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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ve Warning:
Category:
Fandom:
Relationships:
Characters:
Language:
한국어
Series:
Part 1 of 우리들만의 푸르른 아카이브
Stats:
Published:
2025-06-11
Updated:
2025-06-12
Words:
3,988
Chapters:
3/?
Kudos:
3
Hits:
165

늦은 밤, 샬레에서

Summary:

밤늦게까지 일하는 것도 참 기분이 안 좋죠. 그래도 당신이 가장 필요로 할 때 사랑스러운 당신의 학생들이 곁에 있어준다면 좋을 거예요.

쥐 죽은 듯 고요한 샬레의 밤, 당신이 일을 할 때 당신 곁에 있어주는 귀여운 학생들의 짧고 따뜻한 이야기들.

"선생님, 잠깐 시간 시간 되시나요?"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목표는 기분이 좋아지는 이야기를 쓰는 거예요. 당신 뒤에 잔뜩 쌓인 서류다발이 당신 기분을 망치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지만, 부디 잠깐이라도 시간을 내어 학생들과 따스한 밤을 보내고 가지 않을래요?

Unseen, Before You라는 이름으로 비슷한 형식의 자매 작품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차이점은 1) 밤에 일어나는 일만을 다루지는 않고, 2) 외부 캐릭터가 1인칭 시점으로 이야기하고, 3) 작품을 관통하는 하나의 스토리와 등장인물의 발전도 그리고 있어요. 두 작품 다 즐겁게 읽으실 수 있으리라 장담하지만, 일단 지금은 "늦은 밤, 샬레에서"를 즐겨 주세요!

Notes:

Chapter 1: 항상 당신 곁에, 어디를 보더라도

Chapter Text

전기 없이는 어떻게 살아야 할 지 감이 잘 안 오지. 매일같이 책상 앞에 앉아 컴퓨터로 타자를 치고 서류를 이리저리 뒤적이는 일상. 온 도시가 잠들고 난 뒤에도 당신의 일상은 계속돼. 방 안을 환히 비추는 인공 햇빛마저 없었으면 당신은 진즉에 미쳐 버렸을 거야.

당번은 퇴근한지 오래야. 당연히 당신이 부탁해서 돌아갔지. 그 학생이 누구든지 간에 이렇게 늦게까지 잡아놓을 수 없는 법이잖아. 지금 당신과 함께하는 건 웅, 하며 부드럽게 소리를 내는 환풍기, 그리고 얼마나 일이 남았는지 어질러진 책상을 확인할 때마다 끼익 끼익, 시끄러운 의자 뿐. 밤이 깊어가는 동안 혼자서 일을 한다니, 조금 외롭기도 하지만 그게 어른의 책임이라는 거니까.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밤에 일하는 것도 낮에 일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아.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일까, 낮에는 눈치채지 못하는 작고 작은 소리들이 밤에는 확성기를 받아든 것 같아. 키보드가 딸깍 하는 소리, 펜이 똑딱 하는 소리, 종이를 넘길 때 팔락 하는 소리……. 모두가 귀에 선명하게 들려와. 무척이나 불안한 소리 같지만 신기하게도 당신 마음에 묘한 안정감을 가져다 줘.

다만 오늘 밤은 평소보다도 더 이상한 느낌이 들어. 공기가 탁한 걸까? 컴퓨터 너머로 사무실을 주욱 훑어보지만, 특별한 점은 없네. 책도 항상 그랬듯이 어지러이 늘어져 있고 소파도 평소처럼 먼지로 가득해. (어두워서 먼지가 잔뜩 꼈는지도 못 알아보겠지만 말이야.) 평화롭다, 그렇지?

당신은 책상 앞에서 일어나 가볍게 스트레칭을 시작해. 가끔씩은 몸을 움직여 줘야지. 당신이 하는 일을 생각해보면 특히나 그렇고. 조금씩 뭉친 근육을 풀어주는데, 갑작스레 근육이 당겨와선 놓아주지 않아. 결국 쥐가 난 허벅지를 붙잡고 쿵, 바닥에 쓰러지고 말아. 이야, 이거야말로 열심히 일하는 어른의 기쁨이지. 근육 문제 말이야.

