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k Text:
“나와 결혼하고 싶다고?”
“나도 아이마도 결혼식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거 알아요? 아까 이야기한 가족들 이야기 들으니까 재밌어 보이더라고요!”
언제 헤어지게 될지 모른다며 결혼식을 올렸다던 젊은 부부가 있었다. 그 가족도 함께 탔던데… 또래 아이들에게서 무슨 이야기를 들은 걸까.
“아이마는 내가 신부 역할이 잘 어울릴 거라고 했지만, 난 역시 위대한 흡혈귀답게 다른 사람을 축복해 주고 싶거든요. 그래서 아이마가 신부, 차장님이 신랑 그리고 내가 주례를 서는 걸로 결정했어요!”
루부스카는 아이마를 코르부스 앞으로 떠밀며 흥분해서 외쳤다.
“아이마?”
코르부스가 아이마를 쳐다보니 아이마는 양 볼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접객에 문제가 생기지 않는 선에서라면 아이들이 즐겁게 노는 건 환영이었다. 예전에 듣기로 평범한 아이들은 이런 놀이를 즐겨 한다고도 했고, 코르부스 역시 결혼이라면 익숙하지 않던가.
코르부스는 아직 군인으로 복무할 적에 약식으로 진행된 결혼식에 자주 참석했다.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르는 전쟁터에서 동료들은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연애는 아주 잠깐하고 무작정 결혼했다. 그들의 사랑으로 적을 무찌르기로 다짐하며, 누구 한 명이 죽어도 다른 사람의 의지를 이어갈 각오로.
코르부스가 승진한 뒤에는 동료들에게서 주례를 서달라는 부탁을 많이 받았었다. 소대원들은 분대장의 축복을 원했고, 다른 부대의 동료들은 잘린 것도 이어 붙일 수 있는 코르부스의 축복이 있다면 두 사람 사이의 붉은 실이 영원히 이어질 것이라 믿으며 찾아왔었다.
반지를 나눠주고 축복을 담은 덕담을 하고. 주례는 그저 그들이 가는 길이 평탄하길 바랄 뿐이었다. …그리고 코르부스는 그들이 그 맹세로 영원히 이어졌으리라 믿었다.
“... 그럼 2시간 줄 테니까, 그때 봐요!”
루부스카는 2시간 뒤 신부와 찾아오겠다면서 코르부스의 손에 신랑의 결혼 준비 목록이 적힌 쪽지를 놓고 아이마를 끌고 차장실을 나갔다.
List
신부를 위한 반지
하객드레게 나눠 줄 과자
주래를 위한 선물(흡혈귀를 위한 시뻘건 과자!)
신랑의 성언문
예쁘게 입기
오타가 섞인 서툰 글씨를 보니 루부스카가 직접 쓴 글인 듯 했다. 밤늦게까지 편지를 쓰더니, 지난번 받은 반성문보다 글씨가 똑바른 것 같았다.
그나저나 하객이라면 결혼식에 참석했다는 아이들을 말하는 걸까? 반지는 붉은 실을 엮어서 만들고, 루부스카에게는 딸기잼 쿠키를 주면 될 테고… 선언문은 뭘 써야 할까.
코르부스는 아이마에게 약속하고 싶은 것을 고민했다. 아이들이 듣고 싶어할 만한 약속을,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맹세를.
그리고 그런 고민 사이에 누군가 차장실 문을 두드렸다.
“차장님?”
아이마의 목소리.
“들어오렴.”
하지만 코르부스가 아무리 문을 쳐다보아도 문이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아이마?”
“... 루비가 말해주길, 신부가 결혼 전에 신랑을 보면 운이 안 좋아진대요.”
……
코르부스는 선언문 쓰던 종이를 내려놓고 차장실 문 앞에 서서 문을 살짝 열고 고개를 돌렸다.
“뭔가 할 말이 있니?”
“... 루비가 반지를 준비하라고 했는데 차장님 손가락 굵기를 몰라서 재보고 싶어요.”
“자는 가져왔니?”
