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Text
길게 내려오는 적갈색 무명 앞치마. 곱게 다림질해 하늘거리는 타탄 무늬 스커트. 균형이 맞지 않을 정도로 커다란 리본.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한 데 아우르는 귀여운 여자아이. 이 아이디어의 발안자인 나, 현재 실종된 총학생회장이 직접 임명한 샬레의 선생은 실로 천재임에 틀림이 없다.
점내의 모습은 "오감의 황홀경"이라는 말을 그대로 재현한 듯했다. 앞쪽 카운터에 나란히 진열된 것은 온갖 빛깔로 반짝이는 디저트. 보온 트레이에 늘어선 것은 손님의 혀를 즐거이 해 줄 시간만을 기다리는 짭조름한 핫도그와 군침을 돋구는 크로켓. 실내를 가득 채운 향기는 또 어떤가. 깊은 로스팅 커피 향과 태어나 처음 맡아보는 신기한 차 내음. 갓 구워 유우카의 허벅지 뺨치게 부드러운 빵의 냄새. 그리고 길목마다 서서 당신을 기다리며 황홀경 한 바구니를 안겨 주는 귀여운 여자아이들까지.
"세이아는 꼭 한번 들러 줬으면 좋겠네. 왜냐하면 내가 낙원의 존재증명을, 아니지, 낙원 그 자체를 창조하였으니……."
적어도 그게 내 바람이었다.
"세리카 씨!" 유우카가 세리카의 무전기에다 대고 소리쳤다. "손님이 서른 분이나 기다리고 계신다고요. 테이블 정리는 완료됐나요?" 손에 든 작은 메모지에 주문을 휘갈기며 정신없이 돌아다니는 유우카. 그의 꽁지머리는 쉴 틈 없이 이리저리 휘날렸다.
세리카는 물 흐르듯이 커다란 쟁반에 빈 그릇과 컵을 수십 점이나 올리고서 능숙하게 한 손으로 들어 보였다. 물 밀듯 밀려오는 손님들의 파도를 유유히 빠져나가며 세리카는 주방으로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하고 있어, 하고 있다고!" 층 사이를 넘나들며 세리카가 대답했다. "정말, 말도 안 돼! 손님이 끝도 없이 들어오잖아!"
"바로바로 회전시킬 수 있게 테이블만 깨끗하게 치워 두세요!" 유우카는 주방이 들여다보이는 기다란 카운터 앞에 우뚝 멈춰서는, 메모장에서 종이를 한 움큼 뜯어내곤 쾅 소리를 내며 카운터에 올려놓았다. "후우카 씨! 아로나 핫도그 스무 세트가 더 필요해요. 지금 당장."
후우카는 미식연구회에게 납치당했을 때보다도 뚱한 얼굴로 트레이를 탕 내려놓았다. 트레이에는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소시지를 크로와상 사이에 끼운 빵이 한가득이었다. "빵 나왔어요."
유우카는 오븐 장갑을 끼고 트레이를 들었다. "고맙습니다! 타로빵은 얼마나 더 걸리나요?"
"10분 더요!"
"완벽해요! 그럼 지금 바로 한 트레이 더 부탁드려요! 진열장에 올린 분량도 이미 동나기 직전이에요!"
"끄아아아아!!!" 후우카의 뒤를 따라 애처로운 절규 소리가 주방이라는 미궁 뒷편으로 사라졌다.
방 뒷편에서는 나지막히 펑 하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아아! 믹서기가 터져버렸어요!!!" 주리가 소리쳤다.
아로나 핫도그 트레이를 조심스레 든 유우카는 빵 진열대로 향하면서 커피 카운터를 지나쳤다. 카운터 너머로 간신히 빼꼼 모습이 드러나는 히나는 스팀 피처를 우유 거품기로 휘젓고선 줄줄이 늘어선 커피잔에 달콤한 우유 거품을 우아하게 따라냈다. 옆에 늘어선 종이쪽지를 한번에 쓸어내면서 히나가 손님을 불렀다. "832번, 833번, 835번, 836번, 837번 손님! 주문 나왔습니다!"