호흡이 거칠어지고 고통을 참으려 눈꺼풀이 꼬옥 닫혀. 넘어지는 바람에 나중에 치료할 상처가 더 늘어났지만, 언젠가는 다 나아서…… 다시 일로 복귀할 수 있겠지. 밤에 푹 쉬는 게 어떤 느낌이었더라? 바닥에 납작 누워버린 당신은 아픔도 날려보낼 겸 푹 쉰다는 게 어떤 느낌일는지 상상해 보지만…….

눈꺼풀이 다시 열려. 지금 제정신이야? 잠 잘 생각 할 시간 없어. 남은 일이 산더미라고! 이 이상한 오한만 없어져 준다면…….

시선이 아래쪽에 못박혀 움직이지 않아. 쥐가 난 허벅지 위에 얼음찜질 팩이 올라가 있고 작은 분홍빛 천으로 감싸져 있네. 당신은 찜질팩을 들어 옆에다 내려놓아. 쥐 난 것도 거의 풀어진 것 같은데, 당신한테는 얼음을 가지러 간 기억이 없어. 머릿속에는 한 명, 요주의 인물이 떠오르지만, 지금은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먼저야.

당신은 일어나서 책상 앞에 다시 자리를 잡아. 커피 한 잔으로 머리를 맑게 하는 것도 잊지 않고 말이야. 맞아, 뜨거운 물에 갓 내린 맛있는 커피. 사랑스러운 당번 아이들이 만들어주지 않으면 맛볼 수 없는 그런 커피. 하아, 한숨을 푹 내쉬고 한번 고개를 휘저어 잡념을 날린 뒤 당신은 다시 눈앞의 서류로 돌아가.

얼마 후, 잠깐 쉬는시간을 가지려고 당신은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 커피 컵은 이미 텅 비었고, 쥐 난 것도 먼 과거인 듯해. 태양은 고개를 비출 기미도 보이지 않고, 심야 잔업도 끝이 보이지 않네 (물론 아까 잠깐 눈을 붙여서 그렇게 된 건 절대로 아니야). 남은 선택지는 단 하나. 눈 딱 감고 남은 일을 전부 해치운 다음 한두 시간이라도 (아니면 몇 분이라도) 수면시간을 확보하는 건데, 뭔가가 걸려서 일을 할 수가 없어. 수상한 인기척 때문에 거슬린다고나 할까…….

다시 당신은 책상에서 일어나. 또 멍청하게 쥐 나서 쓰러지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말이지. 책상에서 멀어져서 사무실 반대편으로 걸어가기 시작해. 이렇게까지 당신을 거슬리게 하는 이상,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야.

천천히, 소파에서부터 시작해서 샅샅이 살펴. 소파 위도, 소파 아래까지도 확인해 보지만 아무것도 없어 (애초에 소파 아래에 누가 있겠나 싶지만). 다음은 책장이야. 벽에서 살짝 옮겨서 뒷편을 들여다보지만, 당연히 당신의 예상대로 아무것도 없네. 계속 사무실을 둘러보지만 당신이 찾고자 했던 것(정확히 말하면 찾을 줄 알았던 것이겠지)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아.

적어도 확인은 끝냈으니, 뭐. 드디어 일을 끝낼 수 있을까, 그렇게 바라며 당신은 책상으로 돌아가. 의자를 잡고 꺼내려는데, 손이 미끄러져서 의자가 바깥쪽이 아니라 안쪽으로 굴러들어가네. 피로에 찌들 대로 찌든 사람이라면 이런 실수도 할 수 있겠지.

"아야!"

오, 환청까지. 불면증 환자가 자주 호소하는 또 다른 증상이야. 한숨을 푹 내쉬고 무릎을 꿇어 책상 아래를 들여다봐. 작은 여자아이가 뒷편에 쪼그려 앉아 무릎을 문지르다가 움찔 놀라네. "깜짝이야……."

