 다가왔다. 프라우드풋이 가까이 와서 팔짱을 꼈을 때, 드레이코는 뻣뻣이 굳었다.
"편하게 해요," 프라우드풋이 말하며 계속하라는 손짓을 해 보였다. 드레이코는 망설이다 팬지를 마주 봤다.
팬지는 잠시 멈췄다가, "릭투셈프라!", 주문을 외쳤다.
드레이코가 허공에 완드를 휘두르자 팬지의 주문이 보이지 않는 방패에 맞고 튕겨나간 반동에 의해 그녀가 뒤로 굴렀다.
"좀 가르쳐 줘 봐," 팬지가 일어서서 균형을 잡으며 징징거렸다. "어떻게 그렇게 빠른데?"
"잘 했어요, 말포이 군," 프라우드풋이 부드럽게 말했다. 그는 기묘한 표정으로 벽에 기대 서 있었다. "수업 끝나고 나 좀 봐요."
드레이코는 프라우드풋이 다른 학생들에게로 이동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팬지에게 낮게 물었다, "이번엔 또 뭔데?"
"나도 몰라," 그녀가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벌써 문제를 일으킨 건 아니지, 너?"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어떤 규칙도 어기지 않았단 데 제법 확신이 있었음에도, 그는 여전히 찜찜했다. 수업 끝날 시간이 되어 다른 학생들이 물밀듯 교실 밖으로 빠져나가는 와중에, 드레이코는 미적거리며 짐을 챙겼다. 교수들이 그를 이상하게 대하는 게 유난히 불공평하게 느껴졌다. 장담하건대 몇몇은 그가 자기네 수업을 듣는 걸 탐탁잖게 여겨 대놓고 적개심을 보이고 있었다. 슬리데린이 아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나 그의 친구들과 무엇으로도 엮이고 싶지 않아 했다. 마치 그들이 모두가 꺼리는 전염성 높은 질병이나 뭐 그런 게 된 것 같았다. 모두들 그의 어머니가 호그와트 전투에서 포터를 구했단 사실은 잊어버린 걸까? 그의 아버지가 최후에는 결국 죽음을 먹는 자들 무리에서 이탈했다는 사실도?
"말포이 군," 프라우드풋이 그를 상념으로부터 깨웠다. 그는 교실 맨 앞의 책상에 걸터앉아 있었다.
"제게 할 얘기가 있으시다고요, 교수님."
"진로 계획을 정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그가 말했다.
"네." 그는 다른 할 말을 생각해 낼 수 없었다. 슬러그혼이 다른 교수들에게 그들의 날 선 면담에 대해 떠벌리고 다녔던 걸까?
"비슷한 문제가 있는 학생이 한 명 더 있더라고." 프라우드풋이 잠시 그를 보더니, 말을 이었다. "제안을 하나 하죠. 작년에 학업을 제대로 마치지 못한 학생들이 많아요. 볼드모트의 귀환으로 영향을 받은 건 8학년들만이 아니었으니까." 드레이코는 그 이름을 듣고 움찔했으나, 프라우드풋은 눈치 채지 못한 듯 이어갔다. "교수들도 물론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수업 시간에 할 수 있는 실습은 한정돼 있어요. 그래서 내가 교장 선생님께 제안을 하나 했는데, 학생들이 클럽을 조직하게 하자는 거였지… 스터디 그룹이라고 불러도 되겠는데, 서로 주문 연습을 봐 주자는 거야. 작년에 있었던 일들을 떠올려 보면 기숙사 간 결속력을 높여야 할 아주 중요한 시기이기도 하고 말이지…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요?" 드레이코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그는 계속했다. "어쨌든 간에, 학생이 이걸 맡아서 이끌어 주면 좋을 것 같아요."
그가 멈칫했다. "저는 가르치는 데 별로 열의가 없습니다, 교수님," 그가 말했다.
"그러면? 들은 바에 의하면 다른 계획이 하나도 없다면서요. 오늘 실습에서 꽤 인상적이었어요. 무언 마법을 언제부터 할 수 있었죠?"
드레이코는 놀라서 눈을 깜박였다. "오, 음… 잘 모르겠어요. 아마 5학년 때부터? 그 해 여름에 연습을 많이 했었어요."
"연습한 보람이 있군요." 프라우드풋이 그에게 미소 지었다. "내가 보기에 말포이 군은 꽤나 실력 있는 마법사가 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학우들은 물론 학생한테서 많이 배워갈 거예요."
"모르실 수도 있는데요 교수님, 올해 다른 학생들은 제게 별로 호의적인 편이 아닙니다," 그가 차분히 말했다.
"선생이 다 인기 있을 순 없는 법이죠. 나도 끔찍하게 싫어했던 마법약 교수님이 있었는데, 생각해 보면 그 분한테서 제일 배운 게 많았던 것 같아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드레이코는 말을 흐렸다. "네, 교수님."
프라우드풋이 일어나서 겉옷과 서류 가방을 챙겼다. "그럼 결정된 겁니다. 아니면 다른 좋은 의견이 있나요?"
"없습니다," 그는 음울하게 인정했다.
"좋아요. 교장 선생님이랑 내가 알아서 다 준비할게요. 오, 너무 속상해하진 말고." 그가 소리내 웃었다. "실력을 연마할 기회가 될 거예요. 그리고 말포이 군, 내가 한 가지 조언하자면, 이 김에 아버지와 관련 없는 평판을 쌓아 두는 것도 좋을 거예요. 이걸 기회로 삼아요."
그 자리에 붙박인 듯 서서, 드레이코는 프라우드풋이 뜻모를 미소를 지어 보이며 교실을 떠나는 모습만을 지켜보았다.
***
일요일 아침, 드레이코는 마침내 부모님께 편지할 마음이 들었다. 그는 간단하게 시간표를 언급하고 첫 주 수업이 어땠는지 적었다. 편지는 상당히 형식적이었지만, 솔직히 읽기나 한다면 다행이라고 생각 중이었으므로. 그가 부엉이장으로 나섰을 땐 제법 이른 시간이라 휴게실이 비어 있었다. 복도에서만 몇몇 학생들을 마주쳤을 뿐이다. 서쪽 탑으로 향하는 계단을 오르며, 드레이코는 망토를 챙겨올 걸 그랬다고 후회했다. 생각보다 날씨가 쌀쌀했기 때문이다. 찬바람 드는 부엉이장으로 들어서자마자, 그는 창가에 앉은 그의 수리부엉이, 칼리두스(Callidus)를 금세 발견했다.
"내가 올 줄 알았지?" 가까이 다가서며 그가 물었다. 그가 쓰다듬어 주자 칼리두스의 주황색 눈이 그를 따라왔다. "여기." 그는 주머니에서 약간의 부엉이 간식을 꺼내 내밀었다. 칼리두스는 푸드덕거리고는 그의 손바닥에서 비스킷을 주워먹었다.
"보내줘야 할 게 있어." 칼리두스의 쭉 뻗은 다리에 양피지를 매어 주며, 드레이코는 아래쪽 뜰을 내려다보았다. 그곳은 이상하리만치 고요했다. 성이 이렇게 텅 비어 있는 걸 보는 게 어색했다. 지난 몇 년 동안 그는 일요일 아침이면 기숙사 휴게실에서 친구들과 노닥거리다가, 해가 중천에 떴을 때야 아침을 먹으러 올라가곤 했기 때문이다. 날씨가 좋으면 그들은 호수에 가서 물수제비를 하거나, 대왕 오징어를 놀려 주고, 태양빛 아래 낮잠을 자곤 했다. 눈이 오면 대개는 휴게실에 틀어박혀 체스를 두거나 함께 라디오를 들었다. 이제는 슬리데린 8학년들 중 몇 명이나 일요일에 함께 어울리려 할지 의문이었다. 한 명이나 있을까.
드레이코는 뒤로 물러서기 전 마지막으로 칼리두스를 쓰다듬었다. 칼리두스가 부드럽게 부엉거리더니, 거대한 날개를 펼치며 창밖으로 날아올랐다. 드레이코는 머릿속으로 호그와트에서 저택까지 가는 길을 덧그리며 부엉이가 시야에서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러고 나서야 아침 식사가 준비됐는지 확인하기 위해 대연회장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가 부엉이장을 나섰을 때쯤, 호그와트는 서서히 깨어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수십 명의 학생들이 미적미적 대연회장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그가 슬리데린 테이블을 향해 걸어가려는데, 맥고나걸이 그를 불렀다.
"말포이 군," 그녀가 말했다. "프라우드풋 교수님과 이야기했는데, 우리가 기획 중인 실습반 수업을 맡아 주기로 했다면서요."
"전―맞아요." 빠져나갈 구석은 없어 보였다.
그녀가 코를 벌름거렸다. "좋아요. O.W.L과 N.E.W.T 대비에 집중할 수 있도록 5학년 이상만 스터디 그룹에 들 수 있도록 할 생각이에요. 오늘 오후에 기숙사 휴게실마다 공고가 붙을 거예요. 우선 매주 목요일 밤 8시에 한 시간씩 해보고 둘 다 괜찮은지 보죠. 커리큘럼 같은 걸 정해 두는 게 좋을 겁니다."
"둘 다요?"
"포터 군과 같이 하게 될 거예요," 그녀가 눈썹을 찡그리며 말했다. "프라우드풋 교수님이 말해 주지 않았나요?"
"네, 교수님," 드레이코가 악문 잇새로 말했다. "못 들었어요."
"그래요, 뭐, 그렇게 둘이 남았답니다. 목요일 첫 수업 전에 만나서 계획을 짜도록 하세요." 그녀가 잠시 멈추어 뭔가 생각하는 듯하더니 물었다. "포터 군과 함께 일하는 게 문제가 되지는 않겠죠, 말포이 군? 그 어리석은 짓거리들을 다시 보고 싶지는 않군요. 물론 이제 둘 다 나이가 찼으니―"
"문제 없을 겁니다," 그가 말을 잘랐다. 그녀의 굳은 표정을 보고, 그가 덧붙였다. "교수님."
"좋아요, 그럼." 그녀가 빠른 걸음으로 대연회장을 가로질러 갔고, 드레이코는 테오, 블레이즈, 그리고 팬지가 이미 자리를 잡고 있는 슬리데린 테이블로 향했다.
"뭐였어?" 노트가 옆자리에 앉는 드레이코에게 물었다.
드레이코는 네 일이나 잘 하라고 쏘아붙이려다 곧 모두가 맥고나걸의 정신 나간 결정에 대해 알게 되리란 사실을 깨달았다. "빌어먹을 인턴십 때문에," 그가 말했다. "나한테 시킬 만한 게 없어서, 아래 학년들 실습을 봐 주라고 하더라. 프라우드풋 말로는 스터디 그룹 같은 거래."
"왜 하필 넌데?" 자비니가 그를 빤히 봤다.
"뻔하지 않냐?" 노트가 웃었다. "얘 찍힌 거야. 엿 먹이는 거라고."
"아, 제발." 팬지가 눈을 굴렸다. "누가 드레이코한테 엿을 먹인다고 그래."
"그럼 다들 아직 배치 못 받은 거야?" 그들은 고개를 저었다.
"금요일에 슬러그혼한테 물어 봤는데, 다 결정됐다고 하더라," 팬지가 말했다. "하지만 드레이코…" 그녀가 목소리를 낮추며 몸을 기울였다. "왜 너한테 선생 일을 시키는데? 교육 쪽으로 가고 싶다거나 그런 말 했어?"
"아니." 입맛이 없어진 그가 접시에 놓인 토스트를 깨작거렸다. "할 말이 없더라. 슬러그혼이 직접 그랬어―내가 졸업하고 나서 기회가 별로 없을 거라고."
"난 그렇게 생각 안 해," 팬지가 조용히 말했다.
"글쎄, 슬러그혼은 아닌 것 같던데." 그가 어깨를 으쓱했다.
"널 못 믿는다면 너한테 다른 학생들 지도를 맡겼을 리가 없잖아," 그녀가 지적했다. "제법 책임감이 필요한 일 아냐? 뭘 가르치는 건데?"
"프라우드풋 말로는 주문 연습이래. 아마 실습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 거겠지… 작년에 그런 일도 있었고 하니."
그녀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중요한 일을 아무한테나 시켰을 리 없어."
"아, 걱정 마. 감독이 붙을 거니까," 그가 투덜거렸다. "빌어먹을 포터랑 같이 하라신다."
"포터?" 자비니가 물었다. 대화를 엿듣고 있던 게 분명했다.
"그래, 포터. 누군지 들어는 봤지?" 드레이코가 툴툴댔다.
노트가 웃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너랑 포터가 같이 수업을 한다고. 환상적이겠는데, 안 그래?"
"수업 아니야." 그가 짜증스럽게 머리를 쓸어넘겼다. "수업 아니고―솔직히 뭔지도 모르겠다. 그냥 연습 봐 주는 거야. 아마 주문 써 보라고 하고 고쳐 주거나 하겠지, 몰라. 여기서 일어나는 일 절반이나 제대로 아는 사람 있어?"
자비니가 크게 웃었고 드레이코는 뚱하게 일어나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드레이코, 너무 화내지 마," 팬지가 그렇게 말하며 다가왔다. "내가 보기엔 멋진데? 우리 아빠가 항상 하시는 말이 뭔지 알아? '뭔가에 통달하고 싶다면, 그걸 가르쳐라'야. 너도 많이 배우게 될 걸!"
"세상에서 제일 위대한 마법사, 포터한테 배울 기회란 말이군." 자비니가 낄낄댔다. "항상 그럴 기회가 있기만을 간절히 바라왔겠지, 드레이코." 노트가 키득거렸다.
드레이코는 그들을 째려보곤 팬지의 손길로부터 빠져나왔다. 그는 무시하자고 스스로를 타이르며 쿵쿵대면서 대연회장을 빠져나왔다. 원래는 기숙사 휴게실로 되돌아가려고 했지만, 남은 일요일 내내 저 멍청이들 주위에 있다간 속이 뒤집힐 것 같았다. 대신, 그는 도서관으로 향했다. 끝내야 할 일반 마법 에세이가 있었고, 다음 주에 있을 마법약 수업 재료도 찾아 봐야 했다. 다행스럽게도, 도서관은 거의 비어 있었다. 드레이코는 책더미 사이를 뚫고 참조 섹션의 애착 자리로 향했다. 기울어진 두 서가 사이에 낑긴 흠집 나고 기우뚱한 책상이었지만, 드레이코는 여기 외딴 구석 자리에서 공부하는 게 좋았다. 그는 일반 마법 교과서를 꺼내 지정된 장을 펼치고, 기억력 주문에 대해 마저 읽어 나갔다. "말포이?" 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을 때, 그는 겨우 두 문단째 읽는 중이었다. 그는 자리에서 펄쩍 뛰어올라 지팡이가 있는 허리춤으로 손을 내렸다.
"포터," 그가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뭐 하자는 건데?"
"어, 네가 도서관 가는 게 보여서." 포터는 제자리에 굳게 서 있었다. 그의 반응에 충격을 받은 게 분명해 보였다. "목요일 첫 수업 전에 얘기할 게 있잖아."
아, 젠장할. 안 그래도 할 일 많은데.
"그래서. 음." 포터가 주위를 둘러봤다. "내가… 의자 가져올까?"
드레이코는 망설이다 천천히 지팡이를 쥔 손에서 힘을 풀었다. "그러든지."
포터가 드레이코의 자리로 의자를 끌고 오는 동안 불편한 침묵이 내렸다. 그는 포터에게 왜 마법을 쓰지 않는 건지 묻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 말은 최대한 적게 하는 편이 나았다. 드레이코가 불편해하는 건 의식하지 못했는지, 포터는 책상 끄트머리 좁은 공간에 의자를 밀어넣고는 거기 앉기 위해 반쯤 그를 타 넘어갔다.
"좋아." 포터는 그들이 참조 섹션에 사이 좋게 처박혀 대화를 나누는 게 하나도 이상하지 않고 평범한 일인 것처럼 굴려고 애쓰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넌 어떻게 하려고 했어?"
"생각 없어," 그가 말을 잘랐다. 그는 펼쳐진 교과서를 툭툭 치며 말했다, "N.E.W.T 공부 하기도 바빠서. 맥고나걸이 나한테 그럴 시간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 이유를 모르겠네."
포터가 얼굴을 찡그렸다. "그럼 왜 다른 일 시켜 달라고 안 했는데?"
"다른 일 뭐?" 드레이코가 분개해 물었다. "난 못 해, 난―" 그는 말하다 말고 짧게 끊었다. 이건 멍청한 일이었다. 드레이코는 이제 이 모든 게 다 그를 엿 먹이려는 거대한 계략이라는 노트의 말이 사실일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냥 좀 넘어가면 안 될까?"
"나한텐 아마 D.A. 때문에 이걸 시킨 것 같거든," 포터가 그를 무시하고 말했다. 드레이코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그가 덧붙였다. "왜냐면 내가 D.A.에서 실습을 주도했었거든, 덤블도어의 군대(Dumbledore's Army) 기억 나? 거기서―"
"그래, 기억 나, 포터. 걱정도 팔자지. 네 수많은 고결한 위업들을 기억 못 할 사람이 어디 있겠어."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포터가 반박하려 입을 열었지만, 드레이코가 말을 잘랐다. "어쨌거나. 목요일에 수업이라고 했지. 우리가 뭘 가르쳐야 하는데?"
포터는 항의하고 싶은 듯 보였지만, 짧게 한숨을 쉬더니 말했다. "기초. 기초적인 주문들을 시켜 보고 진도를 파악해야 해."
"애초에 5학년부터 8학년까지를 어떻게 가르치라는 건데? 실력이 다 다를 거 아냐. 멍청한 짓이야."
"D.A.에서도," 드레이코의 면박을 무시하고 포터가 말했다. "다른 학년의 학생들을 같이 가르쳤었어. 실력이 꼭 학년에 따라 결정되는 건 아니야."
드레이코는 일반 마법 교과서를 펼쳐 들고 일축했다. "알겠어 그럼. 기초 말이지. 목요일에 보자."
포터는 그가 무언가 더 말하길 기다리는 듯 그 자리에 앉아 멀뚱히 보고 있었다. 드레이코는 의도적으로 그를 무시하는 티를 내려고 교과서를 넘겼고, 결국 포터도 자리를 떠났다. 마침내 혼자 있을 수 있게 됐단 사실에 안도하며 드레이코가 편한 자세로 앉았을 때, 포터가 말했다. "여기, 까먹고 있었어." 그가 드레이코의 옛 지팡이를 책상에 올려놓았다. 그는 은빛 손잡이가 달린 깔끔한 디자인의 산사나무 지팡이를 곧장 알아봤다. 그는 자신이 이미 새 지팡이를 샀다고 말하려 했지만, 그가 돌아보았을 때, 포터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신경질이 난 드레이코는 그걸 조심히 집어들고, 매끄러운 나뭇결을 손가락으로 쓸어 보았다. 아마도 영영 사라졌거나 파괴됐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포터는 왜 이걸 보관했을까? 뭐가 좋다고? 그는 화를 내고 싶었지만, 실은 한 줄기 슬픔을 느꼈다. 멍청하게 굴고 있었다. 젠장할, 이건 단지 지팡이일 뿐이다. 그럼에도 그는 그걸 조심스럽게 가방 속 양피지 조각들과 여분 깃펜 사이에 넣어 두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자리에 앉아 자신의 옛 지팡이를 보고 있는데, 갑작스럽게 몸을 짓누르는 듯한 공포가 그를 휩쓸었다. 위장이 단단하게 꼬여 왔다. 누군가 가슴 위에 앉은 것처럼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그는 책상에 손을 짚고 진정하려 애썼지만, 불안이 엄습해 왔다. 심장이 뛰는 소리와 혈관을 따라 질주하는 혈류의 소리가 생생하게 들려 왔다. 식은땀이 흘렀다. 살면서 가장 큰 공포에 빠져 익사하고 있는데, 대체 무엇이 그렇게 두려운 건지도 알 수가 없었다. 무언가 끔찍한 일이 벌어지리란 확신이 들었지만, 그게 뭔지는 설명할 수 없었다.
드레이코는 눈을 감고 그 자리에 조금 더 앉아 있었다. 그는 숨을 깊게 들이쉬며 '괜찮아, 넌 멀쩡해, 진정해, 얼간아'와 '난 죽을 거야, 내가 이렇게 죽게 되다니' 사이를 쉴새없이 오갔다. 천천히, 점차적으로 꼬였던 창자가 풀려 왔고, 공황도 사그라들었다. 그는 잔뜩 동요해 있었다. 주변 환경이 초점을 되찾기 시작했고, 그의 귀에 양피지에 긁히는 깃펜의 소리와 책장 넘어가는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여기는 도서관이야," 그가 혼자 중얼거렸다. "여기는 도서관이고 난 괜찮아. 아무 일도 없었어."
사실 아무 일이 있었지만. 그는 한 번 더 발작을 일으킨 것이다. 잠시 동안 그는 포터가 저주를 건 게 아닐까 의심했지만, 깊이 생각하기엔 너무 지쳐 있었다. 그는 멍하게 손을 뻗어 일반 마법 책을 앞으로 끌어 왔다. 그리곤 억지로 줄글을 읽어 나가기 시작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러면 언제나 현실로 돌아오는 데 도움이 됐다. 심박이 안정되자, 그는 자신이 떨고 있었단 사실을 깨달았다. 얼굴에선 땀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아무도 눈치챈 사람이 없는지 주위를 둘러보며, 그는 황급히 눈썹을 닦았다. 한편 그의 일부는 누군가 봤어도 무슨 상관인가 싶기도 했다. 드레이코가 불안정하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소지품을 챙기고, 한 번 더 주위에 누가 없는지 확인한 뒤, 도서관 밖으로 성큼성큼 걸어나갔다. 몇몇 학생들이 쳐다봤지만, 그는 고개를 꼿꼿이 들고 무심한 외양을 유지하려 했다. 그러는 내내 그는 그들이 무언가 의심하지는 않았는지, 그가 무엇을 두려워하기 시작했는지 전부 꿰뚫어 보이진 않는지 알고 싶었다. 그가 미쳐 가고 있다는 사실까지도.
Chapter 4: iv.
Chapter Text
월요일 아침 드레이코는 눈을 게슴츠레 떴다. 마지막으로 밤에 제대로 잤던 게 언젠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확실한 건 6학년 이전이었을 것이다. 대부분의 밤, 그는 몇 시간씩 침대에 누운 채 부유하는 생각들에 뒤척였다. 마음을 진정시키기란 불가능했다. 가장 끔찍한 공포들은 밤 시간에 그를 괴롭게 했다. 전에는 어둠의 마왕의 계획에서 그가 맡게 될 역할이나 그의 가족 앞에 놓인 위험, 아니면 날이면 날마다 억지로 목격해야만 했던 참상에 대해 곱씹었다. 요즘엔 위즌가모트에서 내릴 수 있는 온갖 처벌 시나리오를 망상하며 부모님의 운명을 걱정하곤 했다. 만약 아버지가 아즈카반에 수감된다면, 면회를 갈 수 있을까? 간다면 얼마나 자주? 가고는 싶을까? 친아버지 면회를 갈지 말지 고민한단 건 그가 패륜아라는 뜻일까? 그의 부모님은 벌금형에 처하거나 다른 처벌을 받게 될지도 몰랐다. 그는 벌금형에 대해 아는 게 아주 적었다. 아버지한테 벌금을 낼 만한 돈이 있을까? 그들은 거리로 나앉게 되는 걸까? 부모님이 일을 구해야 될까? 어떻게? 누가 그들을 고용해 주기는 할까? 그는 어머니가 비좁고 허름한 마법부 산하 하급 사무실 같은 곳에서 일하는 모습을 상상하고 토할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그 자신은 또 어떠한가. 고용해 줄 곳은 있나? 어디서 살아야 하지? 호그와트를 떠나 저택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면 그는 견딜 수 없었다. 그곳에서는 죽음의 악취가 났다. 그는 부모님이 저택과 정원을 모조리 불살라 재만 남게 되기를 바랐다. 그렇게 한다면 그는 더는 비명을 지르며 악몽에서 깨어나지 않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말이 나왔으니―악몽들은 또 다른 문제였다. 언제쯤 다시 멀쩡한 기분을 느낄 수 있게 될까? 다들 이런 걸 느끼며 살아가는 걸까? 모두가 그만큼 타격을 입었을까, 아니면 단지 그가 나약했던 걸까. 어쩌면 이건 모든 일에 의문이 들기 시작했음에도 아버지를 거부하지 못하고, 죽음을 먹는 자들을 거부하지 못하고, 어둠의 마왕을 거부하지 못하여 결국엔 가담하고야 말았던 그 모든 시간들에 대한 합당한 처벌이었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는 포터를 구했다. 아닌가? 이모와 부모님 면전에 거짓말을 했지 않나. 그게 면죄부가 될 수 있던가? 죄질을 따지는 건 누구지? 어떤 기준으로? 그리고 포터. 빌어먹을 포터. 그의 옛 지팡이를 보관한 이유가 뭘까? 왜 그렇게… 착한 척 하는 거지? 애초에 호그와트엔 왜 돌아온 걸까? 마법부는 그 자식이 달라는 자리는 무엇이든 주지 못해 안달일 텐데. 몇 년 안에 장관을 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규칙이나 공부 따위와 딱히 연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면서, 대체 왜 호그와트로 돌아왔는가?
이런―그리고 셀 수 없이 많은 다른―생각들을 따라가다 보면 드레이코는 가끔 선잠에 들기도 했다. 그날 아침, 그는 비몽사몽하고 뻣뻣한 몸으로 일어났다. 늘 그렇듯 악몽엔 흐릿한 검은 그림자와 날카로운 비명, 그리고 번쩍이는 녹색 섬광이 등장했다. 바깥 날씨도 그의 기분을 보여주는 듯했다: 대연회장의 천장은 마법으로 구름 낀 하늘을 비추고 있었다. 그는 팬지가 오트밀을 먹으며 마녀 주간지에서 읽은 기사에 대해 떠드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녀는 아침 우편물을 배달하러 날아들어온 부엉이 수십 마리가 날개를 펄럭이는 소리에 말을 멈춰야 했다. 칼리두스가 그들의 테이블에 앉으려는 걸 보고 드레이코는 급하게 접시를 한 쪽으로 밀었다. 부엉이의 다리에 돌돌 말린 양피지가 매여 있었다.
"좋은 아침," 드레이코가 회색 깃털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아유 예뻐라," 다프네가 옆에서 속삭였다. 칼리두스는 그녀의 주접을 견디며 반쯤 남은 드레이코의 아침식사를 쪼아먹었다.
드레이코가 칼리두스의 다리에서 양피지를 풀어내 펼쳤다. 발신자가 부모님인 걸 보자마자 배가 조여드는 것 같았다.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그는 항상 부모님께서 보내 주시는 편지와 간식거리들을 기다리곤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손 안에 든 양피지에서 절망이 줄줄 새어나오는 게 느껴지는 듯했다.
"누가 보낸 거야?" 팬지가 가볍게 물었다.
"부모님." 날 선 대답에 그녀는 눈썹을 치켰으나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잘 가, 칼리두스," 다프네가 커다란 날개를 펼치고 부엉이장으로 날아가는 수리부엉이에게 외쳤다.
"부엉이 한 마리 사지 그래?" 팬지가 그녀에게 물었다. "몇 년 동안 갖고 싶어했잖아."
"못 사," 그녀가 우울하게 말했다. "너무 비싸. 작년에 엄마가 N.E.W.T.를 잘 보면 한 마리 사 주겠다고 약속했었는데, 뭐…"
드레이코는 편지를 읽느라 대화는 반쯤 흘려 듣고 있었다. 필체를 보아하니 아버지가 쓴 것이었는데, 특이한 일이었다. 대개 그에게 편지하는 쪽은 어머니였으므로.
드레이코, 잘 지내고 있길 바란다. 네 편지는 잘 받았다.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니 기쁘구나. 높은 성적을 유지하도록 해라. 10월 5일에 내 다음 청문회가 있다. 그린고트에서 네게 내가 네 명의 계좌에서 일부 자금을 인출하도록 허가하라는 연락이 갈 거다. 받는 즉시 승인하고, 답장해 다오.
사랑하는 부모님이
드레이코는 코웃음을 쳤다. 짧은 편지의 내용은 아무리 봐도 "사랑하는"이라는 수식어와 거리가 멀었다. 그는 과거에 어머니가 보내는 소설 뺨치는 편지들을 귀찮아했던 게 문득 후회스러워졌다. 그녀는 가을을 맞은 정원의 모습이나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준비 중인 연휴 식탁,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가십거리, 혹은 서재나 거실을 리모델링하려는 계획에 대해 길게 적어서 그에게 보내곤 했었다. 그는 그런 편지들을 그녀가 함께 보내온 초콜릿 트러플 상자를 뒤적거리거나 퀴디치 잡지를 펼쳐 보기 전에 대충 읽고서 던져 두곤 했다. 그는 난생 처음으로 어머니에게 그리움을 느꼈다. 호그와트 1학년생일 때조차 향수병은 느끼지 않았었는데; 사실 학교에 있는 동안 단 한 번도 진심으로 부모님을 그리워해 본 적이 없었다. 6학년과 7학년을 보내는 동안 그를 이끌어 줄 부모님이 곁에 있기를 바랐던 적은 있지만, 솔직히 그들을 그리워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성년이 된 지금, 그는 어머니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뭐라셔?" 팬지가 어깨 너머로 흘깃하며 물었다.
그는 편지를 안 보이게 숨겼다. "맨날 하시는 소리."
"그래? 두 분 다 잘 계신대?"
"잘 계셔, 고마워라," 그가 건조히 말했다. 그녀가 눈을 굴렸다.
드레이코가 양피지를 뒤집어 다른 말이 없는지 살폈다. "아버지께서 내 그린고트 계좌에서 출금하는 데 내 허가가 필요하시대."
"출금? 왜?" 팬지가 물었다.
"몰라," 그가 어깨를 으쓱했다. "학비 때문에 그러시나?"
"부모님 형편이 그렇게까지 안 좋으시다냐, 드레이코?" 노트가 맞은편 자리에 앉으며 조롱했다. 팬지가 신음했다.
"지금 그런 말 할 때 아냐," 그녀가 경고했다.
"어쨌든, 난 간다," 드레이코가 말했다. 말포이 가가 처한 상황을 순수하게 즐기고 있는 듯한 노트와 여기서 한바탕 소모적인 말싸움을 벌이는 건 정말이지 그가 가장 원하지 않는 일이었다. "수업 때 보자."
그린고트에서 온 편지는 성질 더럽게 생긴 수리부엉이 편으로 목요일 아침에 도착했다. 빳빳한 흰색 봉투는 붉은색과 흰색의 그린고트 인장으로 봉해져 있었다. 첫 번째로 아침식사를 하러 올라온 덕분에 보장 받게 된 프라이버시에 감사하며, 드레이코는 봉투를 찢어 짧은 양피지 조각을 꺼냈다.
말포이 씨에게
당신 명의의 210번 금고에서 2000 갈레온 상당을 인출하고자 허가를 요청하는 바입니다. 승인할 경우, 하단에 날짜와 서명을 동봉하십시오. 추가 문의사항이 있을 시 답신하시면 최선을 다해 도움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보그로드
그린고트 은행
드레이코는 편지를 몇 번이나 다시 읽었다. 이천 갈레온이라고? 아버지한테 이천 갈레온씩이나 필요할 일이 대체 무언가? 기억에 의하면, 그의 부모님은 지금까지 한 번도 그의 계좌에서 돈을 꺼내 간 적이 없었다. 학비를 지불하는 데 보조가 필요했으리라 추측했건만, 일 년치 학비가 이천 갈레온씩이나 될 리 없음이 분명했다. 아니라면 어떻게 위즐리네가 그 많은 자식들을 죄다 보낼 수 있었겠는가? 그는 의자에 기대 앉아 그의 물잔에서 물을 마시고 있는 그린고트 부엉이를 빤히 보았다. 달리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그는 가방 밑바닥에서 깃펜을 찾아내 그의 이름과 날짜를 갈겨 적고, 편지를 다시 봉투 안에 쑤셔넣었다. 드레이코가 우편물을 다시 부착할 수 있도록 부엉이가 오른쪽 다리를 내밀었다.
"그래, 어서 가라," 그가 말했다.
부엉이는 어떻게 감히 자기더러 가라 마라 훈수를 둘 수가 있냐는 듯 공격적인 눈으로 그를 째려봤다. 드레이코가 마주 쏘아보자 부엉이가 날아올라 대연회장을 빠져나갔다.
"어디서 온 거야?" 팬지가 옆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린고트." 거짓말을 해 봤자 의미 없으리란 판단이 들었다. 팬지는 그의 거짓말을 밝혀내는 데 짜증나리만치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다.
그녀는 뭔가 말하고 싶은 듯 보였으나, 그보다 나은 방법을 택했다. 예언자 일보를 펼치며, 그녀가 말했다. "뭐 아무튼, 8학년들은 내일 밤 호그스미드에 간대. 우리도 가야지."
"왜?"
"왜냐고? 우리 같이 나가서 논 지도 한참 됐잖아. 게다가 다들 갈 거라고."
"거기 슬리데린도 끼워 주는 거 맞대?"
그녀가 짜증을 냈다. "왜 안 끼워 주는데? 우리도 다시 돌아온 8학년 맞잖아, 아니야?"
"맞지." 포터가 다가오는 걸 보고 그는 대화에 집중하지 못했다. 팬지가 그들 맞은편 자리에 앉는 포터를 멍청하게 바라봤다.
"말포이," 그가 무던히 말했다. "오늘 밤 수업 말인데, 기초부터 하자고 했잖아. O.W.L. 복습으로 시작하면 어떨까 하는데―소환 마법, 공중부양 마법, 격려 마법… 그리고 N.E.W.T. 주문 몇 개 더?"
"우선 O.W.L. 수준에서만 하자." 드레이코가 일축했다. "안 그랬다간 스스로를 잿가루로 날려 버리는 꼴이나 보고 있어야 할 테니."
포터는 얼굴을 찡그렸지만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저녁 먹고 만나서 준비하자. 일곱 시 반에."
"아주 열정적인 선생 납셨어, 포터. 덤블도어의 군대를 이끌면서 쌓은 엄청난 경험이 있어서 참 안심이겠어, 그치?" 팬지가 키득거리며 약을 올렸다.
포터는 어깨 너머로 가방을 휙 둘러메면서 그를 멀뚱히 보기만 했다. "일곱 시 반이야," 그가 대연회장에서 나가기 전에 다시 한 번 말했다.
"쟤는 진지한가 보지?" 팬지가 웃었다.
"포터는 으스댈 기회만 있으면 빠지는 일이 없지," 그가 말했다. "맥고나걸은 날 싫어하는 게 분명해." 그들의 멍청한 스터디 그룹에 대한 공지가 휴게실마다 붙자마자, 모두가 그 얘기를 해 댔다. 드레이코는 종종 다른 기숙사 학생들이 왜 그가 포터와 함께 이 모임을 이끌도록 선정된 건지 의아해하는 말들을 들었다. 그 자신 역시도 의문이었기 때문에, 회의적인 언사가 딱히 신경 쓰이지도 않았다.
"우리 다 갈 거야," 팬지가 그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말했다.
"아, 훌륭해. 노트랑 자비니가 날 격려하러 거기 온다니, 딱 내가 바라던 거야." 그가 잔에 남은 마지막 한 모금을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 팬지가 놀라서 그를 올려다 보며 물었다. "수업 시작까지 한 시간은 남았잖아."
"편지 보내야 해," 그가 말했다. 그녀에게 이따 보자고 인사한 뒤, 드레이코는 대연회장을 가로질러 갔다. 그러는 동안 익숙한 공포감이 목구멍 안쪽에서 넘실거려 왔다. 그는 현관 홀로 몰려드는 학생들을 뚫고 대문으로 향했다. 문을 밀고 나가자, 드레이코는 시원한 아침 공기에 머리가 맑아지는 것을 느꼈다. 지난 한 주 동안 그는 거의 매일 성 주변을 산책했고, 종종 저녁에도 나가곤 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도서관에서 공부한다고 하거나 여러 사람과 데이트를 즐기는 듯한 뉘앙스를 풍겨 뒀었다. 사실 그는 몇 시간씩 무용하게 호수를 따라서, 온실 주변을, 또는 해그리드의 오두막까지 걸을 뿐이었다. 아직 9월인데도 날씨는 제법 쌀쌀했는데, 그는 찬 공기가 신경을 안정시키고 공황을 파쇄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날이 갈수록 낮게 깔린 불안은 계속해서 가슴을 죄어 오는 것 같았다. 무엇이 그렇게 두려운 건지는 정확히 짚어 낼 수 없었다. 그는 부모님, 재정 상태, 성적, 미래 계획을 비롯해 모든 것에 대해 끊임없이 걱정했고, 동시에 그 무엇도 걱정하지 않았다. 때때로 그는 거의 무정물에 가까워지는 기이한 감각마저 느끼곤 했다. 정처없이 뜰을 방황하는 일은 그에게 필요해마지않던 사고방식을 일깨워 주고 공포는 매어두는 것 같았다. 가끔 그는 이런저런 얘기들을 털어놓을 만한, 자신을 옳은 길로 이끌어 줄 사람―마치 한때 세베루스가 그랬듯이―이 있기를 바랐지만, 아니, 이런 생각은 너무 고통스러웠다. 빨리 묻어 버리는 것만이 상책이다.
목요일 오전엔 숫자점 연강이 있었고, 벡터 교수는 지각에 아주 엄격하기로 악명이 높았다. 드레이코는 손목시계로 수업까지 15분이 남은 걸 확인하고, 서둘러 성으로 되돌아왔다. 현관 홀에 바글바글한 학생들 무리를 헤치며 나아가려는데, 갑작스럽게 팔뚝을 잡는 손힘이 느껴졌다. 그는 화들짝 놀라 주변을 돌아봤다.
"드레이코." 눈앞에 나타난 녀석에 대한 기억이 흐릿하게 떠올랐다. 그는 밀빛 금발 머리에 두꺼운 속눈썹이 갈색 눈동자를 덮고 있었고, 키는 드레이코보다 조금 더 컸다. 래번클로의 7학년이었는데, 이름이… 브라운이었나? 배리였던가?
"무슨 일이지?" 그가 팔을 빼내며 날카롭게 물었다.
그는 화가 나 보였다. "학기 첫 날부터 널 찾아 다녔어. 다들 네가 도서관에 있을 거라고 했는데, 안 보이더라."
"다음번엔 더 열심히 찾아보지 그래."
드레이코는 자리를 뜨려고 했지만 이내 불러세워졌다. "진심이야? 내 거기 핥을 땐 이렇게 개새끼처럼 안―"
"이런 미친," 드레이코가 이를 갈며 그―브룩스, 확실히 그 이름이었다―를 붙잡아 사람들 귀가 없는 곳으로 질질 끌고 갔다.
"뭐가 문젠데?" 그가 당황해 물었다.
"성 절반이 듣도록 내 사생활을 나불거리고 다닐 필요는 없잖아." 그들은 숨겨진 벽감 안쪽에 아주 약간의 틈만 벌리고 서 있었다.
"돌아오면 날 찾아올 줄 알았어," 그가 애원하듯 말했다. "네가 호그와트로 돌아온 게 맞기나 한지 궁금해지려던 참이었단 말이야."
"자, 여기 있네. 궁금증 풀렸지?"
기겁스럽게도, 브룩스는 둘의 코가 거의 맞닿을 정도로 가깝게 기대 왔다. 그가 속삭였다, "아까도 말한 것 같은데, 넌 작년에 밤마다 내 침대에서 뒹굴었을 때가 훨씬 더 착했어."
"밤마다? 두 번인가, 세 번밖에 안 됐잖아. 어쨌거나." 드레이코는 물러서서 망토를 똑바로 했다. "날 찾았으니 됐지. 이제 아는 척 하지 마."
브룩스는 오래 그를 응시하다가, 볼이 새빨개져서는 쏘아붙였다. "너나 씨발 나한테 아는 척 할 생각 마, 죽음을 먹는 자 같으니라고." 그가 드레이코를 밀치고 떠났다.
드레이코는 진심으로 지팡이를 꺼내 들고 저 얼간이를 저주하고 싶었지만, 참기로 했다. 마법부에서 호시탐탐 그를 퇴학시킬 건덕지만을 노리고 있단 걸 알았다. 대신, 그는 잔뜩 약이 올라 숫자점 수업이 있는 교실로 향했다. 호그와트에서의 지난 2년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 그는 여러 명의 학생들과 돌아가며 밤을 보내곤 했다. 래번클로, 후플푸프… 심지어 충격적이게도, 그리핀도르도 한 명 있었다. 슬리데린은 절대 만나지 않았다. 기숙사 내에서 그의 입지는 불안정했고, 그는 슬리데린 학우들과 거리를 두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언제나 이건 욕정과 머리를 비우려는 절박한 필요에서 비롯한 일시적 합의일 뿐이라 못박아 뒀었다. 머릿속 생각들로부터 도망쳐 몇 시간 동안 그가 누군지 잊고자 할 때면, 그는 누군가 찾아 나섰다. 상대는 늘 남자였다. 그는 오래 전부터, 심지어 호그와트를 입학하기 전부터, 자신이 여자에 관심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호기심과 지루함을 못 이기고 몇 번 팬지와 시시덕거린 적이 있긴 했지만, 그건 솔직히 사귀었다고 말하기도 뭣했다.
숫자점 수업은 춥고, 책상이 빼곡히 늘어선 석조 교실에서 이루어졌다. 그는 평소처럼 다프네 옆자리에 앉았다. 그녀는 교과서를 넘겨 보고 있었다.
"지난주에 읽은 부분을 거의 다 모르겠어," 그녀가 불평했다. "난 숫자 차트에 젬병이야."
"그럼 숫자점을 왜 듣는데?" 그가 생각 없이 물었다. 이름도 제대로 기억 안 나는 어떤 자식 때문에 그는 여전히 신경질이 나 있었다.
그녀가 한숨을 쉬었다. "우리 엄마는 학교 다닐 때 숫자점을 진짜, 진짜 잘 했대. 지금은 저주 해제술사(Curse-Breaker)로 일하셔. 그래서 내가 전과목 N.E.W.T.를 따 오길 바라시지. 내가 쓸모 있어지려면 그게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 난 고대 룬 문자도 너무 싫어, 난 쓰레기야…"
저도 모르게, 드레이코는 흥미로워하며 그녀를 보고 있었다. "네 어머니가 저주 해제술사시라고?"
"응. 호그와트 졸업하자마자 그 일을 하셨어." 그녀가 잠시 멈췄다가 덧붙였다, "엄마는 진짜 멋진 마녀야."
"맞아. 난 그냥… 왜, 마법부가 더 이상 우리 같은 사람들은 신뢰하지 않는 줄 알았는데, 아닌가 봐?"
"아. 음. 엄마는 한 번도 그… 이름을 말할 수 없는 그 사람한테 넘어가진 않으셨거든. 그러니까, 두 분 다 순수 혈통이시긴 해, 우리 부모님 말이야, 그래도 두 분 다 결코…" 그녀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도 우리 엄마는 엄청 야망 넘치셔. 아마 그래서 우리 둘 다 슬리데린인가 봐."
드레이코가 그녀를 응시했다. 그는 한 번도 다프네가 눈에 띄게 야심이 있다고는 생각해 본 적 없었다. 그리고 다시금, 그들이 대화하기 시작한 게 실은 얼마 되지 않았단 걸 깨달았다. 동기들이 이렇게나 줄어들기 전까지, 다프네는 드레이코의 무리와 자주 어울리는 편이 아니었다.
"거지 같아서 못 해 먹겠네," 그녀가 말하곤 황급히 덧붙였다. "악의는 없어. 근데 난 항상 음악 관련된 뭔가를 하고 싶었어. 세 살 때부터 피아노를 쳤거든."
그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지으려 애쓰며 물었다, "음악?"
"응," 그녀가 밝게 말했다. "작곡도 몇 개 했어. 호그와트의 음악 수업도 훌륭하지만, 엄마는… 내가 N.E.W.T.로 음악 수업을 듣는 건 별로 원치 않으셔."
"어쨌든 들을 거잖아?"
"당연하지. 안 그럼 무슨 의미가 있겠어?"
"의미?"
"다시 돌아와서 이러고 있는 것 전부? 엄마를 행복하게 해 드리기 위해서 엄마가 하라는 건 다 하겠지만, 내가 떠나고 나면…" 그녀가 말을 흐렸다.
"마법부에 취직하고 싶어하는 줄 알았는데?"
"가끔은 그래. 솔직히 안정적이잖아? 일단 들어가기만 하면, 일생은 걱정 없으니까. 근데 내 안엔 전부 꺼져 버리라 하고 그냥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어하는 자아도 있어." 그녀가 목소릴 낮추고 공모하듯 그에게 가까이 왔다. "더블린에 음악 학교가 있는데, 수석급 학생들만 들어갈 수 있대. 음악 N.E.W.T.에서 특출함(Outstanding)을 받아야 해. 나 진짜 진짜 가고 싶어."
내심 드레이코는 그 모든 게 터무니없다고 생각했지만―악기 연주 같은 걸 해서 어떻게 벌어 먹고 살겠어?―벡터가 교실 문을 열고 들어온 덕분에 그런 말은 하지 않을 수 있었다.
점심 식사 이후의 공강 시간에, 그는 주로 밀린 변한 마법 과제를 해치우곤 했다. 델라쿠르는 그들을 편하게 내버려 두지 않았다. 사실, 지금까지 그녀는 다른 모든 교수들의 것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과제를 내 주었다. 드레이코는 도서관 구석의 애착 자리에 틀어박혀, 전 수업 필기를 보며 대충 그려둔 도표가 무슨 뜻인지 해석하느라 진땀을 뺐다. 저녁 시간이 가까워지자, 드레이코는 가방을 챙겼다. 온종일 오늘 첫 번째 수업을 해야 한단 생각에 긴장하고 있었다. 긴장감 대부분은 그가 이 스터디 그룹이란 게 대체 어떻게 생겨먹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점에서 기인했다. 그는 한 번도 다른 학생들을 가르쳐 본 적이 없었고, 아마도 그를 끔찍하게 싫어할 학생들을 가르쳐 본 적은 더더욱 없었다. 그가 알기로, 최소 한 명은 기꺼이 그에게 기억력 저주를 걸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을 터였다. 어쩌면 그게 맥고나걸의 계략인지도 몰랐다.
그는 저녁 식사 내내 말없이 남들이 시즌 첫 퀴디치 경기에서 슬리데린과 그리핀도르 중 누가 이길지 열띠게 토론하는 소리만 듣고 있었다. 경기는 11월 첫 주에 있을 예정이라 아직도 거의 두 달은 남았지만, 기숙사 간 경쟁심과 견제는 벌써 불붙어 있었다.
"8학년은 경기에 참여할 수 없다니 불공평해," 노트가 말했다.
"너랑 무슨 상관인데?" 다프네가 웃었다. "넌 경기 나간 적도 없잖아."
"드레이코 말이야," 노트가 곧장 말했다. "드레이코가 수색꾼으로 뛰면, 올해는 진짜 가망 있을지도 모른다고. 그리고 몰이꾼도 말이지, 고일이랑 크레이브는―아니…"
불편한 침묵이 흐르고 모두가 접시만 내려다 봤다. 팬지가 과장되게 띄워낸 목소리로 침묵을 깼다. "블레이즈도 선수 했었잖아. 걔도 아주 잘 하던걸."
그렉이 테이블에서 일어나 대연회장을 성큼성큼 걸어나갔다. 코티지 파이는 손도 안 댄 채 남아 있었다.
"누가 쟤 좀 따라가 봐," 노트가 중얼거렸다. "난 그러려던 게… 그니까…"
"내버려 둬," 자비니가 음울하게 말을 얹었다. "젠장할, 그냥 내버려 두라고."
나머지 저녁 식사 시간은 끔찍했다. 8학년 슬리데린 중 그 누구도 푸딩을 먹을 기분이 아니라, 그들은 다같이 휴게실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래도 네 수업은 들으러 갈 거야," 팬지가 드레이코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그는 어깨만 으쓱했다.
그들이 떠나고, 그는 그리핀도르 테이블 쪽을 건너 보았다. 포터는 기운 넘치게 위즐리와 떠들고 있었다. 분노가 끓어올랐다. 포터는 당장 몇 달 전 호그와트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잊어버린 건가? 쟤네는 어떻게 저렇게 무심할 수가 있지? 마법약 수업 시간에도 포터는 여느 때와 같아 보였다. 수요일에 그와 위즐리는 만들던 마법약을 대차게 말아먹었는데, 드레이코가 나중에 보니깐 슬러그혼의 표정이 얼마나 웃긴지 말하며 미친 듯이 깔깔대고 있었다. 위대하신 포터 님께 N.E.W.T. 따위는 아무 것도 아닌 모양이지, 그는 생각했다. 시험장에 코빼기도 안 비추더라도 원하는 일자리에 턱턱 붙여줄 테니깐.
그가 변환 마법 에세이를 수정하는 동안 대연회장은 서서히 비워졌다. 마지막 남은 몇몇 학생들까지 떠날 무렵, 드레이코는 곁눈으로 포터가 친구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있는 걸 보았다. 드레이코는 포터가 그의 바로 앞에 와 선 채 팔짱을 낄 때까지 그를 못 본 체 했다.
"말포이," 그가 말했다.
드레이코는 마치 그가 거기 있던 걸 몰랐다는 듯 올려다 봤다. 과장되게 한숨을 내쉬며, 그가 말했다. "벌써 그 시간인가? 기쁘기도 하지."
포터가 눈을 굴렸다. "공간을 만들어야 해."
"그건 내가 알아서 하지," 프라우드풋이 교수석에서 다가왔다. "그리핀도르 테이블과 후플푸프 테이블을 치우면 공간은 충분할 겁니다."
그가 말없이 허공에 지팡이로 원을 그리자, 가대식 테이블 두 개가 간데없이 사라졌다. 프라우드풋이 장소를 살피며 대연회장을 거닐었다.
"좋군요," 그가 그들을 보며 말했다. "첫 모임에서는 뭘 하려고 생각 중이죠?"
포터가 말했다, "기초를 생각 중입니다, 교수님. 진도를 확인하려고요. O.W.L. 수준 주문들로 시작해서 얼마나 잘 따라오는지 보려고 합니다."
프라우드풋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그럼 어느 정도 수준의 성취를 기대하나요?"
"음." 포터가 드레이코 쪽을 봤다.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여러분은 교육 목표를 설정해야 해요." 그들이 멍하게 그를 쳐다보자, 그가 계속했다, "이 모임의 목적이 뭔가요? 올해가 지나면 학생들이 무엇을 할 수 있게 되길 원하나요?"
"제 생각엔―제 생각엔 5학년들은 O.W.L. 수준 주문을 쓸 줄 알게 되고, 7학년들은 N.E.W.T. 수준을, 6학년들은… N.E.W.T. 수준에 갈 준비를 하는 거요?" 포터가 말했다. 드레이코는 흥 소리를 냈다.
"당연하죠. 그건 분명해요. 하지만 교사로써, 여러분은 일종의 교육과정을 정해야 해요. 정확히 어떤 주문들을 가르칠 건지, '통과'의 기준은 뭔지, 학생이 통과할 수 있는지는 뭘 보고 결정할 건지 같은?"
"저희가 학생들을 점수 매겨야 하는 건 아니죠?" 포터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프라우드풋이 미소 지었다. "당연히 아니죠. 하지만 여러분이 이걸 진지하게 받아들여 줬으면 좋겠어요."
"교수님," 드레이코가 할 수 있는 한 가장 예의 바르게 말했다, "전 정말 가르치는 데 흥미가 없어요. 그래서 왜 제가 가르치는 법을 배워야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 일에 배정됐다고 생각했나요?" 프라우드풋이 그에게 물었다. 드레이코가 대답하지 않자, 그는 포터를 보았다. 포터가 확신 없이 답했다, "저희가 아무 계획도 없어서요?"
프라우드풋이 짧게 컹컹거리는 웃음소리를 냈고, 드레이코는 놀라서 포터를 보았다. 그는 한 번도 왜 포터가 그와 같이 이 괴상한 수업 같은 데 처박힌 건지 생각해 본 적 없었다. 다른 누구라면 몰라도 포터만큼은 호그와트를 졸업하고 뭘 해야 할지 계획이 있을 줄로만 알았다.
"그럴 지도 모르죠. 하지만 둘 다 주목할 만한 마법사들인걸요. 여러분의 문제는… 그 날것의 재능을 받아들여서 완벽히 갈고닦아야 한다는 거죠."
"전 제 학업을 몹시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교수님." 드레이코가 차갑게 말했다.
"그렇지 않다곤 말한 적 없어요. 하지만 말포이 군, 학생한테는 목적의식이 없어요. 내 생각엔 자신감도 부족한 것 같군요."
포터가 크게 웃었다. "말포이한테 자신감이 부족하다고요? 얘는 세상에서 제일가는 거만―"
"그리고 포터 군은," 프라우드풋이 그의 말을 잘랐다, "학생보다 두 배는 나이 많은 마법사들도 못 하는 마법은 척척 쓰는지 몰라도, 통제가 잘 안 되는 것 같네요. 그러니 이 기회에 기술을 연마하도록 합시다. 스스로도 숙련되지 못한 걸 가르칠 수는 없어요. 전문가가 선생이 되는 게 아니라, 가르치면서 전문가가 되는 겁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에 대해서도 무언가 배울 수 있지요." 그는 뭔가 더 말하려는 듯 했으나, 일찍 온 몇몇 학생들이 대연회장으로 쭈뼛거리며 들어오고 있었다. "아무튼, 시간이 됐네요. 행운을 빕니다."
"가시려고요?" 포터가 깜짝 놀라서 물었다.
"가야죠, 그럼. 방해만 될 텐데요. 어떻게 됐는지 알려 줘요." 프라우드풋은 마지막으로 그들을 향해 웃어 보이곤 대연회장을 걸어나갔다.
"젠장," 드레이코가 분노에 차 중얼거렸다. "대체 이 학교엔 왜 제정신인 사람이 없는 건데? 그리고 나에 대해 자기가 알면 뭐 얼마나 안다고? 여기 온 지 2주밖에 안 됐으면서."
"그럼 네 아버지한테 꺼내 달라고 편지나 쓰지 그래," 포터가 말했다.
드레이코는 말문이 막혔다. "우리 아버진―너무 바쁘셔서―"
하지만 포터는 벌써 제 친구들에게로 넘어가 있었다. 드레이코는 많은 수의 학생들이 나타난 데 놀랐다. 대부분 아는 얼굴들이었다. 그는 앞쪽에 모여 서 있는 슬리데린 5학년 한 무리를 보고 고개를 까딱여 아는 체한 뒤, 8학년 동기들에게로 다가갔다. 그렉은 그들과 함께 있지 않았다.
"드레이코," 팬지가 인사했다. "준비 다 했어?"
"이건 죄다 바보짓이야," 그가 욕설했다.
"각자 배정된 일이 뭔지 얘기 하고 있었어," 노트가 말했다. 그가 말하며 몸을 일으켰다. "난 플리트윅 교수님께서 복잡한 일반 마법 연구 하시는 일을 돕게 될 것 같더라."