"834번은요!?" 손님 하나가 카운터 앞 인파 너머에서 소리를 질렀다.
"어, 그게……! 에스프레소 한 잔이었죠? 지금 나옵니다!" 히나는 다시 빙글, 커다란 전문점용 커피머신을 향해 돌아서서 포터필터에 원두 가루를 꾹꾹 눌러 담았다.
빵 진열대에 도착한 유우카는 벽에 걸린 집게 하나를 잡아 꼼꼼하고도 조심스레 진열대 트레이 위로 빵을 옮겼다. "빵 나왔어요, 빵!" 집게질을 계속하며 유우카가 소리쳤다.
마치 사람 손에서 음식을 낚아채는 해변가 갈매기처럼 손님들이 달려들었다. 유우카가 빵을 옮기는 속도보다도 훨씬 빠르게 빵의 양이 줄어들었다.
"와, 드디어 빵 나왔다!"
"얼마나 기다렸는데!"
"선생님 핫도그였다면 더 좋았겠다……."
"뭐, 뭐어!? 그런 건 안 돼!!! 사— 사형이야!!!" 유우카의 팔 아래서 반대편 트레이에 손을 뻗던 코하루가 빼액 소리질렀다. 곧 코하루는 손님들에게 포위당했다.
"자— 잠깐! 조심해! 이거 엄청나게 뜨겁단 말이야! 좀!" 누군가 화상을 입지 않도록 트레이를 높이 들어올리면서 코하루가 애원했다.
다른 쪽 트레이에는 타로빵 한 조각이 외로이 남아있었다. 손님 두 사람이 빵 하나를 집으려다 집게 두 개가 부딪힌다. 손님 한 사람은 하얀 숄을 걸친 교복을 입고 있었고, 다른 사람은 머리에 뿔이 나 있었다.
"야! 그거 내 빵이야."
"어머? 침이라도 발라 놓으셨나요? 그렇게는 안 보이는데요!"
"뭐!? 너 지금 뭐라 그랬어!?"
"역시 더러운 게헨나답군요!"
"정신 나간 트리니티 놈이!"
손님 두 명은 등 뒤로 손을 뻗어 총을 집으려 했지만, 곧바로 뒤통수에 날렵한 발차기를 맞고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하얗고 긴 머리를 휘날리며 방독면을 뒤집어쓴 여자아이가 손님을 질질 끌면서 출입구로 향했다. "점내에서 싸움은 금지야."
"아, 아즈사 씨! 싸울 거면 가게 밖에서 해 주세요!" 유우카가 주저앉아 아즈사의 날아차기를 피하며 소리질렀다. "서— 선생님!!! 빵 진열대 쪽으로 와서 여기 조금 도와 주세요!!!"
그 사이 나는 내 앞의 포스기와 씨름하면서 미친 듯이 숫자를 입력하고 있었다. 손에서 흐른 땀 탓에 화면에는 손가락 자국이 가득했다. "미안! 나— 나도 여기 일이 좀 바빠서!"
"선생님!" 모두와 같은 유니폼을 챙겨입은 아로나가 화면 옆쪽에서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여기, 이 주문, 중복으로 들어갔어요!"
"악, 진짜다! 고마워, 아로나. 대체 내가 왜 여기에 유우카 대신 있는지 모르겠다. 유우카 쪽이 훨씬 더 빠르게 잘 할 텐데."
"그렇긴 한데, 홀에 나가시면 곧바로 손님들하고 선생님을 좋아하는 학생들에게 포위당하고 말 거예요! 죽을 생각이라도 있으신 거예요, 선생님!?"
"어— 아니, 그건 아니긴 한데."
손님에게 주문을 받기가 무섭게 문에 달린 차임벨이 울렸고 여자아이 다섯 명 무리가 가게로 들어왔다.
"방금 막 밀린 손님들을 다 받은 참인데……! 소라, 인사 잊지 말고!"
"아, 앗! 어, 네, 선생님!" 손님이 앞으로 몰려들자 소라의 크고 푸른 눈동자가 빙글빙글 돌았다.