세리나.

"아, 아아! 좋은 아침이에요, 선생님……."

당신은 시계로 시선을 옮겨. 오전 한 시 십오 분. 아침이라.

세리나, 지금 여기서 뭐 하는 거야? 밤늦게까지.

일단 세리나가 사무실까지 모든 보안을 전부 뚫어냈다는 건 잠시 잊어버리기로 해. 이전에도 이런 일이 너무 잦았던 탓에 이미 그런 건 걱정거리도 아니야. 지금 걱정거리는 단 하나, 왜 세리나는 새벽 한 시에 깨어 있는가.

"저……, 그게, 저는 선생님이 괜찮으신지 보려고 온 거예요! 선생님은 모두의 선생님이시니까……, 어……, 다치시면 안 되니까요!" 그렇게 말하면서 세리나는 작은 응급처치 키트를 끌면서 책상 아래에서 기어나와. "실제로 아까 쥐가 나셨으니까요.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모르잖아요."

대단한데. 당신 안전을 너무 걱정한 나머지 세 번이나 질문을 흘려 넘겼어. 다시 물어보려고 해 보지만 미꾸라지처럼 질문을 회피하는 방식만 점점 더 창의로워질 뿐이야. 당신은 결국 패배를 인정하고 주제를 바꿔. 자신은 괜찮으니까 세리나야말로 가서 쉬어야 한다고.

"선생님, 아직도 너무 피곤해 보여요. 커피라도 한 잔 더 가져다 드릴——"

괜찮아, 세리나. 어서 자러 들어가.

"……." 무슨 이유인지, 세리나 쪽이 당신보다 잠을 충분히 잔다는 생각이 거북한 모양이네. 이게 바로 간호사의 의지라는 것일까? 세리나가 의료 키트를 주섬주섬 챙겨들고 문으로 향하는 모습을 당신은 조용히 바라봐.

세리나, 잘 자.

"네에."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가는 세리나. 책상으로 돌아오면서 당신은 다시 선택의 대가를 사무치게 느껴. 이제 함께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그렇다고 당신이 편하자고 학생을 괴롭힌다니, 그런 건 생각조차 할 수 없지. 이건 당신의 일이야. 당신이 혼자 해야 하고, 혼자 할 수 있는 일이지.

……직접 해보기 전까지나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거야. 한 시간이 지나고, 이제 당신 눈꺼풀보다 무거운 게 있으리라고는 느껴지지 않을 정도. 에덴 조약 때 받은 스트레스? 순식간이지. 키보토스가 멸망 직전까지 갔던 사건? 딸려온 부록 정도야. 지금 밤을 지새우며 처리하는 잔업에 비할 만한 건 아무것도 없어. 슬며시 세리나를 쫓아낸 과거의 당신이 옳았는지 묻고 싶어져.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면 세리나에게 안 좋은 상황이 되었을 테니까 이게 최선책이었다고, 그렇게 당신은 생각해. 봐봐, 딱 하룻밤이잖아. 이 밤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

……밤을 지새우기 전까지나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거야. 한 시간이 더 지나고, 이따금 눈을 뜨면 몇 분의 시간이 어딘가로 증발하고 당신은 책상에서 머리를 들어올리고 있지. 세리나더러 함께 밤 새달라고 하는 것도 괜찮았을지도 모르겠는걸…….

뭐, 의미 없는 짓이야. 가만히 둔다고 알아서 일이 없어질 리도 없고, 지금 상태로는 끝낼 수도 없을 것 같네. 당신은 커피라도 한 잔 가져오려고 샬레를 나설 준비를 해. 그런데 출입문을 열고 나니 탕비실이 어디였는지도 모르겠어.

당신은 다시 뒤를 돌아봐. 커피 없이도 괜찮을지 몰라. 거의 다 끝내놓은 거잖아? 지금 몇 시간 째 잔업인데. 일이 아직까지도 쌓여 있을 리가 없잖아, 그렇지?

응, 틀렸어.