밀리센트가 코웃음 쳤다. "교실 청소나 시키실걸."
"그럼 넌 뭘 하는데?" 노트가 그녀를 째려봤다.
"스프라우트 돕기," 그녀가 우울하게 말했다. 어쩐지 기가 죽은 듯했다. "나중에 용 보호구역에서 일하고 싶다고 말했는데, 지금은 내 약초학 성적이 너무 낮대."
"스프라우트 교수님 정도면 나쁘지 않아," 다프네가 그녀를 격려했다. 그리곤 움찔하더니 덧붙였다, "난 벡터 교수님이랑 해… 숫자 차트 정리랑…"
"날더러 숫자 차트를 더 봐야 한다고 하면 난 죽어버릴 거야. O.W.L. 치고는 숫자점 안 들어도 돼서 얼마나 좋은지 몰라," 노트가 말했다.
"너는?" 드레이코가 팬지에게 물었다.
"블레이즈랑 나는 슬러그혼이 병동에 마법약 채우는 걸 돕기로 했어. 재고가 부족한가 보더라… 작년 일 때문이겠지. 뭐 아무튼," 그녀가 밝게 말했다, "마법약은 뭘 해도 필요하잖아? 그리고 슬러그혼이 인맥이 많더라."
이내 포터가 주의를 집중시켰고 드레이코는, 짜증 났지만 앞으로 나가 그 옆에 섰다. 삼삼오오 떠들어 대던 학생들이 대화를 멈추고 그들을 봤다.
"좋아," 포터가 말했다. "다들 와줘서 고마워. 우리 둘 다 이런 걸 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좀 특이한 상황이 됐네. 스터디 그룹이라고 해도 좋고, D.A. 회원이었다면 알겠지만 그 때랑 좀 비슷할 것 같기도 해." 드레이코는 단지 눈을 굴리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맥고나걸 교수님은 우리가 작년에 제대로 못 한 주문 연습을 좀 했으면 하시는 것 같더라. 우리 중 몇몇은, 나도 포함해서 말인데, 작년에 학교에 있지도 못했으니깐…"
"볼드모트랑 싸우느라 너무 바빴지," 롱바텀이 소리쳤다. 한바탕 웃음이 터져나오고, 몇몇 그리핀도르들이 함성과 박수를 보냈다. 드레이코는 최대한 무표정을 유지했다.
포터가 의기양양한 미소와 함께 말했다, "그래, 맞아. 어쨌든, 우리 다같이 O.W.L.이랑 N.E.W.T.를 준비할 좋은 기회 아니겠어? 최대한 뽕을 뽑자고. 내가 생각해 봤는데―" 그가 망설이며 말포이를 보더니 말했다. "우리가 생각해 봤는데, 기초부터 시작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실력 파악을 해 보자고. 그럼 둘씩 짝지어서 무장 해제 주문부터 해 보면 어떨까?"
"무장 해제?" 학생들이 짝을 짓는 동안 드레이코가 물었다. "뭐 하자는 건데, 결투 클럽이야?"
포터는 어깨를 으쓱하곤 가까이 있는 짝에게로 향했다. 5학년 여자애 둘이 그가 다가오자 꺅꺅거렸다. 웃기지도 않았다.
"포터," 그가 뒤따르며 짜증스럽게 말했다. "우리가 같이 가르치라고 했잖아."
포터가 놀란 듯 뒤돌아봤다. "맞아, 그렇지."
"그럼 내 말도 들어. 무장 해제 주문 하고 나서 격려 마법으로 넘어가는 거야. 그건 진짜로 시험에 나오는 거니까."
포터가 대답하기도 전에, 드레이코는 근처에 있던 후플푸프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팔을 쭉 뻗도록 해. 지금은 불어터진 면발 같으니."
한 시간 동안, 그들은 학생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필요에 따라 조언을 건넸다. 드레이코는 마지못해 포터가 이런 일에 재능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했다. 그는 내내 웃으며 그리핀도르 동기들과는 장난스럽게 주문을 주고받고, 아래 학년이거나 긴장한 듯한 학생들에게는 자연스럽게 격려의 말을 건넸다. 한편 드레이코는, 심장으로부터 익숙한 공포감이 솟아나는 걸 느꼈다. 그는 한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를 바라며 끊임없이 손목시계만 힐끔거렸다.
"어디 갈 데 있어?" 둘이 지나쳐 갈 때 포터가 물었다.
드레이코는 대놓고 그를 무시하며, 격려 마법을 연습 중인 패틸 쌍둥이에게 집중했다. 마침내 8시가 됐고, 포터가 한 번 더 팔을 휘저어 모두의 주의를 모았다.
"자자, 다들 열심히 해 줘서 고마워," 그가 말했다. "오늘 보여준 걸 토대로 너희가 O.W.L.과 N.E.W.T.를 보려면 필요한 게 뭔지 점검해서, 우리가 한 학기치 커리큘럼을 짜 와 볼게."
"우리?" 드레이코가 혼자 중얼거렸다.
"다음 주에 보자," 포터가 말했다. "그때까지 연습 많이 해 와. 그치만 정말 잘 해 줬어."
학생들은 금세 대연회장을 빠져나갔다. 일부는 포터와 대화하기 위해 남아 있기도 했다. 어색함이 느껴졌기 때문에, 드레이코는 팬지가 환하게 웃으며 다가와 줘서 안도감이 들었다.
"너 진짜 멋졌어, 드레이코," 그녀가 말했다. 그는 코웃음 쳤다.
"아직도 이게 뭐 하자는 짓인지 모르겠어," 그가 불평했다. "온 애들 중 절반은 격려 마법조차 제대로 못 하던데. 이거 학교가 해야 할 일 아니야?"
"다들 잘 배울 거야," 그녀가 격려했다. "네가 가르쳐 줄 거잖아. 넌 짱이야."
드레이코는 그녀의 칭찬에 감사를 표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얼굴을 찡그리고는 이렇게 말했다. "가자. 포터가 추종자들 상대하려면 몇백 년은 걸릴 테니까."
그들이 다른 슬리데린들과 합류해 떠나려는 참에, 포터가 불렀다. "어이, 말포이!"
그는 짜증스럽게 뒤를 돌았다.
"토요일 아침에 만나서 이것저것 정하는 게 어때? 9시에 도서관에서."
"10시," 그는 순전히 포터가 자기 맘대로 하려고 드는 데 질려서 반기를 들었다. 상대가 무슨 말이든 꺼내기 전에, 그는 대연회장을 유유히 빠져나갔다.
Chapter 5: v.
Chapter Text
금요일 내내 팬지, 다프네, 그리고 밀리센트는 호그스미드 나들이에 대해 떠들어 댔다. 맥고나걸도 신난 기류를 눈치챘는지, 저녁 식사 때 그들에게 행동을 조심할 것과 아래 학년 학생들을 괴롭히지 말 것을 당부했다. 8학년들은 수업 시간 내내 킥킥거렸다. 드레이코는 팬지의 집착에 못 이겨 함께 가기로 약속은 했지만―딱 한 시간만이었다. 그들이 성을 나서서 호그스미드로 향할 무렵엔 이미 땅거미가 내려앉아 어둑해지고 있었다. 노트는 설탕 깃펜과 토피 사탕을 쟁여야 한다며 허니듀크부터 방문할 것을 고집했다. 가게는 언제나처럼 붐볐다. 어린아이들이 부모를 쫓아다니며 군것질거리를 사 달라고 졸랐고, 사람들은 원하는 간식을 찾아 매대 사이사이를 비집었다. 한 무리의 마녀들이 온갖 맛이 나는 젤리빈 통을 앞에 두고 서서 깔깔대며 웃었다. 드레이코는 잔뜩 쌓인 사탕들을 지나쳐 피징 위즈비가 담긴 통 앞에 멈춰 섰다. 그는 긴장해 있었는데, 로즈메르타 부인을 면대면으로 상대해야 할지도 모른단 사실 때문이었다. 과연 다른 8학년들이 슬리데린과 함께 술을 마시고 싶어할지 여부 또한 문제였다(드레이코는 가능성이 낮다고 생각했다). 마침내 노트가 계산을 끝내자 그들은 스리 브룸스틱스로 향했다.
펍을 채운 건 거의가 다 8학년 학생들이었다. 그들은 테이블 몇 개를 이어붙여서 한데 모여 앉았다. 드레이코는 팬지와 블레이즈 사이로 끼어 들어갔다. 다행스럽게도 자리가 벽 근처라 잘하면 로즈메르타 부인 눈을 피할 수 있을 듯했다. 하지만 그는 운이 별로 좋지 못했다. 그들의 테이블로 커다란 맥주잔 두 개를 가지고 오던 그녀가 드레이코를 발견하고 얼어붙은 것이다. 그녀는 이내―당연하게도―상석에 앉은 포터에게로 향했는데, 펍 내부 소음에 묻혀 그들이 말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싸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끝내 로즈메르타는 드레이코를 험악하게 노려보더니 테이블에 맥주잔을 쾅 내려놓고 자리를 떴다.
"드레이코," 블레이즈가 잔에서 술을 한 모금 마시곤 불렀다. "널 찾아다니는 사람이 있던데."
"누구?"
"후플푸프 놈이었는데. 휘트비였던가?" 블레이즈는 테이블에 난 미세한 선을 손가락으로 덧그리며 실실 웃었다. "걔가 너 찾더라."
"그놈이 나랑 무슨 볼일이 있다고?" 그가 신경질적으로 내뱉었다. 술을 입에 대자마자 그는 거의 즉시 부드러운 온기가 온몸을 파고드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나야 모르지. 작년에 걔랑 제법 좋은 시간 보냈었나 봐." 자비니가 그를 보며 킬킬댔다.
"지랄," 드레이코가 한 모금 더 마시며 중얼거렸다.
"나 상처야, 드레이코," 자비니가 농담했다. 적어도 그는 낮은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으므로 드레이코는 아무도 그들의 대화를 들을 수 없기를 바랐다. "나 만나기 전에 후플푸프 기숙사나 들쑤시고 다녔던 거야?" 그가 아무 말 않자, 자비니가 덧붙였다. "우리가 6학년이었을 때 그날 밤이 생생하게 기억나는군… 넌 아마도 잊어버린 모양이지만…"
딱 한 번 있었다. 시험이 끝나고 모두가 흥청망청 취해 있었고, 어째선지 드레이코는 블레이즈의 침대에 있었다. 그의 무릎에 앉은 채, 물어뜯다시피 키스를 나누며.
"아무 일도 없었잖아," 그가 항변했다. 그리고 그건 사실이었다. 자비니가 셔츠를 벗기 시작해서 드레이코는 곧장 그를 밀쳐내고 자신의 침대로 돌아갔었다. 그 후 몇 주 동안 그들 사이에 긴장감이 감돌았었다.
"그 말은 휘트비랑은 무슨 일 있었고?" 자비니가 느릿하게 말했다. "드레이코 말포이가 그 정도로 전락했을 줄이야… 후플푸프랑 떡을 치다니. 네 아버지가 뭐라고 하실지 궁금한걸."
'요새 아버지께서는 어찌나 취해 계신지 당신 엉덩이랑 팔꿈치조차도 구분 못 하실걸,' 그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는 대신 어깨를 으쓱하곤 인턴십 얘기를 나누는 중이던 다른 슬리데린들에게로 주의를 돌렸다.
토마스와 피니건이 테이블에 술을 돌렸다. 드레이코는 파이어위스키로부터 진정 효과를 기대했지만, 오히려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었다. 내부 공간은 뜨거웠다. 자비니의 존재가 그를 예민하게 했고, 그는 왜 그런지 알 수 없었다. 그의 희롱과 둘 사이의 기묘한 긴장감은 익숙한 것이었다. 하지만 왜 때문인지 지금은 그게 거슬렸다. 별안간 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자 테이블 위 절반쯤 차 있던 술잔들이 흔들렸다. 그가 자비니 옆을 스치고 지나가 펍의 옆문으로 향하는 모습을 몇몇이 지켜봤다. 문을 열고 나가면 어두칙칙한 골목길이 이어졌다. 이 골목길에 익숙해진 사연―이곳에서 그는 다른 죽음을 먹는 자들과 밀회를 갖곤 했었다―을 애써 떠올리지 않고자 묻으며, 그는 펍의 서늘한 석조 외벽에 등을 기댔다. 바깥 날씨가 쌀쌀해 손을 주머니에 쑤셔 넣어야 했다. 그가 호흡을 내뱉자 눈앞에 김이 서렸다. 골목길 아래쪽에 바짝 끌어안은 두 인영이 보였다. 아마도 학생들이리라. 누구인지까지는 알 수 없었다. 뭐, 아무래도 상관 없었다. 그는 여기 나와 있는 게 훨씬 제정신으로 느껴졌다. 더 그 자신이 된 것처럼. 그는 이대로 혼자 호그와트까지 걸어서 돌아가도 안전할지, 다른 사람들이 과연 그의 부재를 눈치채기나 했을련지에 대해 막연히 생각했다.
펍의 문이 활짝 열리자 그는 화들짝 놀랐다. 놀랍게도, 비틀거리며 나온 건 포터였다.
"워워, 포터," 드레이코가 히익 하며 그와 부딪치는 걸 막고자 팔을 뻗었으나, 포터는 알아서 균형을 잡았다. 그의 등 뒤로 문이 쾅 닫혔다.
"말포이," 그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올려다 봤다.
"또 날 쫓아다니기라도 하려는 건가?" 드레이코가 느릿하게 말했다. "이제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많으실 것 같은데."
포터가 얼굴을 찌푸렸다. "뭘 좀 찾느라―됐다."
"집어치워, 포터." 그는 갑자기 화가 났다. "내가 지금은 또 뭘 꾸미고 있는 것 같은데? 어둠의 마왕은 사라졌다고. 어떤 빌어먹을 짓거리로 날 의심할 수 있지, 네가?"
포터가 눈을 깜빡였다.
분개하여, 드레이코는 그를 지나쳐 펍 안으로 다시 들어가려 했지만, 포터가 팔을 잡았다. 그는 포터의 손아귀에서 팔을 거칠게 빼내며 몸부림쳤다. 그가 으르렁댔지만, 포터는 화난 것 같지 않았다. 그는 마치 이전까지는 한 번도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는 듯 단지 드레이코를 응시하고만 있을 뿐이었다.
"무슨 속셈이지?" 순간 끔찍한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내가 싸움을 걸게 하려는 거지. 내가―퇴학당하게 하려고."
포터가 인상을 찡그렸다. "네가 퇴학당하길 바라지 않아."
"상관 없어. 비켜. 그리고 나한테 가까이 오지 마." 단지 그것이 포터가 자신의 가족을 더 큰 곤경에 빠뜨릴 수도 있는 온갖 시나리오를 되새기던 정신적 작용에서 기인했다는 것 외에는, 그는 자신의 분노를 설명할 수 없었다. 그는 쿵쿵거리며 펍 안으로 되돌아가 팬지를 찾았다. 그녀는 이제 의자를 옮겨 파드마 패틸의 옆에 앉아 있었다. 그들은 같이 키득거리고 있었는데, 어째선지 그 모습에 더 짜증이 났다.
"나 간다," 그가 그녀에게 말했다.
"뭐? 왜?" 그녀가 혼란스러워하며 물었다. "아, 드레이코, 이리 와서 앉아. 너도 이 얘기 들어야 해―어제 래번클로 애들이 플리트윅이 괴상한 짓 하는 걸―"
드레이코가 패틸을 흘긋 보았다. 표정이 굳어가고 있었다.
"내일 보자," 그가 고저 없이 말했다. 팬지가 손을 잡으려 했지만, 그는 뿌리치고 걷잡을 수 없이 화내 버리기 전에 자리를 떴다.
***
다음날 아침, 그는 비몽사몽한 채 잠에서 깨어났다. 두 잔만으로 숙취에 시달리지는 않았어도 그는 기진맥진해 있었다. 손목시계를 보고 거의 9시가 됐음을 확인했지만, 그는 다시 잠에 들려고 했다. 포터와의 그 멍청한 약속에 대해 기억하기 전까지는. 샤워와 양치를 마치고 옷을 갈아입자 아침 식사를 할 시간 따위는 남지 않았고, 그는 곧장 도서관으로 향했다. 포터가 책상 앞에 홀로 앉아 있었다―드레이코는 평소에 그를 쫓아다니던 숭배자들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에 놀랐다. 드레이코가 책상 위에 가방을 니려놓고 포터 맞은편 자리에 앉자, 포터가 그를 노려보았다. 그가 가방에서 깃펜과 잉크병을 꺼내는 동안 불편한 침묵이 감돌았다. 빈 양피지가 있는지 찾으려다 가방 밑바닥에서 그의 옛 지팡이를 발견하고 드레이코의 위장이 조여들였다. 그는 그것을 어디에 보관해야 할지 결정하지 못해서 그냥 가방에 그대로 두기로 했는데, 온종일 그것의 존재에 기묘한 위안을 받던 참이었다.
"그래." 그가 뭔가를 휘갈겨 쓰고 있는 포터를 올려다 봤다. "그건 뭔데?"
"헤르미온느가 O.W.L.과 N.E.W.T. 수준 주문의 목록을 만들어 줬어. 같이 보고 매주 어떤 걸 연습할지 정해 보자."
"아, 같이? 그러셔?" 그가 쏘아붙였다. "다 네 맘대로 할 거잖아."
"알겠어, 그럼." 포터가 숨을 내쉬며 의자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그가 깃펜을 내려놓았다. "네가 해 봐."
드레이코는 눈썹을 들어올렸다. "진심이야, 포터? 네 꼬꼬마 친구들은 그렇게 떼를 쓰면 다 받아 줬던가 보지?"
포터가 앞으로 팔짱을 꼈다. "해 봐. 수업 계획 짜 보라고."
드레이코가 몸을 뻗어 그레인저의 목록을 낚아채 왔다. 대부분의 N.E.W.T. 수준 주문은 동기들이 따라가기에 벅찰 것 같았다.
"진심으로 롱바텀이 프로테안 마법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그가 비웃었다.
"네빌은 네가 평생 될 수 있을 것보다 두 배는 더 뛰어난 마법사야," 포터가 낮게 말했다.
그 말에 드레이코는 조롱하듯 웃었다. "그러시겠지." 그가 그레인저의 목록을 포터 쪽 책상으로 던졌다. "난 할 일 자판기가 아니야. 생각해 내."
"전부 다 하는 건 불가능해. 매주 한 개나 두 개 정도 주문을 골라서 집중하는 편이 최선이겠지."
"그 계획도 그레인저 생각이겠지?"
포터는 그를 무시하고 계속 말했다.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주문들 목록을 각자 작성한 다음, 비교해 보는 건 어때."
"그래. 그래. 그러지 뭐." 드레이코는 어떤 주문이 가장 유용했으며, 어떤 주문이 가장 어려웠는지 O.W.L. 시험의 기억을 되살려 작업에 들어갔다. 상급생들에게 N.E.W.T.를 준비시켜야 한다는 문제도 있었다. 다같이 고등 마법을 연습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인간 변환 마법은 아주 중요했고, 무언 주문도 연습해야 했다. 변환 마법 교과서를 뒤적거리던 드레이코는 자꾸 그의 머리 뒷편을 훔쳐보는 포터 때문에 신경이 거슬렸다.
"무슨 문제라도, 포터?" 그가 날카롭게 말했다.
"오웬 콜드웰," 포터가 중얼거렸다. "네 뒤에 있어."
뒤를 돌아본 드레이코는 그를 향해 씨익 웃음짓는 콜드웰을 발견했다. 그는 인상을 찡그리고 다시 하던 일에 집중했다. 그가 양피지에 주문들을 갈겨 적고 있는데, 포터가 더 다급하게 말했다. "계속 널 보고 있어."
"알아."
"왜?"
"몰라." 드레이코가 어깨를 으쓱했다. "한 번 잤어. 그때부터 나한테 집착하는 것 같더라."
"너랑 뭐?" 포터가 꽥 소리를 냈다. 그가 들고 있던 교과서를 떨어트려서 커다랗게 쿵 소리가 났다. 멀리서 핀스 부인이 잔뜩 화가 나 쉿! 하는 소리가 들렸다. 드레이코는 눈을 굴리고 잉크병에 깃펜을 담갔다.
"아니―그치만―왜?" 포터가 말을 더듬었다. 잔뜩 열받은 상태만 아니었어도 드레이코는 그의 반응을 우습다고 생각했을 것 같았다.
"잘 모르겠네, 포터," 그가 말했다. "사람들이 왜 떡을 친다고 생각하는데?"
포터가 그를 빤히 봤다. 남자가 남자랑 잘 수도 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는 걸까? 설마 그렇게까지 순진할 리는 없었다. 불편해져서, 드레이코는 쓰던 목록에 고개를 처박고 포터가 마침내 제 목록을 완성해 깃펜을 내려놓을 때까지 그를 무시했다.
"다 했다," 포터가 의자에 등을 기대며 말했다. "이제… 비교해 보면 되려나"
그들의 목록은 거의 비슷했으나 몇몇 부분에서는 논쟁이 필요했다. 포터는 무언 주문이 그들이 가르치기엔 너무 어려우니 학교측에 맡겨두는 게 낫지 않겠냐 말했다. 한편, 드레이코는, 무언 주문이야말로 기대 이상(Exceeds Expectations)과 특출함을 가르는 지점이라고 반복적으로 주장하며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신경 안 쓰는 줄 알았는데," 포터가 계획표를 수정하며 생각에 잠겼다.
"맞아," 그가 말했다. "근데 프라우드풋이 일 년 내내 귀찮게 하는 게 더 싫어."
포터가 콜드웰을 한 번 더 흘긋 봐서 드레이코는 식식댔다. "제발 그만 좀 봐 줄래? 솔직히, 포터, 네가 이 정도로 쑥맥인지 몰랐다. 마녀들이 한 번만 자려고 줄 서서 기다릴 줄 알았는데." 그 말에 포터가 새빨갛게 변했다.
"다 됐어," 드레이코가 수정한 목록을 포터에게 넘기며 말했다. "이제 가도 되지?"
포터는 아직 뭔가를 적고 있었다. "그럼 다음주에는 소환 마법을 하는 거야. 이미 잘하는 사람들은 무언 마법을 시도해 보는 걸로."
"그래. 좋아. 끝났지?"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드레이코는 짐을 싸기 시작했다.
"말포이," 포터가 그를 불렀다. 그는 멈추었다가, 망설이는 듯하더니, 말을 이었다. "혹시 전에…" 그가 말을 흐리며 드레이코를 응시했는데, 그 시선이 굉장히 당황스럽게 느껴졌다.
"내가 전에 뭐, 포터?" 그가 재촉했다.
포터가 고개를 저었다. "아냐. 잊어버려."
신경질이 나서, 드레이코는 어깨에 가방을 둘러메고 도서관 밖으로 성큼성큼 나갔다. 콜드웰은 대놓고 무시했다. 잠시 동안, 그는 포터가 하려던 말이 뭐였을지 궁금했지만 곧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처리해야 할 과제가 어마어마하게 많았고, 팬지가 줬던 부모님이 보내주신 초콜릿 트러플에 대한 보답으로 그녀의 마법약 에세이를 도와주기로 약속도 했었기 때문이다.
Chapter 6: vi.
Chapter Text
수요일 아침 식사 때 칼리두스가 날아들어와 아버지의 편지를 전달했다. 주말 동안 퀴디치 연습이 시작되었고, 곧 다가올 경기에 대한 흥분이 최고조에 달아 대연회장은 제법 활기 넘쳤다. 작년엔 퀴디치 경기가 금지됐었던만큼 학생들의 기대가 이렇게 큰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학교는 여름 내내 경기장을 재건하는 데 시간을 썼다. 6학년 때 대부분의 경기를 놓친 드레이코는, 자신이 곧 있을 슬리데린과 그리핀도르의 경기를 기대하는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어린 시절의 유치한 짓거리들엔 이제 미련이 없었음에도, 그의 작은 일부는 슬리데린이 오래된 숙적 그리핀도르에 이길지도 모른단 가능성에 들떠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버지의 편지를 펼쳐 본 드레이코는 거기 적힌 게 단 두 줄 뿐이란 사실에 놀랐다. 플루로 대화 좀 하자. 금요일 새벽 2시 휴게실. 그는 양피지를 응시했다. 그가 호그와트에 있을 때 아버지가 플루로 대화를 청한 횟수는 한 손에 꼽았고, 그건 전부 어둠의 마왕과 관련된 일 때문이었다. 어쩌면 그는 이르긴 해도 10월 5일에 있을 청문회 일로 대화가 필요한 건지도 몰랐다. 청문회와 관련해 드레이코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있는 걸까?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기는 한가? 있었다면 아버지의 변호사들이 진작 무언가 떠올려 냈을 것이 아닌가. 누군가 훔쳐보기 전에, 드레이코는 양피지를 구겨서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나중에 태워 버려야겠다고 생각하며, 그는 베이컨 조각을 조금 먹이고 칼리두스를 돌려 보냈다.
그날 오후엔 그리핀도르와 함께 듣는 마법약 연강이 있었다. 슬러그혼은 그들에게 폴리주스 마법약을 가르치고 있었는데, 다들 처음엔 신나 했지만 곧 엄청나게 해야 할 일이 많단 걸 알게 됐다. 드레이코는 자비니와 짝이었다. 그들은 침묵 속에 작업했다. 드레이코가 일주일 동안 끓인 풀잠자리를 확인하는 동안, 자비니가 바이콘의 뿔을 막자로 으깼다. 풀잠자리의 상태가 만족스러워 드레이코는 교과서를 봤다. 나무독뱀 가죽 3개. 그는 용가죽 장갑을 끼고 조심스럽게 칼로 마른 가죽을 벗겨냈다. 단단한 비늘이 벗겨지자 갈색의 속살이 드러났다. 그는 이전에도 나무독뱀 가죽을 써 본 적 있었는데도 어쩐지 그 모습을 보니 비위가 상했다. 대부분은 도마에 있었지만 마른 살점 일부가 칼날에 딸려 나와 대롱거렸다.
드레이코는 칼날을 갈 때가 됐는지 생각하며 손에 든 칼을 내려다보다 불현듯, 저택에서의 그날을, 그의 이모가 그레인저의 살갗에 칼을 깊숙이 박아 넣던 그 끔찍한 순간을 떠올렸다. 그는 절박하게 고개를 돌리고 싶었으나 감히 그러지 못했고, 그랬기에 그는 그 자리에 못 박힌 채 서서 고통에 몸부림치는 그레인저를 지켜봐야만 했다. 칼날은 너무나 쉽게, 마치 버터처럼 그녀의 피부를 썰어냈고, 그것은 금세 상처에서 흘러나오는 그레인저의 피로 온통 뒤덮여 보이지 않게 되었다. 드레이코는 다른 죽음을 먹는 자들이 고문하는 모습을 본 적 있었지만, 전부 마법에 의한 것이었다. 그 또한 소름이 끼쳤고, 그는 아직도 가끔 그걸 떠올리다 한밤중에 흐느끼곤 했지만, 실제로 피부에 남는 흉터를 볼 일은 많지 않았다. 그의 이모가 그레인저를 고문한 방식엔 특히 더 잔인한 면이 있었다.
주변은 학생들의 말소리와 느리게 끓는 풀잠자리 냄비의 소리, 그리고 나무 도마에 칼날이 부딪치는 소리로 소란스러웠음에도, 드레이코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마치 물 속에 머리를 처박은 기분이었다. 호흡을 들이마시려 애쓰며, 떨리는 손으로 그는 손에 든 칼을 내려다보았다. 나가야 했다. 지금 당장. 그는 곧장 문을 열고 뛰쳐나가는 상상을 했지만, 그랬다가는 나중에 설명하느라 곤란해지리란 사실을 알았다. 공황 상태는 누군가 지금 그의 상태를 눈치챌지도 모른단 불안과 뒤섞였다. 그는 시선을 끌어모으게 될 것이 두려웠다. 그리고 그는 신선한 공기가 절박했다;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으므로. 더 생각하지 않고, 그는 장갑을 벗어 옆으로 치워 버린 뒤, 검지와 중지 손가락 사이를 깊게 그었다. 순식간에 피가 솟구쳐 올라 칼날을 점점이 물들였다가 이내 타고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그걸 보면 욕지기가 치밀어 오르리라 생각했지만, 그는 오히려 비현실적인 해방감을 느꼈다.
"드레이코, 미친―" 블레이즈가 옆에서 욕설했다.
"교수님," 드레이코가 외쳤다. "교수님, 손가락을 베었습니다."
슬러그혼은 몸을 기울여 그레인저의 냄비를 살피고 있었다. 그가 화들짝 놀라 되물었다. "말포이 군?"
"손가락을 베었습니다, 교수님." 그가 피로 범벅이 된 손을 들어올리며 다시 말했다.
"세상에, 세상에나," 슬러그혼은 당황한 듯 보였다. 교실 전체가 드레이코를 돌아보고 있었지만, 그는 오직 슬러그혼에게 집중하며 진정 상태를 유지하려 애썼다.
"폼프리 부인께 가 봐야겠어요."
"오, 그래요, 당연히 가야지, 그런데 왜 장갑을 끼지 않았나? 이건 N.E.W.T. 수준 수업이라네, 말포이 군.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자네가 장갑 끼는 걸 잊었을 리가…"
하지만 드레이코는 듣고 있지 않았다. 그는 가방에 물건들을 쑤셔 넣고, 자비니에게 인사조차 하지 않은 채 교실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리핀도르 옆을 지나쳐 갈 때, 그는 비웃는 표정의 위즐리 옆에서 포터가 자신을 무감히 지켜보고 있는 걸 보았다.
"이런 일이 생기다니… 교장 선생님이 날 죽일 걸세," 복도를 지나 대연회장으로 향하는 계단을 오르며 그는 슬러그혼이 괴성을 지르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성문을 열자마자 얼굴을 때리는 찬바람을 깊이 들이마셨다. 잔악하고 정신이 나간 이모의 얼굴이 여전히 그에게 따라붙었으므로, 그는 주머니에 손을 깊게 찔러 넣고 바람을 맞으며 걸었다. 간단히 온열 마법을 걸 수도 있었지만, 기억 틈새로 몰아치는 추위가 그것들을 잊는 데 도움이 되는 듯했다. 그는 호수 주위를 정처없이 떠돌며 바람이 일으키는 거친 물결을 관찰했다. 성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로 수업이 끝났음을 알 수 있었다. 성 쪽을 보니, 몇몇 학생들이 뜰에 나와 해지기 전 시원한 공기를 즐기는 모습이 보였다. 해가 떨어지기 시작하고 모두가 저녁 식사를 하러 들어갔지만, 드레이코는 호숫가에 앉았다. 지면은 딱딱하고 차가웠기에 그는 비로소 온열 마법을 걸기로 했다. 이제 더이상 상념이 몰아치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성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그가 마음을 진정시켜 줄 서늘한 공기와 함께 별 아래서 잠드는 편이 안전할지, 누군가 알아채거나 신경쓰기나 할지 숙고할 무렵 그의 뒤로 누군가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말포이." 드레이코는 침음했다. 최악으로 자비니였다. 과거였다면 그는 화들짝 놀라 일어섰을 테지만, 그는 너무나 피곤했고, 신경을 곤두세우기에도 지쳐 있었다. 그는 옆에 앉는 자비니를 노려보았다.
"더럽게 춥네," 블레이즈가 불평했다. 그가 온열 마법 거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드레이코는 쳐다보지 않았다. "8시야. 넌 저녁 식사를 놓쳤어."
"날 찾아다녔니?" 드레이코는 조롱조로 말하려 했지만, 목소리는 고저 없이 나갔다. 모든 기력이 그에게서 빠져나간 것 같았다. 바람이 물살을 때릴 때, 그는 여전히 귀가 찢어질 듯한 이모의 깔깔거리는 웃음과 그레인저의 비명을 들을 수 있다고 맹세할 수 있었다. 몸서리가 쳐졌다.
"수업 때 뭐였어?"
"손가락을 베었어."
자비니가 코웃음 쳤다. "아니잖아. 집어치워. 장갑은 왜 안 낀 건데?"
"까먹었어." 드레이코는 모든 게 귀찮아졌다.
"그렇다 치고. 그럼 왜 기절할 것처럼 굴었는데?"
"얼마나 깊게 베었는지 못 봤어?" 그가 시험하듯 물었다. 실제로, 그는 하려던 것보다 깊게 손을 베었다. 하지만 폼프리에게 갈 생각은 없었다―손가락에서 느껴지는 둔하고 욱신거리는 통증은 그를 안심 시켰다. 그는 손을 들어 블레이즈에게 깊은 자상을 보여 주었다.
"뭘 어떻게 하면 그 사이를 벨 수가 있지? 나무독뱀을 손질하고 있었잖아."
드레이코는 급히 망토 안으로 손을 감췄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포이. 드레이코. 너 이상해, 친구. 전혀 너답지 않다고."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과연 그럴까?" 그 순간 자비니는 그의 무릎 위에 올라서 있었다. 드레이코는 밀어내려 했으나, 블레이즈가 그를 내리눌렀다. "내가 너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고, 정말? 난 네가 이 짓을 좋아하는 걸 알지." 그가 거칠게 엉덩이를 찧었다.
"나한테서 내려가," 드레이코가 이를 갈았다.
"뭐가 문젠데?" 블레이즈가 낮게 말하며 그의 얼굴을 살폈다. "넌 작년과는 달라졌어. 최악인 건, 한 번도 이랬던 적 없었단 거야."
"그만 좀 해줄래? 너 우리 어머니 같다."
블레이즈가 킬킬댔다. "네 걱정 할까 봐 걱정하는 거면, 그럴 일 없어. 그래도…" 그가 몸을 숙여 드레이코의 턱을 자신의 입술로 덧그리며 속삭였다. "최근에 재미를 많이 못 봤잖아. 우리가 나눴던 그 많은 즐거운 시간이 그립지 않아?"
"한 번이었어," 드레이코가 항변했다.
"침대에서는 한 번이었을지 몰라도, 난 다른 것들이 기억나는 것 같은데…" 자비니가 드레이코의 목에 입맞췄다.
순간 드레이코는 제정신을 되찾고 블레이즈를 거칠게 밀어냈다. "그만하라니까?" 그가 헉 소리를 냈다. "너야말로 뭐가 문젠데? 나 좀 내버려 둬."
자리에서 일어선 블레이즈가 그를 차갑게 내려다봤다.
"그냥 가," 목소리는 드레이코가 의도한 것보다 절박하게 들렸다. "넌 이해 못해―난―"
"나처럼 너랑 기꺼이 자 줄 의향이 남은 사람도 이제는 얼마 안 될걸," 자비니가 조용히 말했다. "한 명도 안 남아서 나한테 다시 기어 오지나 마라." 그 말과 함께, 그는 성으로 되돌아가 버렸다. 이제 너무 어두워져서 드레이코는 돌아가는 그의 인영을 거의 볼 수 없었다. 그는 한 시간은 더 호숫가에 앉아 있다가 비로소 성으로 되돌아갔다.
***
적어도 스터디 그룹은 지난주보다 더 조직적이었다. 거의 모든 5, 6, 7, 그리고 8학년 학생들이 참여했다. 대연회장은 너무 붐벼서 프라우드풋은 떠나기 전 래번클로 테이블까지 치워야 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소환 마법을 연습하려고 안달이었다. 포터는, 놀랍게도, 그들에게 무언 주문을 시도해 볼 것을 격려했다.
"아직 5학년일지라도," 그가 둘씩 짝짓고 있는 학생들에게 말했다, "무언 마법을 시도해 보는 건 아주 중요해. 오늘 끝나기 전까지 딱 5분이라도 투자해 보자."
"팁 좀 주실래요?" 드레이코가 모르는 그리핀도르 5학년생이 물었다.
"어―그래." 드레이코는 포터가 그레인저를 흘긋 보자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는 걸 봤다. "무언 마법 말이지. 그걸 하려면… 제대로 집중해야 해. 그리고, 어, 뭘 하려고 했는지 생각해."
드레이코가 비웃었다. 그는 수업 시간에 봐서 포터가 무언 마법에 그다지 능숙하지 않단 걸 알고 있었다. 포터 옆에 팔짱을 끼고 서서, 드레이코는 조용히 말했다. "먼저 마음을 비워야 해."
포터는 놀라서 그를 돌아보았다―그가 학생들 전체 앞에서 말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가 계속해서 말했다. "처음엔 더 오래 걸릴 거야. 마음을 비워야 해. 그리고 주문을 계속 반복하는 거야―당연하지만, 무언으로. 상상해야 해. 머릿속으로 완드에서 주문이 튀어나오는 모습을 그려 봐. 뭔가를 소환하려 한다면, 소환하려는 물건이 날아오는 모습을 그리는 거지. 자신감을 가져야 해. 가장 중요한 건 연습이고." 그가 아슬아슬하게 포터를 눈짓하곤 말했다. "자, 포터, 날 공격해 봐."
"뭐?" 학생들 사이에 웅성거림이 일었다.
드레이코가 도발했다. "어서. 저주 걸라는 게 아냐. 그냥 공격하라고. 원한다면 소리 내서 해도 돼."
그가 포터로부터 몇 걸음 떨어져 완드를 꺼내 들었다.
"알겠어 그럼." 포터가 어깨를 펴고, 잠시 멈췄다가 주문을 걸었다, "티틸란도!"
드레이코가 허공에 완드를 휘두르자 포터의 주문이 방패 마법에 맞고 튕겨져 나왔다. 활짝 웃는 팬지를 필두로 한 슬리데린으로부터 박수갈채가 쏟아져 나왔다. 그는 눈을 굴렸다. "중요한 건," 그가 말했다, "상대방이 알아채기 전에 반응할 수 있다는 거야. 그리고 훨씬 빠르게 마법을 시전할 수 있지. 하지만 아주 많이 연습해야 해. 잘 아는 주문 하나를 골라서 아무 때나 무언으로 쓸 수 있게 될 때까지 연습해. 그리고 다음 걸로 넘어가. 연습이 아주 많이 필요할 거야."
"그럼 연습 시작하자," 포터가 말했다. "기억해, 소환 마법이야. 그리고 잘 된다 싶으면 무언도 시도해 봐." 그의 뺨은 분홍빛이었는데, 드레이코는 어쩌면 그가 추종자들 앞에서 망신을 당해 부끄러워하는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우스웠다. 학생들은 대연회장에 널려 있는 다양한 물건들―물잔, 접시, 식기들―을 소환하는 연습을 했고, 몇몇은 소멸 마법도 연습했다. 드레이코와 포터는 그들 사이를 돌면서 지도했다. 그는 특히 무언 마법에 실패한 그리핀도르 학생들을 지도할 기회가 있을 때 희열을 느꼈다. 금세 한 시간이 갔고, 포터가 소환 마법을 연습할 것을 당부하며 모두를 해산시켰다.
포터가 다가왔을 때 드레이코는 슬리데린 테이블에서 소지품을 챙기고 있었다. "말포이. 무언 마법 가르쳐 주라."
"뭐? 싫어." 드레이코가 학을 뗐다.
"왜 이래. 유치하게 굴지 말고."
"부탁하는 태도가 아주 대단하셔," 드레이코가 경악하여 말했다. 그는 포터를 등지고 그를 기다리던 팬지와 다프네에게 가 합류했다.
"제발? 들어 봐, 나도 너 가르쳐 줄게. 주문이라든가―"
"포터, 싫다고 했어. 이미 다른 할 일도 산더미고 충격일지도 모르겠는데, 세상 사람 모두가 너랑 손장난이나 하면서 자유 시간을 보내고 싶어하지는 않아."
"돈 줄게," 그가 말했다. "원하는 만큼."
드레이코가 어깨 너머로 그를 흘겼다. "젠장, 포터, 네 빌어먹을 돈 필요 없어. 그냥 날 내버려 둬."
그는 팬지의 팔을 붙잡고 대연회장으로 질질 끌고 나갔다. 다프네가 바로 뒤따랐다.
"저게 다 무슨 소리래?" 팬지가 당황해 물었다.
"미친 포터," 그가 이를 갈았다. "재판에서 있었던 일로 내가 자기한테 빚졌다고 생각하는 건지 뭔지―어쨌거나 난 처벌 받지 않았을 거야, 난 그때 미성년자였고… 아무튼. 어떻게 저렇게 오만하지? 나한테 와서는 무언 마법을 가르쳐 달란다."
"다른 애들은 다 가르쳐 주고 있잖아?" 다프네가 옆에서 물었다.
"선택권이 없잖아," 그가 말했다. "이건 달라. 어쩌다 그 자식이 자기가 사람들을 멋대로 부릴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게 된 건지 모르겠네. 위대한 포터, 아마도 일평생 누군가한테 '안 돼'라는 말은 들어본 적 없겠지. 게다가 뭐라고 했는지 알아? 나한테 돈을 주겠대."
팬지가 고개를 뒤로 젖히고 깔깔 웃었다. "돈을 준다고? 뭐, 시간 당 1갈레온? 사업을 해도 되겠는데, 드레이코. 진로 계획 나왔다 야."
"당연히 안 한다고 했어," 그가 잘라 말했다. "잘 들어, 그 자식은 내가 자기한테 빚을 졌다고 생각해. 파렴치한 놈, 날 좀 내버려 뒀으면. 그 놈이 날 스토킹해댄 게 대체 몇 년 째야? 질려 죽겠다."
그들은 슬리데린 휴게실에 도착했고, 위장이 꼬여오는 감각에 드레이코는 몇 시간 뒤 아버지와 플루로 대화해야 한다는 사실을 상기했다. 그는 팬지와 다프네에게 잘 자라는 인사를 하고, 두통이 있는 척하며 기숙사로 올라갔다. 잠들기에는 이른 시각이었지만―그는 대개 자정까지는 깨어 있는 편이었다―내일도 수업이 많았고, 아버지와 대화하고 나서 잘 시간이 충분할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그는 코로 숨을 들이마시고 입으로 내뱉으며 안정을 취하고자 했다. 이 방법은 보통 최고조에 달한 불안을 경감하는 데 도움이 되곤 했지만, 잠에 들 수는 없었다. 밤이 깊어지고, 그는 노트와 자비니, 고일이 기숙사로 들어와 파자마로 갈아입은 뒤 각자 침대로 들어가는 소리를 들었다. 마침내, 다시 고요해졌다.
드레이코는 손목시계를 확인했다―1시였다. 째깍이는 분침을 볼수록 그는 초조해졌다. 그는 아버지와의 플루 면담이 정말 싫었다. 그는 앞선 몇 시간을 약속 시간에 휴게실이 과연 비어 있을지, 만약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걱정하며 보냈다. 만약 누군가에게 들킨다면 어떻게 해야 하지? 그리고 아버지가 이번엔 또 뭘 원하시는 걸까? 성년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일부는 여전히 아버지가 두려웠다. 아버지와는 복잡한 관계가 있었다―과거에 그는 아버지를 동경했고, 오래도록 아버지같은 사람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왔지만, 그들은 결코 친밀하지는 않았다. 가끔 그는 다른 사람들은 아버지와 어떤 관계일지 궁금해했다. 그들도 아버지와 있을 때 대화거리가 부족해진다거나, 불편한 감정이 든다거나 하는 일이 있을까? 혹은 아버지께 인정 받기 위한 온갖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때마다 씁쓸한 부아를 삼켜야 했을까. 이제는 아버지의 미심쩍은 도덕성에 대한 의문도 있었다. 그는 더이상 아버지의 신념이 어디에 있는지 확신할 수 없었지만, 그에게 온전히 동의할 수 없다는 생각을 갖기 시작했다.
2시 5분 전, 드레이코는 커튼을 젖히고 조용히 침대에서 빠져나왔다. 기숙사 방은 섬뜩하리만치 고요했다. 그는 난간을 꽉 붙잡고 계단을 내려와, 휴게실이 텅 빈 것을 보고 안심했다. 그가 안락의자를 끌어 와 자리에 앉자마자 벽난로에 아버지의 얼굴이 나타났다. 플루로 아버지와 대화한 것도 벌써 여러 번이었지만, 그 광경은 언제나 그를 긴장하게 했다―오늘 밤은 아버지의 모습 때문에 특히 더했다. 그는 면도를 하지 않았고, 볼이 푹 꺼져 있었다. 물론 여름내 아버지의 체중이 줄었단 건 알았지만 드레이코는 여태 그가 이렇게까지 앙상한 모습을 본 기억이 없었다.
"드레이코," 그가 부드럽게 말했다. "혼자 있는 게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휴게실엔 아무도 없어요."
"좋다." 아버지는 뭔가를 재 보듯 잠시 침묵하다 말을 꺼냈다. "N.E.W.T. 준비는 하고 있냐?"
"네."
"무슨 수업을 듣는다고 했지? 변환 마법이랑…" 그가 말을 흐렸다.
"변환 마법, 일반 마법, 방어술, 마법약, 약초학, 고대 룬 문자, 숫자점이요." 그가 덤덤히 나열했다. 그는 빨리 본론으로 들어가라며 아버지를 다그치고 싶었다. 그는 여름이 시작된 이래 아버지와 가장 길게 대화하는 중이었고, 그 압박감은 끔찍할 정도였다.
"그래… 잘 했다." 아버지가 목을 가다듬고는 말했다. "자, 드레이코. 다소 곤란한 문제가 있어 상의가 필요하구나. 알다시피 내 다음 청문회가 10월 5일에 있다. 일이… 잘 풀리지 않고 있어."
드레이코가 앞으로 몸을 기울였다.
"보자, 드레이코… 사실대로 말하겠다. 종신형이 아니더라도 아즈카반에서 최소 몇 년은 보내야 할 것 같구나. 네 어머니가 얼마나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게 될지 상상이 되겠지."
아버지가 말을 잇지 않자 잠시 뒤 드레이코가 물었다. "변호사들은 뭐라고 하던가요? 뭔가 할 수 있는 건 없대요? 분명 그들이 할 수 있는 게―"
"됐다," 아버지가 일갈했다. 비록 그가 꾀죄죄하고 헝클어진 데다 머리칼은 축 처진 제법 한심해 보이는 남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드레이코는 일시에 말하길 멈췄다. 내면에 남아 있던 말 잘 듣는 소년의 자아가 그를 물러서게 했다. "나한테 그 사람들을 계속 고용할 돈이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게냐? 이 망할 소송 비용에 내 투자금은 물론이요, 네 어머니의 자산까지 죄다 털렸다."
"그래서 제 계좌에서 돈을 인출해가신 건가요?" 드레이코가 물었다. 그는 아버지를 지나치게 몰아붙이고 싶지 않았지만, 궁금증을 어쩔 수 없었다.
"음―그건 아니다." 그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건 다른 사업 때문이었어. 웬만하면 너 혼자만 알고 있거라. 요는 네 어머니와 난 네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드레이코. 상황이 매우 좋지 않아. 지금쯤 다른 이들은 대부분 사법 거래에 들어갔을 텐데, 물론 말도 안 되는 소리들을 하겠지―임페리우스 저주에 걸려 있었다고 한다거나, 남 탓을 한다거나 하면서 말이야."
"위즌가모트가 그 말을 믿을까요?" 드레이코가 흥분해 물었다.
"위즌가모트가 믿을지 안 믿을지 내가 어찌 알겠냐?" 아버지가 잘라 말했다. "날 매달 밧줄 정도야 차고 넘칠 텐데 말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죠?" 그는 불명확하게 웅얼거렸다.
아버지가 한숨을 쉬었다. "우선은, 네가 내 대신 사업 계약을 좀 해 줘야겠다."
"사업 계약이요?" 그간 아버지가 사업과 관련해 그에게 뭔가 믿고 맏긴 적은 별로 없었다. 가끔 사업 미팅에 따라가도 된다는 허락을 받긴 했지만, 아버지가 동료들과 그가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복잡한 포트폴리오와 협상안들에 대해 논의하며 만취해 가는 동안 그의 존재는 빠르게 잊혀지곤 했다. 그가 주워들은 거라곤 그 대부분이 몹시 불법적인 일이란 것뿐이었다.
"그래. 2주 뒤 다음번 호그스미드 방문일이 있지. 더비시 앤 뱅스에 가서 내 동업자 중 한 명을 만나 주었으면 한다―로슈포르라는 사람인데, 프랑스에서 방문해 여관에 머무르고 있지. 그자가 네게 꾸러미를 하나 줄 게야. 저택에 손님을 받는 건 금지돼 있지만, 너라면 크리스마스를 맞아 잠시 방문할 수 있겠지. 그러니 그때까지 꾸러미를 잘 보관하고 있거라. 안전히. 할 수 있겠냐?"
"네. 하지만 그냥 칼리두스 편으로 보내면 안 되는 이유가 있나요?"
"우리 우편물은 마법부 감시 하에 있다." 아버지가 표정을 굳혔다. "플루 네트워크 또한 감시당하고 있을 게 분명해. 그래서 내가―아니다, 신경 쓰지 마라."
"아버지? 플루가 감시당하고 있다고요?" 드레이코가 놀라서 몸을 세워 앉았다. "만약 들킨다면, 만약 의심을 산다면―"
"집중하거라, 드레이코," 그가 꾸짖었다. "잘 들어. 호그스미드 방문 주말에, 더비시 앤 뱅스에서 로슈포르를 만나거라. 보자마자 누군지 알 게다. 토요일 정오쯤 그곳을 방문하도록. 호그와트로 꾸러미를 가져와서, 안전하게 보관해라. 알아들었냐?"
"네, 이해했어요, 그런데 마법부가 저도 추적하고 있으면 어쩌죠?"
"그럴 지도 모르지. 그래서 더비시와 뱅스에서 그자를 만나라는 거다. 은밀히 하도록. 친구들한테는 새 장갑이나 뭐 그런 걸 사야 한다고 말해 두거라. 그리고 말인데…" 아버지는 짧게 기침하더니 말을 이었다. "당장 예산이 조금 빠듯하구나. 네 계좌에서 추가로 인출해야 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려면 네 승인이 필요할 게야. 생활비 외 지출은 뭐든 자제하거라. 너도 이해하리라 믿는다. 네 겨울 학비까지는 댈 수 있을 것 같지만 어쩌면 그조차… 어쨌든… 이 일이 해결될 때까진 소비를 신경 쓰거라. 졸업 이후에 네 자립을 위해 얼마나 지원해 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어떻게든 될 게다."
벽난로 너머에서 커다란 쾅 소리가 들려와 드레이코는 화들짝 놀랐다. 아버지가 어깨 너머를 돌아보더니 그를 똑바로 봤다. "드레이코, 이만 가 봐야겠다. 시킨 대로 하거라. 그리고 꾸러미는 절대 열지 마라. 짧게 편지하마."
그 말과 함께, 아버지의 얼굴이 사라졌다. 벽난로에는 마치 조금 전 루시우스 말포이의 얼굴이 그곳에 있지 않았다는 듯 불꽃만 낮게 타닥일 뿐이었다. 모두 한낱 꿈이었을지도 모른다. 드레이코는 이대로 침대로 돌아가, 아침에 일어나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셈 치고 싶은 욕구를 강하게 느꼈다. 끔찍한 데자뷰가 느껴졌다. 그가 마지막으로 호그와트에 물건을 숨겨 들여오려고 했을 때, 그 일은 재앙과 같은 결말을 맞았다. 하지만 다른 선택지는 아버지의 말을 무시하는 것뿐이었다. 아버지의 영향력이 상당히 줄어들었음을 고려한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겠지만, 조금 전 대화를 통해 그는 아버지의 상황이 생각만큼 무력하지는 않다고 느꼈다. 동료가 아예 없는 것도 아닌 듯했다. 비록 그들이 진짜 동료인지, 아니면 말포이 가문의 마지막 재산을 노리는 맹수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말이다. 더해서, 그가 반입해야 할 꾸러미에 대한 의문도 물론 있었다. 그는 그것이 무언가 불법적인 것일 거라고, 어쩌면 이 로슈포르란 사람이 어디선가 입수한 위험한 물건이지 않을까 추측했다. 하지만 정체가 뭘까? 그 물건이 아버지가 아즈카반을 피해 도망치는 데 어떻게 도움이 된다는 걸까? 그리고 더 중요한 건, 마법부가 그들의 플루 대화를 감시할 수 없을 것이라 아버지가 그렇게 확신할 수 있었던 이유는 대체 뭐였을까?
잠들기에는 지나치게 불안해진 나머지, 드레이코는 등이 뻣뻣해질 때까지 불가에 앉아 있었다. 손목시계를 보니 5시가 되어 있었다. 몹시 기진맥진해져서, 그는 다른 이들이 깨기 전에 기숙사 방으로 돌아갔다. 다행스럽게도 아직 모두 잠들어 있었다. 그는 잠시 문간에 멈춰 서 밤새 숙면을 방해받지 않은―아니면 적어도, 정신 나간 아버지의 괴상한 요구에 시달리지 않는 밤을 보낸 이들을 부러워했다. 처음은 아니었지만, 그는 다시금 삶으로부터 도망치고 싶다는, 더이상 드레이코 말포이가 아닌 평범한 가족의 특별할 것 없는 일원으로 태어나 여느 사람과 다르지 않은 인생을 누리고 싶다는 간절한 욕망을 떠올렸다. 하지만 아버지가 듣는다면 분명 꾸짖었을 것처럼, 일어나지도 않을 일을 소망하는 건 멍청한 짓이었다. 따라서 그는 곧 망상을 털어 버리고 또 하루를 보낼 준비를 시작했다.
Chapter 7: vii.
Chapter Text
드레이코는 순식간에 과제에 파묻혔다. 델라쿠르는 여전히 무자비했다. 그녀는 조만간 쪽지 시험을 보겠다며 학생들을 위협했고, 그게 지필일지 수행일지 둘 다일지 여부는 알 방도가 없었다. 그녀는 학생들의 지팡이 움직임에 대해 매우 엄격했는데, 그들이 인간 변환 마법을 연습하는 동안 반복하고 또 반복해서 지팡이를 쥐는 올바른 방법에 대해 강조했다. 세부적인 디테일에 대한 그녀의 강박적 집착은 거의 짜증스러울 정도였으나, 드레이코는 그녀의 지도 아래 자신의 주문 실력이 향상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한편, 스프라우트는 학생들이 각자 튀어오르는 구근을 돌보게 했는데, 물을 주려면 격주로 저녁마다 온실을 방문해야 했다. 프라우드풋은 수업 시간 대부분을 실습으로 구성했지만, 도서관에서 책 여러 권을 찾아 봐야 하는 복잡한 이론 에세이를 과제로 내 줬다. 드레이코는 너무 많은 N.E.W.T.를 듣기로 한 스스로의 결정에 대해 한 번 이상 저주했지만―그가 알기로 일곱 과목을 수강하는 건 그를 제외하고는 그레인저가 유일했다―그는 할 수 있는 모든 걸 해야만 했다.