“...네!”
코르부스는 문이 열리지 않게 왼손으로 문고리를 잡고 무릎을 천천히 꿇었다. 그리고 손바닥까지 나갈 만큼 틈을 벌리고 손을 내밀었다.
따뜻하고 간지러운 손이 코르부스의 약지를 쓰다듬었다. 코르부스는 아이마가 손가락 굵기를 재기 편하게 살짝 벌려주었고 이내 차갑고 딱딱한 줄자가 코르부스의 손가락을 감쌌다.
“다 쟀어요! 차장님도 제 손가락을 재보시겠어요?”
아이마는 줄자를 코르부스의 손에 쥐여주었다. 이전에 아이마의 장갑을 떠줄 때 대략적인 치수를 잰 기억이 났지만, 코르부스는 장단을 맞춰주고 싶어 줄자를 들고 손을 거두었다.
따라 들어온 조약한 아이마의 손에서 코르부스는 장갑을 천천히 빼내었다. 손가락 하나씩, 천천히.
“장갑 벗는 걸 깜빡했어요. 죄송해요.”
코르부스는 아이마의 약지 주변을 매만졌다. 하긴 장갑을 떠준게 그리 오래전은 아니었다. 아이마의 손은 역시 코르부스가 기억하는 그대로였다.
“선언문 준비는 끝났니…?”
코르부스는 부러 아이마의 손을 잡고 자로 재는 척하며 질문을 했다.
“... 그런 것도 알려주면 안 된다고 그랬어요.”
어떤 어른들은 아주 충동적으로 결혼을 진행한다는 걸 이 아이들은 아직 몰랐다. 외롭게 죽고싶지 않기에 약속되는 결혼 또한.
코르부스 역시 전쟁이 없는 세상에서의 결혼을 알지 못했지만 어느 결혼식이든 그 순간만큼은 영원하고 굳건하다는 걸 알았다. 그렇기에 코르부스 역시 아이들만큼 진지하게 응해주고 싶은 것이었다.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게.”
코르부스는 아이마의 손등에 짧게 입 맞추고 장갑을 씌워준 뒤 줄자를 쥐여주었다.
“예쁜 반지를 만들어 올게요!”
2시간 뒤, 빨간 보타이를 맨 루부스카가 차장실에 먼저 도착했다.
“신부는 마지막에 도착하는 법! 신랑은 기다리도록!”
루부스카는 신나서 까불거리며 코르부스에게 반지 좀 보여달라고 아우성이었다.
“...실로 이런 것도 가능하구나.”
루부스카는 신기해하면서 반지를 조끼 주머니에 넣고는 다시 손을 뻗었다.
“시뻘건 과자는 어딨어요?”
“주례를 마치면 주도록 하지.”
“쳇…”
두 사람은 차장실 의자를 살짝 밀어두고 바닥에 푹신한 쿠션을 깔고, 하객을 맞이했다.
이번 여정에 함께하는 어린 승객은 많지 않았다. 결혼식에 참석했던 어린아이 4명이 전부였는데, 그들은 쭈뼛쭈뼛 들어오더니 코르부스를 보고는 덜덜 떨었다.
“참석 선물입니다.”
코르부스는 아이들에게 쿠키가 들린 작은 봉지를 하나씩 나눠주었다. 과자를 본 아이들은 금방 안심해서 루부스카의 안내에 따라 착석했다.
와그작… 와그작…
참을성 없는 아이들이 과자를 조용히 빼먹고 있고 코르부스가 문에서 등을 보이며 기다리던 그때 루부스카가 벌떡 일어나 신부 입장을 시작할 거라고 선언했다. 코르부스 역시 등을 돌렸다. 언젠가 피에르가 선물해 준 하얀 드레스를 입은 아이마는 하얀 미사보를 머리에 둘러쓰고 있었다. 승객이 놓고간 분실물 중 저런 미사보가 있었던 것을 코르부스는 떠올렸다.
“신부 입장!”