정신을 놓은 소라의 어깨를 토닥였다. 뒤를 돌아본 소라에게 나는 엄지를 척 세워 보이고, "소라라면 할 수 있어! 도움이 필요하면 내가 옆에 있을 테니까!" 하고 웃음을 지어 주었다.
소라가 우물쭈물하며 고개를 살짝 끄덕이곤 뒤를 돌아 방금 들어온 손님 다섯을 맞이했다. 긴 금빛 머리를 귀 뒤로 넘겨 멋진 이마를 드러내고, 앞치마에 들러붙은 음식 조각을 툭툭 털어낸 뒤, 손을 쭉 뻗어 앞치마를 가지런히 편다. 마지막으로 소라는 다소곳이 손을 배꼽에 모아 후우, 깊은 숨을 내쉬고서는 꾸벅 몸을 숙여 인사한다.
"어, 어서오세요! 카페 키보토스에!"
며칠 전…….
이슬이 맺힌 창문. 그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는 따가운 햇살. 머그컵에서 올라오는 커피의 향기. 책상 위에 그득히 쌓인 종이와 서류철. 이따금씩 들려오는 총성까지. 샬레 사무실 책상에 앉아 서류를 결재하는, 여느 아침과 다르지 않은 날이었다. 월말이 가까워서인지 특히 비용 납부 기한이나 이런저런 결산 기한이 성큼 눈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샬레 집무실에는 항상 당번 학생 한 명이 상주하고 있어야 하는데, 그 뜻은 곧 이렇게 바쁜 총결산 날에 내 옆에서 밀려오는 업무를 도와야 하는 불운한 학생이 무조건 한 명씩은 생긴다는 것이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유우카는 내게 거리낌없이 도움의 손을 내밀었고, 심지어 월말이 다가오면 샬레 당번을 위해 일부러 자기 시간을 비워 가며 돕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유우카와 둘이서 밤늦게까지 사무실에서 야근을 해야 했지만 말이다.
왜 그렇게까지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나 역시도 유우카의 도움은 고맙게 받고 있었다.
아직 유우카의 당번 시작 시간까지는 몇 시간 정도 남았으니,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은 모두 처리해서 유우카를 일찍 집에 보내 주기로 했다. 유우카도 고마워하겠지?
끝이 보이지 않는 서류와 편지 봉투를 넘기면서 숫자와 기호를 흘겨보고 있자니 절로 한숨이 나왔다. "영수증. 영수증. 또 영수증. 하아, 이거 빨리 처리 못 하면 또 유우카한테 붙잡혀서 한 소리 듣겠는데."
"아로나." 우리 귀여운 AI 비서를 불러냈다.
태블릿 화면에 반짝 불이 들어오고 싯딤의 상자가 기동을 시작한다. 곧바로 하늘빛 머리의 슈퍼 AI가 활짝 웃으며 나를 반겨 주었다. "좋은 아침이에요, 선생님! 오늘은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좋은 아침, 아로나! 남은 샬레 예산으로 먼저 전기료부터 납부해 주겠니?"
"맡겨만 주세요, 선생님!" 헤일로를 초록빛으로 빛내며 아로나는 경례를 올려 붙였다.
나는 다시 영수증과 청구서의 산으로 주의를 돌렸다. 솔직히 말하자면, 전기료와 가스비, 시설 정비비처럼 샬레 건물을 관리하는 데 쓰이는 예산은 내가 학생들을 위해 들이는 비용이나 품에 비하면 적은 편이었다. 평소 나에게 돌아오는 이상한 업무나 대형 프로젝트의 양을 생각하면 애초에 예산을 적절히 편성하기 힘들다. 예를 들어 보자면, 페로로 마스코트 인형옷이 그렇게까지 비쌀 줄은 몰랐다든가…….
하지만 학생들이 행복하다면 나는 선생님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손에 든 영수증의 내용을 기록하니 그 인형옷과 함께한 바보같은 장난질이 떠올라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영수증은 서류철에 끼워 보관함에 넣었다.