호그스미드 주말이 가까워지자, 드레이코는 평소보다 집중이 안 됐다. 교과서의 지문을 읽다가도 순식간에 마음이 붕 떠서, 발생할 수 있는 온갖 최악의 시나리오와 그것들이 부모님과 그의 앞날에 미칠 악영향에 대해 번뇌하는 것이다. 그는 아버지의 청문회가 걱정스러웠다. 예언자 일보는 아버지의 과거와 혐의, 변호사들의 변론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는 기사를 냈다. 그는 진작 구독을 취소한 지 오래였고, 팬지 역시 더는 아침 식사 시간에 신문을 읽지 않았다. 아마도 그를 위해서였을 것이다. 노트는 늘 그렇듯 열 받게도 장문의 기사들을 읽어 주더니 좋을 대로 평론을 덧붙여 댔다. 드레이코는 아버지의 재판이 다가와 제 신경이 곤두서 있음을 알았다. 어느 맑은 화요일 오후 자유 시간에, 노트는 뜰에 모여 앉은 이들에게 자신의 비평을 들려 주려고 했다.
"기사에는 네 아버지가 불가리아에서 수상한 거래를 했다는데, 드레이코," 그가 느릿하게 말했다. "불법 아티팩트 관련이라네. 상황이 별로 좋아 보이진 않지? 아즈카반 수감을 면하려거든 자산 대부분을 털어야 할 거라는데."
"네 아버지나 동정하지 그래," 드레이코가 날카롭게 말했다. "재판이 있기 전에도 같이 문지를 시클 두 닢조차 갖지 못하셨으니."
얼굴이 새빨개진 노트가 반박하기 위해 입을 연 순간, 그들은 누군가 "말포이!"하고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돌아본 드레이코는 포터가 입구 쪽에 서 있는 모습을 보고 눈을 부릅떴다.
"말포이," 포터가 말했다. "이쪽으로 와 봐. 이번 주 수업에 대해 의논할 게 있어."
"가 봐, 드레이코. 소환당하고 있잖냐." 노트가 히죽거렸다.
드레이코는 노트를 흘겨보며 가방을 어깨에 둘러메고, 포터에게로 향했다. "난 개가 아니야," 그가 따졌다. "네 멋대로 오라 가라 할 권리는 없어."
"너랑 단둘이 얘기하고 싶어서," 포터가 말했다. "자." 그가 돌기둥을 따라 듣는 귀가 없는 곳까지 드레이코를 인도했다.
"뭔데?"
"있지," 포터가 낮게 말했다. "무언 마법 말인데―"
드레이코가 과장되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만 좀 해줄래? 싫다고 했어."
"패트로누스 부르는 법 가르쳐 줄게."
"됐어, 포터."
"왜 이래."
"그레인저한테 물어 봐."
"걘…" 포터가 눈에 힘을 줬다. "우리 나이에 무언으로 방패 마법을 그렇게 할 줄 아는 사람은 처음 봤어."
"아부해봤자 소용 없어. 네가 무언 방패 마법을 할 줄 알아야 할 필요도 없잖아? 내가 아직 모르는 신흥 어둠의 마법사라도 등장하셨나?"
"말포이. 제발?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가르쳐 줄게. 아니면 돈 줄게."
무언가 불편한 감각이 드레이코의 뱃속으로부터 꿈틀거렸다. 그는 아버지가 재정에 대해 언급했던 걸 떠올렸다. 듣기론 그의 학비를 감당하기조차 빠듯한 듯했다. 지난 몇 년 동안, 드레이코는 호그와트를 졸업한 이후의 삶에 대해 그려 왔다. 어딘가에 방을 구해서 독립하고, 어쩌면 마법부에 직장을 구하기 전까지 여행을 다닐 수도 있었다. 그는 또한 대학원 공부 역시 고민했는데, 그러려면 약간의 돈이 필요할 터였다. 비명을 질러 대는 의심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그가 말했다. "좋아. 매주 화요일 밤 9시에 만나. 일주일에 한 번. 한 시간에 20갈레온¹이야."
포터가 항의했다. "20갈레온? 너 미쳤냐?"
드레이코는 어깨를 으쓱했다. "싫으면 말든가."
"좋아. 화요일이야. 오늘밤부터 시작해. 현관 홀에서 만나자."
"늘 청중이 필요하신 모양이지, 포터?" 그가 비웃었다.
"거기서 연습을 하자는 게 아냐," 포터가 반박했다. "그냥 거기서 만나. 아무한테도 말하진 말고."
"그럼 내가 한 시간 동안 어디로 사라졌는지 궁금해할 애들한텐 뭐라고 말해야 하는데?" 그가 물었다.
"그냥 둘러대. 징계가 있다고 하든가." 포터가 그를 밀치고 지나가 성 안으로 사라졌다. 드레이코는 성문을 응시하며 그 자리에 잠시 서 있었다. 정신이 나갔던 것이 분명했다. 이건 다 미친 짓이었다. 위대한 포터에게 무언 마법을 가르쳐 주고자 앞다투어 나설 학생들이, 심지어는 교직원까지도, 널려 있을 게 분명했다. 게다가 그들은 학창 시절 내내 앙숙이었다. 포터가, 어쩌면 그 자신과 같이, 이제는 과거의 경쟁 심리도 한낱 유치한 짓거리였다 여기게 됐을지라도 그들 사이에 거의 십 년의 적대감이 존재했단 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었다. 실은 어둠의 군주와의 마지막 전투에서 포터가 심각한 뇌 손상을 입은 걸지도 몰랐다. 아니면 마법부에서 포터에게 그를 감시하라고 시켰다던가; 실제로 그랬던 적도 있었다. 드레이코는 자신이 조금 전 끔찍한 실수를 저지른 것 같다는 후회가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매주 20갈레온이라니… 물론 그의 기준엔 한참 미치지 못했고, 작년이었다면 고작 20갈레온 따위에 명예를 팔라는 제안을 한 그 자식이 누구든 그는 저주부터 날렸을 것이다. 그러나 상황은 변했다. 어쩌면 겨울 학비의 일부를 대든가 해서 아버지의 부담을 줄여 드리는 것처럼 부모님께 금전적으로 도움을 드릴 수도 있을 것이다. 동시에 드레이코의 마음 한켠에서는 그 돈으로 도망칠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이 스멀거렸다. 여행을 떠나거나, 어딘가 먼 곳에서 마법을 더 공부하거나… 아니면 영원히 떠나 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생각들이 떠오를 때면 그는 한 줄기 죄책감을 느꼈지만, 아버지가 드리운 길다란 그림자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운 인생을 살아가고 싶다는 욕망을 부인할 순 없었다. 물론 어머니 생각도 해야 했지만, 선택은 그녀가 했지 않던가?
저녁을 먹고, 그는 팬지와 슬리데린 팀 연습을 구경하기 위해 퀴디치 경기장에 갔다. 주장인 하퍼가 달리기 훈련을 시키고 있었다. 드레이코가 온열 마법을 걸었고, 그들은 관중석에 나란히 앉아 빠르게 지나쳐 가는 선수들의 모습을 지켜봤다.
"네가 경기할 수 없다니 아직도 불공평해," 팬지가 말했다. "네가 수색꾼으로 뛴다면 올해 슬리데린은 정말로 승산이 있었을 텐데. 떠나기 전에 우리가 우승하는 걸 보고 싶다고."
드레이코는 어깨를 으쓱했다. "어차피 너무 바쁜걸."
"아, 맞네, 너무 바쁘시지," 그녀가 웃었다, "너무 바쁘셔서 화요일 저녁에 연습 구경이나 하고 있고."
"나도 휴식이 필요해," 그가 약하게 항변했다. "아버지 때문에 미칠 지경이라고."
"왜? 무슨 일인데?"
드레이코는 망설였지만, 팬지에게 모든 걸 말할 순 없다고 결정했었다. 의지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자 날카롭게 찔러 오는 외로움이 느껴졌다. 정말 지키고 싶지 않은 비밀을 억지로 지켜야 했던 6학년 때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돈 때문에," 그가 말했다. 그건 일부 사실이었다. "소송비 때문에 돌아 버리려 하셔. 게다가 학교로 온 이후로 어머니께는 소식을 듣지 못해서, 어떻게 지내시는지 전혀 모르고."
"우리 부모님은 연루되시지 않아서 다행이야," 그녀가 곰곰히 생각하다 말했다. "너도 알겠지만, 물론… 그 분들도 거기 동조하셨을 거라곤 생각해. 난 아직도 만약에… 글쎄, 아니다."
"뭔데?"
"쉽지 않은 일이잖아, 안 그래? 무언가 옳다고 믿으며 자라 왔는데, 이런 일이 벌어졌어. 이제 무슨 생각을 해야 좋을지 모르겠고."
"그럼 넌 여전히 그걸 지지해? 반-머글 정서 말이야."
"잘 모르겠어. 너무 혼란스러워. 단지 우리 부모님이 그걸 겉으로 표출하고 다니시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생각해. 올해는 성적에만 집중하고 문제는 일으키지 않으려고."
드레이코가 생각에 잠겨 흠 소리를 냈다. "인턴십은 어떤데?"
"괜찮아," 그녀가 한숨을 쉬었다. "블레이즈는 잘난 척 해대. 올해 왠지 모르게 더 거만해진 것 같아. 슬러그혼은… 모르겠어, 날 별로 안 좋아하는 것 같아. 슬러그 클럽 애들에 비하면 난 아무것도 아니겠지. 그래도 많이 배우고 있어." 그녀가 그를 마주보았다. "넌 어떤데? 포터가 여전히 열 받게 해?"
"포터…" 드레이코가 숨을 크게 내쉬었다. 그들의 계약은 비밀로 하기로 되어 있었지만, 그는 다른 누구도 아닌 포터에게 명령을 받고 싶지 않았다. "아까 오후에 걔가 날 찾아왔던 거 알아? 날더러 자기한테 무언 마법을 가르쳐 달란다."
"아직도 그 얘기야?" 그녀가 코웃음 쳤다. "세상에, 걔가 슬리데린한테 도움을 청하는 날이 올 줄이야. 걔는 자기가 이 학교의 누구보다도 뛰어난 마법사라고 생각하잖아―선생들을 포함해서 말이야."
"글쎄, 자기가 무언 주문에 어려움이 있어서 내가 가르쳐 줬으면 한다고 하더라. 그래서 알겠다고 했어."
"알겠다고 했다고."
"그래." 그가 그녀의 눈을 피했다. "시간 당 20갈레온씩 받기로 했어."
"진심이야? 어째서? 너한테 포터의 돈이 필요할 일이 뭐가 있는데?"
그가 어깨를 으쓱했다. "최근에 아버지가 말씀하시는 걸 보니까, 더 이상 금전적인 지원을 기대해서는 안 될 것 같더라."
"드레이코," 그녀가 항변했다. "포터라고. 분명 다른 속셈이 있을 거야. 왜 그냥 그레인저한테 부탁하지 않고? 호그와트 전체에 그 자식을 가르칠 수 있는 게 아무도 없단 말을 할 셈은 아니겠지. 왜 하필 넌데?"
"위대하신 해리 포터 경만큼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난 무언 마법에 꽤 자신이 있어." 그가 건조히 말했다.
"아, 관둬, 무슨 말 하는지 알잖아. 정신 나갔어? 네 부모님이 뭐라고 하실지 상상 안 돼? 포터는 발가락을 찌르고 그게 네 잘못인 척 하기만 하면 돼. 그럼 넌 아즈카반에 갇히게 될 걸."
드레이코는 말없이 하퍼가 답 없는 슬리데린 몰이꾼들에게 소리를 지르는 모습을 봤다. 둘 중 한 명이 다른 하나에게 블러저를 날려 보낸 바람에 굉장한 말싸움이 벌어졌고, 다른 선수들이 제발 그만두라며 그들을 말리고 있었다.
"드레이코," 팬지가 불안한 듯 말했다. "내 말 안 듣고 있지. 네가 실수일 거란 걸 알지만 어쨌든 저지를 생각일 때 짓는 표정인데, 그거."
"괜찮아. 괜찮을 거야." 손목시계를 보더니 불쑥 일어난 그에 팬지가 당황했다. "일어나, 가 봐야 해. 9시에 현관 홀에서 만나기로 했어."
"오늘 밤? 오늘 밤에 걜 만난다고? 대체 뭐 하자는 건데? 언제부터 그렇게 무모했다고?"
"팬지," 관중석에서 내려가며 그가 쓰게 말했다. "난 죽음을 먹는 자였어. 어쩌면 이게 내가 저지른 일들 중 가장 덜 무모한 일일지도 몰라."
그녀는 성으로 가는 길 내내 잔소리를 해 댔고, 드레이코는 그녀에게 포터와의 계약에 대해 말한 걸 금세 후회하게 됐다. 그녀는 포터가 주는 돈 두 배를 그에게 주겠다고 제안했고―내심, 드레이코는 그녀에게 그만한 거액을 운용할 권한이 없으리라고 생각했다―이중문을 열고 들어가는 동안에는 그의 부모님께 편지를 쓰겠다며 그를 협박했다.
"못할걸," 그가 단조롭게 말했다. "그러면 내가 너희 부모님께 편지를 쓸 테니깐. 지난 여름 프랑스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들으면 네 어머니께서 퍽이나 좋아하시겠다."
"좋아," 그녀가 내뱉었다. "하지만 네가 끔찍한 실수를 저지르고 있단 건 알아두길 바라. 넌 항상 네가 뭔가 잘못된 일을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을 내가 알게 하면서, 거기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게 만들어." 그 말과 함께 그녀는 자리를 박차고 떠났다. 포터를 지나쳐 가면서는 무시무시한 눈으로 그를 쏘아보기도 했다.
"안녕," 포터가 드레이코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어깨 너머로 팬지가 돌아가는 모습을 보며, 그가 물었다. "쟤 괜찮은 거야?"
"괜찮아. 어디로 갈 건데?"
"7층."
포터가 그를 이끌고 성 안을 누볐다. 가는 길에 마주친 건 오직 복도를 거니는 몇몇 학생들뿐이었지만, 그들이 지나갈 때 빤히 응시하는 시선을 받아야 했다. 드레이코는 그들의 꼴이 퍽 우스우리라 짐작했다―마법 세계의 구원자, 포터와 전 죽음을 먹는 자, 자신이라니. 그는 그들이 이런 식으로 매주 만난다면 사람들이 뭐라고 떠들어 댈지나, 그 말이 아버지 귀에 들어가면 어떻게 될지에 대해선 미처 고려해 보지 못했다.
"어디로 가는 거지, 포터?" 그가 날 선 말투로 물었다.
"필요의 방."
드레이코는 심장이 잠시 멈추는 듯했다. "아직 작동해?"
"몰라." 그들은 7층 복도를 서둘러 내려갔다. 위를 올려다본 드레이코의 눈에 정신 나간 바르나바스의 태피스트리가 보였다. 욕지기가 솟았다. 드레이코는 포터가 입구가 나타나곤 했던 텅 빈 벽을 살펴보는 동안 태피스트리 옆에서 기다렸다. 포터가 벽 앞을 세 번 거닐었고, 당연하다는 듯 매끈한 문이 나타났다. 그는 씩 웃으며 황동 손잡이를 잡고 방 안으로 들어섰다.
"멋진데," 그가 말했다. "보아하니 방은 멀쩡한 것 같네."
드레이코는 억지로 발을 떼 보려 했으나 그것들은 마치 의지를 가진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한 번 더, 그는 깊은 물 속에 잠긴 듯 끔찍한 감각을 느꼈다―숨쉬기가 어려웠고, 모든 소리는 멀게 들렸다. 포터가 무언가 말하고 있었지만 그는 들을 수 없었다. 심장이 거칠게 뛰었다. 모든 기억이 너무나 생생했다―타는 살갗의 냄새, 모든 걸 삼켜 버리려 이글거리는 불꽃, 얼굴에 닿는 끔찍한 열기까지도.
"말포이." 포터가 그를 돌아보고 있었다.
"됐어, 가자," 드레이코가 그를 지나쳐 방 안으로 들어서며 내뱉듯 말했다. 그는 포터가 연습을 위한 빈 공간을 요청했으리라고 생각했다―벽에 나란히 걸린 몇 개의 횃불을 제외하고는 방은 텅 비어 있었다.
"괜찮아?" 뒤따라 들어오며 포터가 물었다. 그가 뒤에서 문을 닫자 드레이코는 화들짝 놀랐다.
"괜찮아."
"네가… 신경 쓸지도 모른단 사실을 잊었어."
"오, 그래, 당연히 잊으셨겠지," 그가 화내며 말했다. "크레이브의 죽음이 네겐 아무것도 아니었을 테니까."
포터가 얼굴을 찡그렸다. "물론 그렇지 않아. 누구도 죽길 바라진 않았어."
"고결하시기도 해라."
"다른 데로 가자."
"어딜, 포터?" 그가 물었다. "갈 만한 데가 여기뿐이잖아. 그리고 다음 번엔 여기서 만나. 네놈이랑 성을 종횡무진하고 다니지 않고서도 난 이미 충분히 관심 받고 있으니까."
"알겠어. 그건 미안."
그가 분노로 한숨 쉬었다. "그냥 시작하자. 뭘 알고 싶은데?"
"난 무언으로 레비코푸스를 걸 수 있어. 리베라코푸스도. 하지만 그게 다야. 넌 어떻게 배웠어?"
"연습했지."
"뭔가 일어날 때까지 그저 주문을 걸고 또 걸었다고?"
"그래, 보통 사람들은 그걸 '연습'이라고 불러."
비꼬는 말을 무시하고, 포터가 물었다. "처음에 뭘로 시작했어? 어떤 주문?"
"기억이 날 것 같아? 몇 년이 지났는데." 포터가 아무 말 하지 않자, 드레이코는 참을성 없이 한숨을 쉬었다. "간단한 주문들이었을 거야―루모스…알로호모라…동결 마법 같은 것들."
"그럼 루모스로 시작해도 될까?"
드레이코가 어깨를 으쓱했다. "원한다면." 그가 지팡이를 꺼내 들고 그걸 가볍게 쥐었다. "무언 주문을 걸려고 할 때, 난 그냥… 힘을 빼." 그가 어깨에 힘을 풀고 숨을 내쉬었다. "생각을 비우려고 하지. 그리곤 그냥 머릿속으로 주문을 외워." 그의 지팡이 끝이 부드럽게 빛났다.
포터가 제 지팡이를 내려다보며 심호흡 했다.
"넌 너무 딱딱해," 드레이코가 말했다. "손가락 관절을 좀 봐, 지팡이를 얼마나 세게 쥔 건지. 긴장 풀어."
포터는 점점 더 긴장하는 것 같았다.
"아, 젠장, 포터," 그가 끼어들었다. "자. 턱부터 시작하자. 힘 풀어. 다음은 어깨야. 가볍게 내려놔 봐. 이제는 팔을 봐. 너무 긴장했잖아. 아예 제어를 놓치면 안 되지만, 팔에서 힘은 빼야 해. 손목을 유연하게 둬. 누가 네게서 지팡이를 뺏어 가기라도 할 것처럼 쥐고 있지 좀 말고." 그는 포터가 손에서 힘을 빼는 걸 지켜봤다. "좋아. 이제 다리야. 서 있는 자세 좀 봐. 우린 결투를 하려는 게 아니야. 그리고 넌 루모스만 생각하면 돼. 그러니 머리를 비워. 시작할 준비는 그게 다야."
포터는 흥 소리를 냈지만 지팡이에 시선을 고정했다.
"지팡이 좀 그만 봐. 왜 항상 그렇게 화난 표정인 건데? 어둠의 군주와 맞서 싸우라는 게 아니야. 1학년 마법을 하려는 거라고."
포터가 다시 심호흡 했다. "그래," 드레이코가 말했다. "이제 계속 주문을 되뇌어 봐. 완드에서 빛이 나오는 모습을 상상해. 안 된다고 실망하지 말고." 얼마간 시간이 흐르고, 드레이코는 포터의 지팡이 끝이 밝아진 것을 본 것 같았다.
"되고 있는 것 같아," 포터가 신이 나서 말했다.
"메달이라도 걸어 줘?" 그가 비웃었다.
포터가 얼굴을 찡그렸다. "더 밝아지지가 않아."
"그건 연습을 해야지. 원하는 게 죄다 은쟁반에 담겨 대령되는 삶에 익숙하신 건 알겠지만, 이번엔 다른 사람들처럼 노력을 하셔야 할 것 같네요."
드레이코는 포터가 한 번 더 그의 시비를 무시한 데 열이 받았다. 그는 여전히 빛나길 바라는 듯 지팡이만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다른 걸 해 보자. 방패 마법 같은 거," 포터가 갑작스럽게 말했다.
"방패 마법?" 드레이코가 말했다. "진심이야, 포터? 루모스나 열심히 해."
포터가 그를 올려다 봤다. "넌 무언으로 방패 마법 할 수 있잖아. 네가 하는 건 쉬워 보였어."
"그래, 몇 년이나 연습했으니까."
"언제부터 했는데?"
"몰라. 아마 4학년 때? 5학년인가?"
"왜?"
"왜냐면."
포터가 기대하듯 그를 보고 있었다.
"어둠의 군주가 돌아왔을 때 위험에 처한 건 너뿐이 아니었으니까." 그는 시선을 내려 석조 바닥을 보았다.
"무슨 뜻이야?"
"어땠을 것 같은데? 순식간에 저택이 죽음을 먹는 자들로 가득 찼어. 어둠의 군주는 거기 없는 날이 더 드물었지. 난 봤어… 너무 많은…" 그가 고개를 흔들었다. "나 자신을 보호해야 했어. 5학년 말 즈음엔 곧 어둠의 군주가 날 이용하리란 사실을 깨달았고. 그래서 나는 할 줄 알아야 했어… 오러들을 상대한다거나…" 드레이코가 고개를 들어 포터를 노려보았다. "어쨌든, 그건 다 상관 없어. 요점은 난 몇 시간이고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단 거야. 하루도 빠짐없이. 그러니 너도 하룻밤만에 무언 방패 마법에 통달할 순 없겠지, 아무리 네가 해리 포터라 할지라도."
포터는 드레이코의 지팡이를 빤히 보고 있었다. "옛날 지팡이는 안 쓰나 보네," 그가 말했다.
불편해져서, 드레이코는 주머니에 완드를 넣었다. "관찰력도 좋으셔." 그는 벽에 기대 서서 앞으로 팔짱을 끼고, 포터를 향해 고개를 까딱였다. "자, 해 봐. 힘 빼고, 젠장, 너―너 다시 아까처럼 긴장했잖아."
연습은 잠시간 지속됐다. 주문이 강력해질 때마다 포터는 미소 지었고, 드레이코는 집중하라며 그를 쏘아붙였다. 얼마 뒤 포터는 감을 잡은 것 같았다. 둘 사이에 침묵이 늘어졌고, 드레이코는 문득 이 상황이 전부 터무니없게 느껴졌다. 그가 지금 통금이 가까운 시간에, 빈센트가 죽은 방에서, 해리 포터를 가르치고 있다니. 다른 슬리데린들에게 이 얘기를 했다 한들 믿는 사람이나 있었을지 의심스러웠다. 포터가 어둠의 군주와의 마지막 전투에서 어떤 식으로든 상해를 입은 게 분명했다. 그리 오래지 않은 한때는 그가 드레이코에게 뭔가를 배우긴커녕 그와 같은 방에 있는 것조차 거부하던 날이 있었다. 하지만 무언가 바뀌었다.
"못해도 한 시간은 지났을 거야," 드레이코가 말했다. 포터의 지팡이는 이제 꽤 밝았고, 거기서 나오는 흰 빛이 방 안을 밝히고 있었다. "무언으로 지팡이 불빛을 한 번 꺼 봐."
포터가 지팡이를 보며 인상을 썼다; 빛은 그대로였다.
"서두르지 마. 넌 새로운 걸 시도할 때 너무 성급해지는 경향이 있어. 자연스럽게 해. 머릿속에서 루모스가 밀려나가게 두는 거야, 썰물처럼… 그럼 녹스가 들어오는 거야, 의식 속으로 밀려들어와서… 그걸 네 지팡이로 향하게 해…"
포터가 부드럽게 고개를 젓고는 어깨의 힘을 뺐다.
"머릿속에 있는 마법이 팔을 타고 흐르게 해… 손목을 지나서… 손 안으로, 손가락을 따라서… 완드 끝에 닿을 때까지…"
그 순간, 포터의 지팡이가 어두워졌다.
"내가 해냈어," 그가 놀라움에 완드를 보고 눈을 깜빡거리며 말했다.
"그러네. 이제 가자."
드레이코가 벽에서 몸을 뗐다. 그가 황동 문고리를 잡았을 때, 포터가 갑작스레 말했다. "말포이. 크레이브한테 있었던 일을 알면서도 널 여기로 데려오려고 했던 게 아니야. 내가 생각 못한 게 아니라―"
"못했잖아, 아니야?" 드레이코가 으르듯 말했다. "잊어버려, 포터. 네가 우리 중 하나를 그렇게까지 신경 쓰리라 생각도 안 했어."
"너네 중 하나?"
"바보같이 굴지 마. 무슨 말인지 알면서. 걘 그런 일을 당해도 싸다고 생각했잖아."
"걔가 악마의 화염에서 죽어도 싸다곤 생각 안 했어," 포터가 열띠게 말했다. "하지만 걜 죽인 건 자기 자신의 주문이었어. 걔가 우릴 다 죽일 수도 있었다고."
"걘 아버지한테 조종당하고 있었어," 드레이코가 으르렁거렸다. "제정신이 아니었다고. 그때 우린 다 같은 이유로 두려워서 제대로 생각할 수 없었어. 부모님 때문에, 우리가 실패한다면 우리한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말이야. 걘 멍청했지. 그렇다고 죽어도 싸다는 건 아니야."
"난 한 번도 걔가 죽어도 싸다고 한 적 없어. 하지만 악마의 화염을 쓰다니… 너무 무모했잖아. 그걸 프레드나 라벤더, 콜린이 죽은 것과 동일선상에 둘 수는 없어."
"그래? 걔는 어렸어, 우리 모두 어렸지. 누구라도 절대 엮여선 안 됐을 것에 사로잡혀 있었다고."
"그렇다고 해서 같아지는 건 아니야," 포터가 주장했다.
"넌 진짜 좆같이 이기적이구나," 드레이코가 내뱉었다. "어찌나 고결하고 위대하신지. 빈센트나 그렉, 아니면 나 같은 사람들이 뭘 겪어야 했는지는 생각조차 않겠지."
"너희가 겪어야 했던 거?" 포터가 허탈한 웃음소리를 냈다. "테디 루핀은 부모님을 모두 잃었어. 볼드모트와 맞서 싸우느라 목숨을 거셨으니까. 넌 단지 너희 편이 패배해서 속상한 것뿐이잖아."
"우리 편이라고? 넌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 포터. 내가 본 것들은―그런데도 넌 편 얘기나 하고 있고―아직도 그렇게나 유치하고 멍청하다니."
"너와 네 아버지는 볼드모트한테 버림받기 전까지 그의 수하였잖아," 포터가 말했다.
"그럼 뭐 하러 날 귀찮게 하는데?" 별안간 비위가 다해 드레이코는 고함을 쳤다. 포터는 주춤하며 물러났고, 그 모습은 오직 그에게 분노를 더할 뿐이었다. "왜 날 그냥 내버려두지 않는데? 한 달 내내 날 쫓아다니고 벽에 몰아세우기까지 했잖아. 너랑 싸움질이나 하려고 돌아온 게 아니야. 내가 그렇게 악하다고 생각한다면, 날 그냥 내버려두면 되잖아?"
"네가 악하다고는 말한 적 없어," 포터가 작게 말했다.
"그냥 내버려두라고! 올해 무슨 바람이 들어서 그렇게 머리가 이상해졌는진 모르겠지만, 그냥 그만해. 진심이야."
드레이코가 문을 열어젖혔을 때 포터가 그를 불렀다. "기다려." 그가 주머니를 뒤져서 한 줌의 금화를 내밀었다.
"네 좆같은 돈 따위 원하지 않아, 포터." 그가 이죽댔다. "그냥 나한테서 떨어지기나 해."
"싫어."
"싫다는 게 무슨 뜻이지?"
포터가 한 발짝 다가섰다. "삶이 너무 벅차고 불안해서 제대로 숨조차 쉴 수 없는 기분을 느껴본 적 있어? 온 세상이 움직임을 멈추고 넌 마치 죽을 것 같은 기분이 되는 거야."
"뭐?" 허를 찔린 듯 드레이코가 그를 보았다. 포터는 차분한 시선을 돌려주었다. "대체 그게 무슨 소리야?"
"무슨 소린지 알잖아," 그가 말했다. "그렇단 걸 알아. 나는 널 봤어. 가끔 넌 내가 느끼는 것처럼 보여². 내가 미쳐 가는 것 같아. 아무도 날 이렇게까지 신경 쓰이게 하진 않았는데. 여전히 악몽을 꿔?"
"폼프리한테나 가 봐," 드레이코가 음울히 조언했다. "네 머리가 잘 안 돌아가는 것 같으니까."
"너도 같은 걸 느낀단 걸 알아. 장담할 수 있어. 그때 마법약 수업에서, 넌 마치… 넌 마치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온 걸 본 것 같았어. 말했지, 넌 내가 느끼는 것처럼 보여."
그는 포터가 장난을 치는 건지 알고 싶었다. 어쩌면 이건 그를 우스워 보이게 만들고 어떻게든 호그와트에서 내쫓으려는 정교한 수작인지도 몰랐다. "정신 나갔네, 포터." 그가 힘없이 말했다.
"언제나 이런 공포와 불안을 느껴 왔어. 그러지 않아야 했지, 이제 볼드모트는 사라졌으니. 모든 게 괜찮아야 하잖아. 근데 왜 그렇지 않은 건데?"
"그만해." 그 모든 걸 말로 듣는 건 그에게 너무 과했다. 포터가 묘사한 것과 같은 공황의 감각이 표면 아래서 들끓었지만, 드레이코는 거기 완전히 휩쓸리기 전에 그걸 억누르고자 애썼다.
포터는 그를 무시했다. "몇 달이나 제대로 자지 못했어. 계속 도비를 묻는 꿈을 꿔. 내가 죽게 되리라 생각한 채 볼드모트에게 가는 꿈을, 죽은 사람들이 전부 대연회장에 줄지어 서 있는 꿈을 꿔."
"그만하라고 했어, 포터."
"어떨 땐 내가 그곳에 있는 것 같아. 그 때의 모든 것의 냄새를 맡고, 소리를 듣고, 볼 수도 있어. 한 번 겪은 걸로는 충분치 못하단 거야? 왜 내가 계속해서 그 때를 되살려야 하지? 너도 그래? 전투 때의 순간들로 돌아가게 돼? 그리고 이젠 그럴 필요 없단 걸 알지만, 여전히 무서운 기분이 들어?"
"그만하라고!" 생각하기도 전에, 드레이코는 포터의 어깨를 붙잡고 그를 석벽에 거칠게 밀쳤다. 그를 가로막고 선 드레이코가 씩씩거렸다. "그만 말하라고. 넌 대체 뭐가 문젠데? 날 미치게 할 작정이야? 그래서 비웃으려고? 그런 거야?"
"아니야." 포터가 그를 올려다 보고 있었다. 그는 몸을 떨쳐내려 했지만 드레이코가 다시 그를 벽에 박았다. "넌 뭐가 문젠데 그래? 내가 무슨 말 하는지 알지. 네가 미쳐가는 기분이 들고, 무슨 짓을 해도 뭔가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것 같은, 세상이 끝날 것 같은, 네가 죽어 버릴 것 같은, 비참한 일이 다가오는 것 같은데 그게 대체 뭔지는 알 수 없는 이 감각을 떨쳐낼 수 없잖아, 아니면, 아니면―"
"그래, 포터. 네가 무슨 말 하는지 알아," 그가 숨을 쉬었다. "네가 무슨 말 하는지 아주 잘 안다고. 근데 그래서 나보고 뭐 어쩌란 건데?"
얼마간 포터가 그를 올려다 보기만 하는 동안 침묵이 내렸다. 곧 시선에 힘이 실렸고, 그가 앞으로 다가섰다. 드레이코는 그가 자신을 공격하려는 줄 알고 지팡이에 손을 뻗었지만, 포터가 입술을 부딪혀 와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 머릿속 깊숙한 곳에선 포터를 밀쳐 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그러지 않고 그는 마주 서서 포터의 턱을 손으로 감쌌다. 손가락 끝에 닿은 수염 자국이 까끌거렸다. 드레이코가 포터에게 마주 키스했을 때, 사위의 모든 게 멈춘 것만 같았다. 그간 꽤 많은 남자와 키스해 봤지만, 이건 달랐다. 자주 그랬던 것처럼 심란한 마음이 이번엔 들지 않았다. 대신, 그는 포터에게 온전히 안겨 있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그 포터가, 드레이코의 엉덩이를 꽉 움켜쥐고 있었다. 포터는 별안간 떨어져 긴 속눈썹 틈새로 그를 올려다 봤다. 입술이 부르터 있었다.
"너… 너 미쳤어," 드레이코가 중얼거렸다. "어떻게 이렇게 멍청할 수가 있지, 포터. 곧 모두가 이 사실을 알게 될 거야." 다만 그는 엄지로 포터의 턱을 덧그리며 그의 입술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들은 그렇게 가만히 서 있었다. 그러다 드레이코는 도무지 자제할 수 없게 되어―얼굴을 숙여 포터의 입술을 머금었다. 포터는 즉각 반응해 낮게 신음하며 드레이코를 가까이 끌어당겼다. 그가 혀를 내어 포터의 아랫입술을 훑었고, 키스가 깊어지며 덥수룩한 머리칼에 손이 얽혔다. 그들이 다시 떨어졌을 때엔 둘 모두 숨이 달려 헉헉대고 있었다.
"무슨… 무슨 속셈이야?" 드레이코가 속삭였다.
포터는 고개를 젓기만 할 뿐 아무 말이 없었다. 그의 손은 여전히 드레이코의 엉덩이에 있었고, 가슴은 서로 맞닿아 있었다. 드레이코는 포터의 심장이 그의 심장박동에 맞춰 뛰는 소리를 분명히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이 순간을 구성한 모든 것을 기억에 새겨야만 한다는 강렬한 필요를 느꼈다; 포터의 밝은 녹색 눈과 그의 새까만 머리칼, 그리고 벌어진 분홍빛 입술을; 그가 입은 윗 세 개 단추가 풀린 흰 교복 셔츠와 느슨하게 걸린 타이를. 포터를 내려다 보고 있자니 별안간 그가 얼마나 무모하게 굴고 있었는지가 떠올랐다. 포터와 단둘이서, 키스하고 있다니. 포터는 정신이 나간 게 분명했다. 그는 이 일로 퇴학을 당하거나, 더한 일을 당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만약 부모님이 이 사실을 안다면…
그가 물러서서 고개를 흔들었다. "가야겠어. 나한테 가까이 오지 마."
포터가 그에게 손을 뻗었지만, 드레이코는 그를 밀쳐내고 문밖으로 뛰쳐나갔다. 지하 감옥으로 돌아가는 내내 손이 떨렸다. 휴게실에는 큰 소파에 자비니와 노트가 앉아 있었다. 그들이 쳐다보는 시선을 무시하고 지나쳐 갔다. 기숙사 방에 도달해서, 그는 침대로 몸을 던지곤 주위에 커튼을 단단히 쳤다.
'대체 그건 뭐였지?' 정리되지 않은 머리로 그가 생각했다. 열이 올라서, 열감이 지나쳐서 그는 타이를 벗고 셔츠의 단추를 풀었다. 가만히 누워서, 그는 지난 몇 시간의 일들을 머릿속으로 복기했다―포터를 가르쳤고, 말싸움을 했는데, 어째선지 그들은 입을 맞추고 있었다. 뭘 어떻게 하면 싸우다가 키스를 할 수가 있지? 처음부터 그게 포터의 계획이었을까? 하지만 왜? 그는 지난 몇 년 간 포터가 챙을 만나고, 그 위즐리 여자애를 만나는 모습을 보아 왔다. 호그와트에는 드레이코와 같은 이들이 제법 있었고―대부분은 어느 시점에서 그와 잠자리를 가지곤 했다―그들은 볼일을 마치고 종종 누워서 이전에 누구와 잠자리를 가졌으며 또 누가 그들과 같다고 들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그러면서 포터의 이름이 거론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게다가 그는 이 얘기를 누구에게도 할 수 없었다. 정말 누구에게도. 너무 위험했다. 이 얘기가 새어나가면… 하지만 지금쯤 포터는 그리핀도르 휴게실에 도착했을 것이고, 모두에게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얘기하고 있겠지… 다들 그게 엄청나게 웃기다고 생각할 것이라 드레이코는 확신했다…
다만 포터는 웃고 있지 않았다. 그는… 열띠고, 진지해 보였다. 드레이코는 진이 다 빠져나간 얼굴을 문질렀다. 그리고 포터가 공포와, 악몽과, 불안에 대해 이야기한 것들은… 누군가 같은 걸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건 위안이 되어야 마땅했으나, 드레이코는 욕지기가 치미는 걸 느꼈다. 그것에 대해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것에 대해 듣고 싶지도 않았다. 단지 지나갈 때까지 그것들을 멀리 치워 버리고만 싶었다. 그도 언젠가는 다시 평범해질 수 있을 것이다, 아닌가? 누군가 숨을 옥죄어 오는 공포에 대해 묘사하는 걸 듣는 건 잔혹한 고문과 같았다. 드레이코는 지금부터 포터를 무시하기로 결심했다. 물론 불운히도 어쩔 수 없이 함께 이끌어야만 하는 스터디 그룹 문제도 있다. 하지만 그 경우, 그들은 수십 명의 다른 학생들에게 둘러싸여 있을 것이다―포터도 거기서까지 그를 귀찮게 하진 않겠지. 그는 들어가서, 해야 할 일만 하고, 다시 나올 것이다. 학년말까지 살아남는 것만이 그의 일이었다.
Chapter 8: viii.
Chapter Text
드레이코는 포터와의 사건을 잊으려 최선을 다했다. 물론 어려운 일이었다. 특히 밤에는 더 그랬다. 여전히 포터의 입술이 와 닿는 감각이 생생해 그는 몇 시간이고 이리저리 뒤척였다. 그러면서도 그건 마치 일종의 환각이거나 허무맹랑한 꿈이었던게 분명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몇 번은 침대에 누워 얼굴 주위를 부유하는 녹색 커튼을 덧그리며 어둠이 주는 안온 속에서, 일 년에 한두 번쯤 포터에게 눈길이 갔던 적 있다고 스스로에게 시인하기도 했다. 확실히 퀴디치 선수치고 낭창한 몸이었다. 어쩌면 그는 관리가 엉망인 머리칼이 어떤 모양새로 포터의 귓가에서 구부러지는지나 넓게 벌어진 그의 어깨에 유니폼 셔츠가 얼마나 딱 맞는지, 혹은 위즐리가 터무니없는 농담을 할 때마다 그가 웃는 입모양 따위를 눈여겨봤던 것 같기도 했다. 포터의 선명한 녹색 눈동자도 물론 빼놓을 수 없었다. 그리고 손도: 드레이코는 6학년 즈음에 포터의 손이 제법 크며, 그 자신의 것보다 훨씬 강인하다는 사실을 알아보았다. 몇 번인가 지팡이를 쥔 포터의 손을 훔쳐본 적이 있었다. 그는 언제나 그 망할 것을 너무 세게, 너무 단단히 쥐었다. 어쩌면 가끔씩은, 십 대라면 누구나 그러하듯이, 그의 생각도 다른 곳으로 흘러갔는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포터가 지팡이만큼이나 단단히 쥐었을 다른 것에 대한 상상이라든가.
하지만 그건 다 호르몬 때문이었다. 분명했다. 그는 종종 다른 녀석들에게서도 비슷한 것들을 찾아냈고, 그들 중 절반 이상과 잤다. 솔직히 말해서, 그는 포터보다 몇 배는 매력적인 마법사들과도 밤을 보낸 적 있었다. 그는 스스로에게 이 사실을 되뇌었다. 제 손가락을 바라보며 그걸로 어떻게 포터의 턱선을 따라 훑었었는지를 떠올리며 단조롭게 머리에 그 사실을 박아넣었다. 그는 포터의 수염 자국이 손바닥 아래 불쾌하지 않게 닿았던 감각을 기억했다. 두 번째로 키스했을 때 포터는 신음을 했다.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듯 낮고 원색적이던 그 소리는 마치 그 또한 뱃속 깊은 곳에서 드레이코가 느낀 것과 같은 감각을 느끼고 있다고 말하는 듯했다. 이 모든 것에 딱 한 가지 잘 된 일이 있다면, 그가 필요의 방에서 포터와 보낸 괴상한 시간을 떠올리는 동안에는 대체로 그의 가슴을 짓누르던 불안이 사라진다는 점뿐이었다.
또 한 주를 보내며 드레이코는 제 명의의 그린고트 계좌에서 거액을 인출하는 데 대한 허가를 요청하는 편지를 세 번 더 받았다. 그 때마다 그는 누군가 캐묻기 전에 양피지 조각에 서명해 은행 부엉이를 되돌려 보냈다. 팬지가 유독 의심스러워하고 있단 걸 알았지만 그녀에게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그녀는 포터가 주변에 있을 때마다 그를 빤히 봤는데, 최근엔 거의 항상인 것 같았다. 그는 드레이코가 가는 곳마다 있었다: 대연회장을 떠나는 그를 지켜보거나, 마법약 수업 때 그를 훔쳐보거나, 도서관에서 다른 8학년 학생들과 공부하는 그의 주변을 맴돌거나 했다. 목요일 스터디 그룹 때 가능한 한 포터를 무시하다 끝남과 동시에 거의 뛰다시피해 대연회장을 빠져나온 드레이코는, 주변을 떠나지 않는 그의 존재가 엄청나게 불편해졌다. 이제는 다른 이들까지 눈치를 채고 있었다.
"왜 포터가 네게서 눈을 못 떼지, 말포이?" 어느 날 저녁 그들이 휴게실에 모였을 때 노트가 물었다. 노트와 자비니는 체스를 두고 있었고, 드레이코는 팬지, 밀리센트, 다프네와 함께 소파에 앉아 있었다. 원래는 다같이 일반 마법 과제를 점검하려고 했지만, 너무 피곤했다. 긴 한 주였다.
"몰라." 그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 말에 팬지의 시선이 닿는 게 느껴졌다. "올해도 날 따라다닐 셈인가 보지."
"이상하잖아," 노트가 계속했다. "호그와트 다니는 내내 지금만큼 걜 많이 본 적이 없는 것 같아. 우리가 가는 곳 어디든 그 자식이 있다고."
"포터가 어떤지 알잖아," 그가 말했다. "오러 흉내를 낼 때만 행복할 수 있지. 우리가 죄다 뭔가를 꾸미고 있다고 생각할지도."
자비니가 기묘한 눈빛을 던졌다. 그는 서둘러 주제를 바꿔야 했다. "그래서, 내일 호그스미드 간다고?"
"맞아," 다프네가 기쁘게 말했다. "빨리 깃펜 가게에 가고 싶어. 잉크가 거의 떨어졌거든."
"허니듀크도 가야 해," 밀리센트가 말했다. "방갈로르에 있는 사촌이 나한테 보내 달라며 간식 목록을 쭉 뽑아줬거든."
기회를 놓치지 않고 드레이코가 말했다. "난 새 장갑 사러 잠깐 더비시 앤 뱅스에 다녀와야 해."
"이번 건 제대로 좀 써라, 마법약 시간에 손가락 썰지 말고." 자비니가 가볍게 말했다. 드레이코는 그를 향해 얼굴을 찡그려 보였다.
"그래도 우리 다 파티 전까진 돌아와야 해," 팬지가 상기시켰다.
드레이코는 침음했다. 몇몇 그리핀도르 8학년들이 필요의 방에서 파티를 열기로 했다. 원래는 비밀인 걸로 되어 있었지만, 어쩐지 선생들을 제외한 모두가 알고 있는 듯했다. 그는 일절 흥미가 없었지만 팬지가 일주일 내내 그를 들들 볶아 댔고, 결국 자신도 거기 가게 될 거란 걸 알고 있었다. 떠도는 소문에 의하면 술과 음악, 그리고 주방에서 슬쩍한 음식이 마련될 거라고 했다.
"있지," 팬지가 부드럽게 말했다. "누구 그렉 못 봤어? 걔도 파티 소식 알아?"
"솔직히 걔가 그 망할 곳에서 춤추고 마실 기분은 아닐 것 같은데," 드레이코가 질려서 급히 말했다.
"나도 알아." 그녀가 빈정 상한 듯 그를 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그래도 말 안 해 주는 건 좀 그렇잖아. 상처받으면 어떡해?"
자비니가 코웃음 쳤다. "퍽이나 상처 받겠다."
"그래도 누군가 말해 줘야 해," 다프네가 책임감 있게 말했다. "적어도 들여다 봐 주긴 해야지. 종일 기숙사 방에만 있잖아."
"우리랑 말 안 할걸." 노트가 말했다. "몇 번 시도해 봤어. 고일 걔가 원래도 말이 많은 편은 아니었긴 한데… 내가 보이지도 않는 것 같아. 뭐 하러 돌아온 건지 모르겠어."
"말이 좀 심하지 않아?" 밀리센트가 말했다. "빈센트는 걔 친구였잖아… 1학년 때부터 친했다고. 같이 시간을 보냈던 장소에 있고 싶어서 돌아온 걸지도 모르지. 이제야 모든 걸 받아들이고 있는 걸 수도 있어."
모두 그녀의 말을 곱씹는 통에 침묵이 앉았다. 주변의 다른 학생들이 수다를 떠는 소리가 들려왔다.
"드레이코," 불현듯 자비니가 말을 꺼냈다. "다가오는 월요일이 아버지 청문회였지?" 블레이즈는 무구한 눈을 하고 있었지만, 드레이코는 그 질문에 의도가 없으리라곤 생각지 않았다.
"몰라," 그가 말했다. "나보다 네가 더 잘 아는 것 같은데."
"다 잘 될 거야, 드레이코." 다프네가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그건 모르겠네," 노트가 킬킬댔다. "네 아버지 완전 나락 갔더라, 드레이코. 네 어머닌 편 들어줄 포터가 있어서 다행이었지. 걔가 너한테도 유리한 증언 해 줬지 않아? 참 재밌어. 둘이 그렇게나 앙숙이었는데."
"걔가 드레이코를 아즈카반에서 썩게 놔뒀을 리가 없잖아," 팬지가 분개해 외쳤다. "얘가 아니었으면 포터는 절대 그 저택에서 못 빠져나갔을 테니까. 전투 떄 드레이코네 어머니가 확인을 맡았던 것도 걔한테 운이 좋았지. 아무튼지간에 이 얘기 좀 그만 하면 안 돼? 그냥 오늘이 금요일이고 이제 곧 주말이고 내일은 좀 여유를 즐길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뻐하자고. 그치, 드레이코?"
그는 대답 없이 침음만 냈다.
다른 이들이 다가올 파티에 대해 얘기하기 시작하자, 다프네가 몸을 기울여 드레이코의 팔꿈치를 가볍게 쳤다. 그는 놀라서 움찔했다. "괜찮아, 드레이코?"
"괜찮아, 고마워." 그가 팔을 안쪽으로 당기며 딱딱하게 말했다.
"힘들 거란 거 알아. 만약 우리 부모님이… 솔직히, 내가 그 분들이랑 그리 잘 맞진 않지만… 그래도 걱정이 됐을 거야. 그런 점에서 넌 몹시 용감히 버티고 있다고 생각해." 그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그녀가 덧붙였다. "테오랑 블레이즈가 자꾸 약올리려고 하는 건 알지만… 최대한 무시해 봐."
"그래."
"그리고 그거 알아?" 그녀가 밝게 말했다. "나 다음 주 숫자점 과제를 일찍 끝냈어. 벡터 교수님과 일하는 게 진짜 도움이 되나 봐."
"멋지다."
"그치." 그녀는 잠시 멈추어 그의 상태를 가늠하고는 말했다. "피곤해 보여. 이만 자러 가는 게 어때? 쟤네들은 나한테 맡겨."
그는 확신 없는 눈으로 그녀를 봤지만, 그녀는 윙크를 하곤 소리쳤다. "어이, 자비니! 네가 그리핀도르 여자애랑 자고 다닌단 소문이 돌던데?"
예상과 같이 큰 파장이 일었다. 드레이코는 몰래 빠져나와 빠르게 기숙사로 향했다. 어둠 속에서도 그렉의 침대에 커튼이 둘러쳐진 게 보였다. 그걸 제외하면 방에는 아무도 없었다. 드레이코는 플란넬 잠옷으로 갈아입고 침대로 들어갔다. 그렉의 침대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대개 그는 가장 먼저 잠자리에 들고, 드레이코와 다른 친구들이 일어나 아침 식사를 하러 갈 때쯤엔 이미 사라져 있었다. "어― 그렉?" 그가 어색하게 불렀다. "내일 파티가 있대. 8학년들끼리 하는 거야. 호그스미드 갔다 와서 다같이 갈 거래." 침묵. "알았어. 잘 자." 멍청이가 된 기분으로, 그는 누워서 이불을 가슴까지 끌어올렸다. 잠들 수 있길 바라며.
***
호그스미드로 외출하기엔 끔찍한 날씨였다. 맹렬한 바람과 함께 비가 쏟아졌고, 너무 쌀쌀한 나머지 드레이코는 제일 두꺼운 겨울 망토를 둘러야 했다. 그들은 비를 피하느라 고개를 푹 숙인 채 건물에서 건물로 종종걸음을 옮겼다. 스크리븐샤프트의 깃펜 가게에서, 그들은 다프네가 새 잉크병을 고르는 걸 기다렸다. 드레이코는 다른 이들과 떨어져 서서 꿩 깃펜에 관심이 있는 척 했지만, 실제로는 공황이 와서 필사적으로 차분한 공기를 갈구한 거였다. 호그와트를 벗어나고부터 그는 마법부 요원이 따라붙었을지도 모른단 공포에 줄곧 어깨 너머를 돌아보고 있었다. 날씨가 안 좋은 관계로 학생들 대부분이 온기를 찾아 상점 안으로 들어간 게 오히려 다행이었다―그는 더비시 앤 뱅스도 마찬가지로 붐비길 바랐다. 로슈포르를 어떻게 찾아야 할지도 문제였다: 그는 그 사람이 어떻게 생겼는지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었고, 어떤 식으로 꾸러미를 전달 받아야 할지도 몰랐다.
마침내 다프네가 깃펜 계산을 마치자 팬지가 말했다. "더는 추워서 안 되겠어. 스리 브룸스틱스에 가서 몸 좀 녹이고 성으로 돌아가자."
"난 더비시 앤 뱅스에 가야 해," 드레이코가 당황해 말했다.
"왜 이래," 노트가 불평했다. "추워 죽겠다고. 다음 주에 사면 안 돼?"
"새 장갑이 필요해." 그가 완강히 말했다. "쓰던 거에 구멍이 났단 말이야."
"내꺼 써, 어차피 난 올해 마법약 듣지도 않는데." 노트가 말했다.
"먼저 가 있어. 금방 갈게."
비는 이제 거의 장막처럼 퍼붓고 있었다. 나머지는 그와 말싸움할 생각이 없었기에 그들은 길을 따라 터덜터덜 펍으로 향했다. 자비니가 뒤돌아 수상하다는 듯 드레이코를 봤다. 그는 손짓을 해 보이고 더비시 앤 뱅스로 갔다. 번화가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지만, 다행스럽게도 가게 안은 제법 붐볐다. 벽에 늘어선 오래된 나무 선반들엔 온갖 마법 용품이 즐비했다: 스니코스코프들이 상자 안에서 굴러다니고, 리멤브럴 여러 개가 궤짝에 담겨 있었으며, 다양한 가죽재와 마법으로 늘린 주머니들이 선반에 걸려 있었다. 드레이코는 상점 안 사람들을 훑어보았다. 얼핏 보기엔 대부분이 학생들인 것 같았다. 그는 진열된 스펠로테이프에 관심이 있는 척 상점을 돌아다녔다. 갑작스럽게 누군가에게 팔이 잡혔을 때, 그는 물건들을 죄다 넘어뜨릴 뻔했다.
"쉿, 조용." 남자가 귀에 대고 속삭였다. 그는 큰 키에 깡마른 체구였고, 은색 여밈이 달린 검은 망토를 입고 있었다. 검고 뻣뻣한 머리가 어깨께까지 길게 늘어져 있었다. 드레이코는 주변을 둘러봤다―아무도 그들을 눈치챈 것 같진 않았다.
"죄송해요," 그가 남자에게서 팔을 빼내며 작게 말했다. "놀랐잖아요. 당신이 로슈포르인가요?"
남자는 헛기침을 하고 몸을 숙여 플루 가루로 가득찬 통을 살폈다. 어찌나 가까웠는지 드레이코는 그에게서 나는 담배 향까지 맡을 수 있었다. 뭘 해야 할지 몰라, 드레이코는 스펠로테이프만 계속 보았다. 그가 남자에게 로슈포르가 맞는지 다시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할 때쯤, 손바닥에 작은 벨벳 주머니가 눌러져 왔다.
"숨겨라," 남자가 말했다.
드레이코는 재빨리 겨울 망토의 주름 속으로 손을 끌어와 모피 안감의 옆으로 난 주머니에 꾸러미를 감췄다. 로슈포르가 통 안에 손을 넣어 플루 가루를 조금 집었다. 그는 손가락 사이로 가루를 흘려 보내고 통로를 따라 걸어갔다. 그가 천천히 멀어지는 동안, 두 명의 그리핀도르 남학생들이 플루 통 쪽으로 밀고 들어왔다. 둘 중 하나가 말했다, "엄마가 좀 사다 달랬어. 10시클치 정도면 되려나?"
드레이코는 가게 안을 둘러보았다.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은 것 같았다. 그는 장갑이 놓인 진열대 방향을 확인하고 그쪽으로 발을 옮겼다. 당장 가게를 뛰쳐나가 호그와트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이었지만, 그는 여유롭고 편안한 발걸음 속도를 유지하려 애썼다. 최선을 다해 아무렇지 않은 척해 보이며, 그가 천천히 용가죽 장갑들을 살폈다. 비로소 충분한 시간이 흘렀다 느껴졌을 때, 그는 빛 아래서 화려하게 빛나는 비늘의 벵에돔 가죽으로 만들어진 한 쌍을 골랐다. 계산대 앞에는 줄이 약간 있었다. 드레이코는 계산대의 땅딸막한 마녀와 수다를 떠는 파드마 패틸과 수 리의 뒤에 서서 계산 좀 빨리 하라며 속으로 재촉했다. 마침내, 그들이 갔다. 드레이코가 다가서서 계산대에 장갑을 내려놓자, 마녀의 얼굴에서 미소가 지워지고 날 선 불쾌감이 서렸다.
"네놈은 말포이 자식이 아니냐? 루시우스 말포이의 아들놈이지?" 그녀가 내뱉었다. "내 가게에서 썩 꺼져."
그는 그녀의 말을 무시하고 10갈레온을 꺼냈다. 숨쉬기가 힘들었다―문제를 일으키는 것이야말로 그가 가장 피하고 싶은 일이었다.
"네녀석의 돈 따위 필요 없다," 그녀가 말했다. "당장 나가. 아무것도 건드리지 말고."
"여기요, 제가 살게요." 옆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충격을 받아서, 그는 포터가 갈레온을 한 움큼 계산대에 내미는 모습을 지켜봤다. 바깥에서 이제 막 들어왔는지 뺨이 상기돼 있었다. 드레이코는 어떻게 그가 점퍼만 입고도 얼어 죽지 않은 건지가 의아했다.