… 주례는 얌전히 맨 앞에서 신부를 기다려야 하는 걸 아이들이 잊고 말해주지 않은 걸까, 아니면 이쪽이 더 재밌다고 생각한 걸까. 루부스카는 아이마를 맞이하러 뛰어가 옆에서 열심히 연주하며 아이마 주변으로 손뼉 치고 춤추는 검은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방금 전까지 과자를 집어 먹던 아이들도 소리 지르며 환호하고, 그 가운데 고개를 숙이고 걸어오는 아이마 혼자 어쩔 줄 모르는 모습이었다.
“차장님…”
“드레스가 잘 어울리는구나.”
아이마는 활짝 웃으며 감사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에헴!”
피리를 넣어두고, 루부스카는 두 사람 앞으로 뛰어와 헛기침하면서 분위기를 잡았다.
“19xx년 xx월 xx일, 두 사람이 신성한 결혼을 하기 위해 모였다. 위대한 흡혈귀 루부스카 1세 또한 신랑 신부의 사랑이 죽음 이후로도 영원할 수 있도록 축복하기 위해 이 자리에 나섰으니, 이 결혼식은 영원히 화자 될 것이다!”
“와!”
아이들이 루부스카의 선언에 감동받아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조용~ 조용!”
……
“그럼, 루부스카 1세의 축복이 있기에 앞서 두 사람은 각자의 선언을 하도록! …신랑이 먼저 해주세요!”
코르부스는 루부스카에게 고개를 끄덕여주고 코트에서 짧은 쪽지를 꺼내 들었다.
“너를 저버리지 않겠다고 약속할게, 아이마.”
앞으로도 너와 루부스카, 우리 모두 함께할 수 있기를.
뒷말은 아주 작게 속삭였지만, 아이마는 그 말을 들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게 끝이에요?”
루부스카가 코르부스가 쓴 짧은 쪽지를 힐끗거리며 조용히 속삭였다.
“이 정도면 충분한 것 같은데.”
적어도 아이마는 기뻐보였다.
“...그럼 이제 신부의 선언…!”
“루바도, 차장님도 나에게는 없어선 안 될 소중한 사람들이에요… 앞으로도 다 같이 이렇게 행복하고 즐거운 날을 보내고 싶어요!”
아이마는 루부스카의 손을 짧게 잡았다 놓아주었다.
“... 애들이 말해준 거랑 좀 다른 것 같은데?”
루부스카는 표정을 찌푸리면서도 조끼를 뒤적거려 반지 두 개를 꺼냈다.
코르부스의 손에는 붉은 실로 만든 매듭 반지가, 아이마의 손에는 굵직한 하트 비즈가 장식된 하얀 비즈 반지가 놓였다.
“이제 반지를 교환하면, 두 사람은 루부스카 1세의 축복을 받아 영원한 사랑을 약속받을 것이다!”
코르부스와 아이마는 서로의 약지에 반지를 끼워주었다.
아이마가 만든 비즈 반지는 코르부스의 약지에 조금 헐렁해서, 코르부스는 나중에 줄 조정을 같이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럼 이제, 키스하도록.”
아이마는 손등을 살짝 들어 코르부스가 입 맞출 수 있도록 조정했다.
하지만 코르부스는 아이마의 손을 지나쳐 미사 보를 들어 올렸다.
“차장님?”
코르부스는 아이마가 뭐라고 대답할 틈도 없이 뺨을 한 손으로 부드럽게 쓸어올리며 고개를 숙여 입을 맞췄다. 아이마의 부드러운 뺨에서는 아침에 마신 코르부스의 피 냄새가 은은하게 나고 있었다.
“이제 나, 루부스카 1세는 두 사람을 부부로 선언한다!”
루부스카는 두 사람을 끌고 재빨리 아이들에게 데려가 앉히고 재밌었다며 아이들이 받은 과자를 얻어먹으며 루부스카 1세의 축복을 받은 결혼식이 특별한 이유에 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날 밤, 코르부스는 아이마에게 받은 반지 줄을 조정하기 위해 낚싯줄을 챙겨 두 사람을 찾아갔다.