휘적휘적 책상에서 멀어진 당신은 소파 하나를 골라 그곳에 무너져. 신경 쓰는 사람도 하나 없잖아, 안 그래? 내일 메꾸면 되는 일이야. 거기다 어차피 일은 정신이 말짱할 때 하는 게 더 좋다고. 린이 화 내면 또 뭐 어때? 우리 린 쨩도 일 하는 사람이 당신 한 명이면 찍소리도 못 할 테니까.

그렇게 잠시 책임감을 내팽개치고서 잠에 빠지고 있자니, 약간 따스한 느낌이 온몸을 휘감아. 눈을 번쩍 뜬 당신의 몸은 이미 담요가 잘 감싸주고 있네. 당신은 담요를 벗어 버리고 몸을 세워 앉아.

세리나?!

키득키득, 조용히 웃는 소리가 소파 반대편에서 들려와. "잡혀 버렸네요."

아직까지 여기 있을 줄은 몰랐는데?

"나간 적 없어요."

다음 질문을 하기도 전에 세리나는 일어나서 당신의 책상으로 달려가. 곧 가벼운 발걸음으로 돌아와서 손에 든 따뜻한 커피 머그컵을 건네줘. "선생님, 선생님. 보세요. 커피를 내려드렸는데 선생님께선 소파로 가 버리셨잖아요."

당신은 건네준 머그컵을 받아들고 한 입 머금어. 뜨겁긴 하지만, 입 안이 데일 정도로 뜨겁지는 않아. 한순간에 마음이 따뜻해지는 그런 온도.

세리나가 당신 옆에 앉으면서 폭, 하는 소리가 들려와. "선생님, 오늘 밤 일은 거의 다 하셨잖아요! 선생님이라면 할 수 있어요."

당신 몸은 절대로 불가능하다고 소리치고 있지만 이렇게까지 당신을 응원해주는 학생이…… 오전 세 시 사십팔 분에 있네, 시계를 보니. 인간의 한계 따윈 학생들을 위해서라면 아무것도 아니지. 따뜻한 커피를 한 입 더 마시고서 당신은 다시 책상으로 향해.

그래도 세리나, 너는 어서 들어가서 쉬렴.

"흐음……." 세리나는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는 듯 천장을 올려다보며 앞뒤로 고개를 까딱여. "선생님, 혹시 소파는 비어 있나요?" 그렇다고 답하니 세리나는 당신이 방금까지 있었던 소파로 자리를 바꿔. "그렇다면 오늘 밤은 선생님께 신세 좀 질게요!" 세리나는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는 소파 뒤로 사라져.

당신은 커피 한 입을 더 마시고서 컴퓨터 화면을 노려봐. 이건 불면증과 세리나의 싸움이야. 그리고 학생들이 자신의 힘으로 거대한 기계 괴물을 쓰러트리는 모습을 당신은 많이 봐 왔지. 겨우 수면 장애 하나 못 이길까. 다시 일을 시작하며 키보드를 누르는 당신의 손은 당신 눈에는 초인적인 속도로 움직이는 듯이 보여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평소랑 비슷한 속도였을 테지만 말이야). 일을 시작한지 몇 분 되지도 않은 것 같은데, 잔업이 언제 있었냐는 듯 하나도 남아있지 않아. 곧바로 당신 몸은 책상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지고, 그러면서 걷어찬 의자는 반대쪽 벽에 부딪힐 때까지 굴러가. 드디어 당신의 눈이 감기기 시작해. 일이 남았다는 절망감이 아닌, 드디어 일이 끝났다는 행복감에 말이야. (일단 오늘은 말이지.) 잠에 빠져들기 전 당신은 조용히 무언가를 두드리는 듯한 소리를 들어. 그 후 가벼운 무언가가 당신을 살며시 누르고, 따뜻한 온기와 아른거리는 라벤더 향이 당신을 감싸. 평온하게 오늘 밤이 끝을 맞이하고, 당신과 세리나는 곤히 잠에 들어.

(일단 세 시간 정도는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