"포터 씨," 여자가 숨을 헉 들이쉬었다. 그녀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떠올랐다. "이것 좀 보세요, 내 가게에 해리 포터가 왔어요. 뭐가 필요하세요, 선생님?"
"장갑이면 돼요." 포터가 고갯짓했다.
"물론이죠, 물론. 포장도 해 드릴게요." 그녀가 쭈그리고 앉으며 시야에서 벗어나 계산대 뒤쪽을 뒤지기 시작했다.
"난 괜찮아, 포터." 드레이코가 딱딱하게 말했다.
"기억 안 나? 내가 너한테 빚졌잖아. 아직도 10갈레온 남았어―이따가 내가 마실 거라도 살게."
"뭐? 됐어. 바로 성에 돌아가 봐야 해. 그나저나 네 수행원들은 어디 두고 온 거냐?"
포터가 웃었다. "헤르미온느랑 론은 밀린 '과제'가 있대."
"멋지군. 덕분에 스코지파이를 써도 못 지울 상상이 떠올랐어."
"가자. 한 잔만 해." 포터가 목소리를 깔며 가까이 붙어 왔다. 그들의 손이 계산대 위에서 거의 맞닿았다.
"여기 있어요," 별안간 포장지와 함께 나타난 마녀가 말했다. "이걸로 싸면 호그와트로 돌아갈 때까지 젖지 않고 산뜻할 거랍니다. 벵에돔이죠? 잘 고르셨어요. 견고하지만 유연하죠." 그녀는 드레이코를 보며 억지 웃음을 지었다. 그도 마주 인상을 구겨 보였다. 굴하지 않고 그녀가 포장한 물건을 그에게 건넸다. 그는 받아든 장갑을 망토 아래, 로슈포르한테서 받은 꾸러미 옆에 챙겨 넣었다.
포터가 앞장서 가게 밖, 추위 속으로 걸음을 내딛었다. 여전히 비가 퍼부었지만 아까보다는 잦아들어 있었다.
"가 봐야 해," 드레이코가 말했다. 불편한 마음에 그가 덧붙였다. "장갑은 고마워."
"밤에 파티 올 거야?" 청바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포터가 예의 밝은 녹색 눈으로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아마도. 몰라." 포터의 강렬한 시선에 굳은 채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그가 아무렇게나 주워섬겼다. "그럼, 나중에 보자." 그 말과 함께 그는 번화가를 따라 다시 올라갔다. 등 뒤를 태워 버릴 듯한 한 남자의 시선을 느끼면서.
Chapter 9: ix.
Chapter Text
슬리데린 휴게실에 돌아와서야 드레이코는 펍에서 다른 애들과 만나기로 했었던 게 떠올랐다. 뭐, 상관 없다. 제가 빠진 걸 눈치채기나 했을지도 의문이었다. 기숙사는 텅 비어 있었다. 막연히 그렉이 어딜 갔을지 의아해하며, 그는 침대 발치 쪽 짐가방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교과서와 접이식 냄비, 그리고 빗자루가 들어 있었다. 그는 상급 마법약 만들기와 쉬운 고대 룬 문자 사이에 자리를 만들고 조심스럽게 망토 아래서 벨벳 주머니를 꺼냈다. 작은 진홍색 주머니는 검은 끈으로 묶여 있었다. 그래선 안 된단 걸 알았지만, 드레이코는 열어 보고픈 강한 충동을 느꼈다. 내용물이 뭘지 짐작해 보려고 겉을 만져 본 바에 의하면, 안에 든 건 병 종류가 분명했다. 흔들어 봐도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실망스러워져서, 그는 안에 든 게 변질되기 쉬운 종류가 아니길 바라며 교과서 아래에 꾸러미를 쑤셔 넣었다. 그가 짐가방을 닫고 지팡이로 툭 쳐서 잠갔다.
그게 다였다. 아버지가 시킨 대로 했다. 드레이코가 아는 거라곤 그가 방금 불법적인 어둠의 물건을 짐가방 안에 숨겼단 것뿐이었다. 아버지가 그걸로 뭘 하려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 가능성 높은 건 그가 그걸 팔거나 다른 무언가와 교환하려 한다는 거였지만… 뭘 위해서? 변호사 수임료를 지불하려고? 위즌가모트에 뇌물을 먹이려고? 희망적으로 생각해 보자면 그 꾸러미에 든 게 뭐든 간에 다른 사람의 것이라 아버지 본인의 자유를 볼모로 협박하거나 증거품으로 쓰려는 건지도 몰랐다. 그럴 수도 있지 않은가?
기숙사 방문이 열려서 그는 화들짝 놀랐다. 언제나처럼 수척한 그렉이 서 있었다.
"여기서 뭐 해?" 그렉이 느리게 물었다.
"에세이를 덜 써서," 거짓말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너는? 왜 호그스미드 안 갔어?"
그렉은 어깨를 으쓱하고 몸을 돌려 나가려 했다.
"잠깐―있어 봐," 드레이코가 불렀다. "나갈 필요 없어. 내가 휴게실로 갈게."
그렉은 그가 머리를 쓸어넘기는 모습을 보고만 있었다. "음, 같이 갈래?" 그가 물었다. 그렉은 고개를 젓고 드레이코가 지나가도록 비켜 서 주었다.
"그래, 그럼. 나중에 보자." 그가 옆걸음으로 지나쳐 나가 휴게실로 향하는 계단을 두 개씩 건너뛰었다. 그는 그렉과 특별히 친밀한 적은 없었지만, 그에게 기묘한 종류의 동질감을 느꼈다. 그들은 함께 악마의 화염에서 살아남았고, 빈센트의 죽음을 목격했다. 그들 셋이 정확히 친구였는지에 대해선 확신하기 어려웠지만, 어둠의 군주의 귀환 아래 그들은 동고했지 않던가. 기이한 애탄에 잠겨, 드레이코는 벽난로 옆 안락의자에 앉아 교과서를 들춰봤지만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한 시간이 지나자 휴게실 문이 쾅 열리더니 한 무리의 4학년 학생들이 뛰어들어왔다. 추위에 볼은 붉게 상기됐고 잔뜩 신이 나서는 허니듀크와 종코에서 산 물건들이 가득한 쇼핑백을 움켜쥐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학생들도 몰려들기 시작했다. 다들 깔깔거리며 사 온 간식들을 구경하고 스리 브룸스틱스에서 본 노파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마침내 다른 8학년들까지 휴게실로 들어왔다. 옷을 갈아입으러 모두가 기숙사로 올라간 사이, 팬지가 드레이코를 발견하고 핀잔했다.
"어디 갔었어?" 그녀가 따졌다. "기다렸잖아!"
"과제가 있어서," 그가 말하며 증거로 교과서를 들어 보였다.
옆에 와서 팔걸이에 앉는 걸 보니 팬지는 그를 용서한 듯했다. 그녀에게선 희미하게 파이어위스키 냄새가 났다. "재밌는 얘기를 다 놓쳤잖아," 그녀가 말했다. "호그와트 1학년 떄 얘기 했어―크레이브랑 고일이 2층 함정 계단에 걸렸던 거 기억나? 필치가 꺼내주러 와야 했잖아."
드레이코가 코웃음쳤다. "한 번이 아녔지. 완전 난리였다고―아무도 근처에 안 가려고 했잖아."
"그리고 넌 걔네 버리고 일반 마법 수업 들으러 갔잖아," 그녀가 깔깔 웃으며 말했다.
"난 에세이를 제출해야 했다고," 그가 변론했다. "어쨌든 걔네 잘못이었어. 그 계단 뛰어넘어야 한다고 내가 몇 번이나 알려 줬는데."
"네가 밀리센트한테 마커스 플린트가 걔 좋아한다고 얘기해 줬을 때 기억나? 걔가 그 다음에 몇 주 동안 마커스 쫓아다녔었잖아."
"와, 잊고 있었다. 마담 퍼디풋에 가자고 데이트 신청했었지. 퀴디치 경기 끝나자마자 말이야. 모두가 들었잖아."
"그때 걔 얼굴 진짜 웃겼는데!" 그녀가 키득거렸다. "무슨 민달팽이라도 본 것 같았지. 불쌍한 밀리센트. 걔가 너 용서해 주는 데 얼마나 걸렸어?"
"몇 달인가? 걔한테 어찌나 세게 맞았는지 숨도 잘 안 쉬어지더라. 걔 기억력이 별로 안 좋은 게 다행이었지."
"그땐 완전 어린애들이었지," 그녀가 생각에 잠겨 말했다. "네가 뭔가를 꾸미고 있는 것 같다면서 포터가 널 쫓아다녔던 거 기억해? 그리고 너도 걜 쫓아다녔었잖아."
"난 누구 안 쫓아다녀," 그가 열받아 말했다. "내가 어딜 가든 감시한다고 들어서 미치게 한 건 포터였지." 불현듯 포터의 낮은 신음과 키스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가 안락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깜짝 놀란 팬지가 그를 찰싹 때렸다.
"가서 준비하자. 그놈의 파틴지 뭔지가 곧인 거 아냐? 책 갖다놓고 와야 해."
"기억했구나!" 그녀가 기쁘게 말했다. "너도 올 줄 알았어. 10시에 다같이 가려고."
그가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15분 전이었다.
"교수님들은 어떻게 피할 건데?" 그가 물었다. "통금 지났잖아."
"실화야? 언제부터 그렇게 걱정이 많았다고?" 그녀가 웃었다. "이제 우린 성년이잖아. 뭘 어쩌겠어? 설마 다시 침대로 보내겠어? 어쨌든 조심은 할 거야."
대충 수긍하고 드레이코는 기숙사 방으로 올라갔다. 벌써 옷을 다 입은 자비니가 침대에 늘어져 있었고, 노트는 청바지로 갈아입는 중이었다. 그들은 다가올 퀴디치 경기 얘기를 하고 있었다.
"슬리데린한테 승산이 있을 것 같아, 드레이코?" 노트가 물었다.
"몰라," 그가 말했다. 그는 짐가방에 교과서를 넣어두려다 그 안에 꾸러미를 숨겨 놨단 걸 깨닫고 얼어붙었다. 그는 바보같이 굴고 있었다. 나머지 둘은 그에게 일말의 관심이 없다시피 했고, 벨벳 주머니는 충분히 잘 감춰져 있었음에도 그는 감히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았다. 그는 침대 옆 협탁에 책을 던져 두었다.
"솔직히 올해 그리핀도르 팀이 괜찮긴 해. 위즐리가 꽤 잘하긴 하니까." 노트가 마지못해 인정했다. "듣기론 괜찮은 추격꾼들도 영입했대."
"하퍼는 별론가?" 블레이즈가 물었다.
"아, 걔도 쓸만하지. 맨날 파울 먹긴 하지만. 래번클로 올해 주장이 괜찮대. 브래들린가? 추격꾼을 항상 잘 썼지."
"드레이코, 브래들리 전략이라면 네가 전문가 아니냐?" 자비니가 킬킬댔다.
"닥쳐," 드레이코가 쏘아붙였다. 그는 지나치게 예민해져 있었다. 몇 초에 한 번씩 짐가방을 흘깃대면서는 더 나은 할 말을 찾아낼 수가 없었다. 이제 그는 학기초에 그를 불러세웠던 래번클로 자식의 이름이 브래들리였다는 사실이 기억 났다.
노트와 자비니가 낄낄거렸다. "여기 남자들 절반은 얘가 다 후렸을걸," 노트가 말했다. "차례 기다린 적 없어, 블레이즈?"
자비니는 고양이가 사냥감을 보는 눈으로 드레이코를 응시했다. "글쎄. 그럴 기회는 없었던 것 같은데. 어때, 드레이코?"
"할 거면 나 없을 때 해라," 노트가 핀잔했다. "이제 가자, 여자애들한테 선두 뺏기겠다."
방을 나서며 드레이코는 그렉의 침대를 봤다. 커튼이 드리워져 있었다.
그들은 함께 7층으로 향했다. 복도는 수상하리만치 텅 비어 있었다―드레이코는 아마도 그게 현관 홀에서 봤던 똥 폭탄 무더기와 연관돼 있으리라 짐작했다. 필요의 방 문이 생겨나는 모습을 보자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게 그가 빈센트가 악마의 화염에 휩쓸릴 때의 심상에 여전히 영향 받기 때문인지, 아니면 포터와 키스하던 생각을 하면 뱃속으로부터 스멀거리는 기묘한 감각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방 안은 8학년 학생들로 가득했고, 그가 포터와 연습했던 그 장소와는 많이 달라 보였다. 내부는 여전히 어두웠고, 마법으로 둥둥 떠다니는 촛불들에서 나오는 은은한 불빛만으로 밝혀져 있었다. 바닥에는 쿠션들과 안락의자들이 놓여 있었다. 왼쪽에는 가대식 탁자가 패스츄리와 가늠도 못할 만큼 다양한 주종의 술병들 무게에 짓눌리고 있었다. 어딘가에서 라디오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대부분 춤추고 있었고, 몇몇은 손에 술병을 든 채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대화를 나눴다. 방 안은 이미 후끈했다. 드레이코는 셔츠 맨 위 단추 두 개를 풀었다.
"8학년들은 다 여기 모인 것 같아," 다프네가 신이 나서 말했다. "저기 수가 있네, 인사 하고 와야겠어." 그리고 그녀는 밀리센트를 끌고 가 버렸다.
"이리 와, 드레이코. 춤 추자," 팬지가 팔짱을 껴 오며 말했다.
"그러기엔 너무 제정신인데," 그가 말했다. "좀 마셔야겠어."
드레이코는 파이어위스키 병을 따서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호그스미드에서부터 좀 취해서 온 듯한 팬지는 유리잔에 보드카를 따르고 있었다. 학생들 무리를 보면서 드레이코는 그렉이 혼자 기숙사 방에서 뭘 하고 있을지 생각했다. 익숙한 죄책감이 그를 찔러 왔다. 그렉이 그렇게 된 것이 자신의 책임인지 그는 알 수 없었다. 왜인진 몰라도 그는 빈센트의 죽음이 그렉에게 그 정도로 영향을 미치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어쩌면 그것 때문만이 아닐지도 몰랐다… 그건 그들 모두의 어깨에 무겁게 달린 너무 많은 가 버린 생들이 쌓이고 쌓인 결과인지도 몰랐다.
파이어위스키 병이 비어 버린 걸 보고 그는 놀랐다. 대개 그는 술을 많이 마시는 편이 아니었다. 하지만 가슴을 채워 오는 안락한 온기는 위안이 됐기에, 그는 새 병을 집어들었다.
"천천히 마셔," 팬지가 놀렸다. 그녀가 팔을 둘러 왔다. "그래서, 오늘은 누가 맘에 드는데?"
"확실히 이 중엔 없는 것 같네."
그녀가 소리내 웃었다. "아, 왜 이래. 맥밀란 머리 자른 거 괜찮아 보이지 않아?"
"저 멍청이가? 으, 쟨 너무 오만해."
"네가 오만함을 논한다고?" 그녀가 눈을 찡긋했다. "잘 봐봐, 드레이코. 누구 하나쯤은 눈길 가는 사람이 있을걸."
"빨리 여기서 나가고 싶어," 별안간 드레이코가 말했다. "호그와트를 벗어나서―여행을 갈래. 잠깐 유럽을 떠나서 새로운 사람들을 좀 만나야겠어. 올해가 너무 지겨워. 똑같은 사람들, 똑같은 망할 기숙사 제도 같으니라고. 넌 질리지도 않냐?"
"그럴지도. 그래도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아. 최근 들어 너 짜증이 많아졌어. 솔직히 끝내주는 섹스 한 번하고 나면 안 지루할걸."
그는 충격 받은 눈으로 그녀를 봤다.
"언제부터 그렇게 샌님이셨다고?" 그녀가 팔꿈치로 그의 옆구리를 찔렀다.
"뭐래." 그가 읊조렸다. "네 머릿속에 그런 것밖에 안 든 거겠지."
그녀가 낄낄댔다. "아니거든. 아무튼, 춤추자. 얼른."
"먼저 가," 드레이코가 팔짱을 풀며 말했다. "금방 갈게."
그녀는 과장되게 한숨 쉬어 보이더니 군중 속으로 사라졌다. 드레이코는 취기를 다스리려 벽에 몸을 기댔다. 그는 잘 취하지 않는 편이었지만, 열기와 소음과 어둠 때문에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그는 환하게 웃으며 달려오는 다프네를 보고 움찔했다. "들어 봐, 드레이코, 내 말이 맞지? 전에 금지된 숲 쪽에서 애크로맨툴라 본 적 있지 않아?" 그녀의 뒤로 파드마 패틸, 한나 아보트, 수 리가 있었는데 전부 거나하게 취한 듯했다.
"어―맞아," 그가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기억 나? 5학년 때 말야. 그때 봤던 게 분명 그거였다니깐. 그래서 내가 해그리드한테 물어보러 갔는데, 그분이―"
"하지만 애크로맨툴라가 뭐하러 호그와트 주변에 있겠어?" 패틸이 웃었다. "너 취했다. 완전 정신 나갔네!"
"아니야!" 다프네가 발끈한 척 항의했다. "그리고 한 번은 우리가 늦게까지 밖에 있는데―슬리데린 팀 퀴디치 연습이 있어서 다같이 구경하러 갔었거든―진짜로 용 울음소리를 들었었어. 기억 안 나, 드레이코?"
"얼핏," 그가 얼버무리고 술을 홀짝였다.
"수는 산트롤이 내려온 걸 본 적이 있대," 한나 아보트가 말했다. "근데 용이라고? 난 모르겠다. 보지는 못했어? 숨기가 쉽지는 않았을 텐데?"
탈출구를 찾아 드레이코는 군중을 훑었다. 팬지는 보이지 않았다. 돌연, 그는 방 건너편에서 그를 빤히 응시하는 포터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언제나처럼 수족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드레이코는 황급히 눈을 돌려 막 그를 돌아본 패틸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말포이," 그녀가 말했다. "아버지 청문회가 월요일에 있지? 신문에 온통 그 얘기더라."
"음, 우리 다른 얘기 하자," 다프네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패틸은 그녀를 무시하고 계속했다. "아버지를 변론할 거야?"
"우리 아버지였다면 난 안 해," 아보트가 선언했다. 그녀는 동의를 구하며 리에게 기댔다. "난 우리 가족이 그거였다면 연 끊었을 거야." 그녀가 드레이코를 비난하듯 날 선 말투로 말했다. "우리 어머니가 어떻게 되셨는진 너도 당연히 알겠지."
드레이코는 덫에 걸린 기분이 들었다. 사과를 해야 할까? 자기변호를 해야 하나? 순식간에 그는 이런 상황에 놓이게 된 데 대해 다프네가, 그들 모두가 원망스러워졌다. 그는 단숨에 비운 병을 테이블에 세게 내려놓고 방 밖으로 나와 버렸다. 다프네가 부르는 소리가 들린 것도 같았지만 무시했다. 그는 사람들로부터, 비난하는 시선들로부터, 속삭임들로부터 벗어나 기숙사 방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그가 복도를 반쯤 걸어 내려갔을 때 누군가 팔을 잡는 게 느껴졌다. 그것이 포터임을 알기 위해 돌아볼 필요조차 없었다.
"말포이," 포터가 말했다. "어디 가?"
"날 내버려 두라고 안 했던가, 포터?" 그가 딱딱거렸다. 그가 지팡이를 쥔 채 돌아섰다.
"왜 벌써 가? 한 잔 하자."
드레이코가 그를 응시했다. 기절 마법에 걸린 기분이 들었다. "넌 대체 뭐가 문제지? 우리가 한 잔 하면서 어울릴 사이는 아니잖아. 네 속셈이 뭔진 모르겠지만, 날 퇴학당하게 하려는 거든, 아즈카반에 보내려는 거든―아니면 우리 아버지와 관련된 거든 간에―"
"그런 게 아니야."
"그럼 뭔데?"
"그냥 너랑 대화하고 싶었어, 그게 다야."
"가서 네 친구들이랑 떠들어." 드레이코는 그를 노려보고 발걸음을 떼려 했으나, 포터가 다시 그의 팔을 잡았다.
"화요일에 보는 거야, 잊지 마." 포터가 말했다.
"아니, 안 해. 딴 선생님 구하든가 해. 그리고 나한테서 떨어져."
왜인진 몰라도 포터는 그의 팔을 놓지 않았다. 드레이코는 그를 밀쳐내지 않았다. 그는 파이어위스키로 인해 달아올라 있었다. 포터의 벌어진 입술과 헝클어진 머리를 보자 드레이코는 필요의 방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라 당황스러워졌다. 꿈을 꿨던 게 분명하다고 거의 믿을 뻔한 참이었는데, 손목을 쥔 포터의 손의 감촉이 그들 사이에 있었던 일이 생생한 현실이었음을 일깨웠다.
"이거 놔," 미동조차 않으며 그가 약하게 말했다. 포터는 고개를 저었다. "누가 볼지도 몰라."
하지만 포터는 그를 벽으로 몰았고, 무서운 건 드레이코도 그를 밀어내지 않았단 것이다. 그러긴커녕 그의 한 손은 이미 포터의 머리칼을 헤집고 있었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알기도 전에 그들은 키스하고 있었다. 또다시. 이번에 그들이 서로를 붙든 방식엔 어딘지 절박한 데가 있었다. 포터는 그를 벽에 밀친 채 거의 화난 것처럼 키스해 왔다. 드레이코는 포터의 머리를 더 깊이 헤집었고, 포터가 신음하자 뱃속이 뒤집히는 것 같았다. 그 소리를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미처 모르고 있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그 포터가, 그렇게 음란한 소리를 내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다. 포터가 거의 피를 낼 정도로 그의 아랫입술을 깨물어 왔을 땐 더욱 놀라웠다. 별안간 포터의 손이 드레이코의 어깨를 훑더니 가슴을 지나, 배까지 내려갔다.
화들짝 놀라 드레이코가 몸을 빼냈다. 그가 숨을 헐떡이며 포터를 바라봤다. 포터는 드레이코의 셔츠 단추를 만지작거리며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표정이 함축한 의미를 알 수 없었다. 굳은 턱이 화난 것 같진 않았지만 이상하리만치 진지하게 느껴졌다.
"계속 이럴 순 없어," 드레이코가 읊조렸다. 포터가 아무 말이 없자, 그가 다시 말했다. "누가 볼지도 몰라."
"그럼 다른 데로 가자," 포터가 말했다. "내 기숙사 방이 비었을 거야."
일순간 그건 굉장히 매력적으로 들렸다. 포터는 여기 있었고, 따뜻했으며, 드레이코의 손 아래 단단히 느껴졌다. 포터가 머릿속에서 들끓는 온갖 걱정들과 잠에서 깰 때마다 그를 괴롭히는 공포들, 결코 떨쳐낼 수 없을 것만 같은 추념들을 잊도록 도와줄 수 있을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현실이 치고 들어와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관둬. 이건 잘못됐어."
"그렇지 않아." 포터가 그의 목선을 따라 깃털처럼 가벼운 키스를 남기기 시작했고, 드레이코는 결의를 완전히 상실하기 전에 거기서 빠져나와야 한단 걸 알았다.
"아니. 잘못됐어." 그가 정중하지만 분명히 포터를 밀어내고 셔츠 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제발.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그만해. 제발. 재미 없다고."
"장난치는 거 아니야." 예의 그 이상하리만치 엄숙한 시선이 있었다.
"다시 파티나 하러 가. 잘 가라." 그 말과 함께 그는 포터에게서 빠져나와, 생각이 바뀌기 전에 황급히 복도를 걸어 내려갔다. 슬리데린 휴게실에 도착할 때까지 그는 의식해서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거기에 와서야 비로소 다리가 멎었다. 그는 소파에 파묻혀 손에 얼굴을 묻고 공황이 올 때처럼 호흡에 집중하려 애썼다. 아직 정신이 나간 게 아니라면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N.E.W.T.를 포기하고 호그와트를 떠나는 생각이 마구잡이로 떠올랐다. O.W.L. 성적만으로도 얻을 수 있는 일자리가 꽤 있을 테다. 비단 포터만이 이유는 아니었다―공포, 분노, 그간 거쳐 온 모든 것, 지금껏 해온 모든 일, 거기다 그를 미쳐 버리게 하려는 게 분명한 다른 슬리데린 자식들, 이 모든 게 다 문제였다. 여기선 부모님에게 아무짝에도 쓸모가 될 수 없었다. 어머니. 어쩌면 돌아오기로 했던 게 끔찍한 실수였는지도 몰랐다. 어머니는 아들이 집에 있기를 바랄 것이다. 아버지의 청문회가 이틀 뒤에 있는데도 어머니께 편지 한 장 쓰지 않았다. 하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하는가? 이렇게 멀리서 무엇을 할 수가 있지?
포터와의 일은 전부… 과했다. 이렇게까지 혼란스러웠던 적이 없었다. 그는 포터를 원하는 것인가, 아니면 누구든 상관 없는 것인가? 어쩌면 팬지가 옳았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에게 필요했던 건 누구든 늘상 의식의 가장자리를 떠돌며 그를 압도하려는 공포가 가라앉을만큼 오래 정신을 분산시켜 줄, 아무나였는지도 몰랐다. 돌연 피로해져서 그가 얼굴을 문질렀다. 8학년은 간단할 것이라 생각했었다. 공부를 하고, N.E.W.T. 성적을 잘 받고,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나아가기만 하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그의 인생에 언제는 간단한 일이 있었던가?
Chapter 10: x.
Chapter Text
월요일은 온통 흐릿한 채 지나갔다. 막연히 그날 아침 일찍 아버지의 청문회가 시작했으리란 건 알았지만,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는 알고 싶지 않았다. 어머니가 그곳에 갔는지, 변호사들이 어떤 변론을 할지, 위즌가모트가 어떤 판결을 내놓을지 같은 것들을. 화요일 아침, 예언자 일보에 6시간에 걸친 청문회의 요약이 기사로 났다. 드레이코는 읽을 필요가 없었다―슬리데린 테이블 맨 끝의 팬지 옆자리에 앉아 있자니, 주변에서 들려오는 대화 소리만으로 대강의 내용을 파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즈카반 종신형을 보고 있다지, 그것도 과분해…"
"…머글식 고문의 증거가 더 나왔대… 이거 봐, 요크셔에서…"
"…그자를 팔아넘긴 죽음을 먹는 자들이 많다더라, 재기는 힘들겠어…"
"…다음번 청문회는 11월 18일이래… 그때는 판결이 나올지도…"
드레이코는 거의 입도 대지 않은 커피를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팬지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 봤지만, 그녀가 무슨 말을 꺼내기 전에 그는 대연회장에서 나가 버렸다. 그 길로 뜰에 나가려는데 계단을 빠른걸음으로 내려오던 프라우드풋에 의해 가로막혔다.
"말포이 군," 그가 불렀다. "어디 가시는가?"
"나가서 공부하려고요, 교수님." 그가 방어적으로 말했다. "공강이 있어서요."
"좋군요. 내 연구실에 잠깐 들러요."
드레이코가 인상을 찌푸렸다. 방금 뭘 잘못했나?
"얼마 안 걸릴 겁니다," 프라우드풋이 말했다. "따라와요."
다른 선택지가 없음을 짐작하고, 드레이코는 프라우드풋을 따라 2층에 있는 그의 연구실로 향했다. 지난 몇 년 간 많은 사람들이 거쳐 간 곳이었다. 프라우드풋은 그곳을 제법 평이하게 꾸며 뒀는데, 안에는 해진 안락의자 두 개와 거대한 호두나무제 서가, 그리고 옷장이 있었다. 그가 안락의자 중 하나에 앉더니 맞은편에 앉으라며 드레이코에게 손짓했다. 위장이 꼬여 왔다. 프라우드풋이 어떠한 경로로든 그와 포터의 만남에 대해 알게 된 게 아닐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 일로 문제가 생기진 않을 것이다. 그렇지 않나? 경험한 바로 포터는 그 일에 제법 자발적이었다―솔직히, 대개 먼저 부추긴 것도 그쪽이었다. 하지만 그게 바로 포터의 계획이었을지도 모른다: 드레이코에게 추행당한 척하며 그를 퇴학시키는 것 말이다. 그는 프라우드풋의 표정을 읽어내려 했지만, 단지 평탄할 뿐이었다.
"잘 지내고 있나요, 말포이 군?"
"잘 지냅니다, 교수님." 그가 말했다. 왜인지 프라우드풋과 눈을 맞추기 어려워 그는 방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마침내 프라우드풋이 물었다. "수업은 어떤가요?"
"좋습니다, 교수님. 제가 생각했던 것만큼 뒤처지지는 않은 것 같아서… 괜찮은 것 같습니다."
"좋네요. 가르치는 일은 좀 어떤가요? 포터 군과 함께요."
포터의 이름을 듣자 심장이 쿵 떨어지는 듯했다―프라우드풋이 눈치챈 걸까? 그가 문제에 휘말린 건가? "잘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주 잘 되고 있는 것 같던데요," 프라우드풋이 입꼬리를 말아올리며 말했다. 식은땀이 흘렀다―그가 알고 있어. "자기 자신을 과소평가하는 것 같아요, 말포이 군. 지난 한 달 간 학생들이 엄청난 향상을 보여 줬답니다. 스터디 그룹의 역할도 어느 정도 있었을 거예요. 그렇게 생각 않나요?"
"음―네?"
"학생은 훌륭한 선생님이에요. 단호하지만 공정하죠. 난 감명 받았어요. 학생들에게 무언 마법을 가르치다니… 정말 잘해주고 있어요."
"감사합니다, 교수님."
"자." 프라우드풋이 자세를 고쳐 앉았다. "학생의 졸업 후 계획에 대해 얘기를 나눠보고 싶군요." 드레이코는 안도감을 숨기려 애써야 했다. 애초에 포터와는 관련 없는 일이었던 거다. "보통 이런 건 기숙사 사감 선생님과 상담하는 게 일반적이긴 하지만… 슬러그혼 교수님이 말하시길 지난번 면담 때 좀… 긴장했었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개인적으로 학생에게 관심이 가서 말이지. 학생을 보면 종종 나를 보는 것 같아요."
"네?"
"긴장감에 뻣뻣하게 굳어 있는 게 보여요. 표출구가 필요해 보이는군요. 말포이 군에게는 몰두할 만한 일이 필요해요. 호그와트를 졸업하고 무슨 일을 할지에 대해 더 생각해 봤나요?"
"저는…" 그가 말을 흐리며 창밖을 내다봤다. 해가 쨍쨍했다. 그는 파란 하늘을 가로질러 날아가는 새떼를 봤다. "여행을 갈까 했어요. 영국을 떠나서… 유럽을 떠나서요."
"여행?" 프라우드풋이 첨예하게 물었다. 드레이코는 놀라서 그를 돌아봤다. 프라우드풋이 이렇게까지 격한 반응을 보이리라곤 생각지 못했다. "왜 그런 생각을 했지?"
"잘 모르겠습니다, 교수님. 여기선 말포이 이름이 효용을 잃었지 않나요? 그러니… 아무도 절 모르는 곳으로 잠시 떠나 있으면… 다시 시작할 수도 있을 것 같았어요."
프라우드풋이 표정을 풀고 약간 웃어 보였다. "해외 마법사들에게도 신문은 있답니다, 말포이 군."
"저도 알아요." 그가 곧장 반박했다가, 정신을 차리고 정중히 말했다. "알아요. 그래도 여기보단 나을 겁니다. 항상 대학원 진학을 고려했어요. 방을 하나 구할 생각이었죠. 부모님과 저는 여름마다 여행을 다녔어요… 여기저기에 초청 받았었죠, 단지… 이젠 다 상관 없어요. 졸업 이후 제 계획은 언제나 더 여행하겠단 거였습니다."
"흥미롭군요. 대학원 진학이라고 했는데, 어떤 분야에서 말인가요?"
"솔직히 이젠 잘 모르겠어요. 저랑은 다 상관 없는 일이 된 것 같아서요."
프라우드풋이 눈썹을 치켰다. "글쎄요. 올해 N.E.W.T.를 일곱 과목 듣고 있지 않나요? 아까도 말했듯 잘 해내고 있고요."
문득 드레이코는 비이성적인 분노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전부 쓸모없지 않나요, 교수님?" 그가 물었다. 모순이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누가 루시우스 말포이의 자식을 고용하겠어요."
"그래서 포기하겠다고?"
"그러지 않을 이유라도 있나요?" 그가 쏘아붙였다. 그가 벌떡 일어나 주먹을 꽉 쥔 채 창가로 걸어갔다. "제가 얼마나 많이… 그냥 떠나버릴까 고민했는지 교수님은 모릅니다. N.E.W.T.마저 포기하고요… 얼마나 시간 낭비인가요? 써먹지도 못할 성적을 위해 공부한다는 게요. 여긴 더이상 제 자리가 없다고요."
"그렇다면 학생의 자리는 어디 있나요?" 프라우드풋이 물었다.
"저도 몰라요. 여기가 아닌 곳이요. 어딘가 먼 곳, 아무도 절 모르는 곳이겠죠. 제가 루시우스 말포이의 자식이 아닌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는 곳 말입니다." 그가 차갑게 조소했다. "아, 정말이지 어리석은 사람이죠. 이렇게나 오래 그런 작자를 동경해온 저 역시도요."
"학생은 어렸어요. 아이들은 종종 선택권을 갖지 못해요."
"제겐 선택권이 있었어요." 그가 프라우드풋을 돌아보았다. 어쩐지 내려다본 그 얼굴에 떠오른 동정 어린 표정이 혐오스럽게 느껴졌다. "우린 다 선택권이 있었죠. 제 선택이었습니다. 이젠 다른 선택을 해야만 하죠. 이번엔 옳은 쪽을 골라야 할 테죠, 아마."
"한 달만 더 있어 봅시다," 프라우드풋이 설득했다. "학생은 지금 너무 성급해요. 그 모든 가능성이 버려질 생각을 하니 아쉬워서 그럽니다."
"그게 다 무슨 소용이죠? 그리고 실례지만, 왜 교수님께서 신경 쓰시는 건가요? 교수님은 오러셨잖아요. 마법부에서 뵀던 걸 기억합니다. 아버지께서도 교수님 얘기를 하셨어요. 죽음을 먹는 자가 어떻게 되든 오러가 무슨 상관이죠?"
그는 그 말에 프라우드풋이 표정을 구기거나 무례하다고 소리칠 것을 예상했으나, 그는 껄껄 웃기만 할 뿐이었다. "너무 감정적으로 받아들이지 말아요, 말포이 군. 난 이제 나이도 웬만큼 먹었고, 이런저런 일도 충분히 겪어서 세상이 흑과 백으로만 나눠지는 게 아니란 걸 알게 됐답니다. 내가 오러 일을 오래 하기는 했지요. 내가 했던 몇몇 선택들에 대해 알게 된다면 아마 깜짝 놀랄걸요."
드레이코는 그 말에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어린애가 된 기분으로 주머니에 손을 쑤셔 넣고는 물었다. "이제 가 봐도 될까요, 교수님? 과제를 해야 해서요."
"그러세요. 하지만 학생이 쉽게 포기하게끔 두지는 않을 겁니다. 말했듯 학생은 잠재력이 있어요. 분노를 적절히 표출할 방법만 찾으면 될 겁니다. 호그와트를 떠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할게요. 스스로에게 기회를 줘 봐요."
"생각해 보겠습니다, 교수님." 그가 마지못해 말했다.
"좋아요. 이제 가 봐요."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드레이코는 프라우드풋의 연구실에서 재빨리 나와서 현관 홀로 향했다. 익숙한 공황의 감각이 찾아들고 있었다. 이중문을 밀고 나가자마자 얼굴을 스치는 찬 공기가 위안을 줬다. 원래 계획은 늘 찾던 호수 옆 그 자리에 죽치고 앉아 공부를 하는 거였다. 하지만 프라우드풋과의 대화가 그를 흔들어 놓았고, 호그와트로 돌아온 이래 처음으로 그는 절박하게 날고 싶어졌다. 빗자루를 가지러 기숙사 방으로 돌아가는 수고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아는 사람을 마주치거나, 시답잖은 잡담을 들어 주는 척하고 싶지도 않았다. 따라서 드레이코는 빗자루 보관소로 내려갔다. 학교 빗자루들을 이것저것 가늠하다가 그는 낡은 코멧을 골랐다. 그가 곧장 경기장으로 나가 빗자루에 올랐고, 그대로 날아올랐다―그러자마자 머리가 맑아졌다. 코멧은 그렇게 빠르지 않았고 방향이 자꾸 오른쪽으로 틀어졌지만, 드레이코는 몸을 앞으로 숙이며 경기장을 돌았다. 교수님들 중 누군가에게 걸리면 문제가 생기진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잠시 떠올랐지만―공강 시간은 공부를 하라고 주어지는 거였다―그는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비행할 때 느껴지는 자유를 잊고 있었다. 허공을 부양하며 그는 아래를 살폈다. 해그리드가 채소밭 사이를 거닐고 있었다.
가장자리를 따라 여유롭게 경기장을 한 바퀴 더 돌면서, 그는 프라우드풋이 한 말을 다시 생각했다. 일곱 개의 N.E.W.T.로 얻게 될 이점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호그와트에 제 자리가 없다고 느꼈다. 과거에 호그와트는 그에게 두 번째 집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어둠의 군주가 저택을 본부로 쓰기 시작하고부터는 성이 그에게 도피처가 되어 주었다. 8학년이 되어 호그와트로 돌아오면서, 그는 이로써 다시금 고민들로부터 도망칠 수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것들은 여기까지 따라오고야 말았다. 공황 발작은 멈추지 않았다―오히려 더 심해진 것 같았다. 그리고 포터가 있었다. 늘상 그래왔듯이, 포터는 이번에도 모든 걸 망쳐 놓았다. 아직도 한 번씩 드레이코는 모든 게 그저 꿈이 아니었을까 생각하곤 했다. 그건 너무나 부적절하고, 비현실적이었으며, 진짜 같지 않았다. 포터와 마주칠 때마다 배가 조여들고 심장이 떨어지는 기분이 드는 것도 다 상관 없다. 분명 그의 머릿속에서 불안을 떨쳐 내고자 온갖 종류의 괴상한 환상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일 테니.
그러나 포터는 분명 그를 바라보고 있었고, 그 강렬하고 진지한 눈빛은 그로 하여금 그 일이 정말 일어났음을, 그가 정말로 포터와 키스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했다. 가끔 드레이코는 책을 읽다가 글자들은 온통 흐려지고 그 파티 날 밤, 그가 포터의 기숙사로 가자는 데 동의했더라면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생각하게 되곤 했다. 그전날 변환 마법 수업에서, 그는 멍하니 벽만 보면서 포터의 손이 몸에 닿았던 감촉을 떠올리다 이종간 변환술에 대한 델라쿠르의 강의를 대부분 놓치고 말았다. 이건 위험한 게임이었다. 포터는 그를 망쳐 놓을 것이다―혹은 적어도, 그에게 남은 신용을 죄다 망쳐 버릴 것이다. 포터에게서 벗어나는 것, 그건 호그와트를 떠나야 할 또 하나의 이유기도 했다. 그러지 않고선 탈출구가 보이지 않을 것 같았다. 드레이코가 가는 곳 어디든 그가 있었다. 그게 정신을 나가게 했다.
추위에 곱아든 손으로, 드레이코는 빗자루 앞머리를 아래로 향하여 부드럽게 착지했다. 온열 마법을 걸 수도 있었지만 추위가 기꺼웠다. 빗자루 보관소에 코멧을 돌려놓고 손목시계를 보니 거의 점심 시간이 되어 있었다. 최근엔 거의 그런 적이 없었기 때문에, 식욕이 조금 도는 것 같단 사실이 놀라웠다. 일반 마법 수업 전에 도서관에 책을 반납할 시간이 있을지 가늠하며 성으로 돌아가려는데, 별안간 칼리두스가 그에게로 휙 날아왔다. 지금은 가죽장갑이 없다는 신호를 보내려 했지만, 잘 훈련된 부엉이답게 칼리두스는 낮게 날아와 발에 매달린 양피지를 떨어뜨렸다. 부엉이는 주변을 한 바퀴 돌더니 서쪽 탑을 향해 날아갔다.
드레이코가 손 안의 양피지 두루마리를 뒤집었다. 잠시 그냥 버려 버릴까 생각이 들었지만―검은 호수에 던져 버린다거나―책임감에 못 이겨 그는 그것을 펼쳐 보았다. 딱 한 줄이 적혀 있었다.
금요일 오전 3시, 같은 장소.
그게 무슨 뜻인지는 분명했다: 아버지가 슬리데린 휴게실에서 그와 플루로 대화하려는 것이다. 전에는 이보다 더 암호문 같은 메세지도 받은 적 있었다. 드레이코가 지팡이를 꺼내서 쪽지를 가볍게 쳤다. 쪽지는 불길에 휩싸였다. 화상을 입지 않도록 가장자리를 붙잡고 있는데, 문득 아버지가 저택의 우편물이 검열당하고 있다고 말했던 것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그들의 밀회에 대해 우편으로 소통하는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아버지는 플루 역시도 감시당하고 있다고 했었는데… 대체 어떻게 마법부의 눈을 피하고 있는 걸까? 아버지가 다시금 그를 위험한 길로 보내려 한다 할지라도 놀랍진 않았다. 하지만 재판이 진행 중인데 위험을 무릅쓴다는 건… 그건 너무 어리석은 게 아닌가? 성으로 향하는 길을 터벅터벅 걸으며, 드레이코는 생각에 잠겼다. 가끔은 이제 더이상 아버지에 대해 아는 게 없는 것 같다고 느껴지기도 했다. 어떤 사람을 열여덟 해 동안이나 알아 왔는데도 그에 대한 것 하나 이해할 수 없다니, 이 얼마나 기이한 일인가.
Chapter 11: xi.
Chapter Text
드레이코는 완전히 정신이 팔린 나머지 고대 룬 문자 수업에 거의 집중할 수 없었다. 그들은 일련의 복잡한 상징들을 독해해야 했다. 그는 다프네와 짝이었는데, 그녀는 상급 룬 문자 해독 책의 페이지를 넘기며 작게 콧노래를 불렀다.
"여기 이건… 히드라인가?" 그녀가 문자를 가까이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드레이코, 이거 봐봐. 이게 뭔 것 같아?"
"음?" 그는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이거." 다프네가 초조하게 페이지를 두드렸다. "헷갈려―히드라가 맞겠지? 그러면…" 그녀가 교과서로 눈을 돌렸다. "아, 왜 하나도 기억이 안 나지? 배블링 교수님은 이제 우리가 이 부분은 다 암기했어야 한다고 하셨는데."
드레이코가 무의미한 침음을 내며 교과서를 끌어당겼다.
"너 오늘 조용하다," 그녀가 가볍게 말했다. "고민이라도 있어?"
"별 일 없어."
"요새 너한테서 그 말 자주 듣는다. 매번 거짓말이잖아. 그냥 얘기해 줬으면 좋겠어."
"히드라 맞아," 드레이코가 주의 깊게 룬 문자를 보고는 말했다. "그건 '9'를 뜻해."
"그래." 다프네가 룬 문자 밑으로 작고 가느다란 '9'를 적었다. "거의 다 했다."
그들은 몇 분간 침묵 속에 해독만 했고, 그러다 다프네가 투덜거렸다. "좀 구분되는 모양으로 만들었어도 됐잖아. 이 망할 건 평생 외워지지가 않는다고. 해독에 드는 시간 절반 정도는 내가 보고 있는 게 뭔지 구분하는 데 써야 한다니깐."
드레이코가 놀리듯 말했다. "시력 검사를 받아 보는 건 어때."
"내 눈이 문제인 거면 좋겠다," 그녀가 우울하게 말하며 의자에 몸을 뒤로 기댔다. "그냥 내가 룬 문자에 끔찍하게 재능이 없는 거야. 늘 그랬어."
"그럼 이 수업 철회해."
"못 해. 룬 문자 때문에 여름에 엄마랑 엄청 다퉜거든. 다시 그 짓을 할 수는 없어." 그녀가 심호흡했다. "그, 음… 너희 부모님은 좀 어떠셔?"
"잘 계셔," 그가 간결히 말했다.
"드레이코… 아무하고라도 얘기는 좀 해 봤어?"
그가 놀라서 그녀를 올려다 봤다. "당연하지. 네가 왜 그렇게까지 신경 쓰는지도 모르겠다. 내 재판도 아니고 우리 아버지 재판인데."
"그래도 네 아버지잖아."
"그거 틀렸다," 다프네가 표시한 룬 문자 가운데 하나를 짚으며 드레이코가 말했다. "그건 '태양'이야."
"맞네. 미안. 이것도 틀린 것 같은데―'나무'가 맞지?"
"맞아."
"어쨌든, 네 아버지잖아, 드레이코. 그리고 그 분이 전투 때 어떠셨는지 알아. 널 찾느라 정신없이 돌아다니셨다더라… 그 분이랑 너희 어머니께서 말이야… 사람들 말로는 너희 부모님은 아예 전투에 참여하지도 않으셨다던걸… 네가 어디 있는지 묻고 다니느라…"
드레이코는 손떨림을 멈추려 테이블에 대고 손을 꾹 눌렀다. 예의 끔찍하고 토할 것 같은 감각이 뱃속에 차오르고 있었다. 순식간에 그의 머릿속은 비명을 지르는 사람들과 성 이곳저곳에서 메아리치는 쾅쾅 소리, 그리고 필요의 방에서의 기억으로 가득 찼다… 상상조차 힘든 열기 속에서 죽고야 말 것이라 확신하며, 어쩌면 죽는 것도 그렇게 끔찍하지만은 않을지 모른단 생각을 하던 그 때로…
"드레이코?" 다프네가 깃펜으로 그의 손을 쳤다. "괜찮아? 화나게 하려던 건 아니었어."
"화 안 났어," 그가 불명확하게 말했다. "마지막 룬 문자가 무슨 뜻인지 기억이 안 나서."
"그래… 아무튼 네가 나한테 말해 준다면 좋겠어. 우리 슬리데린들끼리 단합해야 하잖아?" 그녀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올해 너 너무 조용해. 잘 먹지도 않고. 휴게실에서 우리랑 별로 어울리지도 않잖아. 힘든 일이 있으면 언제든 나한테 말해도 되는 거 알지?"
"그래." 몹시 불편해져서, 그는 자세를 고쳐 앉고 교과서에 시선을 고정했다. 아직도 어머니의 공포에 질린 얼굴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녀가 어떤 얼굴로 그를 보면서 함께 도망치자고 빌었는지 그는 선명히 기억했다. 자비롭게도, 그 순간 배블링이 수업이 끝났음을 선언하며 남은 걸 다음 주까지 과제로 해 올 것을 상기시켰다.
"그래도 에세이는 없네," 다프네가 밝게 말했다. "그리고 오늘 저녁에 스테이크랑 키드니 파이 나온다더라."
드레이코는 머릿속을 맴도는 걱정거리를 무시하느라 저녁 식사 시간에도 조용했다. 한 달 넘게 어머니로부터 소식을 듣지 못했고, 그가 호그와트로 떠나던 날 그녀가 지었던 초췌하고 창백하며, 생기 없던 표정이 신경 쓰였다. 그는 어머니가 신문을 읽고 있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포터를 구해 내는 데 그녀가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는 사실은 모두가 잊어버린 것 같았다. 다프네가 했던 말을 떠올리고 그는 고통스러워졌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온 성을 뛰어다니며 그의 이름을 부르고, 그를 본 사람이 없는지 묻고 다녔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는 가족들을 어둠의 마왕의 비호 아래로 돌려놓으려 망할 필요의 방에서 영웅 놀이나 하고 있었다. 그는 겁에 질렸었고, 자신과 가족을 구하기 위해 순전히 본능만을 따라 정신 나간 짓을 하고 있었다. 가끔 그는 그가 어디까지 할 수 있었을지가 두려웠다… 무슨 짓을 했을련지.
"수업 때 네 기분을 상하게 한 게 아니었으면 좋겠다, 드레이코." 다프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뭐라도 좀 먹어. 속상하다."
"점심을 많이 먹어서 그래," 그가 거짓말했다. "내일까지 끝내야 하는 마법약 에세이도 있고. 나중에 보자."
그는 대연회장을 급하게 빠져나가며 그리핀도르 테이블에 포터와 그의 친구들이 없다는 걸 눈치챘다. 그런 걸 바로 알아챘다는 사실에 자괴가 몰려왔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와 포터는 언제나 서로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지 않았던가? 다소 이상한 방식이긴 해도 그들은 여태껏 그런 식으로 서로의 안부를 확인해 온 셈이었다. 그들 사이의 경쟁 심리는… 더이상 그게 어디서부터 시작된 건지도 알 수 없었다. 1학년 초에 포터가 친구가 되자는 그의 제안을 거절한 건 맞지만, 서로를 향한 경멸은 그보다 훨씬 더 전부터 내재해 있었던 게 분명했다… 어쩌면 그들이 태어나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갈는지도 몰랐다. 슬리데린과 그리핀도르, 양극단에 선 존재들. 어떤 방식으로는, 드레이코는 그가 된 적 없는 것으로 그 자신을 정의하기도 했다―그는 그리핀도르가 아니었고, 포터가 아니었으며, 한 번도 옳은 쪽에 서 있던 적이 없었다. 그 모든 걸 빼고는, 대체 어디에 서야 할지 그는 알 수 없었다.
***
휴게실에 앉은 드레이코는 마법약 교과서를 완전히 외면한 채 손목시계가 째깍이는 것만을 지켜보고 있었다. 9시까지 10분이 남아 있었다. 그는 몸을 가만히 두지 못했다: 한 순간엔 무릎에 책을 얹은 채 다리를 꼬고 있다가도, 다음 순간 쿠션을 베고 소파에 몸을 뉘였다가, 일어서서 두 발로 땅을 딛고 서는 것이었다. 그는 정신없이 계속 휴게실 안을 둘러보았다. 저 멀리 구석진 곳에서 2학년생 한 무리가 폭발 카드 놀이를 하고 있었다. 상급생들은 벽난로 근처에 붙어 있었다. 대부분은 공부를 하고 있었지만, 드레이코가 잘 모르는 몇몇 5학년생들은 낮은 소리로 소곤거리고 있었다. 다른 8학년 동급생들은 도서관에 갔다. 드레이코는 그들이 아직 돌아오지 않았단 사실에 놀랐다. 높은 확률로 오다가 주방에 들렀거나, 노트가 호그스미드에서 가져온 파이어위스키를 마실만한 곳을 찾아냈을 게다.
9시 5분 전. 휴게실의 비교적 조용한 쪽에 앉은 그는 귓가에 자신을 찾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그가 고문 당하고, 불구가 되고, 죽임을 당하는 모습을 지켜본 사람들의 목소리에 어머니의 목소리가 섞여들었다. 그는 벌떡 일어나 가방에 교과서를 쑤셔 넣고는 생각이 바뀌기 전에 휴게실을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반쯤은 친구들과 마주쳐 강제로 계획을 바꿀 수밖에 없게 되길 바랐으나, 느린 걸음으로 성을 가로지르는 동안 그는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7층 복도를 걸어 내려왔을 때, 그는 벽면에 고풍스러운 문이 나타나 있는 걸 보고도 놀라지 않았다. 문고리를 붙잡고 심호흡한 후, 그는 안으로 들어갔다. 이번에 방의 모습은 달라져 있었다: 거의 아무것도 없는 건 여전했지만, 이번엔 커다랗고 해진 소파가 있었다. 그 위에 포터가 앉아 있었다.
포터가 시선을 위로 해 그를 보았다―드레이코는 그가 놀란 건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남색의 스웨터에 청바지를 입은 그는 이상하도록 편해 보였는데, 무릎에 놓인 책을 읽고 있었다. "말포이," 그가 평연히 말했다.
"포터." 여기 오기는 했지만 드레이코는 무슨 말이나 행동을 해야 할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가 주머니에 손을 밀어 넣었다.
"네가 올지 안 올지 몰라서 네게 방문이 보이게 하라고 해 뒀어. 혹시 올 수도 있으니까."
"음, 이렇게 왔네." 그가 포터의 시선을 피하며 주위를 둘러봤다.
포터가 소파에서 움직이더니 옆자리를 두드렸다. "자. 앉아."
경계하며 드레이코가 그의 옆에 앉아 바닥에 가방을 내려놓았다.
"날 피하고 있었지," 포터가 말했다. 화난 것 같진 않았다.
"분명히 말해 두지, 포터. 네 뒤꽁무니를 쫓아다니는 것 말고도 내게는 해야 할 일이 많아." 그가 코웃음 쳤다. 전처럼 거만하고 무신경한 체 하는 편이 더 대하기 쉬웠다. "바빴어."
"나랑 눈 마주칠 때마다 토할 것 같은 표정이던데."
드레이코는 얼굴을 붉혔다. "뭐, 내가 네 흠모자들처럼 웃어 주거나 기뻐해 주리라 기대했던 건 아니지 설마?"
"그럼 뭐하러 왔는데?" 포터가 그의 얼굴을 살폈고, 이 좁은 방 안에는 그가 숨을 곳이 없었다. 이건 끔찍한 실수였다.
그는 맨 처음 떠오른 생각을 말했다. "아직 나한테 10갈레온 빚졌잖아."
포터는 말없이 주머니를 뒤졌다. 그가 금화 한 줌을 꺼냈다. 드레이코는 코웃음치며 시선을 돌렸다. 포터는 손을 뻗어 드레이코의 손을 움켜잡고는, 손바닥을 위로 하도록 뒤집어 그 위에 갈레온을 정중히 내려놓았다. 드레이코는 숨을 참았다. 포터가 방금 자신의 손을 잡았단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비록 거기에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할지라도.
"자. 여기 네 10갈레온."
이제 어떡해야 하지? 이대로 포터의 돈을 받는 건 쪼잔하게 느껴지고 자존심이 상했지만, 다시 돌려준다면 그는 거짓말을 한 것이 될 터였다. 바보가 된 기분을 느끼며, 그는 주머니로 금화를 밀어넣었다.
포터는 여전히 그를 보고 있었다. "이제 가도 되겠네. 내가 빚진 건 그게 다였지?"
"그래."
목소리가 떨리게 나와서 드레이코는 당황스러웠다. 목을 가다듬고, 그가 말했다. "하지만 계약이 있었잖아. 한 시간에 20갈레온이라고 했었지. 매주 한 시간씩."
포터가 눈썹을 치켜올렸다. "어―맞지. 그럼 너, 음… 우리 지금…?"
"연습은 했고?" 드레이코가 소파에서 일어서며 가볍게 물었다. 상황의 주도권을 되찾으니 좀더 편안한 기분이 들었다.
"음―그래. 어젯밤에 무언으로 물건 띄우는 연습 했어."
"어디 한 번 보자."
포터가 가방에서 몇 가지 물건들―깃펜, 잉크병, 양피지 조각―을 꺼내서는 바닥에 늘어놓았다. 드레이코는 방해가 되지 않도록 구석에 서서 포터가 준비하는 걸 보고 있었다.
"긴장 풀어," 그가 상기했다. "또 굳어 있잖아. 지난 시간에 했던 거 기억은 나?"
