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ions

Work Header

Rating:
Archive Warning:
Category:
Fandom:
Relationships:
Characters:
Additional Tags:
Language:
한국어
Series:
Part 9 of r99 req
Stats:
Published:
2026-03-18
Words:
372
Chapters:
1/1
Kudos:
4
Hits:
77

침식

Summary:

너는 내가 그 누구보다 사랑하는, 나의 소중한 동생이다.

Notes:

(See the end of the work for notes.)

Work Text:

가만히 있으면 생각이 멈추지 않았다.
전쟁은 끝나지 않은 게 아닐까.
탄알이 사람의 몸 안에서 파편이 되어 퍼지고, 피가 흐르고 비명이 들려왔다.
내가 함께하던, 너희는 차례차례 죽어갔다.
나는 끝없는 기억을 되풀이하며 살아가고 있을 뿐이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고 있었어?"
하지만 생글생글 웃으며 다가오던 너는 나를 잠겨 죽게 두지 않았다.
너는 나의 옷깃을 붙잡고 끌어당기고, 내가 고개를 숙이면 숨이 막힐 때까지 내 모든 숨을 앗아갔다.
“··· 나랑 있는데 다른 생각은 하지 마.”
그 눈빛은 배신자에게 사형을 선고할 때와 다르지 않았지만, 나는 이번에는 곁눈질이 아닌 사형수의 관점에서 너를 바라보게 되었다.
내가 널 배신할 리가 없잖아.
너만큼은 잃고 싶지 않은걸.

너는 나의 머리칼을 양손으로 헤집으며 침대로 이끌었다.
내 손에도 익숙하게 너의 주홍빛 머리칼이, 따뜻한 목덜미의 온기가 느껴졌다.
네가 나의 품에서 안전하게 잠들기까지 나는 너를 생각했다.
나는 네 몸 구석구석 더듬고 쓰다듬으며 네 건강을 걱정하고, 너의 그 망아지 같은 체력에, 거칠고 다정한 언어에서 위안을 얻었다.
너만큼은 나처럼 변하지 않기를—.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고 있어?"
하지만 너의 그 진지한 표정, 어딘가 피곤해 보이는 얼굴에서 나는 도망칠 수 없었다.
너는 나의 옷깃을 붙잡고 끌어당기고, 내가 너를 피할 수 없게 턱을 거칠게 붙잡고 되묻는다.
“또 도망칠 궁리를 하는 중인가···?”
너의 눈에서 나는 불확신과 실망을 읽어낼 수 있었다. 마치 나라는 존재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너는 나를 가늠하고 있었다.
그래도 나는 이 순간만을 기다려왔다.
내가 끔찍이도 두려워했던 날이 오고 말았지만, 난 네가 바라던 모든 것을 안겨주고 싶을 뿐이었다.

너는 나의 몸에서 손을 떼고 묶인 밧줄이 튼튼한지 확인하기 위해 나의 시선이 닿지 않은 곳으로 향했다.
거친 밧줄에 손목이 쓸리며 고통스러웠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너는 나의 소매를 들춰내며 무언가 숨긴 게 없는지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그 행동에 괴로움을 느끼면서도, 나는 너에게 닿고 있어 기뻤다.
그 무엇 하나 말할 수 없었다.
너를 위해서 나는—.

 

“무슨 생각을 한 거야?”
너는 마침내 내가 아는 얼굴을 하고 있다고,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너는 수많은 사람을 마주하고도 나를 보며 묻고 있었다.
“···이제 도망칠 곳도 없어.”
리볼버의 실린더가 돌아가는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배신자를 처분할 준비가 된 듯 단연하게 리볼버를 조준하고 있다.
흔들림 없는 자세, 정확한 조준. 하지만 너의 표정은 역광에 읽히지 않았다.

 

탄알이 사람의 몸 안에서 파편이 되어 퍼지고, 피가 흐르고 비명이 들려왔던가?
나는 끝없는 기억을 되풀이하며 살아가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너에게 끝없이 미안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네가 그 순간에는 나의 생사를 확인하며 나의 숨이 모두 빠져나간 것을 알고 슬퍼하였길 바란다.

 

네가 내가 되지 않기를,
네가 과거에 갇히지 않고 살아가기를 나는 바랐다.

Notes:

ㅎㅎ 죽었을까요, 죽지 않았을까요.
이것은 전부 악몽일지도 모릅니다.

Series this work belongs 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