“왜 이제 왔어요!”
루부스카가 늦은밤이면 아이마와 함께 편지를 쓴다는 걸 알고있던 코르부스는 두 사람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단 걸 알고 놀랐다.
“우리가 만나기로 약속했던가?”
“결혼하면 부부는 그날 같은 이불에서 자야 되잖아요!”
루부스카는 어이없다는 듯 아까 전부터 침대에 걸터앉아 조용히 코르부스를 응시하던 아이마를 가리켰다.
“... 그건”
실제로 결혼한 사이에서의 이야기라고 코르부스는 차마 말할 수 없었다. 그리고 아이들의 상상과 다른 일이 벌어진단 사실도. 적어도 루부스카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모르는 눈치였다. 코르부스는 모자와 코트를 벗어 벽에 걸어두고, 아이마의 옆으로 가서 앉았다.
“먼저 눕는 게 어떻겠니?”
아이마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불 안으로 들어가 누웠다.
“... 그런데 차장님.”
“왜 그러니?”
“... 루비도 같이 자도 될까요?”
같이 결혼했잖아요.
“엥? 나는 주례만 봤는데.”
“저희가 죽은 뒤에는 루비의 그림자 속에서 살아가는 것 아닌가요… 루비도 함께 맹세했잖아요?”
“헐! 그건 그래…”
루부스카는 금방 납득하고 옷을 어지럽게 벗으며 침대 앞으로 왔다.
“그럼, 내가 가운데서 잘래요!”
… 자신이 누울 수 있게 비켜주란 뜻이었다.
루부스카가 꼬물꼬물 이불 안으로 들어가고 좁은 침대에는 코르부스를 위한 자리가 많이 남지 않았다.
“꼭 껴안으면 괜찮아요.”
아이마는 문제 없다는 듯 코르부스에게 웃어주었다.
끼익하며 침대 스프링이 무겁게 눌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코르부스가 침대 끝에 걸쳐 누웠다. 코르부스는 떨어지지 않기 위해 아이들을 꼭 끌어안았다. 루부스카의 따뜻한 온기가 코르부스에게도 전달되고, 코르부스의 팔을 꽉 껴안은 아이마의 작은 손을 통해 함께 연결되어 있다고 느낄 수 있었다.
루부스카는 금방 잠들어버리고 쌔근쌔근 아이의 숨소리가 객실을 채웠다. 코르부스는 루부스카가 들려준 흡혈귀의 축복을 받은 결혼에 대해 생각했다. 자신이 이제까지 축복해 주었던 수많은 결혼식도. 모두가 이어지기를, 헤어지고 싶지 않다는 마음으로 서로에게 손을 뻗었다. 서로에게 표식을 남기며, 죽음이 그들을 갈라놓을 때까지, 죽음 이후까지 맹세했다.
그들이 죽음 이후로도 함께하기를, 우리의 맹세 역시 영원하기를. 코르부스는 약지에 끼워진 비즈를 만지작거리며 조용히 기도했다.
“... 아이마, 나중에 루부스카의 반지도 만들어주는 게 어떨까?”
“... 너무 좋아요! 루비에게 어울리는 비즈를 찾아볼게요. 아, 차장님도 함께 찾아보시겠어요?”
아이마는 흥분한 와중에도 깊은 잠에 빠진 친구를 깨우지 않기 위해 조용히 속삭이며 팔을 붙잡고 있던 손을 내려 코루부스의 손을 맞잡아왔다.
“... 그래, 함께 찾아보자.”
짧은 쪽잠을 청한 후, 코르부스는 정복을 차려입고 조용히 객실 밖으로 나왔다. 차장에겐 열차를 종착점까지 안전하게 운행해야 할 책임이 있었다.
이것은 그가 그의 동료들과 신부, 주례 앞에서 약속한 것과 같은 맹세를 지키기 위함이었다.
도나우 여명호는 오늘도 종착점을 향해 쉼 없이 달리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