등을 보이고 서서, 포터는 조용히 말했다. "지난 시간에 뭐 했는지 전부 기억나."
드레이코의 얼굴이 희어졌다. 정신을 차리며, 그가 거칠게 말했다. "그래. 자, 그럼 편하게 해 봐. 어깨가 완전히 굳어 있어, 너."
포터가 어깨를 돌리고 팔을 쭉 뻗었다. 그가 바닥에 놓인 잉크병에 대고 지팡이를 겨누었다.
"지팡이 잡는 법 신경 써," 드레이코가 일깨웠다. 그는 포터가 손가락을 움직여 좀 더 섬세하게 지팡이를 고쳐 쥐는 모습을 지켜봤다.
얼마 후, 드레이코는 잉크병이 약간 움찔하는 걸 본 것도 같았다.
"어젯밤에는 제대로 됐었어," 포터가 불평했다. "네가 한 번 해 봐."
"그래." 그가 앞으로 나서 지팡이를 들어올렸다. 그가 지팡이를 위쪽으로 한 번 휘두르자 잉크병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공중에 잉크병을 띄워 놓은 상태로 드레이코는 포터 쪽을 봤다. 열렬한 시선이 느껴졌다. 그가 지팡이를 아래로 내리자 잉크병이 부드럽게 바닥에 내려앉았다.
어쩐지 긴장하여 그가 말했다. "그러니까, 난… 침착하고, 자신 있게, 걸어야 할 주문을 떠올리기만 해… 거창하게 생각할 거 없어. 정신을 집중하고 단순하게 생각하는 거야."
"다시 해 봐."
"명령질 하기는," 그가 핀잔했다. 포터가 아무 말이 없자, 그는 한숨을 쉬고 깃펜 쪽을 향했다. 지팡이가 한 번 더 휘둘러지고, 그것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깃펜을 도로 끌어내리며, 그는 포터가 지팡이 움직임이나 깃펜이 아닌 그의 얼굴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네 차례야."
"이거 스트레스 받는다. 이유는 모르겠는데," 포터가 말했다. "소리 내서 주문을 욀 때는 꽤 자신이 있었어. 근데 무언으로 해야 하면 왠지 모르게 너무 긴장하게 돼. 마치 시작하기도 전에 안 될 거란 걸 알고 있는 것처럼."
"음, 너부터가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는데 네 마법이나 지팡이라고 그럴 리 없잖아?"
"그건… 한 번도 그런 식으론 생각해 본 적 없어."
드레이코가 씩 웃었다. "자신감이 부족한 게 너 혼자는 아닐걸, 포터."
"난 그냥 안 돼," 그가 중얼거렸다. 그가 지팡이를 꺼내어 깃펜을 겨누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런, 젠장." 드레이코가 한탄하며 그에게로 다가섰다. "하나도 안 들었잖아―그게 네 문제라고." 그는 팔을 뻗어 포터의 어깨를 잡고 아래로 눌렀다. "힘 빼. 왜 항상 저주당하기 일보직전인 것처럼 힘 주고 있는 건데?" 그가 신경질적으로 포터의 손을 붙잡아 손가락을 펼쳤다. "그리고 너 지팡이 잡는 법 누구한테 배웠냐?"
"아무한테도 안 배웠는데."
"아, 참 훌륭하셔." 그가 한숨 쉬었다. "부드럽게. 단단히 잡되 그 망할 걸 부러뜨리려 들진 마."
"내가 지팡이 잡는 게 뭐가 잘못됐는데?" 포터가 화를 내며 물었다. "여태까지 이렇게 잘만 했다고."
"그럼 나한테 알려 달라고 하질 말든가. 네가 도와 달라고 했잖아."
포터가 숨을 크게 내쉬었다. "그래. 알겠어. 이렇게?" 그가 손목에서 힘을 풀었다.
"나아졌어. 지팡이가 네 손의 연장선인 것처럼, 신체의 일부로 느끼도록 해 봐. 마법이 그 길을 따라 흘러갈 거야. 최대한 마법이 지나가기 쉽도록 길을 만들어야 해."
포터가 깃펜에 집중한 채 심호흡을 하고, 지팡이를 위쪽으로 튕겼다. 깃펜이 펄쩍 뛰어올랐다.
"좋아. 다시 해보자."
몇 번 더 시도하자 깃펜은 흔들리며 바닥에서 1피트 정도 떠올랐다.
"잘 했어. 계속 집중해."
얼마 후, 깃펜이 아래를 향해 곤두박질쳤다.
"뭐야?" 포터 쪽을 봤다가 그가 얼마나 세게 지팡이를 꽉 쥐고 있는지 보게 된 드레이코가 눈을 가늘게 떴다. "포터! 내가 방금 뭐라고 했지? 계속 잊어버리잖아." 그는 포터의 손을 붙잡고 제 손가락으로 포터의 손가락을 하나하나 떨어뜨려 놓았다. "좋아. 지팡이 끝이 약간 아래를 향하게 해, 이렇게. 이제 속으로 주문을 외우는 거야, 윙가르디움 레비오우사… 그냥 생각만 하는 게 아니라 주문이 의식 속으로 흘러들어오게끔. 단순히 글자가 아니라 의미를, 의도를, 네가 뭘 하려고 하는지 목적을 생각해. 주문이 작동하는 모습을 그려 봐."
그는 깃펜이 다시 떠오를 때까지 그 자리에 포터의 손을 잡고 서 있었다. 깃펜은 공중에 머물렀다. 드레이코가 포터의 손을 슬며시 오른쪽으로 밀자, 깃펜이 오른쪽으로 움직였다. 다시 포터의 손을 왼쪽으로 움직이니 깃펜도 왼쪽으로 움직였다.
"자," 그가 만족해 말했다. "이제 좀 낫네."
별안간 의식이 된 드레이코가 손을 놓았다. 그는 포터가 깃펜을 방 안에 둥둥 떠다니게 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이상한 기분이 들었지만 불안이 그를 잠식해오려 할 때의 느낌은 아니었다. 포터 옆에 서 있으려니 위장이 온갖 방향으로 뒤틀리며 난리를 쳐 댔다. 포터는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그는 실실 웃으며 깃펜으로 일련의 공중제비 묘기를 부리고 있었다.
"감 잡은 것 같네," 드레이코가 말했다. "이제 혼자 해도 되겠다."
"뭐? 안 돼." 포터가 놀라서 돌아봤다. 깃펜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제 시작이잖아. 기초보다 훨씬 더 제대로 하고 싶다고. 다음주에는 기절 마법 해 보자."
"아 그래, 멋진 생각이네." 그가 조소하며 말했다. "날 기절시키곤 여기서 썩게 두려고."
"내가 널 다치게 할 일은 없어." 포터가 조용히 말했다.
드레이코의 입이 말랐다. 포터의 목소리에는 어딘지 다정한 구석이 있어 그는 어떻게 반응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전에 한 말 진심이었어. 계속… 지난번 생각이 나. 파티 날 밤이랑."
"무모한 짓이었어." 포터의 눈을 피하며 드레이코가 중얼거렸다. "누군가 봤을 수도 있다고."
"어쩌면 난 신경 안 쓸지도." 포터가 잠시 생각하고는 말했다. "오늘은 왜 온 거야? 분명 안 올 거라고 생각했어."
"그럼 넌 왜 왔는데?"
"보고 싶었으니까. 너도 날 보고 싶어했으면 했고."
드레이코는 비웃으려 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계약은 계약이야."
"맞지. 까먹었네." 포터가 주머니를 뒤져서 20갈레온을 더 꺼냈다. "자."
이제 그는 정말이지 당황스러워졌다. 그건, 포터의 돈을 받는 건, 잘못된 것처럼 느껴졌다. 특히나 그런 일이 있고 나서는…
"어서, 가져가."
"됐어, 포터."
"뭐? 네가 좀 전에 그랬잖아, 계약은 계약이라고." 포터는 손 안에서 갈레온을 굴리며 순진하게 그를 올려다 봤다.
"돈은 넣어 둬. 잊어버려."
포터가 한 걸음 다가와 드레이코의 주머니로 손을 뻗었다. 잠시 그는 포터가 지팡이를 가져갈 것이라 생각해 겁에 질렸으나, 포터는 주머니에 갈레온을 밀어넣을 뿐이었다. 마지막 금화가 손을 떠나고서도 한참 동안 포터는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그들의 가슴이 닿을 듯 말 듯한 거리에서 포터의 손이 드레이코의 입술을 쓸었다.
"고마워," 드레이코가 속삭였다. 그는 포터의 환상적인 녹색 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적어도 거기서 악의는 보이지 않았다.
"천만에." 포터는 아무것도 이상할 게 없다는 듯 그렇게 말했다. 마치 그들이 펍에서 만난 친구들이고 방금은 그가 술 한 잔 사기로 했을 뿐이란 듯이.
"그럼 난 이만… 가 볼게." 드레이코는 그렇게 말하며 움직이지 않았다. 순식간에 그 안의 모든 것들이 그에게 팔을 뻗어 포터를 만지라고, 그를 끌어안고 그들이 누군지 따위는 전부 잊으라며 아우성치고 있었다. 한편 그의 다른 일부는 이건 일반적이지 않다며, 이건 그와 포터가 서로를 대해야 하는 방식이 아니라고―그들은 서로를 미워해야만 한다고―다급하게 외쳐 댔다. 그는 포터가 빈센트에 대해 뭐라고 말했었는지, 그게 얼마나 끔찍하게 오만했었는지 기억하려 했지만 그 분노는 포터의 살갗이 제게 닿는 감각을 열렬히 갈구하는 욕망에 의해 잠식되었다.
"가지 마." 그들이 그렇게 가까이 서 있지 않았더라면 드레이코는 그 말을 듣지 못했을 것이다. 포터는 거의 입모양으로만 말했다.
"가야 해."
"아니, 그렇지 않아." 포터가 드레이코의 어깨에 양 팔을 둘러 목 뒤에서 손을 마주 잡았다.
"뭐 하자는 건데?" 드레이코가 중얼거렸다. 입술이 맞닿을 것처럼 가까웠다. 고개를 앞으로 조금 기울이기만 한다면… 포터가 바로 앞에 있었다.
"무슨 뜻이야?" 포터는 눈이 풀려 있었다.
"뭐 하자는 거냐고, 포터. 이건…" 포터가 그 어느 때보다도 조심스럽게 입술을 맞붙여 와서 그는 말을 끝낼 수 없었다. 드레이코는 차마 움직이지 못하고 부동의 자세로 서 있었다. 그가 드레이코의 아랫입술을 느리게 잘근거렸다. 포터의 손이 머리칼을 헤집어 왔다.
"원치 않는다고 말해," 포터가 입술새로 호흡했다. "그렇게 말하면, 갈게. 더 이상 널 귀찮게 하지 않을게. 우린 아무 일도 없었던 거야."
드레이코는 목에 무언가 걸린 듯했다. 그는 포터의 허리에 손을 두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스웨터 아래 포터의 살갗은 따뜻했다. 허리가 가늘고 단단했다. 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갑작스럽게 모든 접촉과 모든 감각, 모든 사소한 것까지를 기억하는 일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게 느껴졌다.
"가라고 말해, 그럼 갈 테니까." 포터의 손이 단추로 미끄러져 왔다. 그는 첫 번째 단추를 풀고는, 두 번째, 그리고 세 번째 단추까지 차례로 풀었다. 드레이코의 얇은 교복 셔츠를 젖히며, 그가 방금 드러내게 한 조금의 맨살갗 위로 손가락을 굴렸다. 드레이코는 포터의 스웨터를 잡아당겼다. 포터는 군말없이 양팔을 들어올려 드레이코가 그를 밑에 받쳐 입고 있던 검은 티셔츠 차림으로 만들 수 있도록 했다. 드레이코는 이다지도 긴장한 것에 대해 스스로를 질책했다. 솔직히 말해 그가 신혼 첫날밤을 앞둔 동정인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왜 때문인지, 포터를 앞에 두고 이렇게 서 있자니 그는 형언할 수 없을만큼 취약해진 기분이 들었다. 그 사실이 그를 두렵게 했다.
마치 그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포터는 두 손으로 드레이코의 얼굴을 감쌌다. 포터의 손은 크고, 강인하며, 거칠었는데도 그는 안 어울리게 조심스럽게 굴고 있었다. 마치 드레이코가 유리로 만들어지기라도 했다는 듯이.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는 자신이 이걸 필요로 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기실 그는 몹시 유약하여 언제 산산조각나 깨져 버려도 이상하지 않을 듯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이것뿐이었다. 그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이제껏 그는 제법 다양한 놈들과 훨씬 더 대담한 짓거리들을 해왔다. 하지만 그들 사이의 지난 사건들이 그러했듯이, 이건 무언가 다른 기분이 들었다.
드레이코는 그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그렇게 옷을 거의 다 갖춰입은 채로 서로를 탐색하며 서 있기만 했는지 알 수 없었다. 포터가 시간을 들여 드레이코의 입술과 턱선, 목선을 덧그리는 동안 드레이코는 천천히 포터의 등허리께를 따라 손을 문질렀다. 그는 포터의 넓고 단단한 어깨가 자신에게 특별히 매혹적으로 느껴진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자꾸만 포터의 팔에 손바닥을 비비며 포터가 낮게 목을 울리며 신음하는 소리에 하나하나 신경 쓰게 됐다. 마침내, 그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포터는 그 소리가 그에게 어떤 작용을 하는지 알고 있는 게 확실했다. 그가 입술을 맞부딪히자 포터는 그의 입 안에 대고 신음했고, 만약 그가 이렇게까지 긴장하고 또 흥분한 상태가 아니었다면 그는 분명히 비죽 웃었으리라.
순간 그는 포터가 남아 있는 그의 셔츠 단추를 풀려고 하는 중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포터가 마침내 마지막 단추를 열고 드레이코의 살결에 손을 문질렀을 때, 그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굳은살 박인 포터의 손이 닿는 느낌에 그는 몸을 떨었다. 포터가 그의 셔츠를 벗겼을 때 그는 불현듯 어둠의 표식 생각에 팔을 붙잡고 당황했지만, 포터는 조용히 고개를 젓고는 드레이코의 손을 거기서 떼냈다. 그는 덤덤한 얼굴로 표식을 내려다보더니 드레이코를 가까이 끌어당겼다. 다시금 드레이코는 그가 얼마나 점잖은지에 대해 놀랐다. 그는 포터가 복도에서 장난스럽게 친구들을 밀치곤 하던 것과 마법약 시간엔 재료들을 어찌나 거칠게 다루는지 종종 모든 걸 처음부터 다시 해야만 했던 것에 익숙했다. 하지만 여기서는 포터의 모든 움직임이 신중하게까지 느껴졌다.
"해본 적 있어?" 그가 별안간 물었다.
포터가 놀란 얼굴로 그를 올려다봤다. "딱히."
"무슨 뜻이야?"
그는 침묵하고 드레이코의 팔을 위아래로 쓰다듬었다. 포터가 그의 앞에서 마치 사냥감을 덮치려는 사자와 같은 눈빛을 하고 있어서인지 그는 이상하게 주변이 의식되는 듯했다. 그가 스스로를 가리려고 양팔로 배를 감쌌지만 포터가 팔을 치우게 했다. 드레이코는 그가 "아니,"라고 속삭이는 걸 들었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남자랑 자본 적 없어?"
포터가 고개를 저었다. 드레이코는 심박이 빨라지는 걸 느꼈다. 그가 포터의 처음이라는 사실엔 어딘가 거부할 수 없을만큼 유혹적인 구석이 있었다.
"너… 남자 좋아해?"
다시, 포터는 고개를 저었다. 그가 셔츠를 벗었다. 드레이코는 그를 도와 팔에서 옷을 빼내고 한쪽에다 던져 놓았다. 그가 침을 꿀꺽 삼켰다. 포터는 늘씬하게 잘 빠진 데다 피부는 그을려 있었다.
"남자를 안 좋아한다고," 그가 말했다. 그는 참지 못하고 손을 뻗어 포터의 가슴에 얹었다. "그럼… 대체 왜…?"
드레이코는 포터가 벨트로 손을 뻗어 버클을 풀기 시작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한 번도 이 짓을 해본 적 없는 사람이라기에 그는 자신에 차 보였다. '오만한 포터,' 드레이코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그건 반만 진심이었다. 사실 그는 포터의 자기확신이 합당하다고 여겼다. 대개 그는 이런 상황에 주도권을 가져오는 편이었지만, 여기서라면 포터가 그를 리드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바지와 함께 양말과 신발까지 벗겨졌고, 포터가 그를 소파로 밀고 갔다. 그는 앉아서 포터를 무릎 위로 끌어당기곤 키스했다. 그는 포터의 청바지를 끌어내리려 했지만 포터가 손을 떼냈고, 그는 어느새 바닥으로 미끄러지듯 내려가 드레이코의 무릎 사이에 자리잡은 채였다. 분명, 그럴 생각은…
포터가 그를 눈짓했다. 얼굴에 굶주린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드레이코는 거의 나신인 채 그렇게 앉아서, 무릎 사이에 포터를 두고 있는 게 어쩐지 굉장히 부끄럽게 느껴졌다. 녹색 눈이 그의 전신을 낱낱이 파헤치고 있었다. 천천히, 조심스럽게, 포터는 드레이코의 허벅지 위로 입술을 붙여 왔다. 그는 탄식하며 포터의 머리칼에 손가락을 얽었다. 포터는 허리 밴드를 따라 입을 맞추고 불룩해진 드레이코의 아랫도리를 입술로 훑어 가며 그를 놀리고 있었다―그는 정말이지, 고통스러울 정도로 흥분해 있었다.
"포터…" 그가 자세를 고치며 앓는 소리를 냈다.
포터가 위를 보고는 씩 웃었다. 그 모습에 드레이코는 그의 머리칼을 더욱 세게 움켜쥐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그 포터가 그를 이렇게까지 동하게 할 수 있을 거라곤 생각해본 적 없었다. 부어오른 포터의 분홍빛 입술이 제 창백한 피부에 맞닿는 걸 보는 그는 마치 최면에 걸린 듯한 기분이었다.
"해도 돼?" 포터가 허리 밴드를 잡은 채 물었다.
"해." 그가 숨을 내뱉었다. 생각이 바뀌기 전에, 포터가 그의 속옷을 끌어내렸다. 이제 숨을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꼿꼿이 선 그의 것이 포터의 앞에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그가 손을 뻗어 드레이코의 성기를 쥐었다. 실험적으로 몇 번 손을 위아래로 움직여 보더니, 포터는 곧 엄지손가락으로 끄트머리를 문질렀다. 드레이코는 제가 벌써부터 질질 흘리고 있다는 사실에 부끄러워졌지만―어떻게 이럴 수가?―포터는 거기 동한 듯했다. 그가 엄지를 입가로 가져가 머뭇거리다 핥아 보더니 드레이코가 그를 보는 시선을 눈치채곤 입꼬리를 올렸다.
"괜찮아?" 포터가 갈라진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
포터가 손에 약간 더 힘을 주고는 위아래로 움직이기를 계속하며 틈틈이 드레이코의 반응을 확인하기 위해 올려다봤다. 그는 반응을 자제하여 지루하고, 덤덤하고, 무심한 체 하려고 애썼으나 무릎 꿇은 포터를 눈앞에 둔 채로는 그러기가 말처럼 쉽지 않았다. 지켜보던 그는 포터가 그의 것을 입에 머금었을 때 완전히 정신을 빼놓고 말았다. 그는 잠시간 망설이는 듯했고, 드레이코가 관두라고 말하려 했을 때 포터가 길고 강하게 성기를 빨아들였다. 드레이코의 머리가 뒤로 젖혀졌고 그는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고심하듯 흥얼거리던 포터는 입을 떼기 전 몇 번 위아래로 움직였다. 그가 끄트머리에 멈춰선 주위로 느리게 엄지를 굴렸다. 확실히, 드레이코를 미치게 할 작정이었다. 드레이코는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고 가슴에 열기가 퍼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그러다 포터가 돌연 그의 것을 끝까지 빨아들이는 바람에 그는 낮은 신음을 토했다.
세상에 둘만 남은 것 같았다. 포터는 뺨이 상기돼 있었고, 젖은 입술은 붉었으며, 눈을 감고 있었다. 그는 정신을 온통 거기다 쏟기라도 한 것처럼 거침없이 성기를 빨았다. 머리칼은 그 어느 때보다도 헝클어져 있었다. 드레이코는 손을 뻗어 포터의 얼굴을 감싸쥐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진짜라는 걸 확인하려면 만져봐야만 했다. 그의 존재가 안심을 줬다. 포터는 이제 드레이코의 성기 뿌리 쪽을 단단히 붙잡고 규칙적으로 빨아들이고 있었다. 그는 사정이 임박했음을 깨달아 당황했다. 꼬이는 듯한 그 익숙한 느낌이 아랫배 쪽에서 스멀거렸고, 그는 포터가 자신을 끝까지 몰아붙이는 것을 무력히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포터," 그가 경고했다. "나 이제…"
답하지 않는 포터를 그는 밀어내려고 했다―그의 입 안에 대고 사정하는 건 너무 사적이고 비현실적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포터는 앓는 소리를 내며 손목을 붙잡고 하던 걸 계속했다. 손목을 붙잡은 포터의 손이나 곧 갈 것이라 경고했음에도 빠는 걸 멈추지 않는 그의 모습은―그건 드레이코에게 너무 과했다. 그는 새된 신음과 함께 포터의 입 안에 사정했다. 젠장. 젠장. 전부 삼켜낸 포터가 그를 바라보며 욕망 가득히 좆을 움켜쥐었다 놓으며 구슬렸다.
기진맥진해져서, 드레이코는 포터가 도로 무릎 위에 올라온 것도 간신히 눈치챘다. 엷은 미소가 얼굴에 떠올라 있었다. 드레이코는 스스로 꽤 만족스러웠던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대개 그는 섹스 후 스킨십하는 걸 싫어했다. 어쩌면 갑작스러운 피로 탓일지도 몰랐지만, 그는 포터가 목 옆을 지분대는 사이 그의 등을 만지작거리는 것밖엔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괜찮았어?" 포터가 작게 물었다.
"그래, 그건… 그래." 평정을 되찾기 위해 애쓰며 그가 물었다. "진짜 처음이었어?"
"그래."
"당연히 넌 좆 빠는 일에도 몇 년은 해온 것처럼 능숙하겠지," 그가 중얼거렸다. 포터는 웃었다.
감각이 돌아오기 시작하자 그는 포터가 청바지 아래로 얼마나 흥분해 있는지 의식하게 됐다. 그를 만져 줘야 한다는 생각에 피로가 가셨다. 하지만 그가 청바지를 내리기 시작하려 하자 포터가 만류했다.
"다음에."
"뭐?" 드레이코는 얼굴을 찡그리고 다시 손을 뻗었다. 포터가 그 손을 잡아 치웠다.
"아니야." 그는 일전에도 들은 적 있는 완고하고, 진지하며, 비이성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다시금 드레이코의 뱃속에서 나비들이 날아올랐다. 심장이 한두 박자를 건너뛰었다고 그는 확신할 수 있었다.
"네가 그렇다면야." 그는 다시 느껴지는 절박한 충동을 애써 감추며 그렇게 말했다. 쟤는 뭐가 문제지? 혼란스러운 것만큼이나 짜증이 솟구쳤다.
포터는 언쟁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대신, 그는 몸을 기울여 부드럽게 키스했다. 드레이코는 피부가 맞닿는 온기를 의식하며 마주 입 맞췄다. 포터가 몸을 뗐을 때 그의 아래는 다시 단단해지고 있었다.
"가야 해," 그가 속삭였다.
"그래." 둘 중 누구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럼, 다음 주 화요일도?"
"연습하게? 아니면… 이거?"
"둘 다. 너도 알겠지만… 네가 계속 나한테 무언 마법을 가르쳐 준다면, 이런 일은 더 자주 발생하게 될 거야."
드레이코가 눈썹을 들어올렸다. "무슨 뜻이지?"
"무슨 뜻이냐면…" 포터가 씩 웃었다. "네가 아직까지 몰랐다는 게 신기한데, 너 진짜 섹시해. 아무렇지도 않게 무언 마법 척척 해낼 때 말이야."
"놀리네, 이제."
"아냐," 그가 항의했다. "내가 항상 쳐다보고 있던 걸 눈치챘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음, 어쨌건…"
포터는 확실히 부끄러운 듯했고 그 사실이 드레이코를 기쁘게 했다. "그게 마음에 들었나, 포터?" 그가 느릿느릿 말했다. "널 침대로 끌어들이기가 이렇게 쉬울 줄 몰랐지."
"네가 내 입에다 싸게 하는 게 이렇게 쉬울 줄도 몰랐고."
젠장, 어떻게 저런 말을 하는 거지? 그는 젠장할, 포터였다. 세계의 구원자. 순진하고, 꽉 막힌 포터. 사내놈들의 좆을 빨고 다니며 그에 대해서 이렇게 직설적으로 말하고 다닐 리 없는.
"입이 더럽네," 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포터가 웃었다. "그럴 지도. 자, 가자. 우릴 찾으러 순찰대가 파견되겠다."
드레이코는 침묵 속에 옷을 입으며 포터가 다시 무언으로 잉크병을 공중부양 시키려 하는 걸 구경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가 다시 연습을 재개할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어쩌면 포터에게 이건 기숙사로 돌아갈 즈음 잊어버릴 사소한 장난처럼 아무 일도 아니었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렇다면 너무 당황스러웠다. 포터는 진심인 것처럼 굴었고, 몹시 확고하고 또 진지해 보였는데 이제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도 태평해 보였다. 어떻게 이렇게 순식간에 태도가 바뀔 수 있지? 드레이코는 언제나 자신의 무관심과 하룻밤 상대에게 감정적으로 엮이지 않도록 하는 능력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하지만 셔츠 끝단을 바지에 밀어넣고 단추를 하나하나 채우며 그는 마음을 가다듬는 데 일정 시간이 필요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옷을 다 입으니 포터가 잉크병을 깔끔하게 공중 부양시켜 가방 안으로 넣었다. 그에 만족했는지 그는 바닥에 흩어진 양피지 조각들과 깃펜들 역시 같은 방법으로 정리했다.
드레이코가 나가려고 문을 열었을 때 포터가 다가와 구겨진 셔츠깃을 펴 주었다. "고마워, 그가 중얼거렸다. 이상하게 포터와 눈을 마주치기 어려웠다.
"먼저 가," 포터가 말했다. "누가 볼 수도 있으니까."
드레이코는 무엇이든 말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방을 빠져나와 복도를 빠르게 걸어 내려가면서 그는 이상하게 쿡쿡 찌르는 듯한 감정을 느꼈다. 휴게실에 도착할 때까지 마주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렇게 늦은 시각 돌아다니는 데 대한 마땅한 변명거리를 생각해낼 만한 정신머리가 남아 있는지 확신할 수 없었으므로 다행인 일이었다. 기숙사 방에 도착했을 때 시각은 열한 시를 지나고 있었다. 물론 노트와 자비니는 아직 안 자고 각자의 침대에서 뒹굴거리고 있었다. 노트가 어떤 빗자루?의 페이지를 넘기며 소리내 이것저것 읽어 주는 걸 자비니는 드러누워서 듣고 있었다. 드레이코가 들어가자 둘 다 이쪽을 쳐다봤다.
"어디 갔다 와?" 노트가 바로 물었다.
"징계."
"누구? 왜?"
"프라우드풋." 그는 맨 처음 생각난 이름을 댔다. "통금 넘어서 복도에 있다가 걸렸어. 술 마셨거든."
"그래서? 우린 이제 성년이잖아. 아직도 통금이 있단 게 말도 안 돼. 선생들 대부분 신경도 안 쓴다던데." 노트가 말했다.
"프라우드풋한테 따져 보든가."
"무슨 징계 받았는데, 드레이코?" 블레이즈가 물었다. 어투는 일상적이었지만 드레이코는 의심스러운 시선이 따라붙는 걸 느꼈다.
"베껴쓰기."
노트가 분개해 일어나 앉았다. "열여덟 살 먹고도 베껴쓰기를 해야 한다고? 우린 성년이라고! 그냥 가지 말아 버려. 뭐 어쩔 건데?"
드레이코는 거짓말한 게 후회됐지만 그것 말고는 할 말을 떠올리지 못해 어쩔 수 없었다. "퇴학시킬지도? 나야 모르지. 선생들을 자극하고 싶지 않아."
"새 파이어볼트 살 거야, 드레이코?" 노트가 다시 잡지를 보며 물었다.
"어쩌면." 물론 사지 않을 거였다. 그린고트 계좌에 돈이 얼마나 남았는지는 몰랐지만 그는 지난 며칠간 아버지가 인출해가는 거액에 충격을 받고 있었다.
"내 낡은 님부스를 바꿀 수 있다면 참 좋을 텐데," 노트가 슬프게 말했다.
"넌 경기 하지도 않잖아," 자비니가 놀렸다.
"그게 뭐? 여름 절반은 비행하면서 보냈어. 아직 님부스도 완전히 한물 간 건 아니지만, 그래도…"
드레이코는 잡담을 흘려 보내며 잠옷으로 갈아입었다. 포터의 입술이 살갗에 지워지지 않는 영구한 자국을 남기기라도 한 것마냥, 그는 옷을 벗는 즉시 두 친구가 그가 뭘 하고 온 건지 알아챌 것만 같아 두려웠다. 그리고 여전히, 짐가방 안에는 아버지의 꾸러미가 숨겨져 있었다. 밤마다 그는 몇 시간씩 누워서 그 벨벳 꾸러미 안에 뭐가 들어 있을지 상상하고, 생각할 수 있는 온갖 최악의 시나리오를 떠올려 보곤 했다.
그가 침대에 들자 다들 잠잘 채비를 했다. 자비니가 불을 꺼서 방 안을 어둠으로 물들였다. 커튼을 둘러친 제 침대에 누워서 드레이코는 마침내 혼자만의 생각에 잠길 수 있게 됐다는 안도감에 휩싸였다. 머릿속에 든 게 너무 많았다. 포터와의 일… 그 일이 있은 지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았건만 이미 그건 꿈처럼 느껴지고 있었다. 이상하고, 비현실적이며, 엄청나게 야한 꿈. 거기서 포터가 손과 입으로 그를 완전히 미쳐 버리게 했었다. 어쩌다가? 그게 제일 신경 쓰이는 부분이었다. 포터에 의하면 그는 남자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하고많은 실험 대상들 중에서 왜 그였을까? 그는 여전히 이게 다 계획된 것이고, 그가 무슨 치밀한 장난에 당하는 중이거나 더 나쁜 일에 연루된 것일지 모른단 공포를 떨쳐낼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포터가 지었던 표정은 부정할 수 없이 매혹된 자의 얼굴이었다. 그는 분명 웃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왜 드레이코가 만지는 것은 허락하지 않았나? 어쩌면 우월하신 몸이라 죽음을 먹는 자에 의해 스스로가 더럽혀지는 걸 감히 용납할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면 왜 그렇게나 열성적으로 무릎을 꿇었던 걸까…
그 생각에 그는 아래가 다시 단단해졌다. 망할,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만둬야 한다는 걸, 포터를 다시 만나지 않아야 한다는 걸 알았지만 포터와 함께 있는 동안엔 불안이 눈 녹듯 사라졌다는 불편한 진실이 다가왔다. 입으로 그를 가게 하는 포터의 거부할 수 없는 모습으로 머리가 가득찬 통에 부모님에 대해, 경제 사정과 아버지의 재판, 지난 4년간 일어난 모든 일들에 대해 걱정해야 한다는 사실까지도 죄다 잊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 한 시간 동안 포터는 그에게 도피처가 되어 주었다.
Chapter 12: xii.
Chapter Text
수요일과 목요일, 포터는 그를 거의 신경도 쓰지 않는 듯했다. 마법약 시간엔 이쪽을 쳐다보지도 않으며 위즐리와 정원 노움에 대한 멍청한 이야기만 시끄럽게 떠들어 댔다. 드레이코는 포터를 힐끔거리지 않기 위해 애쓰며 그가 얼마나 솜씨 좋게 마디풀을 꼬았으며 거머리를 작업할 땐 얼마나 단단히 나이프를 잡았는지도 눈치채지 않으려 했다. 이제는 위즐리와 일반 마법 과제에 대해 대화하며 재료들을 대충 던져 넣는 포터는 정말이지 여유가 넘쳐 보였다. 드레이코는 자비니의 옆에서 조용히 작업하며 포터가 그곳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굴려고 했다. 그러다 딱 한 번 포터가 이쪽을 바라봤을 땐 확실하게 눈을 피했다.
이유는 몰라도 그는 목요일의 스터디 그룹 일에 긴장이 됐다. 이제는 거의 모든 5학년에서 8학년까지의 학생들이 그 비공식적인 수업에 참가하고 있었다. 이번주에 그들은 O.W.L.과 N.E.W.T. 대비로 더 심화된 변환 마법을 연습하기로 되어 있었다. 포터가 학생들이 찻주전자로 변환시켜야 할 쿠션들을 일렬로 나란히 늘어놓았다.
"난 변환 마법에 별로 강하지 않아." 학생들이 둘씩 짝을 짓는 동안 포터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오늘은 네가 리드해야겠다."
"물론 넌 다 잘하겠지, 포터." 그가 후플푸프 6학년 여학생이 쿠션을 녹색에서 오렌지색으로 바꾸는 모습을 보면서 말했다.
"아, 내가 잘 하는 게 있긴 하지." 포터가 가볍게 말했다. "대체로 입으로 하는 게 그래."
드레이코가 놀라서 그를 봤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자는 암묵적 동의가 있었던 게 아닌가? 지금까지 그 규칙을 따르고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는 포터가 눈을 찡긋하고 방금 막 쿠션에 불을 낸 그리핀도르 5학년생을 도와주러 가는 걸 빤히 보고 있었다. 자리에 못박힌 듯 서서 미친 듯이 뛰는 심장박동을 진정시키려 애쓰며, 드레이코는 완전히 멍청이가 된 기분을 느꼈다. 혼란스러워져서, 그는 학생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지팡이를 너무 세게 휘두르거나 더 나쁘게는 주문을 잘못 발음하는 것들을 고쳐 주며 머릿속에서 포터를 밀어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변환 마법은 복잡한 것이라 재난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돌아다니며 그는 신경이 온통 예민해져 있었다. 시간이 끝나기 전에 감이라도 잡은 듯한 건 오직 몇몇뿐이었다. 물론 그레인저는 이미 쿠션을 화려하게 아름다운 찻주전자로 변환시켜 놓고 위즐리를 도와주고 있었다.
"자," 포터가 주의를 끌었다. "다들 열심히 해 줬어. 하지만 변환 마법은 갈 길이 먼 것 같네. 다음 몇 주 동안 거기 집중해 보자, 어때?"
"델라쿠르한테 와서 도와 달라고 하는 게 나을지도 몰라," 드레이코가 조용히 말했다.
"어―맞네," 포터가 말했다. 그는 놀란 것 같았다. "그래. 그거 좋은 생각이다."
"가끔은 나도 좋은 생각이란 걸 해." 슬리데린 쪽에서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좋지. 다음주에 와서 몇 가지 조언해주실 수 있는지 여쭤 볼게. 다들 어때?" 그가 모여 있는 학생들에게 물었다. 몇몇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다음 주에 보자. 다들 고마워. 연습 계속하고."
학생들이 나가자 드레이코는 모여 서 있는 슬리데린 8학년생들 쪽으로 움직였다.
"스미스 봤냐?" 자비니가 킬킬대고 있었다. "그 자식 지팡이를 어디다 휘두르는 거야. 아직 누구 하나 눈 안 찌른 게 용하다."
"걘 항상 지가 남들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잘 쳐 줘야 중간이야." 팬지가 코웃음 쳤다.
"아, 애석하기도 하지." 자비니가 대연회장을 떠나는 학생들을 평가하듯 훑어보았다. "네가 이걸 견디고 있는 게 대단하다, 드레이코. 다른 애들이 진짜 진로를 대비할 때 여기 박혀서 선생들 조수나 하고 있다니, 얼마나 실망스럽겠어."
"앞에서 보기엔 너도 딱히 진전은 없어 보이던데, 블레이즈." 그가 느릿느릿 말했다. 그 말에 다들 키득거리자 자비니가 위협적으로 그들을 내려다 봤다. 금방이라도 한 마디 쏘아붙일 것 같은 눈빛을 했지만 대신 그는 드레이코에게 비열한 웃음을 지어 보이곤 팔짱을 걸어 왔다.
"어쩌면 더 나은 선생이 필요한지도 모르지." 그는 드레이코에게만 들리게 아주 작은 소리로 말했다. "아니면 개인 교습이라거나?"
드레이코가 비웃었다. "포터한테 물어보지 그래. 전문가 같던데."
블레이즈가 더욱 가깝게 다가와 귀에 대고 속삭여 그는 딱딱하게 굳었다. "하지만 난 우리의 개인 교습이 그리운걸, 드레이코. 넌 안 그래?"
대답하기도 전에 누군가 거칠게 팔을 잡으며 그와 자비니 사이로 끼어들었다. 드레이코는 화가 나서 지팡이를 들고 특별히 끔찍한 저주를 날려 주려다 그게 누군질 봤다.
"포터," 그가 이를 갈았다. "넌 대체 뭐가 문제냐?"
"할 얘기가 있어," 그가 꽉 깨문 잇새로 말했다. 드레이코는 자비니를 보았다. 그는 포터가 대연회장을 가로질러 다가왔을 때부터 평소의 무심한 태도를 집어던지고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떨어져, 포터. 사람들이 쳐다보잖아." 그가 으르렁댔지만 포터는 무시했다. 슬금슬금 그들에게서 멀리 떨어지는 학생들 눈에 떠오른 두려움과 호기심은 안중에도 없는 게 분명했다. 그는 드레이코를 반쯤 질질 끌고 복도를 내려가서는 빈 교실에 밀어넣고 등 뒤로 문을 쾅 닫은 뒤 날카롭게 지팡이를 휘둘러 잠갔다. 그가 드레이코를 벽에 밀어붙였다. 그리고 그 잠시 동안, 분노한 포터의 눈동자를 들여다보며 그는 자신이 겁에 질렸단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미친, 왜 이러는데?" 그가 따졌다.
"자비니랑 뭐였어?" 포터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뭐?"
"자비니랑 뭐 했잖아. 나가면서. 뭐였냐고."
"뭔 소린데? 네가 왜 이러는 건지 모르겠다, 포터―보내 줘, 너 제정신 아니야―"
"속닥거리는 거 다 봤어, 둘이 꼭 붙잡고."
"꼭 붙잡았다고? 네가 뭔 생각 한 건지 모르겠는데, 그건―"
포터가 날카롭게 입을 맞춰 와 그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그는 마주 키스했다. 분개해서, 다음날까지 그를 저주하고 싶으면서도 동시에 설명할 수 없으리만치 그를 맛보고 느끼고자 하는 욕구를 느꼈다. 마침내 그들이 서로에게서 떨어졌을 때, 포터는 숨이 거칠어져 있었다. 그는 드레이코의 팔을 잡은 손에서 힘을 풀긴 했지만 여전히 그를 벽에 밀어붙이고 있었고, 그들 사이엔 단 몇 인치의 틈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그들은 그렇게 서서 서로를 노려보고만 있었다. 그러다 결국 포터가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그 자식이 널 만지는 게 싫어."
드레이코는 숨 막힐 듯 웃었다. "아, 그러셔? 이제는 내가 네 소유물인가 보지?"
"그래." 그렇게 말하는 포터의 어조와 소유욕이 들끓는 화난 시선이 드레이코를 어지럽게 했다. 그는 포터에게 꺼지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알아들었어?"
드레이코는 그를 쏘아보며 포터를 떨쳐 내려는 반쯤만 진심인 시도를 했다. 젠장, 그는 튼튼했다. "정말 빌어먹게 오만하구나, 포터.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마. 미친, 너 진짜 존나 짜증나."
"입 조심해," 포터가 이를 갈았다. 드레이코는 숨을 쉴 수 없었다. 그는 이 일로 포터를 혐오해야만 했다. 감히 이렇게 무례하게 군 것에 대해 그를 저주했어야 마땅했지만, 그보다 지나치게 흥분한 나머지 밑이 아플 지경이었다. 포터가 화난 건 여러 번 봤지만―최소 한 번 이상 그가 원인 제공자였다―지금 그에겐 드레이코가 뭐라 말할 수 없는 날선 감정이 느껴졌다.
갑작스럽게, 포터는 아래로 내려가 드레이코의 벨트 버클을 풀었다. 그가 드레이코의 바지와 속옷을 끌어내리며 제 지퍼로 뻗는 드레이코의 손은 잡아먹을 듯 으르렁거리며 쳐냈다. 그는 포터가 자신의 것을 붙잡고 거칠게 흔드는 걸 두고도 감히 불평하지 못했다. 그건 너무 갑작스러웠고, 너무 예상치 못한 일이었기에 그는 짧은 헉 소리를 냈다. 그러자 포터가 드레이코의 머리칼을 휘어잡으며 다시 입술을 붙여 왔다. 그들은 키스를 했다. 화요일 밤에 나눴던 것과 같은 부드럽고 조심스러운 키스는 전혀 아니었다. 이번 건 거칠었고, 맹렬했으며, 계속해서 그를 목 조르려는 포터에게 맞서 주도권을 되찾아 오기 위한 분투였다. 포터가 아랫입술을 깨물었을 때 드레이코는 어쩔 수 없이 신음했다. 금속성의 피 맛은 그를 분노케 했어야 했지만 오직 흥분을 가중시키기만 했다.
별안간 포터의 손 안에 사정하고 그는 깜짝 놀랐다. 그의 입술에 겹쳐진 포터의 입술이며 그의 것을 잡고 있는 거친 손, 마치 가둬 놓기라도 하려는 듯 포터의 어깨 위에 올린 그의 손까지 모든 게 이미 너무 과했다. 한순간에 너무 많은 감각이 밀려들어와 고통스럽기까지 할 지경이었다. 포터는 그가 파정하는 동안에도 아래를 붙잡고 있었고 그는 참지 못하고 길고 거친 신음을 내뱉었다. 마침내 기진맥진해져서, 그는 벽에 기대어 축 늘어졌다. 포터가 말없이 지팡이를 휘둘러 난장판이 된 장소를 정리하는 걸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드레이코가 호흡을 가라앉히려 애쓰는 동안 포터가 팔로 그를 지지해 주면서, 그들은 잠시 그렇게 서 있었다. 이제 그는 훨씬 다정하게 굴고 있었다. 드레이코가 안정을 되찾는 동안 이따금씩 목선을 따라 입술을 붙여 오는 그는 드레이코를 보고 있는 게 만족스러운 듯했다.
그가 포터에게 얼마나 빠르게 동했는지나 조금 전 내뱉었던 소리들, 빈 교실에서 기꺼이 손으로 해 주기를 바랐던 욕망 같은 것들에 부끄러워져 드레이코는 셔츠 매무새를 가다듬고 바지를 추어올렸다. 지친 와중에도 여전히 손을 뻗어 포터를 만지고 싶었다. 지난 이틀 밤 동안 포터가 그의 손 아래서 어떻게 몸을 비틀고 신음할지 생각하며 잠을 설쳤단 사실을 부인할 순 없었다. 하지만 만족스러운 듯 비딱한 웃음을 띄운 포터는 이미 그에게서 떨어져 나가고 있었다.
"다시는 그런 꼴 보고 싶지 않아," 그가 말했다. "알아들어?"
망할, 드레이코는 이 일로 확실히 그를 혐오해야만 했지만 어찌나 넋이 나갔는가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플뢰르한테 다음 주 수업에 와 달라고 얘기해 볼게. 프라우드풋도 몇 주 정도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와서 볼 수도 있다고 했었어."
어깨 너머로 가방을 둘러멘 포터는 나가려 몸을 돌렸다.
"포터," 불현듯 드레이코가 불렀다. 쉰 목소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포터가 그를 돌아보자 드레이코는 그의 귓가에 구부러지는 머리칼의 모양과 아직 분홍빛으로 상기된 뺨, 그리고 그의 허리에 꼭 맞게 떨어지는 교복의 매무새에 어쩔 수 없이 시선을 빼앗겼다. 젠장, 망했군. "너 방금 무언 마법을 했어. 두 번이나."
포터는 비밀스럽게 씩 웃었다. "네 가르침이 훌륭하더라," 그 말과 함께 그는 생각을 정리하려는 드레이코만 남겨두고 떠나 버렸다.
Chapter 13: xiii.
Chapter Text
휴게실에 도착한 드레이코는 슬리데린 8학년생들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걸 보고도 놀랍지 않았다. 그들은 벽난로 근처에 옹기종기 둘러앉아 낮은 목소리로 대화하고 있었다. 벽난로 불을 보니 드레이코는 심장이 조여들었다. 어째선지 아버지와의 면담에 대해서도 잊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남들 눈에 띄지 않고 기숙사 방으로 기어들어갈 수 있기를 바랐으나 당연하게도 팬지와 다프네에게 붙들렸다.
"드레이코!" 그가 터덜터덜 들어서자 팬지가 소리쳐 불렀다. "아까 그건 다 뭐였어?"
"뭐?"
"'뭐?'같은 소리 하지 마! 뭔 소린지 다 알면서! 포터가 널 죽이려는 것처럼 보였어."
"목소리 안 낮출래?" 그가 말을 잘랐다. 휴게실은 학생들로 가득했고 몇몇은 그를 힐끔거리고 있었다. 서운한 듯한 팬지의 눈빛에 그는 조금 더 부드럽게 말했다. "여기 있는 사람들 절반한테 내 사생활을 떠벌릴 필요는 없잖아."
"그래서 무슨 일이었는데?" 다프네가 재촉했다.
그는 그녀 옆 소파 빈자리에 푹 눌러앉았다. 오는 길에 설득력 있는 변명을 떠올려 놨었다. "내가 어떤 래번클로 여자애한테 말하는 방식이 맘에 들지 않았다더라. 걔 이름은 뭔지도 모르겠다."
"오, 그래서 넌 뭐라고 했는데, 드레이코?" 다프네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아무것도," 그가 방어적으로 말했다. "포터는 내가 걔를 너무 날카롭게 대하는 것 같대. 그 자식이 어떤지 알잖아. 모두를 어화둥둥하지."
"근데 진짜로 열받아 보였는데," 노트가 말했다. "네가 뭔가 끔찍한 말실수를 했나 봐. 걔가 널 찢어발기지 않고 온전히 휴게실로 돌려보내준 게 신기할 정도였다니깐."
"난 아무것도 안 했어!" 그가 발끈해 말했다. "그리고 포터가 날 돌려보내줬다니? 그 자식더러 꺼지라 하고 내 발로 온 거야."
"그놈이 널 대연회장에서 질질 끌고 나갔을 땐 별로 이렇게 당당해 보이지 않았는데," 자비니가 생각에 잠긴 듯 말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시선이 날카로웠다.
"드디어 정신이 나가 버렸나 했지. 아무튼 평소랑 똑같아. 포터는 나를 혐오하고, 나는 그 자식 경멸하고. 더 재밌는 얘기가 없어서 아쉽게 됐네."
"걔가 기분 잡칠 때마다 너한테 벌을 줘서는 안 되지. 걔가 선생도 아니잖아." 밀리센트가 말했다. 드레이코는 단어 선택에 눈살을 찌푸렸다―포터가 정확히 그에게 벌을 준 것은 아니지 않던가? 물론 확실히 딱딱하게 굴기는 했지만…
"난 괜찮아. 포터는 그저 영웅 놀이 하는 걸 떠벌리고 싶었을 뿐이야. 너네가 왜 이렇게까지 심각하게 구는지 모르겠다."
"걔가 누구 하나 죽일 것처럼 보였으니깐 그러지!" 팬지가 말했다. "위즐리랑 그레인저를 네가 봤어야 해. 걔네도 충격받은 눈치였다고! 거기 서서 쳐다보기만 하고 있었잖아, 안 그래?" 다른 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뭐, 그 모든 일을 겪고 나니 포터도 대가리가 좀 이상해졌는가 보지." 자리에서 일어서며 그가 말했다. "가서 옷 갈아입어야겠다. 나중에 봐."
그들이 다시 붙잡기 전에 그는 서둘러 기숙사 방으로 올라갔다. 그렉은 잠들어 있었다―침대 주위로 커든이 둘러쳐져 있었고, 드레이코는 그가 부드럽게 코 고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샤워를 해야 했다. 그는 물건들을 챙겨서 욕실로 향했다. 버틸 수 있는 한 뜨겁게 물을 튼 드레이코는 샤워기 아래서 몸을 살폈다. 일단 눈에 보이는 멍은 없었다. 가능한 세게 몸을 문지르며 드레이코는 피부에서 포터의 흔적을 벗겨 내고자 했다. 마치 낙인이 찍힌 듯한 기분이었다. 그의 일부는 어디서든 포터가 입 맞추고 접촉했던 자국을 찾아내고 싶어했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아무런 흔적도 남지 않았을 수 있지? 어떻게 내면에서는 그렇게 완전히 뒤집혀지고, 모든 게 재배열되어 재구성된 기분을 느꼈는데도 겉보기에는 달라진 게 하나도 없을 수가 있는가. 이전과 같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바로 직전에 그는 포터에게 소유되었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겠는가. 마치 그의 것이 된 것처럼, 마치 그에게 속하게 된 것처럼… 그 생각이 그를 분노케 해야 마땅했지만, 그는 머리가 어지럽기만 했다. 머리를 감으며 그는 남들 눈을 피해 그들이 붙어먹는 생각이 어쩌면 가장 짜릿한 걸지도 모른다 생각했다… 포터, 선택받은 자, 두 번이나 살아남은 아이가 계속해서 그를 찾아다니고 불러내는데도 아무도 알지 못한다. 드레이코를 제외한 그 누구도 그들의 구원자 입이 얼마나 더러우며 숨 막힐 듯 키스당할 때 그가 어떤 모습인지 알지 못할 수도 있었다.
드레이코는 잠옷으로 갈아입고 침대로 기어들었다. 숫자점 차트를 작업해야 했지만 그럴 정신이 아니었다.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학기가 시작한 지 아직 두 달도 안 됐는데 그의 세계는 이미 180도 뒤집혔다. 그는 포터가 지금 어디에 있을지 궁금했다. 뭘 하고 있을지, 어떤 기분일지, 저나 둘 사이 있었던 모든 일에 대해 생각이나 하고 있을지가 궁금했다. 기분이 이상했다. 그는 첫 학년 때처럼 포터에 대해 온종일 망상하며 도무지 머릿속에서 그를 지울 수가 없었다. 제 바지를 끌어내리는 포터의 이미지나 손으로 그를 가게 할 때의 모습, 시선을 피하지 않고 그 열렬한 눈으로 응시해 오던 것… 그 모든 게 한데 뭉쳐 그를 흥분시키면서도 동시에 두렵게 했다. 그는 포터의 친구들도 그를 추궁했을지, 만일 그랬다면 그는 뭐라고 말했을지 알고 싶었다. 하지만 어쩌면 그들은 이미 다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여전히 이 모든 건 어떤 괴상한 작전이고 그는 아무것도 모르는 희생양일지 모르는 일이었으니. 아직도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를 알 수가 없었다. 포터가 멋대로 그를 끌고 다니고, 하고 싶은 대로 하게끔 하다니… 그건 그에게 남은 마지막 존엄까지도 거스르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머릿속 작은 목소리는 그에게 그걸 원한 건 그 자신이었단 사실을 일깨웠다. 소유되고, 통제받기를 원했다는 걸. 어떤 이유에선지 그건 언제나 수면 아래서 부글거리며 그를 압도하겠다 위협하는 불안을 잠재우는 데 효과가 있었다.
마침내 모두들 올라와 옷을 갈아입고 잠에 들었다. 손목시계가 10시 3분 전을 가리켰을 때, 드레이코는 침대에서 조용히 빠져나왔다. 바닥이 차가워 슬리퍼를 찾고 싶었지만 룸메이트들을 깨울까 두려워 그럴 수 없었다. 휴게실로 내려온 그는 다프네가 벽난로 옆 안락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고 침음했다. 물론 더 나쁠 수도 있었지만―거기 있는 게 노트이거나 자비니였을 수도 있었다―그녀를 향해 걸어가면서도 그는 식은땀에 젖었다.
"다프네," 그가 불렀다. "여기서 뭐 해?" 그는 맞은편 소파에 앉다가 그녀의 얼굴에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는 걸 보고 얼어붙었다. 눈이 발갛게 부어 있었다; 한참 울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
"아, 드레이코," 그녀가 급히 소매로 얼굴을 훔치며 웅얼웅얼 말했다. "미안. 거기 있는 줄 몰랐어."
"너… 괜찮아?"
"괜찮아." 그녀가 심호흡했다.
"그래." 드레이코는 뭐라 말해야 될지 몰랐다. 그는 당황한 채 거기 앉아서 그녀가 다시 벽난로의 불꽃을 응시하는 걸 지켜보기만 했다. 언제라도 아버지의 얼굴이 튀어나올지 모른단 생각에 두려워져 그는 자꾸만 벽난로 안을 흘끔댔다.
"엄마한테 편지가 왔어," 그녀가 쓰게 말했다. "방금 태워 버렸어. 내 성적이 별로 만족스럽지 않으신가 봐."
"이제 겨우 첫 학기 시작인걸. N.E.W.T. 전까지 시간이 한참 남았잖아."
"맞아. 근데 내 룬 문자나 숫자점 실력엔 진전이 하나도 없는 것 같아. 안 그래?"
"왜 가만히 있는 거야?" 별안간 드레이코가 물었다. 다프네가 놀라서 그를 올려다봤다. "뭐라고 하시든 그게 무슨 상관인데? 넌 이제 성년이잖아. 신경 끄시라고 말해."
"그래도 우리 엄마잖아. 젠장, 나도 정말 그렇게 말하고 싶어. 그치만 아직 무서운걸. 아니면 그러고 나서 엄마가 이제 나랑은 그 무엇도 하고 싶지 않아할까 봐 그게 두려운 것 같아." 다프네가 생각하더니 말했다. "네 부모님이 널 통제하려 드실 때 넌 그렇게 하니? 그냥 신경 끄시라고 말해?"
"아마도."
그녀가 축축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치만 난 너랑 달라, 드레이코. 너희 모두랑 달라. 난 용감하지도 않고, 혼자가 되는 걸 견딜 수 없을 것 같아. 난 아직 엄마가 필요해. 난 이제 성년이지만, 부모님 일에 대해선 어린아이처럼 되고 말아. 넌 이런 내가 한심해 보이겠지."
"아니야," 그가 조용히 말했다.
"뭐, 어쨌든." 그녀가 킁 소리를 내고는 얼굴에서 머리카락을 치웠다. "넌 여기서 뭐 해? 잠이 안 와?"
"음, 맞아. 잠이 안 와서."
"드레이코." 그녀가 망설이다 말을 이었다. "블레이즈랑 테오가 네가 프라우드풋한테 징계를 받았단 얘기를 하더라. 근데… 그 분은 맥고나걸이랑 플리트윅과 같이 있었어. 내가 봤거든. 첫 경기 전에 경기장을 살펴보려고 가고 있었지."