갑지기 아로나가 말을 건넸다. "어— 음……. 서— 선생님?"
"으음, 아로나? 무슨 일이야?" 눈앞의 서류에서 눈을 떼지 못하면서 대답했다.
"저— 저희, 예산이 부족해서 전기료를 못 낼 것 같은데요……."
팟 고개를 들어 아로나를 바라보았다. "뭐? 무슨 소리야? 전기료 낼 돈 정도는 항상 남아 있었잖아. 수도가 끊긴 적은…… 한 번인가 있어도."
"두 번이에요, 선생님……. 그, 그것보다 진짜로 돈이 없어요!" 아로나가 울먹였다. 아로나의 헤일로는 마치 과열된 하드디스크처럼 빙글빙글 돌면서 빨간 빛으로 깜빡였다.
나는 서류를 내려놓고 태블릿을 집어들었다. 손바닥에는 식은땀이 흥건해지고, 절로 침이 꼴깍 넘어간다. 흔들리는 시선을 다잡고 아로나를 바라보며 재확인할 용기를 다진다. 그 대답은 나 자신도 이미 알고 있을 텐데도.
"그러면 시설 정비료 정산할 예산은 남아 있니?"
아로나는 잠시 말을 멈추고, 힐끗 내 눈을 피했다. 손에 든 우산은 아로나의 움직임에 맞춰 앞뒤로 까딱였다. 잠시 뒤, 아로나는 다시 나와 눈을 맞추고, 슬픈 듯 고개를 저었다.
그 페로로 인형옷, 생각보다 훨씬 더 비쌌던 모양이다.
사무용 의자에 털썩 주저앉으니 상황의 무게에 의자가 드르륵 밀려났다. 수도 정도야 그렇다 치자. 린 쨩에게 매달려 싹싹 빌면 총학생회 시설을 사용하게 해 줄 테니까. 그런데 전기 없이 샬레 건물을 운영하는 건 비교도 안 되게 어려울 터였다. 여기까지 생각이 닿은 나는 눈을 찡그리고 좋은 생각이 날 때까지 콧잔등에 손을 얹어 꾹꾹 눌렀다.
"아로나, 아직 엔젤24 가게 임대료를 안 받았었지?" 엄연히 샬레의 생활관 안에 위치한 편의점이기에 샬레는 매달 점포 월세를 지급받을 권리가 있었다.
"그렇네요! 지금쯤이면 이미 문을 열었을 테니까 지금 가서 소라 쨩에게 물어보면 될 거예요!"
아로나와 나는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보니 망한 게 아닐지도 모른다!
"저— 정말로, 정말로 죄송해요, 선생님!" 소라가 연거푸 머리를 숙이면서 사과했다. 마치 물 먹는 새 장난감을 보는 듯했다. 옆머리에 살짝 묶은 소라의 꽁지머리는 자꾸 움직이는 머리 탓에 진짜 새처럼 파닥거렸다.
알고보니 망한 게 맞았다.
소라는 편의점 카운터 뒤에 숨듯이 서 있었다. 새하얀 소매에 파란 칼라를 한 셔츠를 입고 똑같은 푸른빛 앞치마를 길게 늘어뜨린 평소와도 같은 옷차림. 공손하게 앞치마 위로 양손을 포개면서도 소라의 눈빛은 내가 아니라 더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른 손님들을 대할 때처럼 전력으로 눈을 맞추지 않으려는 거겠지.
"음, 소라야." 불안해 보이는 소라의 눈빛을 달래듯 다시 물었다. "다시 한 번, 찬찬히 설명해 줄래? 이번 달 월세를 못 낸다고?"
소라는 푹 고개를 떨구고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면서 입을 열었다. "그— 그게, 가끔가다 손님들이 들러 주시는 건 맞는데요, 샬레에 일이 있어서 오시는 분들도 있으니깐…… 근데 D.U.에서 뭔가 살 게 있으면 여기처럼 이상한 데 있는 "편의"점보다는 더 나은 곳들이 많으니까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선생님이 저희의 가장 단골손님이세요. 애초에 돈이 안 되는 장사니까요……."