그는 갑자기 손거스러미에 지대한 관심이 생기기라도 한 것처럼 그녀의 눈을 피했다.
"괜찮아," 그녀가 부드럽게 말했다. "여기가 어떤 곳인진 나도 잘 아니까. 그치만… 뭘 하고 다니든 간에, 조심했으면 좋겠어. 적어도 팬지는 아니?"
"아니. 그리고 솔직히 걔한테 말 안 했으면 좋겠어."
"물론이지. 웃기지, 가끔은 네가 요새 나만큼이나 외로워 보이는 것 같아."
그는 그녀를 가만히 봤다.
"뭐, 네가 알아서 하겠지." 다프네가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드레이코는 시계를 확인했다; 2분이 남아 있었다. "내일 내 룬 문자 에세이 좀 봐 줄래?"
"그래. 그러지 뭐. 아침 식사 때 가지고 와."
이 말에 그녀의 얼굴이 밝아졌다. "고마워, 드레이코. 잘 자."
그녀가 여학생 기숙사로 향하는 계단을 올라가는 동안 드레이코는 숨을 참았다. 그녀의 발걸음 소리가 희미해졌을 때쯤, 그는 벽난로 불로 시선을 옮겼다 타오르는 불꽃 사이로 나타난 아버지의 얼굴에 화들짝 놀랐다.
"아버지," 그가 딱딱하게 말했다. 그는 방금 전까지 다프네가 앉아 있던 안락의자로 자리를 옮겼다.
"드레이코. 어떻게 지내냐?
"좋아요. 청문회는 어떠셨나요?"
"그게…" 그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너도 물론, 신문에서 봤겠지만… 네 불쌍한 어머니는… 쉽지 않은 모양이다, 우리 일이 그 망할 종이쪼가리에 죄다 널려 있는 게 말야… 뭐 어쨌든…" 드레이코는 아버지가 갑자기 발작적으로 기침을 시작해 깜짝 놀랐다. 한 순간 그는 숨을 몰아쉬느라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아버지?" 그가 불확실하게 물었다.
"괜찮다, 괜찮아." 마침내 아버지가 다시 나타났다. 고개를 흔들며 그가 말했다. "목에 뭐가 걸려서 말이다. 아무튼… 네가 생각했을 대로다… 네 어머니가 네게 편지로 이 모든 걸 전하는 대신 플루로 직접 말하라고 고집을 부렸지." 그가 말을 재듯 잠시 멈추었다가 이어 말했다. "마법부가 날 본보기로 쓰려는 모양이더구나. 아직 판결은 안 나왔고, 청문회도 두 번 더 남았지만 나도 아직 마법부에 연줄이 있는데… 나한테 말할 수 있는 내용이나 어떤 소문들이 들려오는지 알려주곤 하지… 그들에 의하면 마법부에선 어떤 식으로든 날 유죄로 만들어서 디멘터의 입맞춤을 받게 할 생각이라는 것 같더구나."
"샤클볼트가 그런 일을 할 리 없어요," 드레이코가 단번에 말했다. "그 사람은 디멘터를 혐오한다구요. 마지막에 듣기론 아즈카반에서조차 디멘터들을 전부 몰아낼 계획이라고 했어요."
"나중엔 그렇게 되겠지. 하지만 지금으로선… 최종 판결권은 위즌가모트에 있으니 장관의 뜻이 어떻든 거리가 있을 게다. 아직 살아 있는 다른 이들로부터는 충분한 증거를 확보하는 데 난항을 겪고 있으니… 나를 희생양으로 쓰려는 모양이구나."
"아버지," 드레이코가 놀라서 말했다. "변호사들이 뭔가 해야 해요. 너무 야만적이잖아요. 샤클볼트한테 편지를 써 봐요. 전에 말하신 것처럼, 불합리한 사람은 아니니까―"
"여기서 할 수 있는 건 전부 하고 있다. 이런 일에 있어선 내 변호사들이 확실히 너보단 많은 경험이 있지 않겠니," 그가 차갑게 말했다. "어쨌든, 말했다시피 청문회는 두 번 더 남았고… 이건 전부 소문일 뿐이다. 네 어머니는 네가 신문에서 소식을 듣는 것보단 나한테 직접 전해 듣는 게 낫겠다 생각한 거고."
"어머니… 어머닌 좀 어떠세요?"
아버지는 눈살을 찌푸렸다. "네 어머니는…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꾸러미는 또 어떻고요? 제가 호그스미드에서 받아 온 것 말예요."
"아, 그래. 안전한 곳에 잘 뒀겠지?"
"윗층에 있는 짐가방 안에 있어요."
"몸에 지니고 다니거라. 그게 더 안전하다. 아무리 조심해도 지나치지 않아."
"하지만 그러다 제가 잡히면요?"
"확신하건대 네가 변명하지 못할 종류는 아니다."
"지금 그게 필요하신 건가요?" 그가 물었다. "그게 있으면 도움이 좀 될까요?"
"아니, 아직 아니다." 아버지가 다시 기침하며 팔꿈치에 얼굴을 파묻었다. 목소리가 온통 갈라져 있었다. "지금은 네가 가지고 있는 게 더 안전하다. 언제나 몸에 지니고 다니거라. 알아들었냐?"
"네."
"그게 필요해지는 때가 오면 네게 알려 주마. 크리스마스 때까지 버틸 수 있다면, 네가 명절에 집에 올 때… 뭐, 봐야 알겠지… 어떻게 될지는…" 그가 말끝을 흐리며 드레이코를 슬쩍 보았다. "수업은?"
"괜찮아요. 다 괜찮아요."
그가 격식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어머니께 더 자주 편지하거라. 답장은 못 할지도 모르겠지만… 최근엔 한 자리에 앉아서 글을 쓸 정도로 오래 집중하기도 어려워해서 말이다… 하지만 네게 소식을 듣는 건 좋아하시니. 수업 얘기를 쓰거라. 친구들 얘기나. 다른 일에 정신을 분산시킬 수 있도록."
"네, 아버지."
"그래. 이만 가서 자도록 해라. 내가 다음에 편지할 때까지 기다리고." 그 말과 함께 아버지의 얼굴이 사라졌다. 미처 작별 인사조차 할 수 없었다.
다시 침대에 누워, 드레이코는 잠들지 못하고 천장을 응시했다. 몇 년 간 그와 아버지 사이엔 긴장이 감돌았다. 부자 관계는 원래도 복잡했지만 어둠의 마왕이 저택을 침범하고 죽음을 먹는 자들에게 개입하는 일로 부모님 간에 쓰디쓴 언쟁이 있고 나서는 더욱 어려워졌다. 그럼에도 그는 아버지가 디멘터의 입맞춤을 받게 될지도 모른단 가능성은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모두가 그건 죽음보다 못한 일이라 말한다. 그런 일이 벌어지면 어머니는 버텨내지 못할지도 몰랐다. 그는 여전히 샤클볼트에게는 이성이 있으며, 그가 그렇게까지 잔인하게 굴 리 없다고 믿었으나 신문엔 온통 아버지에 대한 신랄한 비판뿐이었다. 이제 어둠의 마왕은 사라졌고, 대다수의 죽음을 먹는 자들이 숨어들거나 세상을 떠난 지금, 집단적 분노에 대한 표적이 아버지가 된 것은 여러모로 분명해 보였다. 그는 위즌가모트가 대중들의 의견에 휘둘리지 않길 바랐지만, 재판이 불공정했던 건 이게 처음도 아닐 것이었다.
Chapter 14: xiv.
Chapter Text
지난 한 달 간 드레이코의 불안이 약화되고 있던 거라면, 이제 그건 다시 최대로 치달았다. 그는 어쨌거나 해야 할 일을 하는 데 제법 전문가였기 때문에 잘못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듯 수업에 나가고 과제들을 제출했다. 매일 저녁 그는 억지로라도 휴게실에서 다른 이들과 어울리며 간간히 대화에 참여하려고 했다. 그러는 동안 그린고트에서 보낸 새로운 고지서에 서명도 했는데, 이번엔 오백 갈레온을 인출하는 건에 대한 동의서였다. 8학년들이 할로윈 연회가 끝나고 호그스미드로 나들이 갈 계획을 세웠지만 그는 마법약 에세이를 다시 써야 하는 척하며 성에 남았다. 최근에는 거짓말하기가 정말 쉬웠다. 망설임 없이 누군가의 면전에 대고 거짓말할 수 있게 됐다는 사실이 그를 끔찍한 사람으로 규정하도록 하는지 그는 궁금했다. 더 나쁜 건, 모두 그가 지어낸 이야기에 납득하는 듯했단 것이다. 처음엔 서운해하던 팬지마저도 돌아왔을 땐 완전히 취해서는 펍에서 만나 다음 주에 데이트하기로 약속했다는 어떤 남자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을 뿐이었다.
그는 점점 더 많은 시간을 야외에서 보냈다. 11월의 공기는 싸늘했기에 대부분의 날 그는 겨울 망토를 두르고 장갑과 귀마개를 챙겨야 했다. 이제는 온열 마법을 단단히 걸지 않고선 밖에 나갈 수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몇 시간씩 뜰을 거닐었고 몇 날 저녁은 경기장 주변을 비행하기도 했다. 아버지의 요구대로 드레이코는 벨벳 주머니를 항시 가방 안이나 망토 안쪽에 지니고 다녔다. 그는 강박적으로 그게 있던 곳에 여전히 잘 있는지 자꾸만 확인하게 되었다. 그의 일부는 주머니 안에 뭐가 들었는지 모른단 사실을 다행스럽게 여겼다. 아버지가 맡긴 것인 이상 합법적인 물건이리라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그 주머니는 일종의 부적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 작은 꾸러미를 지키는 일은 그가 부모님을… 어머니를 돕기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따라서 그는 수업 도중에 망토 안쪽을 더듬거나 주기적으로 가방 안쪽을 힐끔거리며 끊임없이 그게 그의 옛 지팡이 옆자리에 잘 놓여 있는지 확인하고는 했다. 그러한 행위만이 신경을 다스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언제라도 산산조각나 부서져 정신이 나가 버릴 지 모른단 기분이 들었다. 우편을 받을 때마다 그는 부모님께 끔찍한 소식이 왔을까 하는 공포에 질려 마음을 가다듬어야 했다. 아주 작은 소음마저도 그를 곤두서게 했다. 일반 마법 시간에 노트가 시끄러운 쾅 소리와 함께 작업 중이던 문진을 폭파시켜버린 일이 있었다. 폭발음에 드레이코는 의자에서 거의 굴러떨어질 뻔했다. 다행스럽게도 수업이 곧 끝나서 그는 화장실로 달려가 여전히 떨리는 얼굴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었다.
그는 가능한 한 포터를 피하고 있었다. 둘이 함께 이끄는 스터디 그룹의 경우처럼 가끔은 그게 불가능하기도 했다. 약속했듯이 포터는 델라쿠르를 모임에 한 번 초대했고, 그녀는 이종(異種)간 변환 마법에 필요한 엄청나게 섬세한 지팡이 움직임에 대해 조언해 주면서 한 시간을 보냈다. 마침내 가장 열성적인 몇몇 학생들의 노력이 빛을 볼 수 있게 된 것에 더불어, 그녀의 강의는 또한 포터가 그에게 말을 걸 수 없도록 하는 두 번째 목적 또한 달성시켰다. 시간이 끝남과 동시에 드레이코는 지하 감옥으로 무작정 도망쳤다. 물론 그가 말도 없이 화요일 저녁의 약속을 두 번이나 건너뛰고 났을 때 포터가 보낸 은밀한 시선을 그 역시 눈치채기는 했다. 안 그래도 지금 삶에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나고 있는데 포터까지 그걸 복잡하게 해 주는 건 사양이었다.
11월 첫 주 토요일에 시즌 첫 퀴디치 경기가 있었다. 슬리데린 대 그리핀도르의 경기였다. 열기가 손에 만져질 듯했다. 심지어 교직원들마저 오래 기다려 온 경기에 대한 얘기뿐이었다. 어느 기숙사가 승기를 잡을지가 뜨거운 감자였다. 몇 주 전까진 드레이코도 약간이나마 경기에 관심을 가졌는지 몰라도 지금 그런 건 안중에도 없었다. 아침 식사 테이블에 앉아서 슬리데린의 승운에 대해 지껄이는 시답잖은 말소리들을 들으며, 그는 거기 앉은 전부를 잡아 흔들고 때리며 그의 아버지가 죽느니 못한 처형을 앞두고 있고 그의 어머니는 그걸 막기 위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데 어떻게 지금 멍청한 경기 따위를 신경쓸 수 있는지 따지고 싶은 강렬한 충동을 느꼈다. 11월 18일―고작 며칠 후에 아버지의 다음 청문회가 있었다.
팬지, 다프네, 그리고 밀리센트는 슬리데린 목도리와 모자로 중무장을 하고 아침 식사를 하러 왔다. 드레이코는 그들이 좀 우스워 보인다고 생각했지만, 생각을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노트가 흥분해서 하퍼의 손을 쥐고 흔들며 행운을 빌어주는 게 보였다. 이 사태의 유일한 장점은 예언자 일보가 어둠의 마왕 집권기에 그의 아버지가 더 많은 머글들을 고문한 일을 고발하는 자세한 기사를 실었는데도 모두들 경기 때문에 지나치게 들뜬 나머지 신문을 읽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는 것뿐이었다. 옆자리에 와 앉은 팬지가 접시에 토마토와 얇게 저민 베이컨을 담으며 커피 한 잔뿐인 그의 앞을 꾸짖듯 눈짓했다.
"먹어," 그녀가 말했다. "퀴디치 경기 날엔 항상 점심이 늦잖아."
"괜찮아."
"너 왜 그래?" 그녀가 물었다. "너 퀴디치라면 사족을 못 쓰잖아."
"그러게." 솔직히 소음 때문에 머리가 아팠고, 어째선지 다른 모두의 열기도 그를 피해 가는 것 같았지만 그는 아무 말 하지 않기로 했다. 오래지 않아 학생들과 교직원들이 경기장으로 빠져나가며 대연회장은 점점 한산해졌다. 팬지가 다프네와 잡담하며 드레이코의 손을 잡아끌고 군중들을 따라갔다. 그들이 관중석에 도착했을 무렵엔 대부분의 자리가 이미 차 있었다. 그들은 슬리데린 구역 뒤쪽에 빈 자리를 찾아서 겨우 끼어 들어갔다. 관중들의 함성에 귀가 멀 지경이었다. 드레이코는 교직원 구역에서 번쩍거리는 녹색 망토를 걸친 슬러그혼과 거대한 진홍색 꽃을 코트에 꽂은 해그리드를 보았다.
"포터는 경기 못 뛰어서 열 받았으려나?" 노트가 물었다.
"그럴지도." 그는 그리핀도르 좌석 쪽에서 부스스한 갈색 머리털과 타오를 듯한 붉은 머리 사이의 포터를 쉽게 발견했다. 긴장감에 드레이코가 고개를 돌렸다. "자기가 세계 정상급 수색꾼인줄 아는 놈이니까."
"그래도 꽤 했지 않나?" 테오가 중얼거렸다. 드레이코는 노트가 옴니큘러를 꺼내어 눈에 가져다 대는 걸 보고 코웃음 쳤다.
"진심?" 그가 조롱했다. "월드컵 발끝에도 못 미칠걸. 맨눈으로 보는 걸로 충분하다."
"아, 닥쳐 봐," 노트가 경기장을 훑어보며 말했다.
"위즐리를 잘 보고 싶어서 저러는 거야," 팬지가 깔깔 웃으며 소란을 뚫고 말소리가 들리도록 그들에게로 몸을 기울여 말했다.
"조용, 저기 온다!"
그 순간 선수들이 경기장에 나타나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를 받으며 공중으로 솟아올랐다. 쿼플과 블러저, 스니치가 든 나무 상자를 든 후치 부인이 경기장 한가운데로 미끄러지듯 날아왔다. 각 팀 주장인 위즐리와 하퍼를 중심으로 선수들이 그녀의 주위에 느슨한 원을 그리며 모였다. 후치가 선수들에게 어떠한 신체 접촉이나 다른 모든 "불명예적 행위"를 자제할 것을 일장 연설하는 동안 드레이코는 건너편의 그리핀도르 좌석을 힐끔 보았다―포터가 분명 그의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후치의 날카로운 호각 소리에 그는 초조하게 머리를 쓸어넘기곤 경기에 주의를 집중하려 했다.
"선수들이 날아오릅니다!" 롱바텀의 목소리가 허공을 울려서 드레이코는 깜짝 놀라 의자에서 떨어질 뻔했다. 목을 빼서 보니 롱바텀이 해설자 자리에 앉아 있는 게 보였다. 맥고나걸이 옆에 있었다. "많은 기대를 안고 시작한 시즌 첫, 그리핀도르와 슬리데린의 경기입니다… 로빈스가 쿼플을 가졌군요, 토마스에게 패스합니다… 다시 로빈스에게 패스했어요… 아, 놓쳤습니다… 배덕이 쿼플을 잡았습니다, 득점하나요―아닙니다! 블러저에 맞았어요! 쿠트에게 감사해야겠군요… 다시 로빈스입니다… 블러저를 피했고요―잘 했어요―스케레스에게 패스합니다―다시 로빈스―득점하려는 것 같은데요, 프리차드를 뚫을 수 있을까요? 지금입니다―해냈어요―그리핀도르가 득점합니다!"
그리핀도르 응원석 쪽에서 우레와 같은 함성 소리가 터져나왔다. 드레이코는 포터가 일어서서 로빈스에게 박수를 보내는 모습을 보았다. 주위에서 슬리데린 학생들이 불평하고 있었지만 신경도 쓰지 않았다.
"프리차드는 뭐 한담?" 노트가 옴니큘러를 조정하며 욕설했다. "페인트 걸려고 한 거 모르는 사람도 있냐고!"
"쟤가 모르네," 자비니가 말했다.
경기는 속도감 있고 거칠었다. 로빈스가 한 번 더 득점을 올렸지만 배덕이 맥도널드를 뚫고 슬리데린에 득점을 안겨 줬다. 위즐리가 스니치를 발견하고 급강하해 긴장감이 감돌았다. 하퍼가 뒤쫓아가 엎치락뒤치락하며 맞붙었지만 별안간 하퍼에게 날아든 블러저가 그와 위즐리 모두 관중석 쪽으로 날려 버렸다. 스니치는 어딘가로 사라져 버린 듯했다. 서로에게 원성을 쏟아낸 두 수색꾼은 스니치를 찾기 위해 경기장 양끝으로 후퇴했다. 그러는 동안 데일리가 슬리데린에 또 하나 득점을 적립했다.
주위 학생들의 함성과 박수 소리에 드레이코는 어지럼증을 느꼈다. 그는 단숨에 사태를 파악했다―또 발작하려는 것이다. 그는 무릎을 움켜쥐고 경기에 집중하려 애썼다. 프리차드가 환상적인 수비를 해내서 슬리데린으로부터 열화와 같은 환호가 쏟아졌다. 드레이코도 박수를 치려고 손을 모았지만 손이 떨리고 있었다. 딱 1분만이라도 모두를 조용히 할 수 있다면. 관중들의 괴성과 나무 바닥에 발을 구르는 소리, 귀에 꽂히는 롱바텀의 목소리… 전부 너무 과했다. 토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머릿속 저편에 가라앉아 있던 목소리가 되돌아와 무언가 끔찍한 일이 일어날 거라고, 그가 지금 위험에 빠져 있으며 도망칠 곳은 없다며 경고하고 있었다. 옆에서 노트가 뭐라 소리를 질러 대고 있었지만 귓가에 심장 뛰는 소리에 묻혀서 들리지 않았다.
불현듯, 드레이코는 일어섰다. 급하게 어깨에 가방을 둘러메다가 그는 앞자리에 앉은 6학년 여학생의 머리를 쳤다. 그녀가 몇 마디 무례한 말을 소리쳐 댔지만 그는 노트를 비집고 나가며 전부 무시했다.
"드레이코? 왜 그래?" 팬지가 그의 손을 붙잡으려 하며 물었다. 그는 손을 내저었다.
"잊어버린 게 있어서," 그가 거칠게 말했다.
"드레이코?" 다프네가 혼란스러운 듯 크게 뜬 눈으로 그를 올려다 봤다.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아 그는 노트를 밀치고 관중석 아래로 내려갔다. 다시 성 쪽으로 걸음하자 즉각적으로 나아지는 게 느껴졌다. 남들 사이에 끼어서는 얼굴에 찬공기를 맞을 수가 없었는데, 이제는 거친 바람이 뺨을 할퀴고 있었다. 그는 절박하게 야외에 있고 싶었다. 추위를 만끽하며 찬 바람이 뒤죽박죽이 된 머릿속을 파고드는 감각을 느끼고 싶었지만, 눈에 띄거나 추궁당하는 위험을 감수할 수는 없었다. 그는 외풍이 드는 부엉이장으로 가서 칼리두스와 시간을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마침내 어머니께 편지를 쓸 때가 온 건지도 몰랐다. 어머니, 불쌍한 어머니. 아직도 그 비통한 얼굴이 생생히 떠올랐다. 그가 죽음을 먹는 자들과 합류하는 것을 만류하며, 아들을 안전한 곳으로 보내 달라며 아버지께 빌던 그 때…
그가 생각을 뒤로하고 이중문을 열어젖혔을 때, 누군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당황해서 돌아본 드레이코는 그를 향해 걸어오는 포터를 보았다.
"뭘 원해서 이래?"
그 말에 자극받았는지는 몰라도 포터는 티를 내지 않았다. 약간 헐떡거리며 상기된 뺨을 한 채, 그가 손을 뻗어 드레이코의 팔을 붙잡아 놀라게 했다. "어디 가?"
"아, 이런 미친," 그가 포터의 손아귀에서 팔을 빼내며 욕설했다. "내가 또 성을 몰래 돌아다니려 했다고 생각하나 본데, 그거 아니야. 날 감시하는 건 그만둬도 돼."
"그렇게 생각 안 했어."
"좋아, 그럼 날 혼자 내버려 둬." 포터와 가까이 있는 건 신경을 다스리는 데 일절 도움이 되지 않았다. 되려, 그 어느 때보다 가슴이 뻣뻣하게 당겨 오는 듯했다.
"따라와."
"뭐?'
"어서." 포터가 다시 팔을 잡아끌어 와 드레이코는 이를 갈았다. 분개하여 그는 팔을 잡아당기려 했으나, 포터는 그를 끌고 현관 홀을 지나 층계참을 올라가고 있었다. 그들은 침묵 속에 걸었다. 그는 포터에게 그가 지금 얼마나 불안정하고 취약한지 알리고 싶지 않았으므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학생들이 부재한 틈을 타 대부분이 이른 낮잠에 빠져든 초상화들을 지나쳐 올라가고 또 올라갔다. 포터는 여전히 드레이코의 팔을 꽉 잡은 손에 힘을 풀지 않은 상태였고, 그는 감히 불평하지 못했다. 머리가 너무 어지러워서 포터의 손아귀 힘만이 그를 제정신으로 유지시키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7층에 도착했을 때 드레이코는 그들이 필요의 방으로 향하리라고 생각했지만, 포터는 갈라진 통로로 그를 이끌었다. 뚱뚱한 여인의 초상화 앞에 멈춰서야 그는 그들이 어디로 가고 있었는지 눈치챌 수 있었다.
"콜린 크리비," 포터가 말하곤 망설임 없이 그를 잡아끌어 초상화 구멍을 통과하게 했다. 그 이름에 드레이코의 위장이 조여들었다. 그는 한 번도 그리핀도르 휴게실 내부에 들어와 본 적 없었지만, 포터가 기숙사 방으로 끌고 올라간 통에 구경할 시간조차 없었다. 8학년 남학생 기숙사는 나선형 계단 꼭대기에 위치해 있었다. 드레이코가 방을 면밀히 살피는 동안 포터가 등 뒤로 문을 쾅 닫았다. 그의 방보다는 훨씬 지저분한 곳이었다. 신발 몇 켤레가 구석의 옷장 근처에 쌓여 있었고, 협탁은 잡지와 군것질거리, 사진 액자들로 정신 없었다. 포터가 아직도 팔을 놓아주지 않은 걸 깨닫고 놓으라고 말하려 돌아섰을 때, 포터가 별안간 그를 끌어당겨 키스하기 시작했다. 그건 당황스러우리만치 모순적이었다. 포터의 팔이 그를 부드럽게 감싸 안고 있는 반면 키스는 분노한 듯 맹렬하기 그지없었는데, 드레이코는 그가 화가 난 이유를 짐작도 할 수 없었다. 공황과 공포의 감각이 여전히 그를 짓누르고 있었기에 그는 결국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포터의 입 안에 신음하는 것 말고는 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무슨―뭐 때문에 화가 난 건데?" 포터가 갑자기 키스를 멈추었을 때, 드레이코는 헐떡거리며 물었다. 포터는 얼굴을 기울여 드레이코에게 이마를 맞대 왔다. 눈을 맞추려는 것 같아 보였지만―뭘 위해서? 드레이코는 알 수 없었다.
"너."
"나?" 그가 어이없다는 듯 물었다. 그는 화를 내려고 최선을 다했지만 포터가 그렇게나 강렬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동안엔 쉽지 않았다. "내가 대체 뭘 했는데?"
"머릿속에서 네가 떠나질 않아," 포터가 중얼거리며 드레이코의 입술로 시선을 내렸다. 그는 손을 들어올려선 엄지로 드레이코의 아랫입술을 거칠게 쓸었다.
드레이코는 정돈되지 않은 날숨을 뱉었다. "뭐, 그게 내 잘못은 아니잖아?" 그가 약하게 물었다. 포터가 다시금 키스해 왔고, 이번엔 더 부드러웠다. 그가 드레이코의 입을 벌리게 해서는 혀를 얽어 왔다. 드레이코는 어쩔 수 없이 또 한 번 탄식했다. 전혀 그답지 않은 일이었다. 대개 그는 반응이 적었고, 가능한 소리를 내지 않으려 하는 편이었지만 자제할 수가 없었다. 그는 포터의 등을 타고 손을 놀리며 긴장된 근육의 감촉을 느꼈다. 이제 와 인정하건대 그는 포터의 탄탄한 등이며 팔뚝, 넓은 어깨를 제법 좋아했다.
포터는 추정컨대 그의 침대인 듯한 곳으로 드레이코를 밀어 댔다. 진홍색 시트가 양 옆으로 단단히 들어간 침대는 그의 예상보다 깔끔했다. 매트리스에 무릎이 닿자마자 드레이코는 뒤로 자빠졌다. 그는 쓰러지면서 포터를 함께 끌어당기려 했지만, 포터는 그를 내리누르며 위로 올라탔다. 그가 양 다리로 드레이코의 무릎을 누른 채 내려다봤다. 그가 갑작스럽게 손을 잡아와 드레이코는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건 당황스러웠지만―1학년도 아니고 왜 이래?―그는 포터의 손을 마주 꽉 쥐었다. 열린 창문으로 환호하는 관중의 소리가 흘러들었다.
"너…" 포터가 말끝을 흐리며 가늠하듯 드레이코를 봤다. 그 시선은 말도 안 되게 노출된 듯한 기분을 들게 했다. 잠시 후, 그가 말을 이었다. "나한테 이러지 마." 드레이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제대로 말할 자신이 없었다. "왜 경기장에서 나온 거야?"
"무슨 상관인데?"
"널 보고 있었어. 뭔가 일어났어. 넌… 곤경에 빠졌었지. 난 알아." 포터가 손가락을 뻗어 드레이코의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가 침묵을 고집하자, 포터가 덧붙였다. "그러다 내가 널 붙잡았을 때, 넌… 넌 내가 느꼈던 것처럼 보였어(you looked the way I felt). 마치… 마치 너무 불안한 나머지 숨을 쉴 수조차 없는 것처럼."
"넌 멀쩡해 보이던데."
포터는 씩 웃었다. "날 보고 있었구나?"
드레이코는 짜증이 나서 얼굴을 돌렸다. 포터가 고개를 숙여 드레이코의 목에 입술을 눌렀다. 그가 귀에 대고 속삭였다. "널 봤어. 네가 내 쪽을 볼 때마다 항상."
"그리고 넌 멀쩡해 보였지," 드레이코가 끼어들었다. "실실 웃고 박수 치면서 그리핀도르 응원이나 하고."
"널 계속 보고 있었으니까," 그가 중얼거렸다. "계속 널 생각했어. 너한테 하고 싶은 것들에 대해 계속 생각했지."
"넌 변태 자식이야, 포터." 그가 일갈했다.
포터는 크게 웃으며 다시 일어나 앉았다. "그래? 그렇다면 내가 무슨 생각 했는진 별로 안 궁금하겠네."
물론 당연히 궁금했지만, 아직 그걸 질문함으로써 스스로 명예를 실추시키지 않을만큼의 정신은 남아 있었다. 게다가 굳이 그럴 필요도 없었다. 포터가 말을 계속했기 때문이다. "내가 여기 누워서 얼마나 자주 네 생각 했는지 모르지."
"내 생각 하면서 딸 쳤냐, 포터?"
"그래." 그가 희미하게 웃었다. "어쩔 수 없어. 뭘 하든 네 좆 빠는 생각이 나서. 무슨 맛이 났었고, 갈 때 네 표정이 어땠는지 같은 게. 젠장, 네 얼굴 말야." 포터는 손을 잡은 채 몸을 부딪혀 댔고, 드레이코는 필사적으로 시선을 피하고 싶었다. 안타깝게도 포터의 강렬한 시선 아래 놓인 게 부끄럽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포터가 셔츠 단추를 풀기 시작했을 때, 그는 가만히 누워서 숨조차 쉴 수 없었다. 셔츠는 손쉽게 벗겨졌고 바지와 속옷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다시금 포터만 옷을 입고 있다는 사실이 불만스러워 그의 지퍼로 손을 뻗었으나, 포터는 그 손을 잡아 머리 위로 고정시켰다.
"왜?" 드레이코가 따지듯 물었다.
포터는 씩 웃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가 몸을 앞으로 숙여 담백하게 입을 맞추고 드레이코의 목을 따라 입술을 내렸다. 벌써 흥분한 드레이코는 포터의 혀가 쇄골을 훑자 몸을 떨었다. 그는 포터가 빨리 좆을 어떻게든 해 주길 재촉하며 신음했지만, 포터는 그저 웃으며 손 대지 않고 시간을 들여 드레이코의 가슴에 입 맞출 뿐이었다. 그가 젖꼭지를 세게 빨아들였다. 드레이코는 따뜻하고 매끈한 피부의 감촉을 찾아 포터의 스웨터 아래를 더듬었다. 거의 느껴지지도 않을 정도로 살며시 포터의 등을 위아래로 쓸고 있었기에 그에 반응해 포터가 낮게 신음했을 때는 놀라웠다. 청바지 너머로 포터가 얼마나 흥분했는지 느낄 수 있었는데, 그런 그를 눈앞에 두고도 옷 몇 겹에 의해 가로막혀 방해받고 있다는 게 미칠 지경이었다. 그는 포터를, 그의 전부를 보고 싶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절박했다. 하지만 다시 불평하기도 전에 포터는 배를 핥으며 드레이코의 다리 위에 올라타 앉도록 자세를 바꿨다. 드레이코는 포터의 포터의 머리칼 사이에 손을 집어넣고 그가 마음에 드는 행위를 해줄 때마다 그걸 잡아당겼다. 엉덩이의 곡선을 따라 혀를 놀린다거나 허벅지를 손으로 문지르고, 배꼽 아래를 세게 빨아 주는 것 같이.
"이 짓 해 본 적 없다는 거 거짓말이지," 그가 숨을 헐떡였다. 두 번 생각하기도 전에 말들이 입을 빠져나갔다
포터는 눈을 감고 있었다. 드레이코는 그가 희미하게 미소 짓는 걸 보았다. "처음이야. 상상은 많이 해 봤지. 내가 널 어떻게 만지고 싶은지에 대해."
"그래?" 그가 달리는 숨으로 물었다. 젠장, 여기 이 침대에서 그를 생각하는 포터라니. 자극적이었다.
"그래." 포터가 다시 올라와 부드럽게 키스했다.
드레이코는 그에게 몸을 부딪혔고, 포터의 스웨터가 성기에 비벼져 왔다. 압력이 충분치 못했고 그는 접촉을 갈망하며 거의 울먹거렸다. 그에 포터가 악동처럼 실실거리며 일어나 앉았다. 드레이코는 열 받아 으르렁대며 포터의 바지를 벗기려 재시도했다. 순식간에 포터가 머리 위로 손을 붙들어 올렸고 이번엔 완고한 표정으로 인상을 찌푸리며 내려다보고 있었다.
"너," 그가 말했다. "가만히 있어."
망할. 드레이코는 시위를 그만뒀지만 단지 그로부터 공기가 다 빠져나간 듯한 기분 때문이었다. 포터가 감히 명령질이나 해 대며 그런 식으로 그를 가르치려 드는 데 대해 응당히 분노해야 옳았지만, 그의 안에 있는 무언가는 포터의 완강한 얼굴에 떨림을 느꼈다.
"착하게 굴어," 포터가 경고했다. 그 말과 함께, 그는 드레이코의 다리 위에서 원래 있던 위치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드레이코는 중심이 이미 젖어 있음을 깨닫고 당황했지만, 포터는 얄궂게 웃으며 그걸 손으로 쥐었다. 표정을 열렬히 살피며 기둥을 쓸어내리는 손길은 거칠었다. 드레이코는 반응을 보임으로써 그에게 만족감을 주고 싶지 않았기에 고개를 돌리고 얼굴을 부분적으로 가리도록 팔을 끌어당겼다. 단번에 포터가 팔을 치워 버렸다. 한 손으로는 여전히 드레이코의 성기를 만지고 있었다. 드레이코는 포터가 그렇게나 자신을 보고 싶어 한다는 생각에 기이하리만치 사로잡혀 흥분을 가중했다. 만족스러운 듯 포터는 고개를 숙여 드레이코의 성기를 뿌리 끝부터 선단까지 핥았다. 그 모습이 상상할 수 있는 무엇보다도 외설적이었다. 한 번씩 엄지로 구멍을 문지르며 포터는 좆을 자극하기를 계속했다. 그가 온전히 입에 머금은 건 한두 번뿐이었는데, 드레이코가 그의 머리를 내리누르려 하더라도 포터는 웃으며 밀어내곤 다시 옆을 할짝일 뿐이었다. 미쳐 버릴 지경이었다.
"포터," 그가 그르렁댔다. "작작 해."
포터는 씩 웃을 뿐 아무런 말이 없었다. 뿌리 끝을 붙잡은 그가 선단까지 입술로 훑으며 가볍게 입 맞추고 빨아들였다. 별안간 그가 자극점을 건드려 드레이코는 탄식하며 포터의 머리칼을 더 세게 움켜쥐었다.
"아―씨발."
포터가 눈을 감고 그 지점을 집중 공략했다. 드레이코가 엉덩이를 들썩이자 포터의 목 깊은 곳으로부터 신음이 터져나왔다. 엄청나게 답답했고 아직도 더 많은 자극이 필요했지만 포터의 입술이 주는 감각이 너무 좋았다. 그는 매트리스에 머리를 처박고 큰 소리로 신음했다. 포터가 엄지로 젖은 선단을 문지를 때는 자신이 얼마나 절박하게 들리는 소리를 내고 있는지조차 신경 쓰이지 않았다. 그가 통제를 잃고 포터의 손에 파정했을 때, 포터는 순식간에 몸을 빼고는 좌절감에 몸부림치는 드레이코를 향해 대놓고 웃었다. 그가 드레이코의 좆뿌리를 단단히 쥐고 안정을 되찾을 때까지 기다려 줬다. 드레이코는 그의 머리칼 새로 손가락을 놀리며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진정해. 뱃속을 달구던 열기가 가라앉자 포터가 다시금 기둥을 살살 핥기 시작했다. 포터가 아까 그 지점을 빨아들였을 때, 이번에 드레이코는 시트에 손을 비비적대며 엉덩이를 들어올렸다. 모든 게 너무 빨랐고 포터는 다시 멈춰선 그가 진정하기를 기다리며 무상히 드레이코의 허벅지를 손가락으로 문질렀다. 그리고 다시: 부르튼 입술이 드레이코의 성기를 위아래로 쓸며 허벅지 안쪽에 부딪혀 왔고, 선단에서 프리컴이 흘렀다.
"포터," 드레이코가 한 번 더 뒤로 밀려나며 빌었다. 곧 갈 것 같았다. 젠장, 너무 금방이었다. 그는 뱃속 깊은 곳으로부터 오르가즘이 쌓여 오는 걸 느꼈다. 포터가 무릎 위에 앉도록 자세를 고쳤다. 드레이코는 절박하게 구는 자신이 끔찍하게 싫어서 사정을 참으려 했다. 검시하는 듯한 포터의 시선에 그는 거칠게 호흡했다. 수없이 헤집어 대는 통에 헝클어진 머리며 붉어진 뺨, 숨을 고르느라 오르내리는 흉부까지 상태는 엉망일 게 뻔했다. "이러고 있으니까 진짜 예쁘다," 라고 중얼거리는 포터의 목소리를 들었을 때 심장은 아플 정도로 쥐어짜이는 듯했다. 그 말을 듣는 게 싫어야 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예쁘다"고 묘사되는 일에 반감을 느껴야 했지만, 그는 포터의 관심이 기꺼웠다.
"그래?" 그가 쉰 목소리로 물었다.
"응." 포터가 그의 배를 쓸어내렸다. "젠장, 널 좀 봐… 말도 잘 듣고."
그는 포터에게 너 역시도 환상적으로 보인다고 말해 주고 싶었다. 언제부턴가 그는 안경을 벗고 있어서 드레이코는 밝은 녹색의 눈동자를 선명히 볼 수 있었다. 얼굴은 달아올랐고, 젖어 반들거리는 입술은 붉었다. 포터의 청바지 밑으로 불거진 것이 눈에 들어왔고, 그는 만지고 싶어 안달이 났다. 하지만 포터는 그 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다시금 드레이코의 성기를 자극해 왔다. 손가락을 위 아래로, 위 아래로 놀리며 딱 몸서리가 쳐질 정도의 압박감만을 유지했다.
"나올 것 같아," 그가 거친 숨을 쉬었다.
"'제발'이라고 해 봐."
"뭐? 싫어." 드레이코는 고집스럽게 턱을 앙다물었다.
돌연 포터가 좆 전체를 입 안에 넣었다. 깃털처럼 가벼운 접촉과 입맞춤에 너무 오래 감질맛을 느끼고 있던 드레이코는 거의 비명을 질렀다. 두 번째로 포터가 입에 머금었다 뺐을 때 그는 욕설했다. 포터는 다시 엄지를 선단에 둥글게 굴렸다.
"어서."
"싫어."
포터는 손가락으로 그 지점을 문지르며 그를 경계로 내몰았다. "네가 비는 걸 듣고 싶어." 손바닥 전체로 귀두를 감싸며 그가 덧붙였다. "그 다음엔 네가 내 입에 쌀 때 표정이 보고 싶어. 널 너무 맛보고 싶어."
"제발," 포터에게, 그의 손에, 그의 목소리에, 그의 눈빛에 굴복하여, 그가 말했다. "제발, 포터. 싸게 해 줘. 나 가고 싶어, 가야 돼."
포터가 좆뿌리까지 전체를 입 안으로 집어삼켰다. 드레이코는 자신의 것을 빨면서 목 깊은 곳에서 낮게 신음하는 포터를 보면서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절정이 임박했다. 그는 포터에게 경고하려고 했으나 단어조차 나오지 않았다. 성기가 뻣뻣해졌고, 차마 움직이지도 못하는 새 심장이 쿵쿵 뛰었으며, 마침내 그는 파정했다. 긴장이 전부 빠져나감과 함께 새된 비명이 내질러졌다. 그는 포터의 입 안에 모든 걸 내놓았고, 포터는 그걸 전부 삼켰다. 그는 드레이코가 쾌감을 견뎌 내도록 줄곧 부드럽게 빨아 주었다. 드레이코가 지나치게 예민해진 나머지 그게 아프게 느껴질 때까지. 비로소 그만둔 포터가 그의 옆으로 와 누웠다. 포터가 얼굴을 비비적대는 통에 그는 잠시 굳어졌다가 이내 불평하려 했으나, 따지기에는 너무 지치고 말았단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 드레이코의 양손은 여전히 그를 느끼고 싶어 근질거렸으므로, 그는 느슨하게 팔을 둘러 감싸 안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그들은 그렇게 잠시간 머물렀다. 서로의 숨소리를 들으며. 드레이코는 호흡을 정리하는 동안 포터가 그의 등에 그려 대고 있는 동그라미에 집중했다. 가벼워진 기분이었다. 포터와 그렇게 누워서, 오르가즘의 여파를 즐기고 있는 건.
별안간 포터가 얼굴을 찡그리며 일어나 앉았다. "너무 조용하지 않아?"
드레이코는 굳어서 귀를 기울였다. 그가 옳았다. 방 안이 섬뜩하리만치 고요했다. 당황하여 그가 벌떡 일어났다. "망할 경기," 그가 낮게 말했다. 창밖을 내다본 그는 성으로 돌아오는 학생들의 모습에 침음했다. "모두가 돌아오고 있어. 이런 젠장할."
포터는 드레이코가 옷을 주워입는 내내 실실거렸다. "네 룸메이트들이 내가 이러고 있는 꼴을 봤으면 좋겠어?" 그가 따졌다. 그 말에 포터에게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내 셔츠 좀 주겠니?"
포터가 셔츠를 주워서 그에게로 던졌다. "이따 뭐 해?"
"뭐? 글쎄. 망할 마법약 에세이나 쓰겠지, 아마." 그는 가능한 빠르게 셔츠 단추를 채우느라 여념이 없었다.
"나가서 같이 경기장 주변 비행하자."
드레이코는 잠시 멈춰서 포터를 뚫어져라 보다가 단추를 마저 채웠다. "우리가 같이 비행하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할 것 같은데."
포터가 침대에 걸터앉았다. "그럴 지도. 근데 상관 있나?"
"당연하지," 드레이코가 분개해 말했다. "나에 대한 관심은 이미 충분하다고. 최소한 절반 정도는 날 경멸하고, 나머지 절반은 내가 두려워서 어쩔 줄 모르지."
"내가 걔들 다 꺼지라고 해줄게."
"아, 제발, 포터. 나한테 영웅 노릇 하려 들지 마." 그가 셔츠를 바지에 넣고 주름을 폈다. "됐나?"
포터가 씩 웃었다. "네 머리 방금 떡치고 나온 사람 같아 보여."
"최고네," 그가 최선을 다해 삐친 머리를 가라앉히려 애쓰며 중얼거렸다. "좋아, 나 간다." 문득 어색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방금 그런 짓을 해 놓고 아무 일 없었단 듯 걸어나간다면 무례하지 않을까?
포터가 손을 휘저었다. "가라, 가. 누가 널 보는 건 싫어."
드레이코는 분명 포터의 음성에서 어딘지 씁쓸한 감을 느꼈으나 그에 대해 질문할 시간이 없었다. 그는 쏜살같이 문을 빠져나와 계단을 뛰어내려가서는 초상화 구멍 밖으로 몸을 던졌다. 자비롭게도 복도는 텅 비어있었다. 그는 미로 같은 계단을 헐레벌떡 뛰어내려갔다. 처음엔 곧장 슬리데린 휴게실로 향하려 했지만 슬리데린 8학년들이 그리로 갈 게 분명했고, 그들에게 추궁당하는 건 사절이었다. 대신 드레이코는 부엉이장으로 향했다. 그가 호그와트를 활보하는 동안 재잘대고 깔깔 웃는 학생들의 소음이 허공을 느리게 채웠다. 그는 조금 전 포터와 한 일을 다시 생각했다. 디테일은 흐릿했다. 근 한 시간 안에 일어난 일이 지나치게 역사적이고 그의 상상을 뛰어넘은 나머지 두뇌가 아직 기억을 처리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리핀도르 휴게실에서 한 걸음 한 걸음 멀어질수록 불안은 앙갚음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되돌아왔다.
드레이코는 서까래 위에 앉은 칼리두스를 금세 찾아냈다. 칼리두스는 주변의 외양간 올빼미들을 전부 왜소해 보이게 할 정도로 거대했다. 그가 창문가에 걸터앉자 칼리두스가 가까이 날아왔다.
"미안, 간식을 안 가지고 왔어." 그가 말했다. 그는 손을 뻗어 부드러운 깃털을 쓰다듬었다. "부엉이로 사는 건 분명 멋지겠지. 생각할 거리도 거의 없을 거 아냐."
칼리두스가 비난하듯 눈짓해 왔다.
"아, 무슨 뜻인지 알잖아. 성적이라든가 아무 데서나 키스해 대려는 이상한 놈들에 대한 걱정도 할 필요 없고, 부모님 걱정도… 그러고 보니 너 네 엄마 아빠를 알긴 하냐?" 그는 창밖을 응시했다. 그리핀도르 대표팀이 성으로 이어지는 길을 걸어 올라오는 모습이 보였다. 다소 의기소침해 보였다. 아마도 슬리데린이 이긴 듯했다. 그는 마땅히 기뻐해야 했지만, 모두가 밤새 축하할 생각을 하니 지치기부터 했다. 어쩌면 부엉이장에서 밤을 보내는 게 나을지도 몰랐다… 아니면 다들 지하 감옥에 돌아간 틈을 타 몰래 뜰로 빠져나가든지. 지금으로써는 이렇게 칼리두스 옆에 앉아서 마지막 남은 학생들 몇몇이 실내로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게 만족스러웠다. 곧 점심 식사 시간이었다. 대개 퀴디치 경기를 마친 뒤에는 만찬이 있곤 했지만, 식욕이 별로 없었다.
포터와의 일은 선을 넘었다. 여전히 모든 게 현실 같지 않았다. 만일 내일 잠에서 깨 보니 모든 게 꿈이었다 할지라도 그는 놀라지 않을 거였다. 그리고 만약 그게 다 현실이었다면, 그렇다면… 그건 위험했다. 부모님이 이 일에 대해 어떤 얘기라도 듣는다면 펄쩍 뛰실 게 분명했다. 호그와트의 하고많은 사람들 중에서, 붙어먹을 놈으로 포터를 택하다니. 게다가… 제대로 붙어먹지도 않지 않았던가? 포터는 그의 손길을 거부했고, 드레이코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여름내 지우려 해 봤지만 지우지 못한 어둠의 표식 때문일지도 모른다 생각했으나 포터는 거기엔 전혀 개의치 않아 보였다. 어쩌면 그를 통제하고 기죽이려는 별 같잖은 방식의 일환일지도 몰랐다. 이상하기 짝은 없었어도.
드레이코는 생각에 너무 깊게 잠긴 나머지 손가락으로 칼리두스의 눈을 찌를 뻔했다. 부엉이가 화를 내며 부리질했다. "아야! 미안, 미안." 그가 황급히 손을 뺐다. "미안… 딴 생각 하고 있었어." 손에서 느껴지는 날카로운 통증이 그를 현실로 되돌려 놓았다. 부엉이장을 둘러보다가 그는 아직도 어머니께 답장하지 않았단 사실이 떠올랐다. 가슴에서 죄책감이 솟아올라 그는 가방을 뒤져 여분의 양피지와 잉크병, 그리고 깃펜을 찾아냈다. 가방을 뒤집어 엎던 중 바닥에 깔린 그의 옛 지팡이와 작은 벨벳 주머니가 눈에 들어왔다. 그 모습이 불안에 불을 지폈다. 숨 쉬어, 스스로에게 되뇌며 그는 다리를 꼬고 앉아 잉크병을 창틀에 조심스럽게 얹고 무릎 위에 양피지를 펼쳤다. 텅 빈 종이가 아득했다. 젠장, 그는 어머니께 편지를 쓰려는 거였다. 그건 간단한 일이어야만 했다. 그가 어머니와 절친했던 시기도 있었다. 등을 기대고 앉아 칼리두스가 몸단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그는 호그와트에 입학하기 직전, 막 열한 살이 되었을 때의 여름의 기억을 선명히 떠올렸다. 그 무렵 부모님 사이엔 큰 언쟁이 있었다. 아버지는 몇 년 간 그를 덤스트랭에 보낼 것을 고집해 왔지만 어머니는 결단코 아들을 그렇게 멀리 보내고 싶어하지 않았다. 돌이켜 생각하며 드레이코는 그녀의 반대에 덤스트랭이 어둠의 마법에 대해 호그와트와는 상당히 다른 노선을 취한다는 이유도 있었을지 궁금해졌다. 그렇게 몇 년을 그의 입학을 두고 싸운 끝에 결국 승기를 잡은 건 어머니였다. 부모님의 반목에도 불구하고 그해 여름은 아주 멋졌다. 아버지는 대개 사업 문제로 떠나 있었기 때문에―페루였는지 칠레였는지, 더는 기억도 나지 않았다―그와 어머니 단 둘뿐이었다. 그는 잉크병에 깃펜을 담갔다가, 이렇게 적었다:
어머니
제가 열한 살이 되던 여름, 둘만의 디너 파티를 했던 것 기억하세요? 그동안 방문했던 모든 나라의 음식을 하나씩 맛보기로 했었죠. 코코뱅, 부라타 치즈, 나시 르막, 그리고 아마 디저트로는 티라미수를 먹었던 것 같아요. 혼종도 그런 혼종이 없었는데…아버지라면 끔찍하게 싫어하셨을 테지요. 우리 둘뿐이었지만 어찌나 많이 웃고 또 떠들었는지 식당이 꽉 찬 것처럼 느껴졌었어요. 최대한 밝고 아늑하게 만들겠다며 어머니께서 모든 초에 불을 붙였던 거 기억하시나요? 그러고 나서는 피아노에 마법을 거셨고, 우리는 춤을 췄죠. 그때는 제가 어머니보다 작았어요. 우리는 호그와트에 대해, 슬리데린에 대해, 어떻게 어머니가 아버지를 만났는지에 대해, 어머니가 검은 호숫가에서 아버지와 있다가 들켰던 그 밤에 대해 이야기했어요. 어머니를 잡았다던 교수님이 누구였는지는 이제 기억나지 않네요. 그러고는 제게 찾아야 할 숨겨진 복도들과 피해야 할 함정 계단들, 그리고 어떤 과목들이 제일 쉬웠고 어떤 과목들이 제일 어려웠는지에 대해 알려 주셨죠. 제가 곧 떠나야 해서 어머니는 많이 우셨죠. 하지만 행복하셨고, 저도 행복했어요. 어머니를 그리워하게 될 거래도 그날 밤 저는 정말 행복했어요. 어머니와 여름을 보낼 수 있어서 그해 여름 내내 행복했었죠. 8월의 어느 날 우리가 응접실 배치를 바꾸기로 했을 때, 어머니께서 그게 앉은 사람을 간지럼 태우는 줄도 모르고 사 오셨던 안락 의자들은 기억하세요? 전 그것들을 버리지 말자고 빌었고 어머니께서는 한동안 제 말을 들어 주셨지만 결국엔 버려야만 했었죠. 대신 샀던 베이지색 의자들이 아직 그 자리에 있었던 것 같은데 기억이 잘 안 나네요. 안락의자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알게 됐을 때 어머니께서 지었던 짜증스러워하면서도 웃음 참던 그 표정은 그렇게나 선명히 기억하면서 더 이상 저택이 어떤 모습인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는 게 우습죠. 그래도 우리 정말 행복했지 않나요? 이제는 우리가 얼마나 행복했었는지 떠올리는 게 이상해요.
생각이 바뀌기 전에, 드레이코는 편지에 서명하고 칼리두스를 불렀다. 아직도 성이 난 부엉이는 그에게로 다가와 다리를 내밀긴 했지만, 드레이코의 쪽을 봐 주진 않았다. 너무 잘 훈련된 나머지 명령을 거부하지는 않았지만 출발하기 전 날카롭게 딱딱거리는 소리로 기분이 불쾌감을 드러냈다. 뭐, 어쨌든 편지는 보냈다. 문득 드레이코는 마법부에서 부모님의 우편물을 읽는단 사실이 기억 났고, 그 사실에 미소 지었다. 어떤 불쌍한 마법부 직원이 이 편지를 읽게 될까? 그리고 그걸 보고 무슨 생각을 할까? 어쩌면 그들은 그게 일종의 비밀 암호 같은 거라고 생각할지도 몰랐다. 멋지군, 헛다리 좀 짚으라지.
돌 위에 너무 오래 앉아 있었더니 몸이 뻐근해서 드레이코는 바깥으로 나가기로 했다. 학생들은 대부분 대연회장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있었기에 아무도 모르게 뜰로 나갈 수 있었다. 날씨는 제법 따뜻해져 있었다. 올려다본 하늘이 맑았다. 그는 호숫가로 가서 대왕 오징어가 물 속에서 느릿하게 촉수를 쭉 뻗는 모습을 관찰하며 남은 하루를 보냈다. 거기 앉아서 어머니에 대해, 인정하기엔 조금 슬프지만 그의 첫 친구이자 어쩌면 그의 단 하나뿐인 진정한 친구에 대해 생각했다. 어머니를 생각하며 어머니는 그에 대해 무슨 생각을 할지 궁금해했다.
Chapter 15: xv.
Chapter Text
11월 18일, 아버지의 청문회 날이 지척으로 다가왔다. 드레이코는 아버지께 자신의 참석을 바라는지 묻는 간단한 쪽지를 보냈으나 답신은 없었다. 청문회가 적어도 두 번은 더 남아 있어야 할 시점임에도 언론에 따르면 위즌가모트는 속전속결로 일을 진행하려는 것 같았다. 보아하니 마법 세계는 이제 어둠의 마왕과 연관된 모든 것들을 뒤로할 준비가 되었고, 거기엔 비난받아 마땅한 일들을 저지른 자라면 누구나 심판하는 것도 포함인 듯했다. 노트의 아버지의 재판이 시작되었고, 드레이코는 최근 그가 평소보다 창백하고 유례없이 초췌한 낯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더 잔인하게 굴려거든 예언자 일보에서 노트 씨의 청문회에 대한 발췌를 찾아 읊을 수도 있었겠지만 굳이 그러지 않았다. 대신 그들은 아침 식사 시간에 모두가 신문을 뒤적이며 진행 중인 재판에 대해 시끄럽게 떠들어 대는 동안 함께 불행 속에 앉아 있었다.
변환 마법 시간에 그는 그렉 옆에 앉았다. 이제는 식사 시간과 수업 시간에밖에 그를 볼 수 없었다. 그들은 함께 흔한 도마뱀을 이구아나로 변환해야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드레이코가 몸을 앞으로 내밀고 가늘게 뜬 눈으로 그걸 살피며 말했다, "좀 커지지 않았나?" 고일은 동의하지 않는다는 듯 끙 소리를 냈다.
델라쿠르가 쯧쯧거리며 다가와 그들은 고개를 들었다. "말포이 군, 고일 군, 이것보단 잘할 수 있지 않나요? 지팡이 동작을 연습하긴 한 건가요?" 둘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가 도마뱀을 가리켰다. "자. 그럼 보여 줘 봐요." 그녀가 옆으로 물러나 손을 모으고 기다렸다. 드레이코는 짜증스럽게 지팡이를 허공에 휘둘렀다. "라세르포르." 도마뱀이 성가시다는 듯 그를 올려다봤지만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아니, 아니예요," 델라쿠르가 단번에 말했다. "오늘 왜 이렇게 집중을 못하죠?"
"잘 모르겠습니다, 교수님." 그가 건성으로 답했다.
"말해 봐요. 집중을 못하는 이유가 뭔가요? 이것보다 훨씬 복잡한 마법도 해내는 걸 봤는데요."
책상 건너편에서 그렉이 심호흡하는 드레이코를 지켜보고 있었다. "문제 없습니다," 그가 잇새로 내뱉었다. 왜 가만 내버려 두질 않는 걸까?
그녀는 미심쩍은 눈을 했지만 곧 다음 학생들에게로 넘어갔다. "젠장맞을," 드레이코가 중얼거렸다. "다들 왜 이렇게 나한테 관심이 많은 거야?" 그렉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고 너," 드레이코가 벌컥 화를 냈다. "지난 두 달 간 대체 뭘 하고 다닌 거야?"
고일은 말이 없었다. 즉각적으로 끔찍한 기분이 들었다. 분노가 가시며 침착해지는 것을 느끼며, 그가 중얼거렸다. "미안, 잊어버려." 그들은 침묵 속에 작업했다. 번갈아 도마뱀을 변환시키려는 시도를 했지만 이제는 무의미한 동작이었다.
드레이코가 뒤로 빠져서 필기한 것을 다시 보고 있을 때 그렉이 갑작스럽게 말했다. "네가 포터랑 뭘 하는지 알아."
드레이코는 감전된 것처럼 튀어오르며 교과서를 떨어트렸다. 소란에 몇몇 학생들이 돌아보았다. 그가 몸을 숙여 책을 줍는 걸 보고 델라쿠르가 눈살을 찌푸렸다. 마침내 그녀가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렸을 때, 그는 낮게 말했다. "무슨 소린지 모르겠는데."
고일이 너무 오래 침묵을 지켜서 드레이코는 과연 제대로 들은 게 맞는지 의문이 들었다. 델라쿠르가 그들을 해산시키기 시작했을 때에서야 비로소 그가 조용히 말했다. "조심해."
충격이 심한 나머지 거짓말할 생각조차 못하고 드레이코가 물었다. "어떻게 알았어?"
그렉은 어깨를 으쓱했다. "토요일에 기숙사 들어오다가. 거기 누가 있을지 몰랐어."
드레이코는 입 안에서 욕설했다. "들어오는 소리 못 들었는데."
"바빠 보이더라."
그는 피부가 달아오르는 걸 느꼈다. 소지품을 챙기며, 그는 팬지와 블레이즈가 교실을 떠나길 기다렸다가 말했다.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돼, 그렉. 진짜로."
"안 해."
"그렉, 나 진지해." 그가 앞으로 다가서 그렉의 팔을 붙잡았다. "제발. 뭐든 할게."
그렉은 그를 떨쳐 냈다. "그냥 조심해." 그 말과 함께, 그는 드레이코를 순수한 공포 안에 남겨둔 채 교실을 나가 버렸다. 그렉을 믿어도 될지 그는 알 수 없었다. 젠장, 어떻게 이렇게 멍청했을 수가 있지? 이건 전부 실수였다. 만일 들켰더라면, 만일 사람들이 그가 해리 포터와 붙어먹었단 사실을 알게 됐다면, 그렇다면 그들은 지금보다도 더 그를 혐오하게 될 것이었다. 그는 포터에게 저주를 걸거나, 협박하거나, 아니면 사랑의 묘약을 먹인 게 아닌지 의심받을 것이다. 아버지의 상황도 더 나빠질 것이었다. 이러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질주하는 통에 그는 하마터면 델라쿠르가 이름을 부른 것도 듣지 못할 뻔했다. 문간에 서서 그녀가 다시 물었다. "말포이 군? 안 가나요?"
"갑니다. 죄송합니다." 그는 벨벳 주머니가 제자리에 있는지 보기 위해 가방을 한 번 더 확인하고―이제는 부정할 수 없이 습관이었다―바삐 그녀를 지나쳐 현관 홀로 향했다. 그만둬야만 했다. 그는 포터와 엮이지 않고 올해를 잘 버텨서 이곳과 끊임없이 그를 위협하는 위험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만 했다. 그는 자신이 그저 평범하기를, 누구나처럼 친절하고 평범한 부모에게 참한 여자친구를 소개하는 흔한 호그와트 학생이기를 소망했고, 그건 처음이 아니었다. 9월부터 동급생들이 인턴십에 대해 말하는 것들을 들으며, 그는 그들의 고민을 갈망했다. 팬지와 블레이즈는 슬러그혼이 대부분의 시간 그가 만났던 유명한 마녀와 마법사들에 대한 자랑을 늘어놓는 것에 불평했고, 다프네는 벡터가 그녀에게 맡긴 복잡한 업무에 대해 한탄했다. 그들은 모두 미래를 계획 중이었고, 그들의 진로에 도움이 될 인맥을 구축하고 기술을 계발하는 수단으로 인턴십을 활용하고 있었다. 반면 그는 포터와 한데 묶이고 말았고, 보아하니 그들은 서로를 죽이려 들거나 아니면 붙어먹으려 드는 것 가운데서 갈팡질팡하는 것밖엔 할 수 있는 게 없는 듯했다. 수없이 많은 밤 그는 다가오는 쪽지 시험이나 기한을 놓친 과제와 같은 평범한 걱정들로 밤을 지새우는 건 어떤 느낌일지 궁금해했다.
다음날 아침 식사 때, 그는 어머니로부터 답장을 받았다. 그녀는 그가 보낸 편지 아래에 몇 줄을 휘갈겨 적었다.
디저트는 고슈아*였다. 그해엔 네 사촌들과 함께 비스케이 만**에 갔었지.
전부 기억한단다. 순간 하나까지도.
***
드레이코는 포터를 피하려고 했다. 정말 그러려고 했다. 하지만 늘 그랬듯 계획은 끔찍하게 어그러졌다. 포터는 성 어디서든 그와 우연히 마주치기 시작했다. 화장실에서든, 지하 감옥에서 마법약 수업이 끝난 뒤 텅 빈 복도에서든, 4층의 빈 교실에서든. 게다가 그들은 여전히 화요일 교습을 위해 만났지만, 연습에 많은 시간을 쓰지는 않았다. 목요일 스터디 시간에 드레이코는 의심을 사지 않고자 포터와 멀리 떨어져 있으려 했다. 포터가 끊임없이 이쪽을 바라보고, 눈이 마주칠 때마다 미소를 지으며 학생들을 지도하는 드레이코를 구경하고 있었단 점에서 별 도움은 되지 않았다. 한 번은 드레이코가 이쪽을 보고 웃는 포터를 못 본 척하며 답 없는 후플푸프 남학생들을 도와주러 가려는데, 갑자기 고성이 들려왔다. 그는 프리차드의 목소리임을 알아채고 신음했다.
슬리데린과 그리핀도르 학생들 간에 싸움이 벌어져 있었는데 무슨 일이었던 건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파트너가 아니라 자기에게 저주를 걸었다며 위즐리 여자애가 프리차드를 몰아세우고 있었다. 지난번 퀴디치 경기 이후로 두 기숙사 간에는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듣자하니 하퍼가 간발의 차이로 위즐리보다 먼저 스니치를 잡았다는 듯했다. 순식간에 모두가 고함을 질러 댔고 몇몇 그리핀도르와 슬리데린 학생들은 지팡이까지 꺼내 들었다.
"자자, 그만해." 포터가 소란을 종식시켰다. "지니, 지팡이 넣어."
"저 자식이 날 저주했다고!" 그녀가 소리쳤다.
"말콤한테 걸려던 거라고! 빗나갔나 보지!"
"그 자식은 네 코앞에 있었잖아!" 론 위즐리가 으르렁댔다. 멋지군.
드레이코는 프리차드에게로 걸어가 그를 거칠게 밀쳤다. 분개한 그의 신음성을 무시하고 귀에 대고 쏘아붙였다. "지팡이 치워, 이 멍청아."
프리차드는 이를 갈더니 드레이코의 손아귀에서 어깨를 빼냈다. "쟨 미쳤어! 난 아무 짓도 안 했다고! 배덕한테 물어봐!"
"지팡이 넣고 진정부터 해."
"아무 짓도 안 했다고! 날 몰아가려고 하잖아!" 분노로 엉망이 된 프리차드의 얼굴이 붉었다.
그리핀도르 쪽에서도 다시 고함을 치기 시작했고, 그 소리에 드레이코는 미쳐 버릴 것 같았다. 고요가 필요했다. 소리가 너무 컸고, 지나치게 시끄러웠다. 대연회장에 메아리치는 고성은 그에게 전쟁을 연상시켰고, 그는 비명소리 하나하나에 신경을 곤두세운 채 누군가 아는 사람이, 그의 아버지나 어머니가 쓰러지지는 않았을까 사람들을 밀치고 귀를 기울이던 그날을 떠올렸다…
프리차드가 무언가 말하고 있었지만 들리지 않았다. 포터가 드레이코의 얼굴을 보더니 슬리데린과 그리핀도르 사이로 화를 내며 끼어들었다. "다들 유치하게 굴고 있어," 그가 소리쳤다. "이런 거 질린다. 다시 짝지어 서. 그리핀도르, 줄 끝으로 가. 래번클로 옆에. 지금 당장."
그리핀도르 사이에서 불평이 터져나왔지만 그레인저가 포터의 지시에 따라 그들을 이끌고 연회장 반대편 끝으로 향했다. 옆을 지나쳐 갈 때 위즐리 남매가 프리차드에게 눈을 부라리기는 했지만 어쨌든 소란은 잦아들었다.
"난 사실만 말했어," 프리차드가 드레이코에게로 돌아서 고저 없이 말했다. "쟤가 뭐라 말했든 간에 그거 아니야."
"뭔 일인지는 관심 없어. 이제부터 문제 일으키지 마."
"날 못 믿는 거야?" 그가 쏘아붙였다. "쟤네 편을 들겠다고?"
"난 누구의 편도 들지 않아. 이 멍청한 짓거리가 끝나기만을 바랄 뿐이지. 하던 거나 다시 해. 이번엔 조준 똑바로 하고."
"네가 쟤네 편을 들다니 믿을 수가 없다." 프리차드가 차갑게 말했다. "너에 대한 소문이 맞았나 보네."
드레이코는 그게 무슨 뜻인지 묻지 않았다. 그들에게로 쏠리는 모두의 시선은 불편하리만치 잘 알고 있었다. "하던 거 해," 그는 자리를 옮기기 전에 다시 말했다. 학생들은 조금씩 연습을 다시 시작했고 곧 연회장 안은 저주를 날리는 소리와 방어막을 펼치는 소리로 가득 찼다. 드레이코는 한쪽으로 비켜 서서 관망하며 지루한 듯 무심한 표정을 일관하려 했다. 포터가 지켜보고 있단 걸 알았지만 그는 고집스럽게 시선을 돌려 골드스타인의 방어막을 뚫어내는 애벗에게 집중했다.
경직된 분위기에서 마침내 시간이 다 되었다. 짐을 챙기던 드레이코는 프라우드풋이 팔짱을 낀 채 문간을 맴돌고 있는 걸 보았다. 얼마나 오래 거기 있었는지 몰랐다. 누구에게도 인사하지 않고 그는 프라우드풋을 지나, 현관 홀을 가로질러 곧장 이중문 밖으로 나갔다. 팬지가 부르는 소리도 무시했다. 추위가 살을 엘 정도였으나 그는 온열 마법을 걸지 않고 바람의 살벌한 회초릴 맞길 택했다. 그는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호숫가로 난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걸었다. 추위가 이상하게 속죄처럼 느껴졌으나 무엇에 대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고성 때문에 경직된 감각이 남아 있었다. 그는 싸움을 견딜 수 없었다. 혼란은 그에게 너무 과했고,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통제를 벗어나는 느낌도 몹시 싫었다. 솔직히 중요하지도 않은 사람들 간의 별 것도 아닌 말다툼에 이렇게까지 화가 나는 자신이 어리석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지팡이를 꺼내 들며 서로를 저주하겠다며 협박하는 사람들 사이 넘실대는 긴장감은 그에게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고통스러운 기억을 연상시켰다. 죽음을 먹는 자들 가운데서도 자주 얼굴을 비추지 않던 부류와 타인의 희생을 무릅쓰면서까지 끊임없이 어둠의 마왕의 환심을 사려 노력하던 부류가 종종 갈등을 빚곤 했었다. 저택에서 다툼이 번지고 부모님이 그네들이 표적이 되는 걸 피하면서 모두를 진정시키려 애쓰던 적이 몇 번인지 셀 수조차 없었다. 어머니께서 몹시 아끼던 할머니의 초상화를 비롯해 몇 점이나 되는 값비싼 미술품들이 파괴되었고, 악슬리와 캐로우 남매가 부딪혔던 역사적인 싸움의 날에 세대를 거듭해 전해지던 오래된 장롱도 산산조각이 났다.
드레이코는 늘 찾던 호숫가의 바로 그 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검은 파도가 일렁이는 수면은 조도 낮은 달빛 아래 불길한 빛을 띄었다. 그는 몸을 젖히고 앉아 있었다. 냉골같은 찬바닥을 짚은 손의 감각이 빠르게 무뎌져 갔다. 서리 내린 잔디는 축축했다. 이제는 언제든 눈이 내려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라 다들 말했다. 드레이코는 길을 따라 올라오는 발소리를 듣고도 놀라지 않았다. 돌아보며 그는 포터를 맞이할 것이라 예상했으나, 프라우드풋이 그에게로 다가오고 있었다.
"나와 있기엔 좀 춥지 않나?" 프라우드풋이 말을 걸었다. 그는 모피가 둘린 두꺼운 망토를 입고 있었다. 곱슬거리는 머리가 평소보다 훨씬 엉망이었다. 앉아 있던 드레이코는 프라우드풋이 옆자리에 자리 잡으며 무릎의 통증에 신음하는 모습을 놀라서 보았다. "안타깝게도 한창 때처럼 젊지가 않구나. 오러 일을 몇십 년 하다 보면 이렇게 되고 마는 법이란다."
드레이코는 뭐라고 해야 좋을지 알 수 없어 무릎을 가슴 앞으로 모아 세우곤 호수만 바라보았다.
"온열 마법은?" 프라우드풋이 가볍게 물었다.
"괜찮습니다, 교수님."
"그래." 그가 긴 한숨을 내뱉곤 말했다. "자네가 여기 있을지도 모른다 생각했지. 늘 뜰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모양이더군. 원래도 그러고 시간을 보냈었나? 지난 학년들에도?"
"사실 그렇진 않습니다."
그가 부드럽게 허밍을 했다. "좋은 생각이지. 성 안에만 있으면 답답할 수 있으니. 나도 이렇게 되기 전에는 혼자 지내는 데 더 익숙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군… 이렇게 식사 시간마다 많은 사람들의 대화 소리로 왁자지껄한 공간은 낯설지만…" 프라우드풋이 말을 흐렸다. 잠시 뒤 그가 망토 아래서 작은 병을 꺼내들었다. 안에서 푸르스름한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꽤 유용한 주문이지. 몸 가까이 불꽃을 지닐 수 있으면서 다루기도 쉬워." 그가 손 안에서 병을 굴렸고, 그들은 불꽃이 병 가장자리를 타고 흐르는 모양을 구경했다. 얼마 후 프라우드풋이 말했다. "오늘 밤 자네의 스터디 그룹에서 있었던 일의 끝 부분을 봤다네."
"저와는 관련 없는 일이예요," 그가 급히 말했다. "프리차드를 잘 알지도 못하고, 전 연회장 반대쪽 끝에 있었습니다."
프라우드풋이 손을 올렸다. "자네를 탓하려는 게 아니라네, 말포이 군."
"누가 시작한 일인지 전혀 모릅니다, 교수님. 누가 진실을 말하고 있는지도요."
"그게 상관이 있나? 이제 다 끝난 일이네. 누구도 다치지 않았고. 누구에게 잘못이 있고 또 없는지 가려내는 일에 무슨 의미가 있지?" 프라우드풋이 병을 다시 망토 아래에 넣고는 말했다. "그게 아니라, 그 작은 소동 이후에 나는 자네가 훨씬 더 신경이 쓰였네."
"저 말인가요, 교수님?" 그가 인상을 찌푸렸다.
"기분이 별로 좋아 보이지 않더군."
"짜증이 좀 났습니다. 그게 전부예요."
"자네는 공포에 질린 것처럼 보였어. 곧 구토라도 할 것 같았지. 자네가 쓰러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네. 여전히 창백해 보여."
"전… 저는 몰랐어요…" 그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프라우드풋이 기대하는 답이 뭔지도 알 수 없었다.
"다른 교직원들의 말에 의하면, 자네는 올해 몹시 조용하다더군. 주로 어울리던 친구들과도 별로 시간을 보내지 않고, 종종 그랬던 것처럼 문제를 일으키지도 않는다고 했지. 플리트윅 교수님이 뭐라고 말하셨는지 아니? '말포이 군이 올해 유령이 되어 돌아온 것 같다'고 하셨어."
"전 잘못한 게 아무것도 없어요," 그가 약하게 말했다.
프라우드풋이 껄껄 웃었다. "긴장 좀 풀지 그러니? 문제가 있다는 것도 아니고, 자네를 꾸짖으려는 것도 아니라네. 단지 이해하고 싶을 뿐이야." 호수에 시선을 고정한 채 저 멀리 절벽에 공격적으로 부딪히는 물살만 보던 드레이코는 그를 응시해 오는 프라우드풋의 시선을 느꼈다. "그러니 설명해 주지 않겠나, 자네가 겪어 온 것들을. 내가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렴."
"죄송하지만 별로 재미있는 얘기는 아닐 것 같습니다, 교수님."
"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네. 루시우스 말포이의 아들로 자란다는 건 분명 엄청나게 어려운 일일 거야. 흥미롭지만, 어려운 일이지. 게다가 자네는 어쨌든 학업을 마치기 위해 호그와트로 돌아오기를 선택했지 않나… 그건 정말이지 용감한 선택이라네. 그리고 난 아직 자네를 이곳에서 볼 수 있어 기쁘다네."
"솔직히 다른 선택지가 딱히 없었어요," 그가 말했다. 여전히 이런 대화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다들 틈만 나면 제게 상기시켜 주려는 것처럼, 저희 가문의 이름엔 더 이상 그 어떤 의미도 없습니다. 없는 것보다 못하게 됐죠."
"여행을 하겠단 자네의 계획은 어떻고? 여전히 고려 중인가?"
"솔직히 그것에 대해 생각해 보질 않았어요," 그가 말했다.
"흠, 했던 말을 또 하는 건 원치 않으니 자네에게 계획을 세우는 일의 중요성에 대해 한 번 더 설파하지는 않겠네. 자네 아버지가 아즈카반에 수감된다면 어찌할 텐가? 어머니를 위해 영국에 머물겠나?"
그는 프라우드풋의 말에 움찔했다. 당연하게도 그 시나리오를 몇 번이나 머릿속에서 고심해 보긴 했지만, 그렇게 될 가능성을 입 밖에 내는 건 고통스러웠다.
"나를 용서하게," 남자가 작게 말했다. "나는 돌려 말하는 법을 모르는 사람이라네."
"아버지가 아즈카반에 가게 되신다면…" 드레이코는 어떻게 말을 이어야 할지 몰랐다.
"소문이 들리더군," 프라우드풋이 중얼거렸다. "자네도 물론 들었겠지. 솔직히 샤클볼트가 그걸 허가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위즌가모트의 마녀 중 하나가 아멜리아 본즈의 조카라네… 그녀가 어떻게 됐는진 자네도 알겠지… 끔찍하기 짝이 없는 일이야… 당연히 그녀는 피에 굶주려 있다네. 아마도 상당수가 그러겠지… 많은 이들이 애도 중이니 말이야."
"그래서 모든 분노의 표적은 저희 아버지가 되었고요."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한다네. 샤클볼트는 디멘터를 혐오하고, 그 사실은 모두가 알지. 하지만 만일 자네 아버지의 변호사단에게 비장의 수가 남아 있다면, 지금이 바로 그걸 사용할 적기일 걸세." 그는 망설이다 덧붙였다. "다른 변론이나 증거가 남았으리라 보는가?"
"전 모르겠습니다, 교수님. 늘 그렇듯 아버지께서는 제게 아무것도 알려 주시지 않아서요." 그가 쓰게 말했다. "단지 제 생각으로는, 만일 그들에게 다른 선택지가 있었다면 지금쯤이면 뭔가 했어야 하지 않나 싶네요. 아버지의 변호사단을 만나 본 적은 몇 번 없는데, 그들은―" 드레이코는 얼어붙었다. 천천히, 그는 몸을 돌려 프라우드풋을 똑바로 보았다. 남자가 전직 오러였으며 마법부에서 수년을 일해 왔다는 사실이 막 떠오른 것이다. 그들은 서로에 대해 거의 무지했다. 프라우드풋이 위즌가모트를 위해 그에게서 정보를 빼내려는 거라면 어쩌지? 그는 미친 듯이 생각을 되짚으며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해 내려 했으나, 똑바로 생각하기에는 너무 겁에 질려 있었다.
프라우드풋은 불편한 기색을 눈치채기라도 한 것마냥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생각에 잠겨 허밍하며 수염 난 얼굴을 쓸었다. "이번 청문회야말로 중요할 거야. 모두가 결정적인 발언을 할 테고, 위즌가모트는 고심할 걸세. 판결은 2월 중으로 나오겠지. 물론 벌써 시작된 다른 재판들도 있다네. 이 일을 빠르게 끝내고 버리고 싶어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그들은 침묵 속에 앉아 있었고, 드레이코는 멍청하게 군 자신을 저주했다. 프라우드풋은 평화롭게 먼 곳을 바라보았다. 마침내, 그가 차가운 바닥에서 몸을 뗐다. "난 다시 들어가 봐야겠네. 내가 자네 아버지에 대해 약간이나마 아는 바에 의하면, 그는 상당한 지략가라네. 나라면 아직은 포기하지 않겠어. 한편으로 자네 스스로에 대해 신경 쓸 필요가 있겠네. 성적을 높이고, 스터디 그룹 일을 열심히 하시게. 평판을 조금이라도 높여 둔다면 분명 도움이 될 걸세. 지금은 그저 동급생들에 불과하지만, 언젠가는 다들 사회에 나갈 테고, 도움을 청할 연줄이 있는 건 언제나 좋은 일이니까."
"좋은 밤 되세요, 교수님." 드레이코는 딱딱하게 말했다. 그는 프라우드풋이 떠나고 난 뒤에야 머리를 쓸어넘기며 떨리는 한숨을 뱉었다. 그는 조금 전 한 말을 모조리 반추하며 개중 아버지께 불리하게 작용할 만한 게 있는지 떠올리려 했다. 프라우드풋이 그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이 늘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어쨌거나 호그와트의 선생들은 누구나 조금씩 이상한 구석이 있었다. 그는 언제나 학기초에 있었던 면담 이후 슬러그혼에 대한 일종의 호의로 프라우드풋이 그를 담당하게 된 것이리라 여겨 왔다. 프라우드풋이 맥고나걸의 괴상한 인턴십 계획을 그와 가까워져서 아버지에 대한 정보를 더 알아내기 위한 신뢰를 쌓을 기회로 이용했을 가능성도 있었다. 아버지가 하시는 일에 대해 그가 아는 바는 항상 거의 없었지만, 프라우드풋은 그 사실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질문은, 부모님께 알려야 할지 말지였다. 드레이코는 아버지께 걱정을 더해 드리고 싶지 않았고, 단지 그가 편집증적으로 굴고 있는 걸 수도 있었다. 하지만… 만약 프라우드풋이 마법부를 위해 일하거나 위즌가모트에게 보고하고 있을 아주 작은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아버지께서는 알고 싶어하시지 않을까? 아버지는 과거에 그의 통찰력을 그리 높게 평가하지 않았다. 그는 대개 드레이코가 쓸데없이 참견하거나 하지 않고 그저 시킨 일을 하는 걸 선호하고는 했다. 다시금 그는 신뢰할 만한 누군가 그를 이끌어 주기를, 진심으로 그를 최우선으로 신경 써주는 사람의 존재를 절실히 바랐다. 한때는 세베루스가 있었지만―아니, 여전히 너무나도 고통스러운 생각이었다. 호수를 바라보며 그는 종종 생각하던 질문을 다시 떠올렸다. 만일 누군가 이 정도로 부모와 복잡한 관계에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 역시도 부모님께 어디까지 솔직해져야 하는지를 두고 끊임없이 자문해야 했을까? 물론 상황이 더 나빴을 수도 있었다… 자식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부모를 뒀다거나… 아니면 부모가 없을 수도 있었다, 포터처럼…
포터. 어째선지 모든 생각은 언제나 그에게로 귀결되었다. 어둠의 마왕에 대한 투쟁이 그를 중심으로 돌아갔던 마법 세게에서는 충분히 그럴 법한 일이었다. 그리고 지금, 비록 드레이코는 그러한 사실에 자기 혐오가 차올랐지만, 포터는 그의 삶에서도 중심 인물이 되어 있었다. 그는 포터를 생각하며 잠에 들었다. 더 나쁜 건, 그가 복도를 걸을 때마다 거기 포터가 있지는 않은지 확인한다는 거였다. 식사 시간에 그는 포터가 이쪽을 보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그리핀도르 테이블을 건너다 보곤 했다. 그러다 몇 번 눈이 마주쳤는데, 그럴 때마다 그는 눈을 홉뜨곤 음식을 마저 입에 넣으며 남몰래 이게 다 뭐하는 짓이고 여기서 뭘 더 어째야 하는지를 자문했다. 그와 함께 주도하는 스터디 그룹 시간에, 그는 학생들과 그들의 처참한 무언 마법 실력에 집중하자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음에도 시선은 계속 정중히 누군가의 자세를 고쳐 주거나 앵무새를 찻잔 덮개로 변환시킬 수 있을 거라고 격려하는 포터에게로 향했다. 그는 포터의 한숨이나 손길, 키스하고 난 직후의 얼굴과 같이 그에 대해 아무도 모르는 일면들을 알고 있다는 사실에 모종의 이상한 쾌감을 느꼈다. 그는 치욕스러워해야만 했고, 가끔은 정말 그렇기도 했지만, 다른 때에는 이 모든 일들을 겪어 왔는데 그 또한 누군가를 애타게 그리는 것 정도는 허락받아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비록 그게 포터일지라도.
Chapter 16: xvi.
Chapter Text
아버지의 청문회를 앞둔 토요일, 드레이코는 팬지에게 이끌려 다시 호그스미드를 방문했다. 솔직히 말해 정신을 팔릴 곳이 있어 다행이었다. 모든 8학년생들이 스리 브룸스틱스에서 만나 한 잔 하기로 했다. 함께 호그와트를 나선 슬리데린들은 허니듀크에 잠시 들러 군것질거리를 쟁였다.
"우린 이제 애들이 아니야," 팬지가 찍찍거리는 얼음 쥐로 자루를 가득 채우는 걸 보고 드레이코가 질색하며 말했다.
"넌 너무 심각하게 굴어," 그녀가 말했다. 자루 안을 들여다본 그녀는 만족했는지 입구를 묶고는 그에게로 던졌다. "자. 들고 있어 봐. 퍼지 좀 사 오게."
"네 부모님께서 매번 간식거리를 보내 주시잖아!"
"아, 내버려 둬. 올해는 스트레스가 많다고. 슬러그혼이 나한테 맡긴 일이 얼마나 많은지 알아? 근데 솔직히," 그녀는 망설이다 수줍은 얼굴을 하고 말했다. "그건 다 괜찮아. 내가 마법약을 꽤 잘 하는 건 원래 알았지만, 이제 진짜 감을 잡아가는 느낌이거든. 슬러그혼이 우리한테 울프스베인 마법약 재료를 채워 놓으라고 시킨 거 아니? 그것도 제대로 해내고 있어!" 드레이코의 어깨 너머를 보며 그녀가 낮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물론 블레이즈는 그게 다 자기 공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녀석 어찌나 거만해졌는지…"
드레이코가 코웃음을 쳤다. "원래 그랬어."
"뭐, 어쨌든. 슬러그혼 말로는 내가 나갈 수 있는 진로가 엄청 다양하대. 다음주에 관련해서 상담하기로 했어. 성 뭉고 병원에서 약사로 일할 수도 있어. 멋질 것 같지 않니? 봉급도 높을 것 같고 말이야."
"그럴 것 같다." 팬지가 퍼지 상자 몇 개를 들이미는 통에 그는 코를 찡그렸다.
"내 성적이 마법약 N.E.W.T.를 듣기에 모자라는 건 맞아," 그녀가 말을 이었다. "근데 슬러그혼 말로는 자기한테 연줄이 좀 있다더라고… 슬러그혼이라면 뭔가 해줄 수 있겠지?"
갑자기 개구리 초콜릿을 든 다프네가 옆에서 나타났다. "어머, 드레이코. 가서 네 것도 좀 사."
"드레이코는 군것질하기엔 너무 늙었대." 팬지가 말했다.
"아니거든. 너희가 설탕 먹고 살 쪄서 벽에서 떨어지는 꼴이나 보면서 다음 2주를 보내고 싶지 않은 것뿐이야."
팬지가 반박하려 입을 열었지만 다프네가 막아섰다. "그럼 이거나 빨리 계산하자. 벌써 10시가 다 되어 가."
그들은 다같이 허니듀크에서 나와 기쁘게 수확품들을 비교했다. 보아하니 밀리센트는 가게에 있던 온갖 맛이 나는 강낭콩 젤리의 재고를 전부 털어온 듯했다. 그녀가 노트에게 끔찍해 보이는 노란색 젤리를 먹어 보라며 도발했고, 그가 씩씩거리며 헛구역질하는 모습을 보고 모두가 웃었다. 젤리는 구토 맛이었다. 드레이코 옆에서 걸으며 다프네는 개구리 초콜릿 하나의 포장을 벗겼다. 초콜릿을 야금거리며 그녀는 카드를 뒤집어 보고는 드레이코에게 건넸다.
"해리 포터야," 그녀가 말했다. "난 이미 있어. 가질래?"
"괜찮아."
"너 엄청나게 모아 댔잖아, 드레이코!" 노트가 말했다. "분명 카드를 다 모았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물론 지금은 새로운 게 엄청 나왔지만… 난 지난주에 롱바텀을 뽑았어. 쓰레기통에 던져 버리고 싶긴 했지만 그러면 컬렉션에 구멍이 나니깐…"
"자, 이거 가져. 다시 모으기 시작해 보는 거야!" 다프네가 활기차게 말하며 그의 매서운 시선은 무시하고 카드를 그의 손에 밀어넣었다.
길을 따라 내려가며 드레이코는 움직이는 사진을 빤히 보았다. 포터의 머리칼은 언제나처럼 정리되지 않은 상태였고, 사진 찍히는 데 대한 불편함이 선명히 드러나 보였다. 한순간 눈이 마주쳤고, 드레이코는 포터가 그를 향해 눈을 찡긋해 화들짝 놀랐다. 부끄러워져서 그는 다급히 카드를 주머니 안으로 밀어넣었다. 망할 것. 다행스럽게도 모두들 밝은 녹색의 젤리가 올리브 맛일지 코딱지 맛일지 토론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마침내 다프네가 끄트머리를 깨물어 먹어 보고는 기쁘게 외쳤다. "새싹 맛이야!"
스리 브룸스틱스는 그 어느 때보다도 붐비는 것 같았다. 8학년생들은 이번에도 몇 개의 테이블을 이어붙여 펍 안의 공간을 대부분 차지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기숙사 간 구분이 거의 없었다. 테이블에는 모두가 뒤섞여 아무렇게나 흩어져 앉아 있었다. 기숙사 간 구분이 분명해서 슬리데린들끼리 테이블 한쪽 끝에 모여 앉았던 지난번에 드레이코는 더 안전한 느낌을 받았었다. 다프네는 물론 전혀 구애받지 않고 곧장 리와 패틸 쌍둥이에게로 의자를 끌고 다가가 앉았다. 밀리센트와 팬지는 막 피쳐를 비운 애벗, 코너, 그리고 핀치-플레츨리와 합석했다. 드레이코는 자비니와 노트를 따라 뒷쪽으로 향하다 누군가에게 손을 붙잡혔다.
"와서 나랑 앉아." 포터가 귀에 대고 속삭였다. 소름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한 손에 피쳐를 든 포터가 바로 뒤에 서 있었다. 바에서 막 돌아온 것이 분명했다. 뭐라 항의하기도 전에 그는 상석 쪽으로 드레이코를 끌고 갔다. 너무 놀라서 따지지도 못하고 그는 포터의 옆에 앉았다. 그는 자비니와 노트를 찾아 미친 듯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맥밀란과 본즈 사이에 자리 잡은 그들이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드레이코가 테이블 가까이 의자를 당겨 오자 그레인저와 위즐리가 딱딱하게 굳었지만 그들은 아무 말 하지 않았다. 포터가 언질해 둔 것이 분명했다. 이 이상한 일을 목격한 다른 누군가가 있는지는 몰라도 말을 얹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다들 이미 각자 대화하느라 바빴고, 대부분은 곧 다가올 래번클로와 후플푸프의 경기에 대해 떠들어 대고 있었다.
"론은 래번클로가 승률이 높다고 본대," 그레인저가 초조하게 말했다. 그를 향해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보내는 중인 위즐리를 진정시키려는 의도가 투명했다.
포터가 고마운 눈으로 그녀를 보고는 말했다. "론은 후플푸프에 베팅한 적이 한 번도 없어. 그래도 난 아직 가능성이 있다고 봐. 그쪽에 있는 잔 좀 줄래, 론?"
위즐리가 군말없이 빈 잔 몇 개를 밀어 건넸다. 포터가 잔을 하나씩 채우는 동안 그들은 침묵 속에 조심스레 서로를 곁눈질하기만 했다. 갑작스럽게 포터가 말했다. "잠깐, 드레이코도 잔이 필요하잖아. 따라와."
드레이코? 언제부터 이름을 불렀다고? 당황하여 그는 포터를 따라 바로 향했다. 테이블의 긴장감으로부터 멀어질 수 있는 게 다행스러웠다. 펍이 어찌나 붐비는지 로즈메르타 부인은 포터가 빈 잔을 달라고 했을 때 드레이코가 있는 걸 눈치채지도 못한 듯했다. 기다리는 동안, 포터가 드레이코의 팔꿈치를 만지작댔다. "론이랑 헤르미온느는… 노력 중이야. 장담하는데, 정말이야."
"뭐를? 걔네한테 뭐라고 했는데?"
"아무것도. 기숙사 간 해묵은 원한을 내려놓을 필요가 있다는 말만 했어. 멍청이 같은 짓이잖아. 헤르미온느도 동의했고." 드레이코가 아무 말 하지 않자, 그가 덧붙였다. "그래야 앞으로 나아가는 의미가 있지 않나? 난 모든 걸 가문이니 혈통이니 기숙사니 하는 걸로 나누려 드는 데 질렸어. 넌 아니야?"
"포터," 그가 가볍게 말했다. "너 취한 것 같다."
"해리," 그게 답변이었다.
"언제부터 우리가 이름 부르는 사이였는데?" 그가 물었다.
"몰라. 대충 날짜 하나 정하든지." 마침내 잔을 건네줄 틈이 난 로즈메르타 부인에게 포터―가 아니라 이젠 해리겠지, 망할―가 감사를 표했다. 군중들 사이를 헤치며 그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네 공강 시간에 정신없이 붙어먹다가 내가 일반 마법 수업에 결석할 뻔한 지난주 화요일은 어때?"
저주라도 걸린 듯 그는 입을 뗄 수가 없었다. 해리의 옆자리에 다시 앉아서, 그는 채워지는 잔을 말없이 보았다.
잠시간 침묵이 있은 후에, 그레인저가 다시 시도했다. "그래서, 말포이―드, 드레이코―넌 후플푸프의 승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슬리데린… 슬리데린이 지난번 경기에서 그리핀도르를 멋지게 이겼잖아." 위즐리는 방금 막 민달팽이를 삼킨 사람처럼 보였다.
"후플푸프의 콜드웰은 실력 있는 파수꾼이지," 그가 잔을 홀짝이며 말했다. 해리의 화난 표정을 보고 웃지 않는 데 혼신의 힘을 다해야 했다.
"개소리야," 별안간 참을 수 없는 듯 위즐리가 말했다. "래번클로 추격꾼들이 콜드웰을 납작하게 눌러줄 걸."
"지난번 그리핀도르 대 래번클로 경기에서 너도 꽤 손쉽게 막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드레이코가 가볍게 말했다.
위즐리는 한 대 맞은 것처럼 테이블 건너편에서 그를 뚫어져라 봤다.
"그래, 맞아!" 그레인저가 힘입어 말했다. "너도 래번클로랑 잘 싸웠었잖아, 론. 안 그래?"
위즐리가 잔 안에 대고 무어라 중얼거렸다.
"론은 올해 우리가 팀에 들 수 없어서 화가 났어." 해리가 말했다.
"넌 그리핀도르 역대 최고의 수색꾼들 중 하나였다고!" 위즐리가 울부짖었다. 얼굴이 거의 분홍빛이었다. 드레이코는 그가 얼마나 마신 건지 궁금해졌다.
"자, 자!" 피니건이 파이어위스키를 들어올리며 테이블 건너편에서 외쳤다. 토마스와 롱바텀이 합류했다.
해리는 웃더니 부끄러워하며 고개를 저었다. "좋아, 좋아." 드레이코를 곁눈질하며 그가 말했다. "우리도 나중에 경기해 봐야겠다. 올해가 다 가기 전에." 드레이코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그가 덧붙였다. "한 번은 더 네 코앞에서 스니치를 낚아채 봐야겠거든."
드레이코는 코웃음 쳤다. "그런 행운은 없을걸."
"나랑 한 번 더 경기해 줄 거지?"
드레이코는 인상을 찌푸렸다. 해리는 왜 이렇게까지 집요한 거지? 맥주를 한 모금 마시며 그는 그레인저와 위즐리의 흥미진진해하는 시선을 눈치 챘다. 해리가 무릎을 단단히 쥐었다 놓더니 말했다. "학기가 끝나기 전에. 누가 먼저 스니치 잡나 시합하자. 응?"
그는 눈을 굴리고 한숨을 쉬었다. "그래, 그래, 젠장할. 너 원래 이렇게 막무가내냐?"
해리가 씩 웃었다. "네가 더 잘 알잖아."
드레이코는 맥주에 사레가 들릴 뻔했다. 미소 띤 해리를 못 본 체하며 그는 갑작스럽게 테이블의 나뭇결 무늬에 굉장한 관심이 생긴 척했다.
몇 가지 대화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었고, 드레이코는 따라잡기가 어려웠다. 아직 두 잔째였지만 귀가 웅웅거렸고, 가슴으로부터 불쾌한 온기가 번져 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해리는 잔이 빈 것을 볼 때마다 자연스럽게 다시 채웠다. 그는 골드스타인이 말을 걸었을 때 화들짝 놀라 공상에서 빠져나왔다. "너 저번 주 변환 마법 실습 때 꽤 잘했었지 않나, 말포이?"
"뭐? 나―그래. 맞아. 괜찮았지."
"젠장, 델라쿠르 너무 빡세." 테리 부트가 말하며 이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매의 눈으로 모든 걸 보고 있다니깐. 그래도 스터디 그룹 때 수업해 주신 건 꽤 도움이 됐지 않냐?"
"어. 맞지."
"이번주엔 이종 간 변환 마법을 다시 연습할 수 있으려나?" 골드스타인이 말했다. "5학년들한테는 좀 어려울 것 같기도 해… 절반으로 나눠서 해보면 어때? 5학년이랑 6학년들은 방패 마법을 계속 연습하고, 7학년이랑 8학년들은 변환 마법을 다시 깔짝여 보는 거지."
"좋은 생각이다," 해리가 말해서 그는 대답하느라 진땀을 빼지 않을 수 있었다. "8학년들은 이제 방패 마법은 거의 마스터했을 것 같은데, 안 그래?"
"우리 D.A. 회원들한테는 구닥다리지." 부트가 말했다. "그래도 아직 무언으로는 못 하겠더라."
"드레이코한테 물어봐," 해리가 말했다. "무언 마법에 전문가더라." 경고 없이 해리가 드레이코의 무릎에 다시 손을 얹었다. 그는 어찌나 놀랐는지 잔을 넘어뜨릴 뻔했다.
"변환 마법 시간에 봤어." 부트가 말했다. "우리도 좀 가르쳐 줘, 말―드레이코. 혼자만 알고 있지 말고."
"그래, 드레이코." 해리가 능청스럽게 말했다. "비법 좀 같이 알자."
"비법 같은 거 없어." 그가 정신을 유지하려 애쓰며 잘라 말했다. "연습뿐이야. 제대로 된 자세랑."
"드레이코는 제대로 된 자세를 엄청나게 중시하지." 해리가 그의 무릎을 꽉 쥐며 말했다.
드레이코는 그레인저와 위즐리 쪽을 흘깃 보았다. 해리가 그의 무릎을 쥐었을 때 그레인저의 눈이 테이블 가장자리로 재빠르게 휙 돌아간 것을 봤다고 맹세할 수도 있었다. 고개를 들어 눈이 마주친 그녀가 말했다. "드레이코의 말이 맞아. 무언 마법은 연습이 많이 필요하지. 단시간에 터득할 수 있는 종류가 아니야."
"그래서 맥고나걸이랑 프라우드풋이 해리랑 같이 스터디 그룹을 주도할 사람으로 널 고른 건가?" 골드스타인이 물었다.
"그럴 지도," 그가 중얼거렸다.
"프라우드풋 꽤 괜찮지 않아?" 부트가 말했다. "어니랑 나는 그분이랑 같이 일해. 굉장히 많은 일을 하게 해주셔. 마법부 조사반에 있는 옛 동료들도 엄청나게 소개해 주셨지… 잘은 몰라도 꽤 중요한 일인 것 같아. 어니는 그것 때문에 악몽을 꿀 지경이라곤 하지만…"
"조사반?" 위즐리가 물었다. "아빠가 그러는데 거기 지금 엄청나게 바쁘대. 볼드모트 사후에 도주한 어둠의 마법사랑 마녀들을 죄다 색출해 내느라고. 손이 열 개라도 모자랄걸."
"진짜로," 골드스타인이 말했다. "맥고나걸은 나를 행정직으로 배치해 줬어. 지루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할 일이 엄청 많아. 여기서 서류 작업을 죄다 쳐내야 하거든. 해외로 나가는 오러들 여권이나 구속영장 같은 거 말이야."
"네가 거기서 우리랑 같이 일하지 않는다니 이상하다, 해리." 부트가 말했다. "널 곧장 오러로 승진시켜도 됐을 텐데."
해리가 웃긴 모양새로 작게 미소지었다. "한동안은 스포트라이트에서 좀 벗어나고 싶었던 것 같아."
"그럴 만하지. 뭐 어쨌든, 마법부에는 언제나 널 위한 자리가 준비돼 있을 테니깐. 골라 가질 수도 있을걸."
"우리 다 전망 괜찮지 않나?" 골드스타인이 잔을 들어올리며 기쁘게 말했다. "우리 모두 전쟁에서 싸웠잖아. 그건 무시 못할 경력이지. 헤르미온느를 봐, 마법 생물 통제 및 관리부에서 일하고 있잖아."
그레인저가 쏘아붙였다. "그리고 분명히 말하건대, 내 최우선 목표는 그 끔찍한 부서명을 바꾸는 거야. 너무 잔인하지 않아? '통제 및 관리'라니. 집요정이나 켄타우로스, 도깨비들을 통제해야 할 '생물'로 보는 것 같잖아! 연락 사무소를 이용하는 켄타우로스가 아직 단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아니? 그럼 그게 왜 있는 건데? 게다가 마법사-도깨비 간 관계는 몇 세기 동안이나 썩어 있었지… 시스템을 완전히 뜯어 고쳐야 해."
"그리고 우리 헤르미온느보다 그 일에 적임자는 없지," 해리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레인저는 얼굴을 붉히고는 잔을 홀짝였다.
"론은 벌써 오러 훈련에 들어갔어." 골드스타인이 말을 이었다.
드레이코는 웃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했다. 위즐리가 오러라고? 그 자식의 파트너가 될 녀석이 불쌍하기도 하지.
"맥고나걸이 인턴십 프로그램을 만들어 준 건 좋지만 굳이 아니었어도 우린 다 잘 풀렸을 거라 생각해," 부트가 말했다. "볼드모트랑 죽음을 먹는 자들에 대적한 일이야말로 일종의 증명서가 아니겠어?" 모두가 웃자 씩 웃으며 파이어위스키를 마시려던 부트가 문득 드레이코를 보았다. 그는 창백하게 질렸다. "내 말은, 물론―성적도 중요하지, 맞지―그리고 우린 다―우린 다 다른, 상황이 다 다르니까, 우린―그러니까 그게 전부는 아니라―"
위즐리가 비웃었다.
"드레이코, 네 인턴십은 좀 어때?" 그레인저가 목소리를 높여 물었다. "가르치는 일이 적성에 맞는 것 같아?"
"아니, 솔직히 별로." 그가 말했다.
"슬러그혼이 은퇴하려 한다는 소문이 있어," 그녀가 말했다. 과하게 밝은 목소리를 유지하려 애쓰는 투였다. "마법약을 가르치는 것도 꽤 재밌을 것 같지 않아? 넌 항상 마법약에 강했잖아."
"호그와트에서 가르치기에 나는 좀 어리지 않나?" 그가 말했다. "게다가 어떤 부모가 자기네 자식을 전직 죽음을 먹는 자에게 보내서 교육시키려 하겠어."
그레인저가 초조하게 해리를 눈짓했다. 그는 소리내 웃고 있었다. "얘 진짜 웃기지 않냐?" 긴장이 내려가자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나왔다. "'전직 죽음을 먹는 자'라니. 너무 과대평가 아니야? 전쟁 때 너 너희 어머니랑 성에서 술래잡기 하고 있었잖아. 그리고 내 기억이 맞다면 너 저택에서 네 이모한테 우리 꼰지르지도 않지 않았냐? 네가 대체 뭘 했는데?"
위즐리조차 그 말엔 웃었다. 드레이코는 얼어붙어서 해리를 빤히 보았다. 대화 주제가 옮겨 갔다. 의자를 앞뒤로 흔들어 대고 있던 수잔 본즈가 올리밴더의 지도를 받으며 일한 경험을 이야기하기 시작한 것이다. 드레이코는 그녀의 말에 집중하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해리를 보고 있었다. 해리의 손은 그의 무릎에 불타는 각인을 남기려는 것 같았다. 이건 전혀 그답지 않았다. 수십 곳의 장소에서 수백 번 그에게 만져졌었다. 이런 걸로 정신 못 차릴 단계는 이미 지난 것이다. 하지만 해리의―젠장, 이렇게 부르는 게 아직도 너무 이상했다―손길에는 어딘지 노골적인 구석이 있었다. 마치 은밀한 곳에 숨어 있기라도 한 것처럼.
"너 오늘 진짜 이상하다," 그가 중얼거렸다. 해리가 말소리를 듣기 위해 가까이 다가왔다.
"내가? 모르겠는데."
"그리고 이… 이름으로 부르는 건 다 뭔데?"
"그건 헤르미온느의 제안이었어," 해리가 안경테를 문지르며 말했다. "론이 슬리데린 얘기를 계속해 댔거든. 걔가 어떤지 알잖아… 늘 마지막으로 변하는 부류지. '말포이'가 이렇고 '자비니'가 저렇고 하는 말들을 계속 듣다가 헤르미온느가 이제 그만할 때가 됐다고 말했어. 우린 같은 학교를 뭐야, 8년 동안이나 다녔잖아? 좀 바보같다는 생각이 든 거지."
"올해는 참 많은 게 바보같이 느껴지네."
"그러게." 드레이코는 해리가 잔을 다시 채우기 위해 손을 뗐을 때 약간의 아쉬움이 들었다.
"날 취하게 하려는 거지," 그가 고저 없이 말했다.
"내가 뭐하러?" 해리가 씩 웃었다. "넌 알코올 없이도 이미 충분히 적극적인데."
"포터!" 그가 화들짝 놀라 소리쳤다. 몇몇이 이쪽을 돌아보았다. 말소리를 낮추며, 그가 잇새로 말했다. "네 친구들이 저기 있어."
"해리," 그가 고쳐 주었다.
"쟤네한테 말 안 한 게 확실해?"
"안 했어. 근데 무슨 상관이야? 솔직히? 내가 여기서 너랑 입 맞춘다 해도 달라지는 게 있어?"
"우선 한 가지, 위즐리는 기절하겠지." 그가 말했다.
"론이야."
"그건 너무 나갔어. 너도 알잖아."
위즐리는 그 말을 듣기라도 한 양 고개를 들더니 잔 너머로 그를 노려보았다.
"퍽이나 안 어색하겠다 이게," 드레이코가 말했다.
해리가 낄낄거렸다. "괜찮을 거야. 시간을 좀 줘."
"내가 이 긍정적인 새 버전의 해리 포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야 될지 모르겠는걸," 그가 의자에 등을 기대며 말했다. "넌 항상 기분파에 화나 있었잖아. 이게 발전적인 거라는 확신이 안 드네."
그 말에 해리가 크게 웃었다. 다시금 머리통 몇 개가 이쪽을 향했다. 해리는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글쎄. 올해는 내가 기분이 더 좋은가 보지."
"사이코패스한테 쫓기지 않는 게 긍정적인 기분에 도움이 될 것 같기는 해."
"그럴 지도. 근데 올해는 기분이 좋을 이유가 많아…"
눈썹을 으쓱한 드레이코가 거기에 답하려 했을 때 그레인저가 크게 말했다. "시간 좀 봐! 돌아가야겠어. 거의 자정이 됐네."
그들은 다채롭게 취한 상태로 펍을 나섰다. 길을 따라 걸어 내려가며 피니건과 토마스가 활기차게 편곡한 그리핀도르 버전의 "위즐리는 우리의 왕"을 합창하기 시작해 드레이코는 몸 둘 바를 몰랐다. 몇몇이 더 합세했고, 열린 창문 너머로 들려오는 화난 목소리의 제재에도 그들은 굴하지 않았다. 드레이코는 자진해서 맨 뒤로 가서는 무리와 일정 거리를 유지하며 따라갔다. 스리 브룸스틱스 내부는 더웠기에 차가운 밤공기가 기꺼웠다. 그는 온열 마법을 약하게 걸고 지팡이를 망토 안, 벨벳 주머니 옆에 넣어 두었다. 그가 주머니에 손을 넣고 숨을 깊이 들이마셨을 때 누군가 뒤에서 붙잡았다. 그는 너무 놀란 나머지 소리를 지르지도 못하고 머릿속이 새하얘져 얼어붙었다. 급습범은 그를 어두운 골목 안쪽으로 이끌었다.
해리가 석벽에 그를 밀쳤다. 그는 기함해 쏘아붙였다. "간 떨어질 뻔 했잖아."
"왜 쫄았는데?" 해리는 벌써 드레이코의 망토 아래로 손을 집어넣고 있었다. "내가 아무도 널 건드리지 못하게 할 거란 거 알잖아."
"그래요, 영웅님." 목선을 따라 해리의 키스를 받으며 그렇게 비꼬는 데에는 별 효과가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물었다. "만족이란 걸 모르는구나, 너는?"
"진심이야?" 물러선 해리가 억울한 눈을 했다. "여태 본 것 중 가장 섹시한 셔츠에 상상도 못한 바지를 입어 놓고는 나더러 손 떼고 가만히 있으라고?"
드레이코는 입을 떡 벌렸다. 얼굴이 달아오르는 게 느껴졌다. "너―아니―난 그런 의도로 이걸 입은 게―"
"정말?" 입술이 거의 맞닿을 정도로 해리가 몹시 가깝게 다가왔다. "그럼 나 그냥 가도 된다는 소리네."
최선을 다해 오만하게 들리도록, 드레이코는 말했다. "물론이지. 난, 너와는 다르게 호르몬의 노예가 아니거든."
"그래?" 해리가 숨을 내뱉었다. 그가 별안간 드레이코의 벨트에 손가락을 얹었다. "그럼 이래도 넌 아무렇지 않겠네, 그렇지?" 해리의 손가락이 더 아래로 내려가 드레이코의 바지 위 무시할 수 없이 불룩 튀어나온 부분을 쓸었다. 어쩔 줄 모르고 그는 해리를 끌어당겨 날카롭게 키스하며 입 안에서 신음했다. 해리가 손을 뻗어 얼굴을 감싸 왔다. 수염자국의 감촉과 혀끝에 남은 맥주의 맛, 키스할 때 그가 내는 작은 소리 하나까지… 머리가 어지러웠다.
호흡이 달린 드레이코가 몸을 떼며 말했다. "들킬 거야."
"그래." 해리는 풀린 눈으로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손은 어깨에 얹혀 있었다.
"다른 애들을 따라잡는 게 좋겠어."
"단둘이었다면 내가 널 어떻게 했을지 넌 상상도 못할 걸… 젠장, 네 모습 좀 봐…" 드레이코는 침을 꿀꺽 삼켰다. "다음 번엔… 다음 번엔 날 '해리'라고 불러 줘. 그리고 네 입에서 나오는 내 이름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들을래."
위즐리가 "해리?"하고 불렀을 때 드레이코는 펄쩍 뛰어오를 뻔했다. 그는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려 했지만 해리는 소리내 웃으며 떨어질 생각을 안 했다.
"누가 날 부르는 것 같네," 그가 말했다. "가자."
해리는 위즐리와 그레인저에게 니플러가 골목 쪽으로 뛰어가는 걸 봤다며 거짓말했다. 그들은 명백히 의심하는 눈초리였지만―"이 밤중에 니플러가 나와 있다고? 심지어 날씨가 이런데?" 그레인저는 의심스러워하며 물었다―더 추궁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함께 호그와트를 향해 걸었고, 해리와 그의 친구들이 처음 호그스미드에 방문했던 때를 추억하는 동안 드레이코는 잠자코 있었다. 한 번씩 해리와 어깨가 부딪혔다. 호그와트 쪽으로 난 길을 따라 올라가던 중에, 그는 해리가 손을 잡아오는 것을 느꼈다. 사위는 어두웠고, 오직 몇 사람들만이 지팡이에 불을 밝힌 지금 어둠 속에서 눈에 띌 가능성은 낮았다. 그럼에도 해리의 뻔뻔함은 믿기 힘들 정도였다. 대체 얼마나 마신 거지? 함께 어둠 속을 걸으며 해리는 친구들과 즐겁게 대화를 나눴다. 드레이코는 지금이 그 어느 때보다도 그와 가까워진 순간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손만 잡았을 뿐이고, 맥주 때문에 감성적이고 멍청해진 게 틀림없었지만 해리의 친구들조차 알지 못하는 비밀을 공유했다는 사실에 만족감이 전신을 타고 따뜻하게 번졌다. 그들은 현관 홀에 도착해서야 떨어졌다. 드레이코는 이중문 사이로 새어나오는 빛이 그들에게 닿기 전에 해리의 손에서 손을 빼냈다. 다른 슬리데린들을 따라 지하 감옥으로 내려가기 전에, 드레이코는 계단을 오르는 해리 쪽을 보았다. 시선이 마주쳤고, 해리는 계단 위로 완전히 사라져 버리기 전 그를 향해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여주었다.