"그, 그래." 하고 더듬거리며 카운터에서 물러났다. "그렇게 말하니까 어쩔 수 없는 것 같네……."
"지금 엔젤24 상황이 이래서…… 거기다 이번 달 월세를 못 내게 됐으니……." 소라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만지작거리던 손가락도 그 자리에 멈췄다. 소라의 얼굴이 울상이 되고, 이를 꼭 악다물었다. 마치 뭔가를 꾹 참으려는 듯이.
"소라 쨩?" 아로나가 싯딤의 상자에서 물었다.
어색한 침묵을 깨뜨린 건 눈앞의 작은 편의점 점원이 조용히 흐느끼는 소리였다. 소라는 앞치마 끝자락을 꼬옥 틀어쥐었다. 소라의 작은 손바닥에 앞치마는 구겨져서 작은 공처럼 되었다. 그리고 글썽이던 눈물이 방울져 앞치마에 떨어졌다.
"가게를 닫을 거래요……." 훌쩍이면서 소라가 말을 이었다. "그— 그렇게까지 엄청난 일은 아니었지만요, 저, 진짜로 잘 해보고 싶었어요……! 진짜로 사람들하고 더 잘 얘기하고 싶었고요, 이렇게 간단한 일이면 진짜로 제가 원하는 모습이 될 수 있겠다 생각했어요! 그런데 결국 저는 눈도 제대로 못 맞추고 항상 서투른 모습만 보여드렸네요……." 그렇게 소라는 눈을 감아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가뒀다. "저 때문에 가게 문을 닫는 걸지도 몰라요……." 그렇게 내뱉은 소라의 흐느낌이 조금 더 커졌다. 울음소리는 꼭 앙다문 입술에 가로막혔다.
지금 이 순간, 자신이 실패했다고 생각해서 눈물을 흘리는 학생을 눈앞에 두고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나는 선생으로서 실격이다.
나는 카운터에 다시 다가가 꾸벅꾸벅 고개를 숙이느라 헝클어진 소라의 금빛 머리칼에 손을 올리고 부드럽게 쓸어넘겼다. 이곳저곳 부스스하게 얽힌 머리카락이어도 매장의 불빛을 받아 반짝였다.
"소라는 충분히 열심히 한 거야. 너무 자신을 그렇게 나무라지 말아줘."
학생들은 실수를 할 수도 있고, 실패를 겪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배워나가는 것이다. 선생님의, 어른의 역할은 학생들에게 성공의 열쇠를 쥐어주는 것. 학생이 최선을 다하여 모든 것을 쏟아부었음에도 실패한다면, 그 실패의 책임은 내가 지어야 할 것이다.
"아직 할 수 있는 게 남았어, 소라야. 아직 끝이 아니야."
그렇다. 소라의 선생님으로서 나는 실수를 양식 삼아 성장하는 것을 몸소 보여주어야 한다. 끝은 우리가 끝이라고 인정했을 때 비로소 찾아오며, 아직 우리에게는 할 수 있는 일이 너무나도 많이 남아 있었다.
소라의 흐느낌은 훌쩍이는 소리로 잦아들었고, 이윽고 고개를 든 소라의 커다랗고 푸르른 눈망울에는 눈물이 아닌 희미한 희망의 빛이 깃들어 있었다. 그 눈과 나의 수면부족으로 거무튀튀해진 눈이 시선을 맞췄다.
"선생님……?"
나는 미소를 지었다. 활짝 웃었다. 아니, 히죽거리기까지 했다. 뒷걸음질치는 소라를 보면 퍽 수상해보이는 웃음을 지은 듯 하지만 내 머릿속에는 기가 막히게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시바세키 라멘 종업원 복장을 한 세리카의 귀여움을 목도한 그 순간부터 실행에 옮기고 싶었던 바로 그 아이디어가.
"아로나, 소라." 두 사람의 이목을 한 몸에 받으며 말했다.
"키보토스에 카페를 열 거야."