Chapter 17: xvii.
Chapter Text
화요일 오전, 팬지와 드레이코는 공강 시간에 뜰에서 시간을 보냈다. 팬지는 그를 따라 밖으로 나가며 너무 춥고 감기에 걸릴 것 같다고 징징댔지만, 드레이코가 뜰 절반은 데울만큼 강력한 온열 마법을 걸자 곧 잠잠해졌다. 그들은 두터운 겨울 망토를 따뜻하게 챙겨 입고 함께 석조 벤치에 앉아 날리는 한 줌의 눈송이를 구경했다.
"그래서, 이제 단둘이니까 하는 말인데," 팬지가 말했다. "토요일 밤에 있었던 일 전부 얘기해 줘."
이 얘기가 나올 걸 예상했다. 그가 슬리데린 휴게실에 발을 들이자마자 모두가 그가 펍에서 해리 옆에 앉은 이유며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어쩌다 갑자기 사이가 좋아진 건지 추궁해 댔다. 그 집요함은 일요일까지도 건재했다. 마침내 드레이코는 그들에게 아버지의 일에 대한 최후의 보루로 그가 두 번 살아남은 소년과 가까워지려 노력 중이라 털어놓았다. 그 말이 대충 받아들여진 것 같았으므로 그는 그런 똑똑한 거짓말을 떠올린 것에 대해 자찬했다.
"아무 일 없었어," 그가 말했다. 그가 망토를 더듬어 아침 식사 때 조심히 싸 온 페이스트리를 꺼냈다. 바스라지는 겉면을 조금 털어내고 그가 팬지에게 한 조각을 건넸다.
"식욕이 돌아왔네," 그녀가 말했다. "아무튼. 포터랑 걔 친구들이랑 같이 앉다니… 너무 이상했다고. 아무리 너라고 해도."
"말했잖아. 아버지를 도우려는 거라고."
"그건 알아. 근데 그레인저랑 위즐리는 어땠어? 끔찍해?"
"걔네는… 괜찮았어." 그는 솔직하게 말했다. "그레인저가 오래 전부터 기숙사 간 앙금을 풀고 싶어 했단 거 알잖아."
"그럴 수 있지. 그치만 그리핀도르라고? 난 잘 모르겠어, 드레이코… 처음엔 포터가 네게 개인 과외를 해 달라고 하더니, 이젠 술잔을 나누고 있네."
"그래서?"
"그래서? 너희는 서로를 경멸하잖아!"
드레이코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가 페이스트리를 베어물었다. 달콤한 딸기잼 맛이 났다.
"정말 포터가 위즌가모트를 설득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그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혹시 모르잖아? 기묘한 일들이 벌어지곤 하니까. 최근에 우리의 구원자께서는 원하는 건 말만 하면 뭐든 이뤄지는 삶을 살고 계신 것 같던데." 팬지가 상상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그랬다.
"내 말은… 너무 아슬아슬하잖아." 그녀가 말했다. "하지만 그게 네 아버지께 도움이 된다면… 빨리 이 일이 다 끝나 버렸으면 좋겠다."
"끝나려면 한참 남은 것 같은데. 그들은 피를 원해. 복수를 원한다고. 그리고 솔직히 내가 그걸 비난할 처지가 되는지도 모르겠다."
"드레이코!" 그녀가 울부짖었다. "네 아버지 일이잖아. 당연히 넌 그럴 수 있지. 너도 소문을 들었을 거 아냐. 들려오는 얘기들이며, 그들이 건수만 잡는다면 네 아버지께 무슨 짓을 할지―" 그녀는 갑자기 굳어진 얼굴로 말을 멈췄다.
"괜찮아. 이미 들었어."
"너무 잔인해."
드레이코는 그녀를 보았다. "그럼 우리 아버지가 한 일은 잔인하지 않고? 넌 아버지가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르잖아. 뭘 할 수 있는지도, 내가 본 것들도."
"하지만 디멘터의 입맞춤은…"
그가 남은 페이스트리를 전부 그녀의 손에 쥐였다. 더는 배가 고프지 않았다.
"드레이코. 아저씨가 하신 일이 괜찮다고 말하려던 건 아니야," 그녀가 속삭였다. "하지만 나였다면, 난 그런… 고통을 받느니 차라리 죽기를 택했을 거야. 그리고 네 어머니도 생각해야지…"
나왔다. 제일 큰 문제가. "어머니 생각 해. 항상 해. 여기 와 있는 모든 날 모든 순간에, 생각하고 있다고."
팬지가 희미하게 미소 지어 보였다. "알아. 항상 나한테 잘해 주셨어. 네 어머니 말이야."
"그건 언젠가 우리가 결혼하길 바라서 그러셨던 거지."
그 말에 그녀는 깔깔 웃었다. "아직도 말씀 안 드렸어? 미치겠다. 완전 폭탄 발언이겠네."
"지난 몇 년 간 충격거리가 많으셨잖아. 이걸 터뜨리기 전에 정리 좀 할 시간을 드릴까 했지."
"그래도 너한테 훌륭한 짝을 찾아 주실 수 있을걸." 그녀가 담담히 말했다.
"우리 재산이 예전 같지 않아," 그가 중얼거리며 시선을 돌렸다.
"오, 금전은 오고 가는 거야. 우리 부모님은 언제나 네 아버지가 재밌는 방식으로 위기를 극복하시곤 한다고 했었지." 페이스트리를 다 먹은 그녀가 손가락에 묻은 잼을 핥으며 말했다. "보자, 드레이코 말포이의 짝으로는 누가 적합하려나? 너랑 잤던 놈들 중 한 명쯤은 성스러운 28가문 출신이겠지?"
그가 코웃음을 쳤다. "성스러운 28가문 출신인지 같은 건 신경도 안 썼어."
"네 어머니는?"
"몰라?" 그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렇게나 많은 일이 있었는데 그게 별로 큰 걸림돌이 될 것 같진 않아."
"아, 왜 이래. 맞춰 줘 봐. 네가 꼭 누군가를 골라야 한다고 해 보자. 누구를 고를 거야?"
"몰라."
"롱바텀은 어때," 그녀가 놀렸다. 드레이코는 그녀를 향해 눈을 굴렸다. "아니면 위즐리가 더 네 취향인가?"
"솔직히 찰리 위즐리는 꽤 섹시하지," 그 말에 말문이 막힌 팬지를 두고 드레이코가 낄낄거렸다.
"너 미쳤니?" 그녀가 소리 질렀다. "젠장, 드레이코."
"그러는 넌 어떻고?" 그가 물었다. "테오랑 잘 어울리는 것 같은데, 어때?"
그녀는 더 크게 비명 지르며 그를 어찌나 세게 밀쳤는 벤치에서 떨어질 뻔했다.
"부모님이 프랑스에 있는 먼 친척이랑 날 엮어 주실지도 몰라." 팬지가 표정을 가다듬으며 말했다. "당연히 넌 이미 포기하신지 오래야. 그때 이후로…"
"아직도 그 얘기야?" 4학년이 되기 전 여름, 그들을 포함한 몇몇 가족들은 스위스에서 함께 방학을 보냈었다. 그는 루체른에서 만난 스위스 남자애와 손장난을 벌이던 중 팬지의 어머니께 들켰었다. 엄청나게 어색한 저녁이었다.
"'그 자식은 혼혈조차 아니었다고!'" 팬지가 어머니를 흉내내며 울부짖었다.
"내 생각엔 그냥 내가 본인 계획을 망쳐서 화가 나셨던 것 같아."
"가능성 있어. 거의 정신이 나가셨었다니깐! 그래도 네 부모님께는 얘기 안 하셨잖아, 그치? 항상 널 좋아하셨어. 네가 영리하다고 생각하셨지."
"난 영리해."
"그래, 그럼, 이거나 말해 봐." 팬지가 벤치에 몸을 기대고 앉아 재듯이 그를 보았다. "너랑 블레이즈는 뭐였는데? 거짓말은 하지 마."
"아무것도. 아무 일도 없었어."
"거짓말 하지 말라고 했지!"
"걔랑 난―아무것도 아니었어. 솔직히 친구이기는 했는지도 모르겠다."
팬지가 인상을 찌푸렸다. "6학년 때 하룻밤 너네가 일 쳤던 거 알아. 시험 끝나고였는데, 네가 나타났다는 사실에 너무 놀랐었거든. 그해 우린 널 거의 못 봤으니까. 너 진짜 엄청나게 취했었는데. 너 다 기억하는 것도 알아. 그리고 너랑 블레이즈가 네 기숙사 방으로 갔고 거기 너네 말고 다른 사람은 없었지. 다음날 넌 나한테 그냥 잠들었다고 했었어."
"진짜야," 그가 강경히 말했다. "뭐, 우리 둘 다 남자라고 해서 우리가 꼭 잤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이건 말해 둬야겠다, 그건 진짜―"
"아, 관둬!" 그녀가 짜증스럽게 말했다. "질문에 회피 그만해. 너네 뭐였는데?"
그녀가 얼굴을 찡그렸다. 화났을 때처럼 입술이 튀어나왔을 때서야 그는 낄낄 웃었다. "너 레질리먼시 진짜 못한다."
그녀가 과장되게 양 팔을 위로 뻗었다. "넌 비밀이 너무 많아! 난 너한테 전부 다 말하는데."
그건 사실이었다. 해를 거듭하는 동안 드레이코는 그녀가 벌여 온 해괴한 반항의 일대기를 강제로 계속 들어야만 했다.
"자비니랑 나는… 이상한 관계였어." 그는 종종걸음으로 콜로네이드를 가로지르는 그리핀도르 학생들을 보며 말을 멈추었다. "우린 어쩌면… 어쩌면 한두 번 정도… 그럴 뻔했어." 놀랍게도 팬지는 호기심 어린 눈을 한 채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전부 기억나지는 않아. 좀 이상해, 내 기억이… 어떤 건 아주 선명하게 기억할 수 있지만, 잊어버린 게 정말 많아. 지난 2년은, 가끔은 그게 실제가 아니었던 것처럼 느껴지기도 해."
팬지가 손을 뻗어 벤치 가장자리를 붙잡은 그의 손 위에 겹쳤다. 그는 멈추지 못하고 계속 말했다. "난 그러니까… 머리를 비우고 싶어서 사람들을 만났어, 그 잠깐 동안은 잊을 수 있으니까… 이제는 뭘 했는지 기억도 잘 안 나. 솔직히, 걔네 이름도 기억이 안 나."
드레이코는 놀림당할 것을 예상했지만 이번에도 그녀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내가 쓰레기처럼 들릴지도 모른단 거 알아. 근데 솔직히, 내가 저지른 다른 짓들에 비하면… 이 정도는 별 것도 아니지 않나? 아무것도 아니잖아."
속삭이듯 들려온 대답을 그는 놓칠 뻔했다. "넌 어렸잖아. 다른 방도가 없었고."
"사람들이 그 말을 그만했으면 좋겠어. 작년에 난 열일곱이었다고."
"부모님을 지키려고 한 거였잖아." 그가 화난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자, 그녀가 말했다. "네 어머니를."
"우리 어머니라." 그가 코웃음 쳤다. "부모님, 그래. 그분들 때문에 내가 이 난리통에 끌려들어온 거잖아. 너 그거 알아?" 그녀를 볼 수가 없어 그는 시선을 하늘에 두었다. "가끔은 부모님이 싫어. 진짜 미치도록 싫어."
그녀는 손을 더 세게 쥐었고 그들은 잠시 침묵 속에 앉아 있었다. 마침내, 그녀가 말했다. "미안해. 화나게 하려던 건 아니었어."
"화 안 났어. 괜찮아. 어쨌든, 다시 네 질문으로 돌아가자면―자비니랑 나 말이지. 어쩌면 한 번 정도 키스했던 것도 같아. 어쩌면." 드레이코는 활기를 되찾은 그녀가 손으로 입가를 가리며 키득거리기 시작하는 걸 보고 미소짓지 않을 수 없었다.
"한 번? 거짓말 하지 마! 뭔 일 있었을 줄 알았다니까!" 그녀가 그의 팔을 덥썩 잡았다. "시험 끝난 날 밤 맞지, 그치? 말해 줘!"
그가 비밀스럽게 웃자 그녀는 다시금 꺅꺅거렸다. "그럴 줄 알았어! 그럴 줄 알았다고! 그래서? 어디까지 갔는데?"
"오지랖 넓다는 소리 많이 듣지, 너?"
"그래!"
"흠… 기억이 나는지 한 번 보자." 그가 몸을 뒤로 젖히며 세부 사항을 기억해 내려는 척 인상을 찌푸렸다. "걔 침대로 갔던 것 같아. 키스를 했었지… 그건 기억나. 좀 만지작댔던 것 같기도 하고… 비비적거리기도 했었나." 팬지가 꺅 소리를 내서 그가 덧붙였다. "옷 입고."
"그리고 뭐 했는데?" 그녀가 숨도 못 쉬고 물었다.
그는 고민하다가 거짓말했다. "내 생각엔 둘 다 너무 취해서 그냥 잠들었던 것 같아. 그래서 그게 다야."
"뭐라고! 그랬는데도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다시 친구로 돌아갈 수 있었단 말이야? 이상하지도 않아?"
"딱히," 그가 말했다. "우린 그냥… 그 얘긴 별로 안 했어."
"그래서 넌 걔 좋아해?"
"뭐? 아니." 드레이코가 인상을 찡그렸다. "당연히 아니지. 블레이즈랑 내가 사귀는 게 상상이나 돼?"
그녀가 얼굴을 찌푸렸다. "안 되는 것 같아. 그래도 누군가 있을 거 아냐, 드레이코. 아무리 너라도 한 명쯤은 분명 있을 거라고."
그는 불편하게 자세를 고쳤다. 물론 누군가 있었다―아니면, 있을지도 모른다. 해리와 그가 무슨 사이인지 그는 알 수 없었다. 드레이코는 말해야 될지 고민하며 잠시 팬지의 얼굴을 살폈다. 결정을 내리기 전에, 얼어붙은 잔디를 밟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 보니 다프네가 팔짱을 낀 채 그들에게로 다가와 있었다.
"추워 죽겠다!" 그녀가 소리쳤다. "너희 둘 다 미쳤어?"
"온열 마법 걸었어," 그가 답했다.
"어쨌든 들어와. 점심 시간이 다 돼 가." 드레이코에게 필살의 미소를 보내며 그녀가 말했다. "그리고 수업 전에 내 룬 문자 에세이 한 번만 봐줄래? 부탁이야."
"그래," 그가 끙 소리를 냈다. 팬지에게 팔을 붙들린 채, 그들은 함께 성으로 돌아갔다. 다프네가 에세이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이 팬지가 그의 귀에 대고 속닥거렸다. "아무한테도 말 안 할게. 아무것도. 약속해."
Chapter 18: xviii.
Chapter Text
그날 오후 드레이코가 도서관에서 해리를 마주쳤을 때, 그는 너무 피곤해서 그날 밤의 "연습 시간"에 가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실은 익숙한 공포의 감각이 스멀스멀 되살아나기 시작해 스스로를 정비할 시간이 필요했다. 적어도 그는 불안의 원인을 알았다: 다음날 있을 아버지의 청문회였다. 그의 작은 일부는 부모님으로부터 안심을 주거나, 새 소식을 전해 주거나, 아니면 적어도 그가 어떤지 묻는 쪽지를 받았으면 하고 바랐다. 하지만 들은 건 아무것도 없었다. 망토에 넣어둔 벨벳 주머니가 가는 곳마다 그를 찔러 댔다. 그걸 열어보고 싶다는 열망은 가신 지 오래였다. 이제 그는 그게 두려울 지경이었고, 차라리 그 안에 뭐가 들었는지 모르는 게 낫겠단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 일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가 아버지와 관련된 의문에 대해선 차라리 답을 모르는 게 낫다는 사실을 깨달은 건 제법 어릴 때부터였다.
그는 수요일 수업들에 결석하는 것도 잠시 고민했지만 그러지 않기로 결론 내렸다. 신경을 돌릴 곳이 필요했다. 게다가 그리핀도르와 함께 듣는 마법약 연강이 있었고, 그건 해리를 볼 수 있단 걸 뜻했다. 토요일 이후로 서로를 거의 못 만났음에도 드레이코는 매일 밤 침대에 누워 그 이름을 반복해서 되뇌었다. 해리, 해리, 해리. 그 발음이 혀에 익숙해지도록 노력하는 일은 불쾌하지 않았다. 몇 시간 정도 눈을 붙일 수 있을 때면 그는 의식 속에 떠다니는 그 이름과 함께 잠에 들었다. 물론 해리에 대한 생각은 아버지 일에 대한 공포와 뒤섞였고, 때문에 대부분의 아침 그는 비참하고 지친 채로 잠에서 깨어났다.
드레이코는 너무 초조한 나머지 마법약 시간에 해리의 쪽을 보지 않으려 애쓰는 노력조차 기울이지 않았다. 자비니가 눈치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기침약을 만드는 중이었는데, 자비니는 우습게도 시계 방향으로 저어야 할 곳에서 반시계 방향으로 저어 버렸다. 그가 교과서에 파묻혀 미친 듯이 페이지를 넘겨 대는 덕에 드레이코는 맘 놓고 해리를 훔쳐볼 기회를 얻었다. 가끔씩 해리가 이쪽을 볼 때 시선이 마주쳤는데, 드레이코는 그의 침울한 표정에 충격을 받았다. 대개 그리핀도르들은 마법약 시간에 활기찼고, 슬러그혼은 관대하게도 그들이 작업하면서 수다를 떨도록 허용해 주었다. 하지만 그레인저와 위즐리가 평소처럼 떠들어 대는 동안에도 해리는 평소 같지 않게 조용했다. 드레이코가 지난 밤의 "과외"를 빼먹어서 화가 난 걸까?
팬지의 회유에도 불구하고 드레이코는 저녁 식사 때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대연회장을 가로질러 그의 시선과 해리의 시선이 몇 번이나 마주쳤다. 해리의 슬픈 눈빛에 드레이코는 점점 더 불편해졌다.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게 끔찍했고 저녁 식사로 나온 햄 냄새에 속이 뒤집혔다. 대연회장의 따뜻한 공기가 답답했다. 그는 물잔에서 마지막 한 모금을 마시곤 테이블에서 벌떡 일어났다. 다프네와 팬지가 시선을 교환하는 게 보였지만 무슨 말을 하지는 않았다. 그는 대연회장을 성큼성큼 걸어나가 발 닿는 대로 이중문을 지나 뜰로 향했다. 비로소 함박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오후쯤에는 눈보라가 몰아쳤었다. 이제는 마치 지구가 폭풍의 맹렬한 공격으로부터 회복 중이기라도 한 것처럼 공기가 기묘할 정도로 잠잠하게 느껴졌다. 그는 목적지에 대해 별다른 생각 없이 퀴디치 경기장으로 향하는 길을 따라 내려갔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관중석이었다. 그는 약하게 온열 마법을 걸고 슬리데린 응원석으로 올라갔다. 자리에 앉자 나무 의자가 삐걱였다. 얼음장처럼 차가웠지만 온열 마법은 효험을 다했고, 곧 있을 만한 정도가 되었다. 거기 앉아서 빈 경기장을 내려다보며, 그는 별안간 학기가 끝나기 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시합하자던 해리의 집요한 요구를 떠올렸다.
부드러운 울음소리와 함께 들려온 날개짓 소리에 드레이코는 위장이 조여들고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그를 향해 곧장 날아오는 칼리두스의 모습엔 놀라지 않았지만, 그 광경이 반갑진 않았다.
"그래, 안녕." 그가 조용히 말했다. 칼리두스는 그의 옆 나무 벤치에 우아하게 내려앉았다. 침묵 속에 양피지를 풀어내면서 드레이코는 칼리두스조차도 침울해 보이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기운 내. 내일은 간식을 좀 가져다 줄게." 칼리두스는 애정을 담아 그를 부리로 쪼면서 옆에 가만히 자리를 잡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쓰다듬어 준 드레이코는 숨을 깊이 들이마시곤 양피지를 펼쳤다.
청문회는 온종일이 걸렸다. 위즌가모트의 과반수가 디멘터의 입맞춤에 찬성했다. 샤클볼트가 개입하려 하고 있다. 내일 자금 인출 동의서에 서명하거라. 2월에 형식적인 청문회가 한 번 더 남았다. 그때 최종 판결문을 읽고 선고할 게다.
물론 예상한 내용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붙박인 듯 앉은 자리에서 그 짧은 메시지를 읽고 또 읽었다. 메모는 명백히 아버지의 필체였지만 떨리는 글씨의 일부분은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개발새발 흔들린 글자들을 그는 감당할 수 없었다. 어쩌면 신경 쓸 필요가 없을지도, 더는 상관 없는 걸지도 몰랐지만 그는 손 안에서 양피지를 구긴 뒤 지팡이를 날카롭게 휘둘러 그걸 불태워 버렸다. 그는 재가 흩날려 사라지는 모습을 가만히 보다가 지팡이를 주머니에 찔러 넣기 전 바지에 손을 닦았다. 목구멍에 뭐가 걸린 것처럼 숨쉬기가 어려웠다. 생각들이 너무 빠르게 질주하는 나머지 다음 공포가 찾아오기 전까지 이전 것을 검토할 수조차 없었다. 어머니는 어쩌고 계실까? 괜찮으실까? 그는 선고의 순간에 저택에서 부모님이 뭘 하고 계셨을지 궁금했다. 서로를 안심시키려 했을까? 아니면 아버지는 기억이 끊길 때까지 술을 들이켰을까. 샤클볼트에게 판결을 뒤집을 능력이 있을까? 아버지의 변호인단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을까? 그리고, 물론 그 벨벳 주머니가 있었다… 드레이코는 망토 안쪽에 손을 집어넣어 그것을 단단히 움켜쥐었다. 언제 이걸 아버지께 드려야 하지? 이게 어떻게 도움이 된다는 걸까?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지?
그는 안정을 찾으려 애쓰며 칼리두스의 깃털 사이를 쓰다듬었다. 칼리두스가 커다란 주황색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착한 녀석," 그가 중얼거렸다. "다 괜찮을 거야. 지금은 그냥 부엉이장에 있어. 내일 뭔가 가져다 줄게. 긴 비행이었잖아." 그들은 잠시 더 침묵 속에 있었다. 드레이코는 울지 않으려 했다. 정신을 차려야 했다. 이런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게다가 아버지는… 본인이 자초한 일 아니던가? 그가 고문하고 죽인 사람들의 수를 셀 수조차 없다. 그가 파괴한 삶의 개수도. 얼마나 많은 가족들이 아버지와 다른 죽음을 먹는 자들로 인해 공포에 떨어야 했던가. 그는 만일 자신이 자식이나 부모, 혹은 형제를 잃었더라면 죽음을 먹는 자들이 디멘터의 입맞춤 형에 처해지길 바랐을지 한 번 이상 자문해 보았다…
드레이코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 알 수 없었다.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그는 좆 같은 집에서 최소 한 쪽은 좆 같은 양육자의 손에 길러졌고, 다른 한 쪽은 모든 일을 그저 묵인했는데 말이다. 그런데 그가 어떻게 자랐어야 했단 말인가? 그는 마지막으로 한 번 칼리두스를 쓰다듬고 흔들리는 다리로 일어섰다. 그는 칼리두스가 부엉이장을 향해 날아가는 모습을 보고는 성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을 뗐다. 내일 아침 신문에 날 기사가 뭘지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노트의 아버지 또한 더 나은 상황에 있지는 않았으므로, 적어도 그 자식이 비꼬아대는 것까지 견뎌야 할 필요는 없으리라. 현관 홀에 도착했을 무렵 드레이코의 뺨은 밝은 분홍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경황이 없는 나머지 온열 마법을 다시 거는 걸 잊어버렸던 것이다. 그는 잠시 홀에 선 채 몇몇 슬리데린 학생들이 지하 감옥 쪽으로 내려가는 모습을 보다가, 충동적으로 중앙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는 계단을 뛰어넘으며 시간 내로 진로에서 벗어나는 데 실패한 몇몇 학생들 무리를 제치며 달렸다. 해리가 그를 막아선 것은 그가 막 7층에 다다랐을 때였다.
"어떻게―어떻게 알았어?" 드레이코가 놀라서 물었다. 솔직히 말해 그는 해리가 자신을 찾아내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왜냐면 다른 계획은 뚱뚱한 여인의 초상화 앞에 죽치고 서서 아무 그리핀도르 학생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해리는 고개를 저었다. 그는 여전히 침울한 표정이었다. 드레이코가 뭔가 잘못한 걸까? 해리가 말없이 그의 손을 잡았다. 평소였다면 드레이코는 거부했을 것이다. 누구든 그들을 볼 수 있었고, 아직 통금조차 아니었으며, 여기저기에 학생들이 있었다. 하지만 불안한 나머지 그는 해리가 자신을 끌고 복도를 가로질러 내려가도록 내버려 두었다. 그는 정신 나간 바르나바의 태피스트리 맞은편 텅 빈 벽 앞에 도달해서야 드레이코의 손을 놓아주었다. 드레이코는 해리가 벽 앞을 세 번 왔다 갔다 하는 걸 기다렸다. 문이 나타나자마자 해리는 다시 드레이코의 손을 붙잡아 문 안으로 끌어당겼다. 마치 드레이코가 혼자 힘으로는 길을 찾을 수 없을 것이라 믿는 듯했다. 짜증이 났어야 했겠지만 이상하게 감동적이었다. 해리가 요청한 게 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요점이 뭐였는지는 명확해 보였다. 공포로 속이 안 좋은 와중에도 그는 눈앞에 나타난 거대한 사주식 침대를 보고 웃음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방 한가운데에서는 벽난로가 밝게 타오르고 있었고, 그 앞에 놓인 한 쌍의 안락의자는 하나가 진홍색, 다른 하나는 녹색이었다.
"진심, 포터? 너무 노골적이지 않아?" 그는 비아냥거리는 투로 들리게 하려고 최선을 다했지만 진심은 아니었다.
"해리." 주머니에 손을 꽂은 문제의 사내가 몸을 돌려 그를 마주보았다.
"그래. 해리."
"난 대화할만한 장소를 요청했을 뿐이야."
그들은 잠시 서로를 재며 침묵 속에 서 있었다. 그러다 마침내 해리가 말했다. "청문회가 어떻게 됐는지 알아. 어젯밤에 일종의… 계획이 뭔지에 대해 들었거든. 그리고 내 생각에 만약 샤클볼트가 오늘 전까지 대다수의 생각을 바꾸는 데 성공할 수 없다면…" 그가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는 느릿느릿 말을 맺었다. "별로 상황이 좋을 것 같지 않았어."
"맞아. 그래, 안 좋았지."
"유감이야."
"뭐가 유감인데?" 그가 쏘아붙였다. 이 분노가 어디서 기인한 건지 알 수 없었다. 단지 온종일 그를 옭아매던 공포에 비하면 이쪽에 더 만족감이 든다는 사실밖에는. 그는 녹색 안락의자로 몸을 던졌다. "우리 아버지는 죽음을 먹는 자야, 잊었어? 그 분이 썩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면 넌 분명 기뻐할 테지."
해리는 얼굴을 찡그렸다. "사실이 아니란 걸 알잖아."
"아니야?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우리 아버지가 고통받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
"디멘터의 입맞춤은… 난 샤클볼트와 같은 의견이야. 지나치다고. 어떤 상황에도 그게 정당화될 순 없어. 비록 그 대상이…"
"우리 아버지같은 사이코패스들이라 할지라도?" 그가 제시했다. 그는 쓰게 냉소짓고는 등을 기대며 손에 얼굴을 묻었다.
해리가 옆에 놓인 안락의자의 가장자리에 걸터앉았다. "봐. 그 분은 네 아버지시잖아. 네 부모님이시라고. 네가 화가 나고 걱정이 되는 것도 이해할 수―"
"내 기분이 어떤지 이해하는 것마냥 구는 짓 좀 그만해."
"안 해. 그냥 네 옆에 있어주고 싶은 것뿐이야."
드레이코는 눈을 비볐다. 갑자기 기운이 쑥 빠졌다. "난 괜찮아.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어. 아버지가 마법부에서 소문을 들었거든."
"내일 바로 샤클볼트에게 플루 보낼 생각이야.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는지 볼게."
"골든 보이가 또 한번 날 구해주려 하네." 드레이코가 중얼거렸다. 그는 해리와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대신 벽난로 불만 들여다보았다.
"뭐? 무슨 소리야 그게. 왜 이러는 건데?"
"아무것도 안 했어."
"말해줘. 무슨 생각 하고 있는지 알려줘. 너 지금 유령처럼 창백해. 저녁도 안 먹었잖아. 제발 말해줘, 응?"
"나더러 무슨 말을 하라는 건데?" 그가 쏘아붙였다. "부모님은 멀리 떨어져 계시고, 어쩌면 그 분들 일생에서 최악의 소식을 막 들은 건지도 모르는 마당에 난 그 분들과 함께 있어 드리지도 못해.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포―해리. 아무것도 없다고. 그리고 굉장한 게 뭔지 알아?" 그는 멈출 수 없었다. 눈물이 차올라 시야를 흐렸다. 이렇게 말하는 목소리는 형편없이 떨렸다. "그 분들은 그래도 싸다는 거야. 존나 그럴 짓 했잖아, 안 그래? 어쩌면 나도 그래도 쌀지도 몰라. 넌 어떻게 생각하는데?" 그가 해리 쪽으로 몸을 돌려 거의 보지도 않고 말했다. "넌 뭐든 다 알잖아. 뭐가 옳고 뭐가 틀린지 너는 다 알잖아. 첫 날부터 그랬어. 젠장, 이거 진짜 짜증 나서 돌겠다. 그니까 말해 봐, 지금 말해. 우리 아버지는 그래도 싸니? 나도 그렇고?"
해리가 드레이코 앞에 무릎 꿇었다. 그가 드레이코의 손을 붙잡고 말했다. "안 그래. 절대 아니지. 너도 알잖아. 내가 왜 널 위해서 증언했겠어?"
"아버지를 위해서는 증언하지 않았잖아." 드레이코가 코웃음 쳤다. "그래도 싸다고 생각해서겠지."
"네 아버지가 많은 일을 스스로 자초하셨을지는 몰라도, 그게 디멘터의 입맞춤은 아니야."
드레이코는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속삭였다. "아버지는 괴물이야, 그렇지?" 해리가 아무 말 하지 않자, 그는 잡힌 손을 빼서 눈가를 거칠게 닦았다. "아버지를 경멸해. 미치도록 경멸한다고. 그냥 빨리 해 버렸으면 좋겠어. 이미 해 버렸든가. 다 끝내 버리게. 아버지랑도."
"그런 말 하지 마."
"넌 우리 아버지를 모르잖아!" 그가 으르렁댔다. 해리의 얼굴이 고작 몇 인치 앞에 있었지만 그는 움찔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한 짓을 전부 모르잖아! 내가 봤던 것들이 뭔지… 순수 혈통이니 뭐니 하는 것들에 미쳐 계셨던 것도 맞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어. 내 생각에 아버지는…" 드레이코는 목소리를 낮추고 겨우 말했다. "내 생각에 아버지는 좋아하셨던 것 같아… 사람들을 고문하고, 애원하는 소리를 듣고… 죽이는 행위를… 끝에 가서는 꼭 그렇지만은 않았던 것도 같지만…" 이제 그는 진실로 흐느끼고 있었다. "처음엔, 있지, 그게 다 뒤처지고 싶지 않아서 그러시는 걸 거라 생각했어. 늘 강력한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계셨으니깐, 아버지는… 항상 돈이랑 어떻게 해야 그걸 더 불릴 수 있을지에 집착하셨지. 그래서 몇 년 간 나는 아버지가 그렇게까지 나쁜 사람일 리는 없다고 되뇌어 왔어. 어쨌거나 마법부도 가만히 내버려 뒀잖아? 아버지가 죽음을 먹는 자들과 연관된 건 지위와 권력, 연줄 때문이리란 걸 나는 알았지. 우리 부모님이 누린 휴가와 외국에 마련한 별장들, 장식한 저택의 방들이 얼마나 되는지 넌 상상도 못할걸. 전부 아버지를 두려워한 사람들 덕분이지… 그 모든 어둠의 마법과 관련된 것들이며… 어쨌든…"
해리는 말없이 듣고만 있었다. 드레이코는 이런 얘기를 해서는 안 됐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한번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홍수를 그는 걷잡을 줄 몰랐다. "그러다 4학년 말에 어둠의 군주가 돌아왔지. 난 혼자 이렇게 생각했어; 뭐, 상황이 곤란하긴 하잖아? 왜냐면 다른 죽음의 먹는 자들과 함께 가지 않는다면… 그자들이 아버질 죽였을 테니깐. 어둠의 군주가 아버질 얼마나 많이 봐줬는지 알아? 나도 이유는 모르겠어. 유용했나 보지. 근데 난 그것도 죄다 연기에 불과하다고 합리화했어. 그냥 주머니나 좀 채우려거나 우리를 보호하려고 그런 걸 거라고. 근데 날… 데리고 다니기 시작한 거야. 우린 나가서…" 그는 말할 수 없었다. 해리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쉰 목소리로, 드레이코는 말을 이었다. "끔찍했어, 내가 본 것들은. 그리고 아버지도 그 짓을 하고 계셨지. 그걸 즐기셨어. 처음엔 재미있다고 생각했었지. 좀 짜릿했거든. 그러다 일이… 안 좋게 돌아가기 시작한 거야. 마법부에서 그렇게 일을 다 망쳐 버렸고, 어둠의 군주는… 참을성을 잃어 갔지. 그래서 날더러… 그자는 아버지한테 앙갚음하려던 거야. 죄를 물으려 했는데, 알다시피, 날 그냥 죽여 버리는 건 너무 친절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지… 그래서 그자는 질질 끌면서 날 이용하기로 했어. 아마 부모님은 내가 결국 죽을 거라고 생각하셨을 테지."
"하지만 넌 죽지 않았어." 해리가 속삭였다.
드레이코는 조소와 함께 손등으로 얼굴을 쓸었다. "그래. 난 죽지 않았어. 어쩌면 그래야 마땅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죽지 않았지. 하지만 그때는… 확실히 내가 살아남을 거라곤 생각 못 했었지. 어머니… 우리 어머닌 굉장히 이성적인 분이신데… 찾을 수 있는 예언가란 예언가는 죄다 찾아가셨어, 내 손금을 봐 달라고. 웬 노파가 찻잎을 읽으러 저택에 왔었던 적도 있었지. 날 구이린까지 데리고 가서 중국식 막대점 전문가라는 사람을 만나게 하셨었어… 들어본 적은 있냐? 진짜 끔찍한 여행이었지… 그러는 동안 아버지는 그저 사람들을 죽이고 다닐 뿐이었어. 사람들을 상처 입히고 다녔지. 가끔은 살인이 최악의 상황이 아닐 때도 있었어. 왜냐면 적어도 죽으면 고통은 끝나게 되니깐. 젠장, 말하기도 끔찍할 지경이네."
해리는 드레이코가 우는 동안 손을 잡아 주었다. 가슴이 아려 왔지만, 그는 계속했다. "몇 번은 날더러 그 짓을 하라고 강요하기도 했었어. 난―난 그때, 화장실에서, 난…난 망할 겁에 질려 있었어. 그자가 진짜로 날 죽이고 말 거라 생각했지. 그자가 진짜로 날 죽이고 말 거란 사실을 알았어. 그 망할 캐비닛을 고칠 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지. 그러다 널 봤는데, 난 네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고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바보처럼 공황에 빠졌고, 난…" 그는 다시 말을 멈췄다. 해리가 손을 어루만지며 부드럽게 다독여 왔다. "네가 그걸 쐈던 게 다행이었지―그 주문 말이야. 아니었다면 나는… 뭐, 어쨌든, 그 해는… 끔찍한 한 해였어. 그자들이 강제로 날… 아니, 그게 강제였나? 난 싫다고 말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럴 순 없었어." 해리가 말했다. "그랬다면 널 죽였을 거야. 아니면 네 부모님을."
"너라도 그랬을 거란 소리야?" 그가 날카롭게 무었다. "만약 어둠의 군주가 널더러 누군가를 고문하라고 시켰더라면 네가 그렇게 했을까?" 해리가 답하기도 전에 그는 말했다. "아닐걸. 넌 절대 안 그랬을 거야. 비록 그게 네 죽음을 뜻한다 할지라도."
"만약 우리 부모님이 걸려 있었다면 달랐을지도 몰라." 해리가 조용히 말했다. "아니면 론이라거나… 헤르미온느라거나… 아니면…" 그는 부끄러워하며 고개를 숙였다.
"너라면 방법을 찾아냈겠지. 넌 언제나 방법을 찾아내니깐. 하지만 난 그러지 않았어. 난 끔찍한 짓들을, 나쁜 짓들을 했지. 젠장, 난 그자들을 성 안으로 불러들였어. 그리고 7학년 땐… 아버지는 줄곧 내게 '역할을 다해라'고 하셨고, 난 말대로 했지. 그 해 내내 난 그저…" 드레이코는 고개를 저었다.
해리가 다가와 얼굴에서 눈물을 훔쳐냈다. 드레이코가 우는 동안 해리는 흘러내리는 눈물 방울을 모조리 받아냈다. 그들은 잠시간 그렇게 앉아 있었다. 마침내 드레이코는 깊은 한숨을 들이마셨다. 완전히 소진된 기분이었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울어 본 게 언젠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몇 달 동안 슬픔에 무감각해져 있었는데 이제는 전부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어쩌면 다른 누구도 아닌 해리 포터에게 이 모든 걸 털어놓고 만 것이 끔찍한 실수였을지도 모르지만, 더는 신경 쓰이지 않았다. 이젠 더 나빠질 상황도 없었으니까.
"난 우리 아버지를 몰라." 드레이코의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며 해리가 말했다. "하지만 아버지에 대한 얘기는 많이 들었지. 본 것들도 있고. 기억들을 봤어. 그리고 아버지가 했던 어떤 일들은… 끔찍했어. 스네이프한테…"
"제발," 드레이코가 눈을 질끈 감으며 속삭였다. "그분 얘기는 하지 말아줘."
"맞다, 미안. 요점은 우리 아버지도 진짜 못된 짓들을 했었단 거야. 그걸 알게 됐을 땐 엄청나게 부끄러웠지. 아마도 난 아버질 전혀 모르는데 모두가 아버지에 대해 고결한 얘기만 늘어놓다 보니까 그분이 그렇게 잔인한 짓도 했었을 거라곤 상상도 못 했던 것 같아."
"학교폭력은 머글 고문에 비할 게 못 되지." 드레이코가 코웃음 쳤다.
"그럴 지도. 그래도 우리 아빠란 건 달라지지 않아. 그리고 난 여전히 그분의 아들인 게 자랑스럽고. 그냥 좀 더 복잡한 일인 게 아닐까 싶어. 자라면서, 사람들의 진짜 모습에 대해 알게 되고… 네가 아버지의 그런 모습을 봐야 했던 것처럼… 유감이야. 정말로, 정말 그래."
"괜찮아."
"괜찮지 않아."
"내가 멍청이같이 굴었던 거야." 그가 실소하며 말했다. "대체 왜 울었지? 웃겨. 아버지가 디멘터의 입맞춤을 받으면 영국 전역의 마녀와 마법사들은 잔을 들어올리겠지. 구경하라고 티켓을 팔지도 몰라… 그렇잖아?"
"진심으로 샤클볼트가 그 일을 내버려둘 거라곤 생각하지 않아. 다들 그저 화가 났을 뿐이야. 할 수 있는 한 가혹하게 네 아버질 처벌하면 기분이 나아지는 거겠지. 정말로 집행할 것 같지는 않아. 그냥 겁만 주려는 거겠지."
"그래." 드레이코는 얼굴에 남은 눈물 몇 방울을 닦아내고 망토를 고쳐 입었다. 그는 손가락으로 머리를 쓸며 삐져나온 가닥들을 정리했다. "어쨌든. 미안. 그리고 괜히 마법부에 연락할 필요 없어. 이미 우리 가족을 위해 충분히 많은 일들을 해 줬다고 생각해."
"별로 말포이다운 발언은 아닌걸?" 해리가 한쪽 입꼬리를 들어올리며 물었다. "너희 슬리데린들은 타산적으로 굴어야 하는 거 아녔어? 네 눈앞에 지금 네가 해 달라는 건 뭐든 다 해줄 해리 포터가 있는데, 기회를 잡지 않겠다고?"
드레이코는 어색한 비웃음을 담아 말했다. "지난 두 달 간 다른 방식으로 이미 충분히 써먹은 것 같은데."
"아, 이제 그렇게 나오시겠다?" 해리가 크게 웃었다. "아무튼, 네가 매번 날 뭐라고 불렀더라? 성(Saint) 포터였나? 너도 내가 얌전히 빠져서 기다리기만 하지는 못한다는 거 알잖아. 내가 또 한 번 영웅이 될 기회를 놓칠 거라고 생각해?"
드레이코는 미소 지으며 그를 가볍게 밀어냈다. "아, 물론이지. 너희 그리핀도르들이 언제나 고결하게 군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네."
해리가 손을 꽉 쥐어 왔다. "이리 와서 누워 있자. 잠깐만."
침대를 보면서 드레이코는 얼굴을 찡그렸다. "난… 솔직히 지금 그럴 상태는 아닌 것 같은데… 그거 할…"
"아니! 당연하지," 그가 급하게 말했다. "그거 말고. 난 그냥… 잠깐 같이 누워 있자고. 그 소리였어. 지금까지 얘기만 한 적은 딱히 없었잖아."
"그니까 그냥 껴안고 있자고?" 드레이코는 실실 웃었지만 얌전히 서서 해리가 그를 침대로 데려가도록 했다.
"그렇게 별로야?" 해리가 신발을 벗고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 드레이코는 우선 망토를 벗어서 바닥에 단정하게 개켜 두고는 제 신발도 벗고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갔다. 그들은 거기 나란히 누워서, 잠시간 서로를 껴안고 있기만 했다. 드레이코는 그 친밀감이 낯설게 느껴졌다. 해리의 손을 잡고, 옷을 다 입은 채 그의 옆자리에 누워 있는데 그 어느 때보다도 취약한 느낌이 들었다. 우느라 지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홀가분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마치 오랫동안 그를 괴롭혀 온 끔찍한 생각들이 입 밖으로 나오고 나니 힘을 잃게 된 것과 같았다.
"어릴 적 얘기 해 줘," 해리가 속삭였다. "네 어머니 말이야. 어떤 분이셨어?"
"좀 잔인한 일 같은데, 널 앞에 두고 어머니 얘기를…" 그는 문장을 끝맺지 못했다.
해리가 미소 지었다. "얼른. 얘기해 줘. 어머니랑 같이 자라는 건 어떤 건지 알려줘. 널 사랑해 주신 것 같던걸."
"어머니는…" 그는 할 말을 고르며 몸을 굴려 바로 누워서 천장을 바라봤다. "흥미로운 분이셨지, 우리 어머니는. 한 번도 입 밖으로 내신 적은 없지만, 난 항상 어머니가 더 많은 자녀를 원하셨다고 생각했어. 어머니랑 네 사이에… 문제가 있었단 건 알아. 문제가 많았지." 해리가 옆에서 작게 웃었다. "그래도 정말 좋은 어머니셨어. 모든 게 그렇게 엉망진창이 되기 전에는 더 그랬지. 항상 날 여기저기 데리고 다녀 주셨어. 우린 여행을 많이 다녔지. 솔직히 난 외동이라 그런지 어릴 때 친구가 그렇게 많지는 않았던 것 같아. 아버지 친구 분들 몇몇도 자녀가 있으셔서 같이 휴가를 보낼 때나 저택에 놀러 오면 걔네랑 놀긴 했지. 그렇긴 해도… 보통은 어머니와 나 둘이서 시간을 보내곤 했어. 그래도 외롭지 않았어. 사실 꽤 좋았지."
"저택엔 손님들이 많았어?"
"응. 항상 그랬지. 대개는 아버지의 동업자이거나 부탁을 하러 온 사람들이었지. 아버지는 종종 그렇게 부탁을 들어 주고는 했었어. 그 사람들에게 빚을 지워 둔 거지. 마법부에 지난 몇 년 간 아버지께 빚을 진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면 놀랄걸. 물론 지금은 아무 의미도 없겠지만." 이런 얘기를 하는 건 너무 고통스러웠다. 그는 침을 꿀꺽 삼키고 말했다. "하지만, 그래. 우린 언제나 손님을 맞았지. 여름마다 우린 정원에서 디너 파티를 열었어. 자선 행사 같은 거였지. 어머니는 전 주부터 정신이 없으셨어. 사실 꽤 재밌었어. 한 번은―여덟 살 때였나, 아홉 살? 아니다, 여덟 살이었던 것 같아―내가 응접실에 똥 폭탄을 놔뒀었거든. 왜 그랬는지는 기억 안 나." 그는 기억을 회상하려 인상을 찌푸렸다. "아마 심심했나 봐. 아니면 어머니의 관심을 끌고 싶었거나. 어쨌든, 어머니는 몹시 화를 내셨어. 완전히 이성을 잃으셨었지."
"어떻게 하셨는데?"
"날 일주일 동안 지하실에 가둬 두셨어." 그는 충격받은 표정을 한 해리를 보고 소리내 웃었다. "농담이야! 당연히 지하실에 가두진 않으셨지. 그냥 소리를 엄청 지르셨어. 아버지가 정원에서 마지막 점검 중이셨는데, 들어오시기 전까지 다 치우느라 진땀 좀 뺐지. 저택 창문을 전부 활짝 열어야 했어."
해리가 크게 웃었다. "너 같은 애도 똥 폭탄으로 어머니를 곤란하게 한 적 있다니 진짜 신기하다."
"뭐, 여덟 살 짜리가 그거 말고 디너 파티에서 할 만한 일은 별로 없잖아." 드레이코가 스스로를 변론했다. "기억이나 하실지 모르겠네. 아마 기억 못 하실 거야. 어머니는 내 최고의 모습만 기억에 남기는 놀라운 능력을 가지셨으니까. 내가 잘못했던 것들은 전부 잊어버리는 선택적 기억 상실증을 앓고 계시지." 드레이코가 다시 천장을 올려다보며 미소 지었다. "보다시피 그래서 내가 이렇게 모난 데 없이 겸손한 아이로 자랐지."
해리는 깔깔 웃으며 장난스럽게 그의 팔을 밀쳤다. "확실히 말이 된다."
"그렇다니깐."
그들은 잠시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그러다 드레이코가 말했다. "너는 어떤데? 이모랑 이모부랑 자랐다고 했던가?"
"그리고 사촌 더들리랑."
"그 분들은 어땠어?"
"끔찍했지. 근데 머글이라서 그랬던 건 아니야."
"그런 말 할 생각 없었어." 드레이코가 툴툴댔다.
"그래, 알아." 해리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뭐, 확실히 마법을 안 좋아하기는 했지. 버논 이모부는 날 키울 생각이 없었지만 페투니아 이모가 설득했어. 덤블도어가 편지를 남겼었거든. 날 볼드모트로부터 지켜 줄 어머니의 마법 보호막이 유지되려면 내가 그 집에서 살아야 한다는 내용을 설명한 거지."
드레이코는 그 이름에 몸을 떨었지만 해리는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그래서 날 받아 주기는 했지만, 다들 날 엄청 싫어했어. 난 계단 밑 벽장에 오래 살았어. 그러다 호그와트에서 편지들이 날아오기 시작하니까 날 더들리의 두 번째 침실로 옮기게 해 줬지."
"두 번째 침실이라고?" 그가 물었다. 그에게조차 두 번째 침실 같은 건 없었다.
"그래. 오래된 잡동사니가 한가득이었지. 걔가 망가뜨린 장난감 같은 거."
"맞기도 했어?" 드레이코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 얘기를 들은 것 같아서… 소문으로."
"아냐. 그냥 벽장에 넣고 가두기만 했어. 아니면 침실에 넣고 가두거나. 솔직히 나한테 말을 별로 안 했던 것 같아. 난 그냥 눈에 안 띄려고 했지. 아, 더들리는 빼고. 그 자식은 심심할 때마다 날 괴롭히러 왔어. 지 친구들이랑 돌아가면서 날 패고는 했지. 호그와트에 입학하고 나서는 괜찮아졌어. 내가 마법 쓸 수 있단 걸 무서워했거든."
"역겨워." 드레이코가 이를 갈며 말했다.
"맞지… 그래도 변한 것 같더라. 내가 떠나기 전… 그러니까 마지막으로 그 집에 있었을 때 말야. 우린… 음. 화해한 것 같기도? 전부 어렸을 때 일이니깐. 솔직히 뭘 하는 건지도 잘 몰랐던 것 같아. 걔가 너무 오냐오냐 커서 그래."
"계속 그렇게 말하는데, 너도 어렸잖아. 근데 네가 끔찍한 선택을 했던 건 별로 기억이 안 나는데."
"몇 개 있었어." 해리가 말했다. 그는 부연하지 않았고, 드레이코도 더 묻지 않았다. 편안한 침묵 속에서 드레이코는 해리의 규칙적인 숨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내가 너한테 이런 얘길 털어놓은 게 엄청나게 무모한 짓이었단 거 알지. 네가 내 아버지나 날 끌어내리려고 정보를 모으고 있는 중일지도 모르는데 말야." 그가 코웃음 치곤 덧붙였다 "물론 이제 와서는 별 상관도 없겠지만. 이미 있는 것만으로도 아버질 파멸시키기엔 충분한 것 같으니깐."
해리가 손을 뻗어 드레이코의 얼굴을 부드럽게 그와 마주 보게 했다. "포기하지 마, 아까 얘기했잖아. 내일 날 밝자마자 마법부에 연락할 거라고. 아직 시간은 있어."
"문제는…" 그는 오랫동안 마음속으로만 생각하던 걸 어떻게 말로 옮겨야 할지 몰라 잠시 망설였다. "디멘터의 입맞춤을 받는 결말이 아즈카반에서 여생을 보내는 것보다 더 나쁘다고 생각해? 적어도 입맞춤을 받으면 당사자는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모를 거잖아. 그냥… 그렇게 되는 거지. 그럼 뭐가 더 나쁜 걸까? 아버지가 받아 마땅한 처벌은 어떤 거고?"
해리가 고개를 저었다. "네가 그걸 생각할 필요는 없어."
"무슨 생각을 해야 좋을지 모르겠어." 그가 속삭였다.
해리가 몸을 앞으로 기울여 드레이코의 가슴에 팔을 두르고 이마를 맞댔다. "유감이야," 그가 속삭였다.
"그러지 마. 네 잘못이 아니잖아."
"근데 네 잘못도 아니잖아."
드레이코는 해리를 보았다. 그의 꾸밈 없이 순진한 얼굴을 보고는 가까이 다가가 입을 맞췄다. 입술이 겨우 닿았을까 싶은 부드럽고 담백한 키스였고, 그는 여전히 해리에게 안겨 있었다. 이런 식으로 안겨 있는 건 마음에 위안을 주었다. 그는 평생 동안 이 방 안에 머무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단둘이서, 바깥 세상은 전부 잊어버리고. 드레이코는 몸을 물려 해리의 표정을 살폈다. 혀끝에 질문이 맴돌았다. 그건 이미 한참 전부터 그를 괴롭혀 온 의문이었다. 잊어버리자고 생각했지만 그러기도 전에 말이 먼저 튀어나갔다. "우리 무슨 사이야?"
그 말은 엉망진창으로 꼬여 나갔고 그는 일순간 해리가 듣지 못했을지도 모른단 희망을 품었다. 하지만 그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가는 모습을 보며, 드레이코는 그가 다 들었단 사실을 깨달아 심장이 내려앉는 듯했다.
"모르겠네. 네 생각은 어떤데?"
드레이코는 말없이 그를 빤히 보았다. 갑자기 숨쉬기가 힘들었다.
"우린…" 해리가 씨익 웃었다. "'남자친구'는 너무… 바보 같게 들린다. '연인'은 좀…" 그가 얼굴을 찡그렸다. 드레이코도 마찬가지였다. "우린 함께야. 그걸로 괜찮을까?"
"그럼 독점적이란 거네." 드레이코가 말했다. 엄청나게 바보가 된 기분이었지만, 확실히 할 필요가 있었다.
해리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손가락으로 드레이코의 목선부터 쇄골까지를 훑었다. 몹시 환상적이었다. 해리가 그의 몸을 탐구하는 방식은.
"하지만 비밀로 해야 해," 드레이코가 담담히 말했다.
"왜? 누가 신경이나 쓴다고."
"신경 쓸 사람 많을걸. 그것도 엄청나게."
해리는 과장되게 한숨 쉬고는 등을 대고 풀썩 누웠다. "나 볼드모트 죽이지 않았나? 해 달라는 거 다 해줬잖아. 이제 좀 내버려 두면 안 돼?"
"넌 선택받은 아이고, 두 번이나 살아남은 소년이잖아." 드레이코가 말했다. "거기서 벗어날 순 없을걸. 넌 마법 세계에 속해 있다고."
해리가 다시 얼굴을 마주 봤다. "내가 속한 곳은 너야."
목구멍에서 숨이 턱 막혔다. 뭐라 말해야 될지 몰라 드레이코는 고개를 돌렸다. 어색해하는 모습에 해리가 낄낄대더니 그를 끌어당겨 안았다. "자," 그가 말했다. "너 자는 거 보고 싶어."
"그래. 진짜 하나도 안 음침하다."
해리는 말없이 드레이코의 머리칼을 가만 쓸어 줄 뿐이었다. 그들은 내내 그렇게 누워 있었고, 마침내 드레이코는 수마에 굴복했다. 몇 달 만에 처음으로―어쩌면 몇 년 만에―그는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꿈 없이 깊은 잠에.
Str4wberries_cigars on Chapter 1 Wed 29 Jan 2025 08:41AM UTC
Comment Actions
Ajllin (Guest) on Chapter 1 Wed 09 Apr 2025 06:09PM UTC
Comment Actions
stars4lign on Chapter 1 Thu 10 Apr 2025 04:38AM UTC
Last Edited Thu 10 Apr 2025 04:58AM UTC
Comment Actions
Kyon (Guest) on Chapter 7 Wed 29 Jan 2025 06:21PM UTC
Comment Actions
Str4wberries_cigars on Chapter 8 Fri 31 Jan 2025 05:46AM UTC
Comment Actions
stars4lign on Chapter 8 Fri 31 Jan 2025 11:02AM UTC
Last Edited Fri 31 Jan 2025 11:07AM UTC
Comment Actions
Dark angle (Guest) on Chapter 10 Thu 27 Feb 2025 07:08AM UTC
Comment Actions
stars4lign on Chapter 10 Mon 03 Mar 2025 07:27AM UTC
Comment Actions
Darkangle (Guest) on Chapter 10 Tue 04 Mar 2025 08:55PM UTC
Comment Acti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